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레이저총 쏘며 고지를 점령하다

가상 전투 벌이는 육군 첨단 훈련장

"15분 뒤에 연막탄 쏴. 1분대 3분대는 중앙에서 엄호하고 2분대는 뒤로 돌아서 공격해." 소대장의 작전 지시가 떨어졌다. 적의 뒤를 치려는 군인들을 따라갔다. 길도 없이 나무만 빽빽한 산골에서 길을 잃었다. 나뭇가지를 해치고 본대에 합류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적은 산속을 훤히 아는 듯 부대 옆에서 총을 쏘아댔다. 90mm 무반동총을 들고 있던 병사가 쓰러졌다. 중상자도 속출했다. 소대원 두 명이 총격전 끝에 적 한 면을 맞췄지만 적의 공격은 계속됐다. 사방에서 고막을 울리는 포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자는 10월 10일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장(KCTC)을 찾았다. 세계 10번째로 건설된 가상 전투 훈련장이다. 육군은 2000년부터 2900억원을 들여 올 9월초 여의도의 15배 만한 훈련장(3577만평)을 완성했다. 가로 16km, 세로 14km의 넓이로, 수백명이 넘는 대대급 부대가 훈련할 수 있다. 1만8000점에 달하는 소프트웨어와 장비는 모두 25가지 종류, 5600점의 무기를 실전처럼 묘사할 수 있다.
  
훈련에 참가한 군인들은 레이저와 인공위성,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무선데이터통신 등을 이용해 가상전투를 벌인다. 가상전투 시스템을 마일즈(MILES·중앙통제형 교전훈련장비)라고 하는데 훈련단이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개발했다. 교전정보 일치율이 99.2%나 되고 위치정보 오차범위가 5m에 그쳐 미국(16m), 일본(20m)보다 뛰어나다.

군인들은 모두 어깨에 GPS송수신기를 달아 위성에서 위치 신호를 받는다. 이 신호는 훈련본부에 실시간으로 전해져 각 부대원이 어디에 있는지 디지털상황판 화면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5개의 중계탑이 군인들과 훈련본부를 연결하고 4대의 감시카메라가 전장을 관찰한다. 훈련부대에는 관찰통제관이 따라붙는다.
 

훈련부대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항부대와 치열한 총격전을 펼치고 있다.


총은 진짜 총알 대신 레이저를 발사한다. 훈련대원이 적이 쏜 레이저 총알에 맞으면 사망·중상·경상의 신호가 나온다. 신호는 팔뚝에 달린 액정화면에 표시된다. 사망하면 즉시 훈련에서 제외되며, 중상은 후송되고, 경상은 15분 동안 쉬어야 한다. 사망자나 중상자는 아무리 총을 쏴도 총알이 나가지 않고 경상자도 쉬는 15분은 총을 쏠 수 없다.

군복에는 14개의 레이저 감지기가 붙어 있어 레이저를 맡는 위치에 따라 사망, 중상, 경상이 결정된다. 전차나 야포에도 GPS송수신기가 달려 있으며 가상 포탄을 발사한다. 포탄이 목표 지점에서 터지면 주변에 있는 군인과 장비가 피해를 입는다. 거리와 무기의 성능, 주어진 확률값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달라진다(앞서 설명한 현장은 가상 전투를 묘사한 것이다).

훈련부장 이현기 대령은 “이곳에서는 ‘했다 치고’식 훈련이 없다. 적의 총알에 맞으면 그 자리에서 죽고 전차가 파손되면 움직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훈련장을 찾은 날에도 훈련부대의 취사장이 적의 공격을 받아 파손돼 부대원들이 모두 맨 밥만 먹어야 했다. 훈련의 목표는 적의 고지를 점령하거나 아군의 진지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교전이 이어지고, 독가스가 터지며 적의 포격이 날아온다. 독가스 신호가 난 뒤 9초 안에 방독면을 써야 살아남는다. 산에는 군데군데 적이 설치한 가상 지뢰가 묻혀 있어 의심스러운 지역은 지뢰를 제거하며 전진해야 한다. 종종 전투기가 출동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가상 대포나 미사일이 터지면 훈련 통제관이 연막탄을 발사해 전장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11일 새벽 취재를 위해 훈련본부에 들어섰다. 정면 커다란 디지털상황판에는 자정을 넘어 공격에 나선 훈련부대와 대항부대가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군인 하나하나와 포, 전차, 차량이 점으로 표시된다. 대항부대는 일렬로 진지를 구축했고 적 침투부대가 훈련부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항부대 적들이 조금씩 전진했다.

기자가 훈련부장과 잠깐 이야기를 하던 오전 6시 15분 갑자기 붉은 색 곡선이 날아와 적 기지로 다가가던 훈련부대에 부딪히며 섬광이 터졌다. 적의 포격이었다. 조금 있더니 ‘사망2, 중상8, 경상2’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이현기 대령은 “적이 훈련부대의 위치를 알아내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항부대의 포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전차가 적을 향해 포를 발사하고 있다.


군사 훈련의 혁명 일으키다

기자는 훈련본부를 나와 옥토골을 넘고 있던 한 소대에 끼어 오전 내내 훈련을 함께 했다. 소대원들은 밥도 먹지 못한 채 밤 1시부터 전투에 나섰지만 언제 어디서 적이 공격할지 몰라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분대장, 소대장이 “엎드려, 흩어져”라고 소리쳤다.

부대원들이 산기슭을 올라갈 때 군인 하나가 나무 밑에 누워 있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이장원 병장”이라고 대답했다. 3, 4분 전에 총탄이 오른쪽 어깨를 스쳐 타박상(경상)을 입었다. 이 병장은 “예전에는 적이 쏘든 말든 고지로 올라가면 됐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자세를 낮추고 포복까지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병장은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1시간 뒤 총격전이 벌어졌다. 대항부대는 몇 번씩 전투를 반복해서인지 움직임도 빠르고 지형에도 익숙해 이곳저곳에서 번개같이 나타나 총을 쏘아댔다. 대항부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이국태 일병은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분하다”며 아쉬워했다. 대항부대는 훈련단 소속으로 ‘전갈부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대항군의 강중연 상병은 “훈련부대가 처음에는 잘 못했는데 지금은 은폐도 잘하고 전술적 행동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항군이 진 적은 없다며 자신감이 대단했다.

오전 11시 10분이 되자 주간 공격이 끝났다. 훈련부대의 전력이 29%에 남지 않아 전투 불능 판정을 받았다. 훈련부대는 다시 야간 전투를 준비하러 본진으로 돌아갔다. 전투가 끝나면 훈련단 교관과 부대원들이 문제점을 토의해 부족한 점을 파악한다.

훈련단장인 배종욱 준장은 “우리 훈련장이 한국군에 교육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훈련부대의 강준규 대대장(중령)은 “그동안 형식적인 훈련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실전이 그대로 묘사되고 잘못하면 죽으니까 배우는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강 중령도 오전에 적의 기습을 받아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다른 훈련 같으면 대대장이 죽는 상황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진짜 전장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다.

훈련단은 2010년까지 연대급으로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훨씬 복합적인 전술 전략을 훈련할 수 있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육·해·공군이 함께 참가하는 훈련도 펼칠 수 있다. ‘전쟁게임’ 수준이다. 배 준장은 “훈련장이 연대급으로 커지면 모든 군인들이 제대하기 전에 한번은 훈련을 받을 수 있어 한국군의 전투능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전이 펼쳐지는 동안 훈련통제본부는 각종 정보를 모으며 분주히 돌아간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기자
  • 김상연 기자

🎓️ 진로 추천

  • 군사·국방·안보학
  • 컴퓨터공학
  • 전자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