한 달 수입에서 지출한 돈을 빼면 남은 돈을 저축하거나 투자할 수 있다. 즉 지출한 돈과 저축하거나 투자한 돈을 합한 것이 그 달의 수입이다. 경제학자는 이것을 돈의 양이 보존되는‘돈의 보존법칙’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자연계에는 보존되는 물리량이 많다. 전하량도 보존되고, 운동량도 보존된다. 이렇게 보존되는 양이 있다는 사실은 자연현상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보존법칙은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법칙을 만든 이유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보존법칙을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리학자는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쉽게 풀고 싶어한다. 즉 에너지 보존법칙은 문제를 쉽게 풀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어떤 일도 공짜가 없듯이 쉽게 풀려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여름철 수영장에서 최고의 재미를 안겨주는 워터슬라이드. 두 손을 들고 환호하며 워터슬라이드를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자. 마찰이 없는 워터슬라이드의 한 지점을 통과하는 사람의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뉴턴의 법칙을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워터슬라이드에서 미끄러지는 사람의 속도를 구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가속도는 워터슬라이드의 모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구하기 매우 어렵다.
역학적 에너지 = 운동에너지 + 퍼텐셜에너지
역학적 에너지란 질량이 m이고, 속력이 v인 물체의 운동에너지 $\frac{1}{2}m{v}^{2}$와 퍼텐셜에너지($U$)를 합한 양이다. 퍼텐셜에너지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중력에 대해서는 위치에너지($U(y)=mgy$), 용수철에 대해서는 탄성에너지($U(x)= \frac{1}{2}k{x}^{2}$)로 쓰기도 하지만 모두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퍼텐셜에너지라는 말로 쓴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절벽 위에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에 사람이 서있다면 공포를 느낄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그럴까. 바위가 떨어지면서 몸에 부딪쳐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용하는 모든 힘에 대해 퍼텐셜에너지를 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반드시‘보존력’ 이라는 힘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 보존력이란 힘이 물체에 작용하면서 임의의 닫힌 경로를 움직였을 때 한 알짜일이 0이 되는 힘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위로 던졌을 때 작용하는 중력을 생각해보자. 사과는 처음에 속력 ${v}_{0}$, 운동에너지 $\frac{1}{2}m{v}^{2}_{0}$를 가지고 위로 올라간다. 중력 때문에 사과는 천천히 올라가고, 정지했다가 다시 떨어진다. 사과가 원래의 위치에 왔을 때 속력은 다시 ${v}_{0}$이고, 운동에너지는 $\frac{1}{2}m{v}_{0}^{2}$이다. 따라서 사과가 올라갈 때 중력은 사과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게 하지만, 떨어질 때는 똑같은 에너지를 사과에 전해준다. 중력이 한 일이 운동에너지의 변화와 같으므로 사과가 올라갔다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올 때 중력이 사과에 한 알짜일은 0이다.
보존력에 대한 정의를 더 재미있게 바꿔보면, 두 점 사이를 움직이는 물체에 보존력이 한 일은 입자가 움직인 경로에 상관없이 항상 같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존력이 한 일은 시작점과 끝점만 정해지면 어떤 경로를 택해서 가더라도 똑같다. 따라서 두 점 사이의 퍼텐셜에너지 차이는 두 점에서의 퍼텐셜에너지만 알면 된다. 즉 퍼텐셜에너지는 위치의 함수로 정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위치의 함수로 정해지는 퍼텐셜 에너지는 반드시 보존력일 경우에만 구할 수 있다. 경로에 따라서 한 일이 다르다면 끝점에 도달했을 때 한일이 선택한 경로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그 점까지 도달했을 때 한 일은 여러 값을 가질 수 있다. 한 점에서 여러 값을 가진다면 그 양은 함수가 될 수 없다.
능력 없는(?) 마찰력
그렇다면 경로에 무관하지 않은 힘, 즉 보존되지 않는 힘도 있을까? 물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찰력이다. 마찰력은 항상 물체가 움직이는 반대방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시작점과 끝점이 같더라도 움직인 경로의 길이가 길수록 마찰력이 한 일의 크기(마찰력은 음의 일을 한다)는 점점 커진다. 그러므로 마찰력이 한 일은 경로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마찰력은 보존력이 아니고, 마찰력에 대한 퍼텐셜에너지는 구할 수 없다.
물체에 한 일은 운동에너지를 변화시킨다. 사실 이것이 일에 대한 정의다. 이것을 수식으로는$W=ΔK$로 쓰고, ‘일과 에너지 정리’라고 부른다. 여기서 $ΔK$는 운동에너지의 변화이다. 한편 퍼텐셜에너지는 $W=-ΔU$(퍼텐셜에너지의 변화가일)의관계가 있으므로 $ΔK+ΔU=Δ(K+U)=ΔE=0$이라는 뜻이다. 역학적 에너지($E=K+U$)는 물체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할 때 변하지 않는다. 즉 역학적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복잡하기만 한 에너지 보존법칙을 배우고 나면 문제를 간단히 풀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질량 $m$인 어린이가 마찰이 없는 워터슬라이드에서 높이 $h$만큼 내려왔을 때의 속도를 구한다고 하자. 역학적에너지 보존법칙을 이용하면 처음 시작한 점과 내려온 점에서의 역학적 에너지가 같으므로 $mgh= \frac{1}{2}m{v}^{2}$에서 속력을 구할 수 있다. 이 예처럼 뉴턴의 법칙으로 풀기에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역학적 에너지 보존법칙을 사용하면 쉽게 풀수 있다.
마찰력 같은 비보존력이 작용하면 보존되는 양이 없을까. 사실 마찰력은 운동의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므로 항상 음의 일을 해 물체의 역학적 에너지를 감소시킨다. 그러나 에너지 보존법칙이 성립하도록 에너지의 개념을 확장해 물리학자들은 또 한 번 보존법칙을 만들었다.
물체가 바닥에서 이동하면 물체와 바닥이 서로 마찰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열이 발생한다. 그런데 열도 에너지의 일종이다. 역학적 에너지는 운동에너지처럼 물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생기는 것이고, 열에너지는 물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운동에너지를 더한 것이다.
따라서 마찰력이 있는 경우에 외부에서 에너지의 출입이 없으면 마찰력으로 생긴 열에너지와 감소한 역학적 에너지를 더한 전체 에너지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법칙을 사용한다. 어떤 경우에는 열에너지를 물체의 내부에 있는 에너지라고 해서 내부에너지라고도 부른다.
중성미자 발견의 견인차
에너지 보존법칙은 물체의 속도가 작은 경우에 적용되는 뉴턴역학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여서 특수상대론을 사용해야 할 때에도 성립하는 법칙이다. 다만 이때는 질량도 에너지의 일종이므로 질량에너지까지 포함해 전체 에너지가 보존된다. 전자와 이의 반입자인 양전자가 만나면 서로 소멸돼 전자기파(감마선)가 나온다. 이는 ${e}^{-}+{e}^{+}→γ+γ$로 표현하는데, 소멸되기 전의 전자, 양전자의 에너지 와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서로 같다.
중성자가 혼자 약 17분 정도 있으면 양성자와 전자, 그리고 중성미자로 붕괴한다($n→p+{e}^{-}+{v}^{-}$). 그러나 중성미자는 질량도 없고, 발견하기 어려워서 측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중성자의 에너지와 붕괴된 후의 양성자와 전자의 에너지 합은 같지 않았다. 따라서 중성자 붕괴에서는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고 물리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
1931년 파울리는 중성미자라는 새로운 입자가 있으면 에너지가 보존된다고 하면서 중성미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결국 1950년대 중성미자가 발견되면서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것도 입증됐다. 파울리는 배타원리로 1945년 노벨물리학상을, 프레드릭 라인스와 마틴 펄은 중성미자를 발견한 공로로 199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