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9년 포도주로 유명한 프랑스 꼬냑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인 생 세사르에선 오래된 유골 하나가 발견됐다. 유골의 주인은 3만5000년 전 이 지역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소녀였다. 소녀의 이름은 ‘피에레뜨’.
이 발견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세계 최초의 멀티미디어 고인류 박물관이 세워졌다.
소녀의 유골은 프랑스 고인류학계에 적잖은 충격을 가져왔다. 유골이 발견된 장소에선 후석기 인류였던 크로마뇽인의 유골도 함께 발견됐다. 이는 약 3~10만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과 1~3만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이 비슷한 시기에 공존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을 철저히 미개한 존재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그 뒤 연구가 진행되면서 현생 인류와 공통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2차원 모핑기법을 이용한 네안데르탈인 얼굴 복원 작업도 그런 연구 가운데 하나다.
네안데르탈인 우습게 보지 마라
멀티미디어 고인류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누구나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을 한 자신의 사진을 담아갈 수 있다. 현대인의 얼굴과 네안데르탈인의 얼굴을 합성한 것. 네안데르탈인에게서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이 계획의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박물관을 설계한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짐승에 불과하다는 그릇된 오명을 벗기고 싶었다. 한 방안으로 첨단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자는 의견이 제안됐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얼굴 모핑’(facial morphing)기술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물론 처음 이 엉뚱한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제안자인 콜라쥬 드 프랑스의 이브 코펭 교수를 제외하고 동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헛수고’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코펭 교수의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이 결코 야만인이나 원숭이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맞다. 코펭 박사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은 아니지만, 가장 가까운 친척뻘인 네안데르탈인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얼굴을 네안데르탈인 얼굴 복원 프로젝트에 첫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숨결 불어넣는 첨단 그래픽 기술
얼굴 복원은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친다. 먼저 사진부스처럼 생긴 곳에 얼굴을 들이밀면 2차원 영상으로 저장된다. 이 얼굴 사진은 서버에서 이미지 변환 소프트웨어를 거쳐 네안데르탈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여기에 쓰인 기술이 바로 특수영상효과 중 하나인 얼굴 모핑 기법. 한 물체를 다른 물체의 모습으로 천천히 바꾸는 그래픽 기법이다. 프로그램이 작동하자 코펭 박사의 얼굴이 서서히 납작한 코, 평평한 얼굴, 아치형의 굵은 눈썹을 한 고대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갔다.
박물관측은 이 기술을 이용해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바꿔나가고 있다.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먼저 반도체 칩이 들어있는 ‘출입증’을 받는다. 이 출입증에는 관람객 각각의 얼굴과 신체 정보가 담기며 각 전시장마다 관람객의 취향에 맞는 사이버 캐릭터가 나와 전시품을 안내한다.
이를 위해 영상기술 전문 업체인 암막은 모핑으로 만든 네안데르탈인 사진을 빠르게 출력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방문객 누구나 자신의 네안데르탈인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박물관측이 배려한 것.
한편 이번 복원 프르젝트에서 자문역은 보르도 고인류연구소 브루노 모레이 박사 연구팀이 맡았다. 모레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현대인들의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말한다.
실제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흥밋거리만은 아니다. 복원과정에서도 네안데르탈인을 어리석어 보이게 하는 얼굴의 털을 일부러 없앴다. 암막사의 복원 전문가인 티에리 베르티 박사 역시 “복원 작업 내내 웃는 것 자체가 금지됐다”고 말했다.
얼굴 복원 러시 이룬다
네안데르탈인만 복원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얼굴도 최근 프랑스와 이집트, 미국 연구진에 의해 복원됐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18왕조 11번째 국왕으로 불과 19세의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 온갖 억측이 난무한 것은 사인이 베일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올해초 공동 연구팀은 이 어린 비운의 왕의 얼굴 복원에 나섰다. 과학자들은 먼저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고화질로 된 그의 미라 이미지 1700여컷을 촬영했다.
촬영된 이미지는 복원 자료로 활용된다. 복원작업에는 지난 수십년간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만든 인간의 평균 피부 깊이를 정리한 기준표가 이용된다. 엑스선이나 CT로 촬영한 두개골을 보고 나이와 성별에 따라 기준표와 대조해가며 턱이나 뺨의 피부깊이를 결정한다.
그 뒤 플라스틱으로 본을 뜬 두개골에 해당 부위의 깊이만큼 찰흙을 입혀간다. 이렇게 완성된 모형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표정을 만들어준다. 24가지 근육정보가 담긴 소프트웨어로 입력된 얼굴 형상에 표정을 주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2003년에는 영국 요크대 연구팀이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양어머니였던 네페르티티의 얼굴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2002년에는 맨체스터대 연구팀이 예루살렘 부근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1세기 유대인의 두개골 중 대표적인 형태를 가진 것을 골라 예수의 얼굴을 추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