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의 여왕’ (Collision Queen).
미국의 과학월간지 ‘디스커버’는 2000년 10월호에 ‘주목해야 할 20명의 젊은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당시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김영기 교수를 소개하며 이런 별칭을 붙여줬다.
수많은 과학자 가운데 그녀를 뽑은 디스커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시카고대로 자리를 옮긴 김 교수는 현재 입자충돌실험을 위해 12개국 62곳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모인 850명의 물리학자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라 질량의 근원을 밝힐 역사적인 실험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해 5월 850명의 투표를 거쳐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양성자·반양성자 충돌실험그룹’(CDF)의 대표로 선출됐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여성과학자가 이토록 많은 과학자들이 모인 그룹을 이끈 예가 없다. 게다가 김 교수의 나이는 불과 43세. 도대체 그녀의 무엇이 각국의 뛰어난 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로 동양의 자그마한 여성 물리학자에게 선뜻 표를 던지게 했을까.
지난해 12월 30일 크리스마스 과학콘서트의 강연을 위해 한국에 들른 김 교수를 2004년의 마지막 날에 만나봤다.
탈춤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
“호호호, 잘 들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전날 강연을 감명깊게 지켜봤다는 기자의 인사말에 김 교수는 활짝 미소를 짓는다. 미국에서도 대중강연을 몇 번 해봤지만 이렇게 어린 학생들 앞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었다고. 그러나 학생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과 진지한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대표를 맡은 뒤로는 너무 바빴는데 마침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 때라 큰맘먹고 왔습니다. 정말 보람있게 한해를 마무리한 것 같아 즐겁습니다.”
생머리에 화장 안한 그녀의 얼굴에는 권위적이거나 위압적인 인상 대신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친숙함이 느껴졌다. 기자는 ‘천재 소녀’의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다. 뜻밖에도 김 교수는 시골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동네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던 그녀가 과학자가 된 것은 중학생 때 과학경시대회에 나갔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어느날 과학선생님이 학생들 몇 명을 불러서는 경시대회에 나가보자고 하시더군요. 경산군 경시대회를 거쳐 경상북도 경시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1등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죠.”
결국 김 교수는 고려대 자연과학부에 진학했고 수학과와 물리학과 사이에 망설이다가 물리학과를 택하게 됐다. 그러나 김 교수는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는 책벌레는 아니었다. 1, 2학년 때는 탈춤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했다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신명나게 놀았습니다. 선후배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뭔지도 알았고요.”
김 교수는 이때 경험이 두고두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룹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동아리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고. 3학년이 된 이후 본격적으로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김 교수가 입자물리학에 빠져든 것은 4학년 때 ‘양자역학’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
“강주상 교수님의 양자역학 강의는 제게 물리학의 심오한 세계를 펼쳐 보여줬습니다. 그때 이후로 전 물리학의 포로가 된 셈이에요.”
강 교수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수제자로 연구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당시 국내에서 유망한 학생들이 뜻을 펼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줬다. 김 교수 역시 대학원에 진학할 때 강 교수의 연구실을 지원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에게 강 교수는 늘 모범으로 삼는 ‘큰 스승’으로 남아있다.
1986년 미국 로체스터대로 유학한 김 교수는 본격적으로 입자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가장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입자가속기는 일본에 있었는데 김 교수의 지도교수인 스티브 올센 박사가 책임자였다. 김 교수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국제적인 협력연구와 다양한 과학자들과의 접촉이 시작된 셈이다.
김 교수는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버클리의 로렌스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약한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소립자인 W입자의 질량을 가장 정밀하게 측정해 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김 교수는 1996년 버클리대의 교수로 임용됐다.
“입자실험물리학은 가속기 같은 거대한 장치를 통해 연구해야하므로 팀을 이루는 것은 물론 팀들끼리 연합해 공동연구그룹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동료들이 저를 팀이나 그룹의 대표로 밀어주더군요.”
여러 팀이 모여 연구를 하다보면 곳곳에서 의견이 엇갈리기 일쑤이므로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을 끌어내는 능력을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그러나 저마다 천재임을 내세우는 쟁쟁한 물리학자들이 김 교수를 대표로 선뜻 인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김 교수의 연구업적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 결국 김 교수는 연구자와 관리자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질량의 근원을 찾아서
그러나 김 교수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것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텍사스에 건설되다가 예산이 끊겨 1993년 공사가 중단된 ‘슈퍼충돌기 프로젝트’다. 가속기 둘레 길이가 86km에 이르고 총 예산이 110억 달러(약 11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계획으로 이미 20억 달러가 투입돼 기초 토목공사를 하는 와중에 ‘국민의 복지증진에 시급하지 않은 과제에 혈세를 더 이상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반대에 의회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슈퍼충돌기가 계획대로 만들어졌으면 페르미가속기가 만드는 입자보다 에너지가 20배 이상 큰 입자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인류는 물질과 우주의 비밀에 한층 더 다가가 있을 것입니다.”
가속기의 반경이 커질수록 양성자나 반양성자 같은 입자를 더 빨리 가속시킬 수 있어 빛의 속도에 더 근접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질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한편 에너지-질량 등가 원리, 즉 E=mc²에 따르면 질량이 클수록 소멸될 때 나오는 에너지도 커진다.
“가속기는 우주탄생 초기인 빅뱅 직후의 상황을 재현하는 장치입니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던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시키면 엄청난 에너지를 내며 소멸합니다. 이때 새로운 입자들이 생성되는데 저희는 이 과정을 관찰해 질량과 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가속기 반경이 커져 에너지가 큰 입자를 얻을수록 빅뱅의 순간에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고 슈퍼충돌기 프로젝트가 부활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김 교수는 페르미가속기의 설비를 좀더 정교하게 만들고 충돌시 발생하는 입자를 확인하는 검출기의 성능을 높이는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저는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지금 장치로도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어요.”
현재 김 교수는 질량의 기본이 되는 입자로 여겨지는 힉스입자의 존재를 검출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전자나 양성자 같은 소립자가 질량을 갖는 것은 힉스입자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힉스와 상호작용이 큰 입자일수록 질량이 크다. 빛입자, 즉 광자가 질량이 없는 것은 힉스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힉스는 아직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가속기에서 입자가 충돌할 때 생성되는 힉스입자를 관찰하는 것이 저희 연구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직까지는 관측이 안됐지만 가능성은 있어요.”
힉스입자가 검출되면 질량의 근원이 밝혀질뿐더러 현재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는 암흑물질의 실체를 밝히는데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힉스입자 검출은 입자물리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인데 2007년 완공목표로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건설 중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관측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레가 27km에 이르는 LHC는 페르미가속기보다 10배 가량 큰 에너지를 갖는 입자를 만들 수 있어 빅뱅의 순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CERN과 저희는 오랫동안 경쟁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는게 아니겠어요?”
힉스입자의 존재를 확인하면 노벨 물리학상이 확실한 연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 교수지만 유럽과의 경쟁에 대해서 그다지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물리학이 맺어준 인연
“사람들은 누구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나. 왜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나. 저는 과학이라는 창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 답하는 연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늘 행복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김 교수는 결혼 적령기도 훌쩍 넘긴 채 물리학과의 달콤한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김 교수에게 인연을 찾아준 것도 바로 물리학이었다. 그녀는 3년 전 시카고대의 동료 물리학자인 시드니 네글 교수와 100년 가약을 맺었다.
이번 방한을 계기로 김 교수는 국내 과학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이 초롱초롱한 청소년들이 자라서는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을 제대로 알리는데 소홀했다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과학자로 태어납니다. 아기들의 지치지 않는 호기심을 보세요. 과학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멋지고 흥분되는 일인지 학생들이 알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사라질 겁니다.”
김 박사는 자신의 강의를 듣고 청소년들이 과학자의 꿈을 키우게 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에서 10~20년 뒤 자신과 함께 일하게 될 과학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김 박사가 이끌고 있는 그룹에는 현재 20여명의 한국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는데 뛰어난 연구성과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모국에서 며칠을 보내니 마음도 푸근해지고 많이 재충전이 된 것 같아요. 돌아가서는 새로운 각오로 열심히 일할겁니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죠.”
김 교수와 작별 악수를 나누며 2005년 을유년에는 ‘충돌의 여왕’이 정말 환상적인 ‘충돌’을 일으켜 질량과 우주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거라는 예감이 밀려왔다.
크리스마스 과학콘서트 | 177년 전통의 영국 왕립연구소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을 모델로 한 극장식 강연과 공연이다. 2003년 처음 열렸고 2004년에는 김 교수를 비롯해 최재천 서울대 교수 등 4명의 과학자가 강연자로 나서 청소년들에게 흥미로운 과학의 세계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