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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생명체가 만날 때

살아 움직이는 바이오모픽 건축

루퍼트 쉘드레이크(Rupert Sheldrake)라는 생물학자가 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실력 있는 과학자이지만 생물학계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된다. 현대 생물학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고 생명 현상을 ‘살아있는 자연’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현대 생명공학은 DNA의 염기서열을 읽어 마치 생명체의 형성 비밀을 모두 찾은 것처럼 말하지만 쉘드레이크가 보는 유전자는 생명체라는 건물의 전체 설계도가 아니라 단백질이라는 벽돌 또는 골재의 설계도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형태 공명’(morphic resonance)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분자라는 아주 작은 조직에서 거대한 사회 조직까지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형태발생 장’(morphogenetic fields)에 의해 조직된다. ‘형태발생 장’은 반복적인 습관에 따라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생명체는 영원불변한 유전자의 법칙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종(種)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생명체가 가진 습관적인 의식과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형태발생 장’의 지배를 받는다.

비록 쉘드레이크의 이론이 과학에서는 사이비로 치부되지만 건축에서는 새로운 개념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바이오모픽(Biomorphic) 건축’에서 그렇다.

생명은 형태요, 형태는 생명이니

바이오모픽 건축은 생명체의 생명 현상을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건축이다. 쉽게 말해 곤충이나 나무 등 자연의 구조 자체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 자연을 건축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형태발생 장’ 같은 개념이 바이오모픽 건축에 적용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간 생명체의 생명력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건축가를 포함한 예술가에게 찬사와 모방의 대상이었다. 특히 건축가들은 자연에서 흔히 보는 외관의 표면적인 형태가 아니라 생명체의 유기적인 성장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건물 형태를 원했고, 그 형태에 생명력까지 더하려고 했다. 바이오모픽 건축은 건축가들의 이런 욕구를 표현한 것이다.

건축에서 생명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당시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을 중심으로 ‘생(生) 철학’이 발전하면서 생명주의 사상이 과학과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베르그송은 1907년 ‘창조적 진화’(L'E volution creatrice)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여기서 ‘생명은 단순한 물질이 결합해 기계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생명 충동, 곧 동적이며 예견 불가능한 힘인 생의 비약을 통해 창조적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베르그송의 이런 사상은 건축가들에게 자율적인 형태에 관한 철학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생명은 형태이며, 형태는 생명’이다. 그는 형태를 생명, 움직임, 유기적인 것으로 비유하면서 자율적인 생명력을 지닌 생명체로 인식했다.

당시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은 건축을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명력이 잠재된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생물학자들이 살아있는 세포를 연구한 것도 바이오모픽 건축이 싹트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미경 덕분에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예전에는 생명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이 생물학에 포함됐다. 이로써 건축가들이 적용할 수 있는 생명체 모델이 늘어났다.

바이오모픽 건축의 문을 연 인물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프레데릭 키슬러(Frederik Kiesler)였다. 그는 1950년 ‘엔드리스 하우스’(Endless House)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키슬러는 여기서 집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에코시스템(ecosystem)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 빛과 그림자의 변화, 야간 조명, 온도 조절, 환기 등 집의 다양한 환경 조건을 에코시스템에 맞춰 설계했다.
 

2004년 네덜란드 볼리바드 지역에 들어선 '리빙 투머로우'. 50m 길이의 튜브 2개를 가로 세로로 연결했다. 자동 쓰레기 처리시설을 비롯해 빗물을 정화해 생활 용수로 쓸 수 있는 시설 등을 갖춘 미래형 건축이다.


시간과 공간 경계 허물어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자 형태의 건축 개념을 버려야했다. 상자 형태의 건물에는 가장자리라든가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다. 키슬러는 이런 경계로 분할된 공간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엔드리스’라는 개념 속에서 유기적이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연속적인 공간 디자인을 창조했다. 천장과 벽, 바닥의 구분이 없는 ‘엔드리스 하우스’는 키슬러의 이런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건축이다.

요즘 바이오모픽 건축은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부터 ‘프랙탈 기하학’이나 ‘카오스 이론’ 같은 복잡성 과학을 다룬 작품까지 다양하다.

벨기에의 빈센트 칼보(Vincent Callebaut)가 설계한 ‘에코쿤’(Ecocoon, 2003년)은 건물 표면이 도시의 각종 오염 물질을 흡수한 뒤 이를 에너지로 재생하도록 했다. 네덜란드의 ‘유엔 스튜디오’(UN Studio)는 ‘리빙 투머로우’(Living Tomorrow, 2003년)에서 안팎의 구분이 없는 ‘클라인 병’(Klein Bottle)과 같은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다이어그램을 적절히 결합했다.

이런 바이오모픽 건축이 가능했던 이유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생명체 같은 비선형적인 형태를 건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모델을 연산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이 필요하다. 다양한 알고리즘을 이용한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선형적인 체계 대신 비선형적인 체계를 채택한 바이오모픽 건축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이 중 시간 개념을 도입해 디자인 과정에 반영하거나 가상공간에서 사용자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형태를 바꾸는 바이오모픽 건축은 실제로 많이 진행되고 있다.

네덜란드에 설치된 ‘선-오-하우스’(Son-O-House, 2005년)는 네덜란드의 건축회사 녹스(NOX)와 미디어 아티스트 에드윈 반 데어 하이드(Edwin van der Heide)가 세운 일종의 소리 건축이다.
 

바이오모픽 건축의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엔드리스 하우스'. 양치식물의 잎 모양을 형상화 했다.


물리적+디지털+감성적

‘선-오-하우스’에는 센서 23개와 스피커 20개가 달려 있어 방문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 마치 생명체처럼 24시간 살아 있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즉 방문자가 움직이면 작곡 방식이 바뀌도록 프로그래밍 해놓았기 때문에 건물에서 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변화고 진화한다. 방문자는 ‘선-오-하우스’에서 건축 공간과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건축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체’로 존재해왔다. 건축은 인간과 함께 성장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담았고, 인간의 변화와 진화를 표현했다. 어쩌면 건축가는 생명체의 창조자가 되기를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생명체처럼 완벽한 건축물을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이오모픽 건축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의 건축은 물리적인 공간과 디지털 공간 그리고 감성적인 공간이 공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이오모픽 건축은 미래 건축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5월 문을 연 '선-오-하우스'. 23개의 센서와 20개의 스피커가 달려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방문자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 소리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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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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