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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 비만의 주범?

지방과 바로 흡수되는 단당류가 살찌는 원인

 

패스트푸드, 비만의 주범?


‘니들이 비만을 알아?’ 국내 한 환경단체가 주관한 패스트푸드 광고패러디 공모 출품작에 등장한 문구다. 최근 도마에 오른 패스트푸드와 비만의 관계를 비꼬고 있다. 국내에서 패스트푸드 ‘해부’에 칼을 들이댄 것은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사회를 가진 영화 ‘슈퍼사이즈 미’.

‘슈퍼사이즈 미’는 영화의 감독을 맡은 모건 스펄록이 직접 30일동안 맥도날드 메뉴만 먹으면서 몸의 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의 체중은 한달 사이 무려 11kg이나 늘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증가했다.

여기에 ‘한국판 슈퍼사이즈미’가 가세했다. 환경단체 간사인 윤광용 씨가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메뉴를 주로 먹으며 비슷한 체험을 시도했다. 그는 애초 예정했던 30일을 채우지 못하고 건강상의 문제로 24일만에 중단했다. 체중이 3.4kg, 체지방은 5.2kg 증가한 것 외에 간수치(GPT)가 3배 이상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몸소 보여준 것처럼 패스트푸드는 정말 비만의 주범일까?

미국에서는 이미 비만이 심각한 사회 문제다. 1992년 13% 가량을 차지했던 비만 인구가 10년 만에 22%로 급증했다. 지난 5월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최근 10년간 미국내 10대의 사망 원인 추이를 분석한 결과 비만으로 인한 죽음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패스트푸드점 늘고, 사이즈도 커지고
 

틴산음료와 스낵, 초콜릿 등 정크 푸드를 가득 안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모건 스펄록 감독. 한달동안 패스트푸드만 먹으며 ‘슈퍼사이즈 미’ 를 찍어 패스트푸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한국에서도 더 이상 비만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지난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3년도에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상자 총 5566명 중 절반이 넘는 56.2%가 과체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만 전문가들은 비만 자체보다는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에 더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1971년에서 2000년 사이 남성의 칼로리 섭취량은 7%, 여성은 무려 22%가 증가했다. 공교롭게도 이는 패스트푸드 음식의 증가 추세와 맞아 떨어졌다.

사람들의 외식이 잦아졌고, 이에 발맞춰 패스트푸드점도 같이 늘어났다. 미국인들은 식비의 절반 이상을 고지방식이 대부분인 패스트푸드에 사용했다. 국내에도 패스트푸드점의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현재 서울에는 1.38㎢당 패스트푸드점이 하나씩 들어서 있다. 소비자들에게는 패스트푸드 접근성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고지방식에 대한 노출도 쉬워졌다.

한 회 분량도 점점 커졌다. 말 그대로 슈퍼사이즈가 등장한 것. 일례로 맥도날드가 1960년대 초 판매한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세트는 총열량이 590kcal였다. 하지만 요즘 맥도날드 세트 메뉴는 라지사이즈의 경우 1550kcal에 달한다. 총열량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의 크기가 커지면서 열량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번 먹을 때 섭취하는 지방의 양이 그만큼 많아졌다.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주 메뉴가 고열량식인데다 패스트푸드점의 수도 많아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2002년에는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때문에 살이 쪘다는 10대 2명이 맥도날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비록 연방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비만이 비단 개인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총열량 보다 지방 함량이 중요

‘햄버거가 열량이 높다구요? 제대로 알고 맛있게 먹자!’ 요즘 국내 패스트푸드업체인 롯데리아에서는 자사 제품의 총열량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비해 높지 않다고 광고한다. 패스트푸드가 열량이 높다고 알고 있지만, 다른 음식과 비교해보면 사실 열량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불고기버거 세트가 737kcal로 764.6kcal인 된장찌개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총열량도 중요하다. 문제는 총열량이 비슷할 경우 총열량 중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개 한식의 경우 총열량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안팎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 세트메뉴의 경우 40%를 웃돈다. 2배 이상 지방 함량이 많은 셈이다. 지방 함량이 높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똑같은 열량의 음식을 먹어도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다르다. 이는 음식에 따라 음식 이용에 필요한 에너지 소모량(TEF, Thermic Effect of Food)이 다르기 때문이다. 음식을 섭취하면 신체 활동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외에 음식 자체를 소화시키거나 흡수, 대사, 이동, 저장하는데도 에너지를 사용하다. 이것이 TEF다.

일반적으로 TEF는 음식 총열량의 10% 가량을 차지한다. 만약 1000kcal의 음식을 먹었다면 이 중 100kcal는 음식 자체를 소화, 흡수하는데 사용되고, 나머지 900kcal가 활동하는데 사용되거나 몸에 축적된다. 결국 TEF가 많을수록 인위적으로 소비해야할 열량이 줄어든다.

단백질의 경우 전체 열량의 15~30%가 TEF에 사용된다. 탄수화물은 10~15%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방은 고작 3~5%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인체 에너지원인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중 지방이 TEF 순위 꼴찌다. 따라서 지방의 함량이 높은 식품을 섭취하면 TEF로 소모되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열량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보다 체내에 축적될 수 있는 지방의 양이 훨씬 많다. 총열량 중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중요한 이유다.

이에 대해 업체 한 관계자는 “자사 고객카드 소지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패스트푸드점 평균 이용횟수가 한달 동안 2.1회에 그쳤다. 이 정도로 어떻게 살이 찔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열량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이 함유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단당류, 먹는 족족 흡수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탄산음료는 어떨까. 탄산음료에는 탄산가스, 설탕, 과당, 향료, 나트륨 등이 첨가돼 있다. 이 중 단맛을 내는 설탕과 과당이 탄산음료의 주 에너지원이다. 요즘에는 단맛을 내기 위해 액상과당을 많이 사용한다. 문제는 여기 있다.

체내에서는 모든 에너지원이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바뀐다. 단당류는 쉽게 말해 당이 이미 쪼개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체내에 들어오면 바로 흡수된다. TEF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반면 다당류는 당이 여러 개 붙어 있기 때문에 체내에 흡수되기 위해서는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쪼개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TEF가 필요하다.

탄산음료의 과당은 포도당처럼 단당류다. 따라서 탄산음료를 마시면 체내에 바로 흡수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탄산음료도 비만의 요인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설탕과 같은 당분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더 활동적이어서 오히려 비만이 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안산1대학 식품영양학과 정진은 교수도 최근 한국인의 설탕 섭취량과 비만이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정말 설탕이나 과당과 같은 당분이 비만과 관계가 없을까?

정 교수는 “설탕 자체가 비만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체 영양 섭취량에서 당분 섭취 비율은 비만과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설탕 한가지로 비만의 원인을 논하는 것은 어렵지만 전체 섭취 열량이 높아지면 당분의 비율이 따라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 비만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의 하루 당분 섭취량은 평균 130g이다. 이 중 탄산음료로부터 섭취하는 양은 27g으로 20%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국 농무성(USDA)은 2005년도 영양 기준에 “탄산음료는 물보다 열량이 많아 비만과 관계가 있으므로 제한해야한다”는 항목을 넣었다.

정 교수 역시 “국내에 아직까지 당류의 1일 권장기준량이 없는 것이 더 문제”라며 “비만과 당분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분의 1일 권장량에 대한 상한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무늬만 식물성기름인 트랜스 지방

감자튀김도 문제다. 트랜스 지방(trans fat) 때문이다. 트랜스 지방은 ‘트랜스’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뭔가가 바뀐 지방이다.

자연 상태의 지방은 시스(cis)형이다. 상온에서 액체상태로 존재한다. 참기름, 올리브유 같은 식물성기름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식물성기름은 공기 중에서 산패가 잘 일어난다. 따라서 산패를 막기 위해 수소를 첨가해 마가린이나 쇼트닝 등 고체와 반고체 상태의 기름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시스형인 식물성기름이 트랜스형으로 바뀌면서 원래 굽은 사슬 형태였던 시스형이 일직선의 트랜스형이 된다. 트랜스 지방은 일직선이 되면서 내부 구조가 촘촘해져 상온에서 반고체 상태가 된다. 때문에 트랜스 지방은 마치 포화지방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결국 트랜스 지방은 무늬만 식물성지방인 동물성지방인 셈이다.

동물성지방에 많이 들어있는 포화지방을 많이 먹게 되면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병과 성인병, 비만의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트랜스 지방 역시 세포막을 단단하게 만들어 체내의 효소 활동을 방해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튀김용 기름으로 불포화지방이 많은 식물성기름을 사용하게 되면 산화돼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트랜스 지방이 함유된 식물성기름을 튀김요리에 사용한다. 감자튀김 같은 패스트푸드에 트랜스 지방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대구대 식품생명화학공학부 최영선 교수는 “패스트푸드점은 음식의 특성상 대량조리가 필수적”이라며 “만약 감자를 튀길 때 순수한 식물성기름을 쓴다면 식물성기름은 산패가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기름을 자주 갈아줘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6년부터 트랜스 지방이 든 모든 식품은 라벨에 의무적으로 함량을 표시해야 한다고 공고했다. 트랜스 지방이 인체에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맥도날드 본사는 지난해 트랜스 지방과 포화지방을 대폭 줄인 새 기름으로 감자튀김을 만들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 맥도날드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기름은 식물성기름”이라며 “아직 트랜스 지방이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고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트랜스 지방을 연구, 검토해 적절히 대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맥도날드 본사에서 트랜스 지방의 유해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마당에 한국 맥도날드는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독성도 의심돼
 

환경정의가 공모한 패스트푸드 광고패러디에 출품된 작품. ‘ 비만과 함께하는 휴가’ 라는 제목으로 출품자는 패스트푸드를 가까이하면 우리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패스트푸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패스트푸드의 중독성에 주목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지난해 1월 미국 위스콘신대 매튜 윌 교수 연구팀이 패스트푸드를 장기 섭취한 쥐들에게 패스트푸드의 공급을 중단했더니 마약에 중독된 쥐에게 마약을 끊었을 때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패스트푸드에 함유된 지방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모르핀과 같은 마약에 중독됐을 때와 비슷하게 뇌를 생화학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2월에는 ‘뉴 사이언티스트’에 패스트푸드가 체내에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 호르몬의 분비시스템을 변화시켜 식욕 억제 작용을 어렵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 때문에 패스트푸드가 별로 포만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해 이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금방 살을 찌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스트푸드의 ‘천국’에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최영선 교수는 “소비자가 적절한 열량을 섭취할 수 있도록 정보가 충분히 주어져야한다”면서 “패스트푸드에도 당연히 영양표시가 필요하다. 이는 상당수 영양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영양표시를 통해 소비자에게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것.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다 보면 ‘지방짱’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스펄록 감독과 윤광용 간사가 몸소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이들의 시도는 영양학적으로는 편식이며, 과학적으로는 대조군이 없는 절름발이 실험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국내 ‘몸짱’ 열풍이 ‘건강짱’ 열풍으로 바뀔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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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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