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저마다 이익을 내기 위해 경쟁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기술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익한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기도 한다. 형광등 기술이 이런 예를 잘 보여준다.
1938년 4월 12일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웨스팅하우스는 ‘마즈다’(Mazda)라는 공동 상표의 형광등을 최초로 시장에 내놓았다. 1893년 니콜라 테슬라가 컬럼비아세계박람회에서 최초의 형광등을 전시한지 45년만의 일이었다. 이들이 형광등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GE가 오늘날 형광등의 발명가로 인정받고 있는 에드문드 저머의 특허권을 소유하면서 가능해졌다.
마즈다는 기존의 백열등에 비해 밝고 부드러운 색을 냈기 때문에 두 회사는 마즈다가 옥내 조명 시장을 석권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마즈다가 뉴욕세계박람회에 조명장치로 대량 설치되면서 이런 희망은 한발 앞당겨지는 듯 보였다. 마즈다의 불빛은 박람회장의 색조와 적절히 조화돼 해가 진 뒤에도 관람객들을 박람회장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마즈다의 화려한 출발은 이내 난관을 맞았다. GE가 마즈다를 내놓은지 6개월도 안돼 다른 전등회사들이 고효율 형광등을 내놓았던 것이다. 고효율 형광등은 마즈다에 비해 같은 전력으로 200~300배 더 오래 빛을 냈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고 경제적이었다. GE가 긴장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조명기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익을 얻던 전력회사도 당황했다. 고효율 형광등이 기존 백열등을 대체할 경우 전력회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처음에 GE와 전력회사의 대처 방식은 상이했다. 전력회사는 ‘동일한 전력으로 200~300배 빛을’이라는 전등회사의 광고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그런 고효율 형광등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고효율 형광등을 깎아내리고 마즈다가 새로운 조명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반면 GE와 웨스팅하우스는 자체적으로 고효율 형광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등회사인 이들로서는 전기 사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만일 고효율 형광등이 마즈다보다 기술적으로 우수하다면 이를 바탕으로 형광등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편이 더 유리했던 것이다. GE는 고효율 형광등이 밝기를 유지하자면 당시 기술로서는 형광등의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효율 형광등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수명 문제가 해결돼야 했다. GE는 이런 기술적인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전등회사가 급부상하면서 곧 전등회사는 전력회사와 연대를 꾀하게 된다. 1939년 말 하이그레이드 실바니아라는 전등회사가 공격적인 판매 전략으로 그동안 GE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전등 시장을 위협했던 것이다. 특히 이 회사는 전력회사의 경제적 타격은 아랑곳없이 고효율 형광등을 적극 추진했다. 번쩍거리지도 않고, 대낮처럼 밝은 빛을 내고, 거기다가 전기요금까지 적게 낼 수 있는 고효율 형광등을 어찌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이그레이드 경영진은 고효율 형광등의 개선에 매달렸다.
이에 대해 GE는 우선 전력회사의 도움을 받아 조명 시장에 인증제를 도입해 하이그레이드의 시장 진출을 막으려고 했다.
형광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켓이나 반사경 같은 부품이 있어야 한다. 하이그레이드는 전등은 물론 이런 부품도 제작하고 있었고, 이를 소비자에게 값싸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판매를 늘려가고 있었다. 이에 GE는 자신들과 거래하는 부품회사의 규격을 기준으로 만들어 하이그레이드의 시장 진출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기준을 채택하는 것만으로는 하이그레이드의 고효율 형광등 상품화 전략을 저지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GE는 전력회사와 좀더 적극적으로 협력을 모색하게 된다.
전력회사의 주요 목표인 전기 판매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조도가 높은 새로운 형광등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었다.
‘고집적 형광등’이라 불린 이 형광등은 소비자에게 어떤 조명보다도 눈에 자연스러운 조명으로 소개됐다. 전력회사는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더 나은 조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세가 조금 더 들더라도 고집적 형광등을 선택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렇게 전력회사와 GE의 연합으로 탄생한 고집적 형광등은 GE의 판매 노력에 힘입어 이후 조명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던 고효율 형광등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