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A(48)씨는 밤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2 수험생인 딸이 위층 집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때문에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A씨는 참다못해 위층 집 주인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이들 키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우리도 윗집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아이들 뛰는 소리, 애완견 짖는 소리, 밤늦게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 모두 ‘층간 소음’에 해당한다. “소음 때문에 이웃과 얼굴 붉히고 싶지 않다”는 호소가 몇 년째 늘어나고 있다. 전국 총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층간 소음’은 민감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건설교통부는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층간 소음 규정을 넣도록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난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아파트에서는 소음을 내는 집에 자체 벌과금을 물릴 수 있다. 소음 문제를 둘러싼 이웃 간의 다툼을 막기 위해서다. 더 근본적인 대책은 없을까.
낮엔 바닥소음, 밤엔 설비소음
“최근 아파트 이웃 간에 소음 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요, 소음이 그렇게 잘 들리는 이유가 뭐죠?”
“우리나라 아파트의 대부분은 옆집과 벽을, 위아래 집과 바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두께 15~20cm 정도의 철근 콘크리트 벽과 바닥판이 서로 연결돼 있죠. 다시 말해 상하층과 옆 세대 간에 소음이나 진동이 매우 잘 전달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바닥에 충격으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소음도 소음 나름 아닐까요?”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소음에 대해 말씀드리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같은 바닥충격 소음과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같은 설비소음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바닥충격 소음이, 밤에는 설비소음에 대한 지적이 높게 나타납니다.”
온돌 바닥은 소음에 취약하다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이 그렇게 쉽게 전달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구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은 일부 초고층 아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철근콘크리트 구조고, 뼈대는 벽이 무게를 지탱하는 ‘벽식구조’(wall-slab)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층 높이를 낮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벽이 무게를 받치기 때문에 기둥이 필요 없어 모서리 부분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편리하죠. 하지만 층간소음을 줄이는 측면에서는 불리한 구조입니다.”
“그럼 벽을 통해서 소음이 전달된다는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벽과 바닥으로만 이뤄진 벽식구조는 위층의 충격이 바닥판뿐만 아니라 집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벽을 통해서도 전달되기 때문에 소음을 줄이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사무용 빌딩처럼 보와 기둥, 슬래브로 구성돼 위층의 무게를 보와 기둥이 받치는 건물은 상부의 충격이 바닥판에서 보로, 그리고 기둥으로 전달돼 나갑니다. 이때 보에서 바닥판의 흔들림을 잡아주고 그 충격이 벽을 거치지 않고 바로 기둥으로 전달됩니다. 같은 두께의 슬래브를 갖는 벽식구조 아파트보다 바닥충격음 차단에 더 유리한 구조라고 할 수 있죠.”
“그럼 벽이나 바닥에 가까운 사람이 소음을 많이 느끼겠네요?”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온돌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잡니다. 고대부터 사용된 온돌은 사람이 쾌적함을 느끼는 가장 뛰어난 난방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생활하면 소음이 벽이나 바닥을 타고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훨씬 잘 들립니다. 소리가 공기보다 구조물을 통해 전달되면 손실 없이 멀리 전달되기 때문이죠. 벽이나 바닥에 귀를 밀착시키고 들어보세요.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가 훨씬 잘 들릴 겁니다.”
작은 소음은 카페트로 막는다
“그럼 실제로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죠.”
“먼저 아파트 구조를 볼까요. 우리나라 아파트의 바닥구조는 난방을 위해 다층구조로 구성돼 있습니다. 건물 무게를 지지하는 ‘바닥 슬래브’와 열을 저장하고 내보내는 ‘온돌상부 구성층’, 사람들이 직접 밟는 ‘바닥 마감재’, 그리고 배선과 조명기구가 설치된 ‘천장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따라서 바닥충격음에 대한 대책도 4가지로 나눠 수립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부터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가 카페트나 장판지처럼 유연한 바닥 마감재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큰 공사 없이도 가능하죠. 부드럽고 탄성이 낮은 마감재를 사용하면 바닥으로 전달되는 에너지가 대부분 흡수돼 소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카페트만 깔아도 소음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네요.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이 방법은 작은 충격음에는 효과적이지만 큰 충격음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카페트나 장판으로는 한계가 있죠.”
묵직하고 딱딱한 바닥이 조용하다
“또 어떤 방법이 있지요?”
“충격을 완충시키는 ‘뜬바닥 공법’이 있습니다. 바닥 슬래브나 벽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이 온돌 바닥까지 전달되지 않도록 단열재나 고무 같은 완충재를 넣어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입니다. 바닥을 절연시킨다는 뜻에서 ‘뜬바닥’이라고 부르죠. 바닥 충격음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럼 바닥을 이중으로 만들어 충격을 완충시키면 소음이 더 잘 차단된다는 말씀입니까?”
“최근 공동주택 완충층에 이중 바닥구조를 도입해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충격음의 경우엔 특정주파수 대역에서 공진(共振)이 일어나 오히려 소음이 더 커지는 불리한 상황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중 바닥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바닥 슬래브의 무게를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닥이 묵직하면 충격이 와도 진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음도 그만큼 적게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방음 성능이 좋은 아파트는 무겁고 단단한 바닥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공기층을 확보하라
“그런데 모두 바닥으로 전달되는 소음을 막는 방법이네요. 위층 집에서 나는 소음을 줄이는 방법은 없나요?”
“물론 있습니다. 천장을 통해 전달되는 소음을 차단하는 공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닥처럼 천장을 이중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공기층이 생겨 진동이 잘 전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기층에서 공진이 일어나면 바닥 충격음을 차단하는 성능이 오히려 나빠질 수 있습니다.”
“이중 천장을 시공해도 소음을 다 막을 수는 없겠군요.”
“더 필요하면 바닥 슬래브와 천장 구조 사이에 소리를 흡수하는 섬유시트나 같은 흡음재를 넣어 소음 차단 성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천장 구조와 바닥 슬래브가 연결되는 부위에 충격이 전달되는 것을 막는 절연용 앵커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천장의 진동이 바닥으로 바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소음을 줄일 수 있죠.”
판교에는 조용한 아파트가…
“최근 판교 신도시 아파트에도 층간 소음을 줄이는 공법이 도입된다고 하던데요.”
“예, 대표적인 경우가 대한주택공사의 아파트 단지죠. 기존 아파트에서 사용하던 철근 콘크리트 벽식구조를 버리고 측면 벽과 세대간 경계 벽을 제외한 내부 벽체를 기둥과 평판슬래브로 대체했습니다. 벽을 통해 전달되던 층간 소음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구조를 바꾸면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계산에 따르면 벽 두께를 3cm 이상 줄이면서도 3데시벨(dB) 이상 소음을 줄여 줍니다. 그리고 아파트를 개조할 때 걸림돌이 됐던 건물 무게를 받치는 내력벽이 줄어들기 때문에 리모델링도 편리하죠.”
“그런데 이렇게 해도 소음이 차단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아파트는 한 건물 속에서 여러 세대가 벽과 바닥을 공유하면서 생활하는 건물입니다. 윗집이나 옆집에서 발생되는 소리가 어느 정도는 들리기 마련이에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완벽한 소음 차단 기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심코 낸 소리가 이웃집에는 소음이 되니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층간 소음 측정방법
보통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도 참기 힘들지만 작은 물체가 바닥에 떨어져 나는 높은 소음도 문제가 된다. 바닥충격음은 두 가지가 있다. 작은 물건이 떨어지거나 긁히는 소리인 ‘경량충격음’과 어린이가 뛰는 소리 같은 ‘중량충격음’이다.
성인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콘크리트 바닥 위를 걸을 때 발생하는 소리를 모방해서 경량표준충격원을 만들고, 어린이들이 의자에서 뛰어내릴 때 나는 소리를 기준으로 중량 표준충격원을 만들어 측정한다.
지난해 경량충격음 허용 기준은 가장 낮은 4등급이 58데시벨(dB), 중량충격음 기준은 사람이 대화하는 정도인 50데시벨이다. 가벼운 물체가 바닥을 치며 나는 소리가 더 큰 소음을 만들때도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소음이 이 기준을 넘으면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돼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