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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 30년

스프트닉에서 챌린저, 달에서 천왕성까지

막대한 돈을 들여 우주 개발은 왜 하는가. 그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공간확보를 위해서이다.


우주개발은 왜 하는가? 우리들, 지구인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왜 한국사람은 우주개발에 관심이 없나?
 

그것은 당면하고 있는 생활고 보다, 지구 위기에 대한 현실을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사람들은 다르다. 그네들은 이른바 지구의 3대위기를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중에 있다. 그 위기란 우리들도 잘 아는 ① 인구증가 ② 자원고갈 ③ 식량부족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제아무리 위기대책에 부심한다고 해도 우리의 지구는 50년밖엔 앞으로 인간을 안락하게 수용 할수가 없는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 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이 싯점에 이르렀을때 우리들은 그자리에 앉아서 멸망의 새기원을 맞이 해야하나?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할것이 아닌가. 우주개발은 이렇게 지구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추진되고 있는면도 상당히 크다. 물론 미지에 대한 탐사의 욕구, 당장의 전략적 이익, 그리고 국가의 명예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기도 하다.
 

또하나의 지구를 찾아 나서는 일 즉 지구탈출의 방법이란 무엇일까? 바로 로케트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우주탐사의 발상


아인슈타인 이후에 우주여행을 제창하였고, 그 이론과 실험면에 있어서의 선구적 구상을 한 사람들은 러시아의 '콘스탄틴 티올콥스키'(Constantin Tiolkovsky), 미국의 '로버트 가다드'(Robert Goddard)와 독일의 '헤르만 오벨트'(Herman Obert) 였다.


콘스탄틴 티올콥스키
 

'티올콥스키'는 1857년 모스크바 근교의 '이제브스크'에서 탄생하였으나 어렸을때 병을 앓고 귀먹어리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1898년에 <;로케트추진에 의한 우주선의 개발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쓴것을 위시하여 평생을 이 방면의 이론연구에 바쳤다.
 

그가 탄생한후 꼭 백년이 지났을때 소련은 마치 그의 생신 백주년을 기념이라도 하는듯이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프트닉'(Sputnik) 1호를 1957년 10월 4일에 날리는데 성공 하였다.
 

1882년, 미국에선 '로버트 가다드'라는 아기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44년 후인 1926년, 세계최초의 액체연료 로케트가 그의 손으로 하늘을 나르게 되었다.


로케트의 아버지 로버트 가다드
 

그러나 로케트가 나를때의 소음때문에, 미국시민들은 그를 역겨워하면서 서로 딴곳으로 쫓아내기에 바빴다.
 

1957년 소련이 미국을 앞질러 인공위성을 사상처음으로 발사했다는 보도에 접했을때 미국인들은 '가다드'박사에게 할말이 없었다. 1969년 미국이 드디어 달나라를 정복했을때 미국정부는 그의 미망인인 가다드부인에게 백만달러를 사과의 뜻과 함께 선사했다.
 

한편 독일에선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수학과 학생이던 '헤르만 오벨트'는 1922년 미국에서 가다드박사가 로케트발사실험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7세 였다.


헤르만 오벨트
 

그당시, 그는 <;행성공간을 나르는 로케트>;라는 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책은 1923년에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는 유명한 독일의 V-2로케트탄 개발의 초석을 만드는 연구를 선도하였으며, 그 무기를 개발한 인재들까지 키워냈다. 그들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제자는 후에 미국의 아폴로11호로 하여금 달나라로 갈수 있게 했던 새턴5호 로케트를 개발한 '폰 브라운'(Von Brown)이었던 것이다.
 

이 세사람의 선각자 덕분으로, 지구탈출의 방법은 초속 11㎞를 얻기만 하면 가능하고, 그 가능성의 길은 로케트만이 열어줄수 있음을 뒤늦게나마 우리들은 배운 것이었다.

 

소련과 미국의 경주
 

세계최초의 인공위성은 미국이 올릴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아무 예고도 없이 '스프트닉'1호를 발사하여 인류최초의 인공위성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무게는 83.6㎏. 한달후인 11월3일엔 1호의 6배나 되는, 무게가 5백8.3㎏인 '스프트닉'2호를 발사했을뿐 더러, 여기엔 '라이카'라는 개까지 타고 있었다.
 

지구위에 사는 생물중 우주여행을 처음으로 한것은 사람이 아니고 개한마리 였던 것이다.
 

이 보도에 미국의 자존심은 깨질대로 깨졌다. 당시 인공위성이니, 로케트니 하는것 같은것은 '어른들의 장난감'이라고 경시했던 '윌슨' 국방장관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미국의 필사적인 추격이 시작되었다.
 

해군의 '밴가드'(Vanguard)계획은 발사할때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하는수 없이 소박당하던 '폰 브라운'을 기용하여 육군의 '엑스플로러'(Explorer)1호를 겨우 1958년 1월31일에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그 무게는 겨우 14㎏였으니 소련것에 비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나 하는것을 능히 짐작할수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 인공위성은 비록 무게는 적었지만, 우리 지구를 이중으로 둘러 싸고 있는 방사선대(放射線帶)를 발견하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이것을 측정하는 기기를 설계하였고 또한 그 관측자료로부터 방사선대를 발견한 미국 '아이오아'대학교수 '밴 알렌'(Van Allen)의 이름을 따서 '밴 알렌' 대(帶)라 부르고 있다. 우리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태양으로부터 날아오는 강렬한 광선을 이 방사선대가 막아 주기때문에 안전하게 살수있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이어서 1958년3월17일 미국의 해군도 밴가드위성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그 무게는 엑스플로러의 또 10분의 1밖에 안되는 고추알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고추알은 지구형태가 구형(球形)이지만 정확히는 서양배(西洋梨) 같이 웅덩이 부분이 윗부분보다 옆으로 더 퍼진 모양을 하고 있음을 발견해 냈다.
 

이렇게 인공위성 개발에 해군, 육군이 제멋대로 노는것을 통합하여 미국은 이른바 미국우주항공국(NASA)을 1958년10월1일에 발족시켜 우주개발사업을 일원화시켰다.
 

이렇게 해서 인공위성의 개발경합을 미국과 소련이 시작함으로써, 60년대는 인공위성 실용화시대가 된것이다.
 

미국의 인공위성은 소련것에 비해 크기는 작았지만 우주개발과 이익면에 있어선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예를 몇개 들어 보자.
 

●OSO(Orbiting Solar Observatory): 태양관측위성으로 62년3월7일 발사되어 태양의 '플레어'(flare)를 관측하여 그 정체를 파악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OGO(Orbiting Geophysical Observatory): 지구물리위성으로 64년9월15일부터 69년6월5일까지 1∼6호를 날려 지구의 주변환경을 철저히 조사하였다.
 

●ATS(Applications Technology Satellites): 응용기술위성으로 66년12월6일서부터 74년5월30일까지 1∼6호를 발사하였다. ATS는 통신, 기상관측, 자원탐사, 해양관측기기의 개발실험을 목적으로 한것인데, 그 이후에 발사된 LANDSAT(지구관측위성), SEASAT(해양관측위성), INTELSAT(정지통신위성) 등의 발사, 응용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오늘날 우리들이 기상예보, 자원탐사, 국제통화, 우주중계 등에 있어서 광범위한 실생활의 혜택을 입을수 있게 해준것이다.
 

● Uher : X선 관측위성으로 70년3월에 올려 전혀 알지도 못했던 X선천체를 약 2백개나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우주구조에 관한 재래식생각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인류사상 최초의 인공위성'스프트닉'1호(상) 미국과 인공위성 제1호. '엑스플로러'1호(하)

 

드디어 달에 가다


NASA는 61년5월25일에 발표한 '케네디' 대통령의 월세계착륙선언을 실현하기 위해 '아폴로'(Apollo)계획을 세웠다.
 

세사람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까지 가서 두사람이 그곳에 착륙을 감행하자는 것이다.
 

말로는 쉽지만 그것은 그렇게 쉽게 이뤄질 계획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사람을 태우고 나르는 '머큐리'(Mercury)계획, 2인승우주선으로 된 '제미니'(Gemini) 계획을 세워 우주 랑데부, 도킹 그리고 우주유영(遊泳) 실험등을 거치는 한편, 달표면의 물리적조건을 알기 위해 달까지 무인탐사선을 보내는 계획도 추진했다. 소련도 경쟁에 나섰다. 달표면탐사경합에서도 미국은 처음엔 여러번 고배를 마셨다. 달에 처음으로 탐사선을 보낸것도 소련이었고, 달 뒷면사진을 찍는데 성공한것도 소련이었다. 소련의 '루니크'(Lunic)탐사선은 13호까지, 이어서 '존드'(Zond)탐사선은 3호까지 발사 되었고 미국은 '레인저'(Ranger)탐사선 1∼9호로 맞섰다. 그리고 뒤이어 '오비터'(Orbiter)호로써 모든 열세를 만회했다. 이때가 66년 8월.
 

인류사상 최대의 감격 월세계 정복

 

아폴로 계획때도 3명희생


미국은 이것으로 준비는 완료되었다. 아폴로계획이 본격적으로 발동되었지만 여기에 첫 사고가 났다. 지난 1월29일에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가 7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발사대를 출발한지 74초만에 대폭발하여 공중에서 우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화(散華)했던 사건에 앞서, 3명의 아폴로 1호비행사 '그리손'(Grisson), '화이트'(White) 및 '챠퓌'(Chaffee)가 우주선안에서 모의(模擬) 실험을 하던중 배선에서 불꽃이 튀어 선내의 산소개스에 인화되어 순식간에 검은 숫가루(炭粉)가 되고 만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굽히지 않았다. 69년7월21일, '새턴'5호로케트(길이 1백18m, 무게 2천5백t)가 우주공간에 날린 아폴로11호는 드디어 달표면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던것이다. 달표면에 내린 우주비행사 2명의 이름은 '암스트롱'(Armstrong)과 '앨드린'(Aldrin)이었다. 선장의 임무를 맡았던 암스트롱은 달지면에 서자마자 지구에게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 한사람의 발길은 비록 작지만, 인류전체를 위한 위대한 도약이다.)
 

이 일이야말로 우리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사라 아니할수가 없다. 이것을 20세기의 인류가 해냈던것이다.
 

아폴로 11호로 막을 연 새차원의 우주시대는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해 주었다.
 

1972년 12월까지 아폴로계획은 11, 12, 14, 15, 16, 17호까지 혁혁한 기록을 남기고 끝났다.
 

달의 흙은 지구흙보다 기름진 흙이었음이 알려졌고, 지구상에서 발견된 1백20여종의 원소중에서 60여종은 달세계에서도 검출이 되었다. 특기할것은 산화(酸化) '티타늄'이 지구보다 훨씬 많이 매장돼 있다는것, 달표면의 모래는 결정체(結晶体)가루가 주로 되어 있다는것들이 알려졌다. 햇빛이 쪼이는 곳은 +110℃, 그늘진곳은 -100℃이다. 대기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장차 50년후엔 달나라도시가 건설이 될것이다. 우선 광산과 연구소가 업무를 시작하고 그다음은 점차로 이민도시가 형성될것이다.
 

그러나 달은 지구크기의 4분의1이다. 따라서 표면적은 지구것에 비해 약 40분의 1밖에 되지않는다. 그래서 지구의 위기(인구,자원,식량)문제를 여유있게 해소해주기엔 너무나도 작고 협소한 천체이다. 약 3백50년쯤 이용대상이 되고 그후에는 사람들로써 초만원을 이루게 될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다음엔 어디로 가나. 과학자의 눈은 자연이 우리 태양계의 행성(行星)들에게 향하게 되지 않을수가 없게 되었다.

 

더 멀리-행성을 향해
 

 

금성의 대기성분


태양계는 태양을 가장으로 하여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및 명왕성이란 9개의 대행성과, 화성-목성궤도 사이의 공간을 소행성(현재까지 약 2천개가 발견되었다)이 끼고 돌고 있다. 여기에 또한 혜성들이 여러가지 형태의 궤도를 그리며, 역시 태양을 끼고 도는데 이것도 지금까지 약 2천개가 발견되었다.

지구는 태양볕을 적당히 받아, 생물이 살고 자랄수 있는 가장 온화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태양계중의 행성이다. 지구 다음가는 환경의 행성은 자연이 지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행성이 아닐까? 그래서 우선 금성과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기로 하였다. 소련은 '비너스'(Venus)계획을 세워 연속하여 금성탐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도 '마리너'(Mariner)탐사선을 만들어 금성 및 화성탐사에 나섰다.
 

소련은 66년3월에 사상처음으로 '비너스3호를 금성에 보내 명중시켰다. 그후 계속 4∼10호까지 금성에 날려 많은것을 알아냈고, 특히 비너스 9∼10호는 5백㎞나 되는 두터운 탄산개스구름을 뚫고 금성표면에 연착륙 시키는데 성공하여 4백50℃가 넘는 지옥같은 온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 왔다. 그리고 금성대기의 성분이 다음과 같이 돼있음을 밝혀냈다.
 

미국은 이에 지지않는 탐사성과를 올렸다. 특히 73년11월에 '마리너'10호를 금성에 보낸결과 좋은 사진을 얻었고 지형탐사 및 금성대기의 대류(対流)운동상태를 자세히 알아 냈고 금성대기는 탄산개스라기 보다 유산(硫酸)개스에 가까운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은 또하나의 역사적인 위업을 남겼다.
 

화성에 보낸 마리너 9호가 9천장의 화성 표면사진을 찍어 보내오게하여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것이 71년11월이었는데, 75년8월20일에 '바이킹'(Viking) 탐사선1호를, 그리고 11개월후인 76년7월20일엔 2호를 화성을 향해 발사하여, 각각 11개월의 대여행 끝에 화성표면에 삽과 실험실을 싣고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한것이다.
 

바이킹탐사선이 찍어 보낸 화성 표면은 붉은 바윗돌이 무수히 깔려 있는 사막뿐이었다. 지구에서 화성을 보면 <;마(魔)의 붉은별>;같이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싣고 간 삽으로 흙을 파서 탐사선내의 배양실에 넣었다.
 

화성에 생물이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이 실험을 주관한 '소펜'(Sophen)박사는 그 실험결과를 지켜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왔었는데, 화성에 생물이 있었느냐?의 실험결과는 "yes and no"라고 말했다.
 

미국의 마리너10호탐사선은 금성탐사에 성공한뒤에 수성에 접근하여 수성표면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그 표면모습은 우리지구의 달과 너무나도 흡사하였다.

보이저호의 원정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물론 목성,토성이다. 미국은 '보이저'(Voyager)계획이란 대야심작을 들고 나섰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부터 소련은 60년대의 우주개발주도권을 완전히 미국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우선 미국은 '파이오니어' 10∼11호를 73년12월과 74년12월에 목성에 도달케하여 목성에도 고리(環)가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이 경험을 이용해 드디어 77년8월20일 '보이저' 2호를 먼저 떠나게 하였고 77년9월5일 1호도 발사가 되었다. 1년반이상이나 되는 장정(長征)끝에 1호가 79년3월4일, 2호가 7월10일에 각각 목성에 도달하였고 놀라운 목성의 표면 사진 뿐만 아니라 목성의 달들의 모습까지 우리들한테 보여 주었다. 전세계 사람들의 감격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보이저'1호는 목성의 제1번달(衛星)인 '아이오'에서 화산이 터지고 있는 장면을 잡았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화산활동으로 얼룩진 모습을 사진에서 잘 볼수가 있을것이다.
 

목성을 지나 또다시 1년반이상의 대여행 끝에 1호는 80년11월12일, 2호는 2년1개월만인 81년8월25일에 각각 토성에 이르렀다. 그리고 토성의 사진을 보내온것을 보고 전세계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사진을 보면 토성의 고리가 그 얼마나 장관을 이루고 있는지를 직감할수가 있으리라. 수백겹으로 돼있는 얇은 이 고리는 모두가 5㎜∼1m정도의 어름알들의 집단임을 알아냈다. 토성의 달도 새로운것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18개까지는 확인이 되었는데 더 있는 것 같다.

천왕성에 도달한 보이저2호


'보이저'2호는 여행을 계속하여 지난 1월24일, 드디어 천왕성에 도착했다. 지구에서 떠난지 8년6개월이란 대장정 끝에 천왕성에까지 가게한 미국 과학기술진의 승리는 높이 평가하여야 할것이다. 보이저2호가 찍어 보낸 천왕성의 사진이 TV를 통해 보도 된것을 보고 한국사람들은 그리 크게 감명을 받지못한것 같다. 그만큼 무엇이 위대한 과학적 업적인지 감을 잡을수 없을만큼 후진성을 탈피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보이저2호는 천왕성을 지나 지금 해왕성을 향해 나르고 있다. 다시 3년7개월후인 89년8월24일엔 해왕성에 이르러 이 행성의 복면을 벗겨줄것이다.

 

우주공간은 어떻게 이용되나
 

인공위성을 이용한 지구주변 우주공간의 생활화는 이제 그 실용단계에 들어갔다. 평화적인 활용면에서 앞서 소개한바와 같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상위성, 통신위성, 자원조사위성, 해양위성, 과학연구위성들이 활약하고 있고 여기에다가 군사용 위성이 암약하고 있는것이다. 사실은 지금까지 발사된 5천개가 넘는 위성중에 겨우 3분의1이 평화적으로 활약하고 있을뿐, 미·소 쌍방이 발사한 위성의 총수의 3분의2는 군사용으로 쏘아 올린 것들인것이다. 정보수집을 위한 간첩을 고생시켜 상대국에 잠입시킬 필요가 없다. 인공위성은 아무런 구애받음없이 상대방 지역위를 나르면서 마음대로 사진도 찍고, 탐지도 할수있으니까 보다 정교하고 보다 다양한 첩보위성을 그동안 수없이 미국과 소련은 발사해 왔던 것이다.
 

이것이 SDI(별들의 전쟁)즉 우주전쟁의 구상으로까지로 발전돼 있음은 여러가지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지구주변의 우주공간뿐만 아니라 행성과 대양탐사를 위한 새로운 역군으로서 등장한것이 '우주왕복선'(space shuttle)이다. 로케트는 한번 사용하면 그것으로 버리게 된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사용할수 있는 로케트를 만들자 해서 고생고생끝에 개발한 것이 바로 미국의 우주왕복선 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약 1백번이나 사용할 수가 있다.
 

이리하여 미국은 '콜롬비아'(Columbia)호가 제작되어 81년4월12일에 그 첫실험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어서 83년4월4일엔 제2번기인 챌린저호, 그다음엔 제3번기 디스커버리(Discovery), 그리고 85년5월21일엔 제4번기인 아틀란티스(Atlantis)가 제작, 발사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계획을 추진중이다.
 

●태양발전위성 지난 84년부터 석유에 대치될 에너지공급원으로써 태양을 이용하는 발전위성 발사를 성공시켰다. 우선 24kw 정도의 발전능력을 가진것을 올려 우주왕복선에게 전력을 공급해본다. 이것이 성공하였으므로 50kw, 1백만kw, 2백만, 5백만 그리고 1천만kw짜리까지 올린다. 우리나라전체의 작년도 수요전력이 약 8백만kw라 하는데, 이것 한대만갖고도 능히 한국이란 나라 하나의 전력문제는 몽땅 해결할수가 있다. 특히 올해에는 역사적인 우주개발행사가 가장 다양하게 계획되고 있었다. 지난 폭발사고로 차질이 예상되지만….
 

●핼리혜성관측 이번 3월에 콜롬비아호를 발사하여 핼리혜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때를 맞추어 관측에 나서려고 준비.
 

●태양극궤도위성 태양의 남북극을 도는 극궤도(極軌道)위성을 발사하는 율리시즈(Ulysses)계획을 챌린저호가 5월에 수행.
 

●갈릴레오탐사선 아틀란티스호를 사용하여 목성의 대적반(大赤斑) 속에 낙하산으로 매달은 탐사선을 돌입시키기 위한 발사 계획을 6월에 실시. (이 기회를 놓치면 11개월을 또 기다려야 한다.)
 

●우주망원경 12억불을 들인 사상 최대능력을 가진 우주망원경을 아틀란티스호를 이용하여 10월에 발사예정. 필자도 이 망원경 사용신청을 하라고 방대한 자료와 안내서를 우주망원경본부에서 받아 신청서류 작성중, 지난1월29일, '챌린저'사고가 일어났다.
 

이리하여 일단은 위에 열거한 계획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뒤이어 우주개발에 참여하고 예산도 즉시 증액하기도 했다고 하니 그네들의 '양키정신'(Yankee's Spirit)에 탄복할 뿐이다.
 

 

'보잉'사가 추진하는 우주 태양발전소 건설의 상상도. 우주왕복선이 작업중.


2000년대의 예상


이어서 2000년도에 들어서면 무엇이 이뤄질것일까. 앞서 설명한 태양열반전소에 뒤이어, 우주공장, 우주도시, 우주연구소, 우주관광기지, 우주탐사기지, 우주병원 등등이 건설될것이다. 우주도시의 설계도는 '프린스턴'대학교수시절에 발표했던 '오닐'(O'Niel)박사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상상도 참고)
 

1957년, 인류가 우주공간에의 돌파구를 연 이래로 우주개발사업은 근 30년의 역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 너무나도 놀라운 업적을 이룩 한것이다.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을 거둔 이유는 미국과 소련의 피눈물나는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도 일본도 그리고 중국도 뒤질새라 우주사업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일본도 우주왕복선을 자체개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실정은 너무나도 한탄스럽다.
 

지구에 더 이상 살수가 없어서 남의 나라들이 우주대이민을 위해 떠날려 할때 우리들은 그네들에게 "우리도 태워주십시오"하고 애걸하여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이 문제는 컴퓨터나 반도체 만드는식의 기술도입이 안되는 부분이다. 물론 거대한 돈과 인력이 필요해서 우리의 능력에 벅찬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공위성 하나쯤 만들어 발사해 보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할때가 온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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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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