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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와 후원자, 갈릴레이와 메디치

편지에 새겨진 두 글자 ‘o. y.’

요즘 새벽 동쪽 하늘에는 매우 밝은 별이 하나 빛나고 있다. 이 별은 새벽을 밝혀 주는 샛별 금성이다. 금성은 근대 천문학으로 접어들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 체계에 큰 역할을 했는데 그 중심에는 갈릴레이가 있었다.

고대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천동설을 주장했다. 천동설에 따르면 금성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어 때로는 한밤중 태양의 반대편에서도 관측될 수 있어야 했지만 실제로 금성이 한밤중에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주전원 개념이다.

지구에서 봤을 때 수성과 금성, 태양을 일직선으로 함께 움직이는 가상의 선을 그리고 이 선을 중심으로 수성과 금성이 다시 작은 원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이런 가정이라면 수성과 금성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으므로 초저녁과 새벽에만 나타나는 금성의 겉보기 운동이 쉽게 설명될 수 있었다.

이런 천동설 개념은 코페르니쿠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는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에서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으로 이전한다. 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한 예가 유명한 천문학자 갈릴레이에 의해 이뤄진 금성의 관측이다.
 

동쪽하늘 해뜨기 직전 달(가운데 초승달)과 금성(오른쪽 위 밝은 점)의 모습이다. 4우러 25일을 전후해 이와 같은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전등의 주기 맥박으로 측정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1564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몰락한 귀족 집안이었던 탓에 매우 가난했다. 그러나 귀족이었던 영향으로 음악과 수학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갈릴레이 또한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였다. 갈릴레이는 피사대에 진학해 의학을 공부했는데 이는 돈을 벌 수 있기를 희망한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유명한 인물들을 보면 인생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꼭 발생하는 법. 갈릴레이의 경우 18세 에 인생을 결정짓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사 성당에서 우연히 천장을 바라보던 그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전등이 흔들리는 시간을 자신의 맥박을 이용해 측정한 갈릴레이는 신기하게도 흔들리는 정도에 관계없이 시간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간단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것이 ‘진자의 등시성’을 밝혀낸 것이다.

그 뒤 갈릴레이는 의학보다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 강의에 더 열심히 출석했다. 수학 강의에 심취한 의대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는 독학으로 수력학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유력한 재력가인 메디치가의 눈에 띄었고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피사대에서 강의를 맡게 됐다.

타고난 실험정신을 가진 갈릴레이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반대하며 자신의 이론을 널리 알렸다. 갈릴레이의 과학적 업적에는 관성의 법칙을 비롯해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 망원경 관측을 빼놓을 수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요


먼 바다 위 군함을 보여 준다

망원경의 발명은 렌즈의 발명에서 시작됐고 렌즈의 발명은 거울에서 비롯됐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곡면에 따라 일그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해 최초로 볼록렌즈를 만든 사람은 13세기 후반 피렌체에 살던 아마티라는 귀족이었다.

볼록렌즈 두 장을 적절히 배치하면 망원경이 된다. 하지만 렌즈 두 장을 겹쳐 세상을 바라보기까지 무려 2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누가 망원경을 처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데, 그중 최초로 알려진 인물은 영국의 과학자 토마스 딕스다. 그는 기다란 통의 양쪽에 렌즈 두 개를 끼워 만든 물건이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깝게 보여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네덜란드의 안경제조업자 얀센도 비슷한 실험을 했었는데 그는 물체가 거꾸로 보이자 쓸모없는 발명품이라고 관심을 접었다. 그러나 또 다른 안경 제조업자 리퍼세이는 접안렌즈 쪽에 오목렌즈를 넣었더니 물체가 바로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가 바로 1608년, 망원경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 순간이었다. 그는 쌍안경도 발명하고, 곧이어 망원경에 대해 독점 제조권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이 첫 발견자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곧 갈릴레이에게도 알려졌다. 실험을 좋아하는 갈릴레이가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파도바대의 교수였던 그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손쉽게 망원경을 만들어 베네치아의 원로원 의원들을 초청해 시연했다. 갈릴레이가 만든 첫 번째 망원경은 배율 9배의 작은 망원경이었지만 시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맨눈으로 보기 힘든 먼 바다 위의 군함을 똑똑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원경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발명품이란 것이 밝혀지자 원로원에서는 그의 봉급을 올려주고 성능 개량을 요구했다. 마침내 갈릴레이는 배율 1000배의 망원경을 만들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베네치아 총통과 스페인 국왕, 네덜란드 국왕에게까지 망원경을 만들어 팔았다.

망원경으로 하늘을 탐색하다

갈릴레이의 뛰어난 점은 망원경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망원경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단지 장난감이나 전쟁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하늘로 향했다.

1609년 어느 가을 밤 그는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했다. 망원경에 비친 달의 모습은 숨이 멎을 만큼 놀라웠다. 천체는 완전무결하다는 당신의 관념과 달리 달에는 울퉁불퉁한 곰보자국이 수도 없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달에 산과 계곡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하늘의 세상인 달도 땅과 그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으며 지상과 동일한 환경이라는 사실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 깨달음은 과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새로운 세상에 경이를 느낀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을 사용해 하늘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천문학은 큰 진전을 이룬다.

1610년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으로 금성을 봤다. 놀랍게도 망원경에 보인 금성은 예측했던 보름달 모양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달처럼 반달 모양, 초승달 모양으로 보이는 위상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사실은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이론으로만 풀이할 수 있는 현상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없었다. 이 발견은 고대 그리스 천문학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자 태양 중심의 새로운 체계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천동설과 지동설로 본 금성^천동설(왼쪽)은 금성의 위상변화를 설명할 수 있어도 행성의 크기변화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동설(오른쪽)은 위상변화와 크기변화도 설명이 가능하다. 지구에서 금성까지 거리가 멀수록 금성의 크기는 작아 보인다.


사랑의 어머니가 신시아를 흉내 내다

당시 과학자들이 자신의 발견을 드러내놓고 주장하지 못했듯 갈릴레이 또한 그랬다. 가톨릭의 교리 위반 위험도 있었지만 그보다 스스로도 자신의 발견을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발견이 엉터리라면 그 동안 이룬 모든 업적들마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확신이 들 때까지 발표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발표를 미루는 동안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발견해 자신이 먼저라고 주장한다면 그것 또한 큰일이었다. 갈릴레이는 고심 끝에 묘안을 짜냈다.

1610년 12월 11일 프라하의 대사로 가 있던 그의 후견인 메디치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Haec immatura a me jam frustra leguntur o. y.’(때 이르게 뭔가가 내 눈에 띄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 말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말할 수 없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중요한 것은 맨 마지막의 두 글자 ‘o. y.’. 라틴어 o. y.는 앞의 문장이 수수께끼라는 뜻이다. 앞 문장의 알파벳을 재배열하고 j를 i로 바꾸면 ‘Cynthiae figuras aemulatur Mater Amorum’(사랑의 어머니가 신시아를 흉내 내다)이 된다. 사랑의 어머니는 금성이고 신시아를 달을 뜻하므로 이 문장은 금성의 위상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금성의 위상변화가 틀린 것으로 판명나면 그냥 없는 것으로 묻히고 옳은 것으로 밝혀져 다른 사람이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하면 자신이 보낸 편지의 날짜와 문장을 이용해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결론은 어찌 됐을까? 아무도 먼저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어서 훗날 첫 발견자는 당연히 갈릴레이로 결정됐다. 갈릴레이의 훌륭한 업적은 비밀편지까지 썼던 학문적 꼼꼼함이 낳은 결과다.
 

소형망원경으로 본 금서으이 모습. 위상변화를 일으켜 마치 초승달처럼 보인다.


주전원 : 천동설은 금성이 해뜨기 전과 해진 후 잠깐 등장하는 이유도 설명해야 했다. 결국 금성은 태양과 비슷한 속도로 지구를 돌기 위해 궤도에 또 한번 작은 원을 그리게 된다. 이 작은 원이 주전원이다.(그림참조)

위상변화 :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위성이 태양과 지구, 위성의 위치에 따라 태양에 비치는 부분의 크기가 변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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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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