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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이 안전 착륙 책임진다

국산 항공기 착륙시스템 개발

 

조종사는 항공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계기판의 신호를 보면서 착륙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현재의 계기착륙시스템은 주변에 지형지물이 있거나 활주로가 많은 공항의 경우 자칫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지난 2002년 4월 김해공항. 베이징을 출발한 중국 국제항공공사 소속 보잉 767 항공기가 공항 인근 돛대산 기슭에 추락했다. 당시 김해공항은 악천후 속에 바다 쪽에서 강한 남풍이 불고 있었다. 그래서 항공기는 평상시 착륙 경로와 달리 공항 북쪽에서 착륙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돛대산 정상 부분에 부딪쳐 약 1백30명의 승객이 사망하고 말았다.

사고의 원인은 조종사의 과실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종사의 과실 이전에 공항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김해공항에는 남북방향의 활주로가 있다. 항공기가 활주로에 내릴 때는 착륙시스템이 이를 지원해줘야 한다.

김해공항 남쪽에는 착륙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조종사가 계기를 보며 항공기가 무사히 착륙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 반면 북쪽에는 산이 있기 때문에 착륙시스템을 설치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고 당시 조종사는 육안에만 의존해 착륙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구조적 제약조건에 악천후까지 겹친 공항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항공기가 길 찾는 방법
 

항공기가 지형지물 때문에 계기착륙시스템의 전파를 받지 못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있다. 사진은 지난 2001년 12월 아메리칸항공(AA) A300 여객기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추락한 모습. 이 사고로 승객 2백46명과 승무원 9명 전원이 사망했다.


현재 국내 공항에는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계기착륙시스템(ILS)이 설치돼 있다. 항공기는 활주로에서 3˚ 각도를 유지하면서 착륙한다. 이것이 기체의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탑승객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 각도이기 때문이다. 계기착륙시스템의 글라이드 패스(활공각 지시기)는 항공기로 전파를 보내 이 각도를 유지하면서 착륙할 수 있는 경로를 지시해준다. 로컬라이저(방위각 지시기)는 항공기가 활주로의 중심선을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착륙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이 시스템의 마커 비콘이라는 장비는 항공기가 활주로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활주로 끝에서 바깥쪽으로 약 75-4백50m, 1천m, 6천5백-1만1천m 지점에 각각 내측, 중간, 외측 표지가 있다. 항공기가 각 표지가 있는 상공에 진입하면 조종석의 계기판에 차례로 자주색, 호박색, 백색 램프가 켜진다. 따라서 조종사는 항공기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조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계기착륙시스템은 한 착륙경로에 하나씩 설치된다.

항공기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받으면서 착륙하는 것이 안전하다. 만약 풍향이 바뀌면 항공기는 원래 경로와 반대로 착륙한다. 예를 들어 남북방향 활주로의 경우 남풍이 불면 북쪽에서, 북풍이 불면 남쪽에서 착륙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활주로 하나에 두가지 착륙경로에 대한 계기착륙시스템이 각각 설치돼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항은 활주로가 대부분 남북방향이고, 북쪽에 산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북쪽에서 착륙하려면 산을 피해 우회해야 한다. 이때 항공기는 산 때문에 계기착륙시스템의 전파를 받지 못하거나 왜곡된 전파를 받을 위험이 있다. 2002년 김해공항 사고도 우회하려다 미처 산을 피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활주로마다 양방향의 계기착륙시스템이 필요하다면 활주로가 여럿인 큰 공항에서는 그 수가 너무 많아진다. 게다가 여러대의 항공기가 중복된 신호를 받지 않도록 각 시스템마다 서로 다른 주파수를 통해 전파를 송출해야 한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규모 공항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이용 가능한 주파수 대역이 부족할 수 있다.

기존 설비 한계 극복
 

위성 기반 착륙 시스템^주변 지형지물을 피해 우회해야 하는 상황일 때도 위성 신호를 받아 안전하게 항로를 조절할 수 있다.


계기착륙시스템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위성항법 기반의 착륙시스템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항공기가 정지위성으로부터 신호를 직접 받아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즉 위성이 발사한 전파가 항공기에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하면 위성에서 항공기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거리와 위성의 위치를 이용해 항공기의 3차원 좌표를 계산한다.

그런데 위성은 아주 정확한 원자시계를 탑재하고 있어 이를 기준으로 모두 같은 시간에 신호를 내보낸다. 하지만 항공기에 탑재돼 있는 수신기의 시계는 원자시계보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위성에서 보낸 시간 정보와 오차가 발생한다. 이 같은 시계 오차를 보정하면서 항공기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총 4개의 위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같은 방법을 이용해 항공기 위치를 구하면 20m 정도의 오차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 위성신호가 항공기나 기지국에 도달하기 전에 전리층과 대류층을 통과하면서 약간 지연돼 발생하는 오차다. 또 안테나 주변에 건물 같은 방해물이 있어도 위성신호가 반사돼 오차가 생길 수 있고, 수신기의 하드웨어에서 발생하는 측정오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하기에는 20m 오차도 크다. 따라서 착륙을 최대한 정밀하게 유도하려면 오차를 더 줄이기 위해 지상 공항에 별도의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의 지상설비는 어떤 방법으로 오차를 줄일까.

위성은 고도 약 2만km 상공에서 신호를 보낸다. 지상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지점에서 하나의 위성 신호를 수신한다고 하자. 위성이 지표면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기 때문에 이 두 지점에서는 거의 동일한 경로를 통해 신호를 받고, 거의 동일한 오차가 발생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때 둘 중 한 지점의 위치를 미리 측정해 알고 있다면, 위성 신호에 포함된 오차가 얼마인지를 계산할 수 있다. 나머지 지점의 위치는 위성 신호에서 이 오차만큼을 제거해 구하는 것이다. 이때 오차가 동일하게 발생한다는 가정이 가능한 거리는 1백k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의 지상설비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그 지역에서 받는 위성 신호의 오차를 계산하고 이를 공항에 접근하는 모든 항공기에 전송한다. 각 항공기가 자신이 수신한 위성 신호에서 그 오차만큼을 제거하면 정확한 위치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는 이와 같은 지상설비와 항공기에 탑재돼 위성 신호를 수신하는 장비를 합쳐 지상기반보강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

컴퓨터 게임 하듯 조종
 

2002년 시험비행을 위해 김포공항에 설치한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의 안테나.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은 지형지물이 많은 지역에서도 항공기가 위성 신호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곡선경로를 지원하기 어려운 계기착륙시스템에 비해 항공 교통량이 많은 지역이나 항공기 소음에 민감한 지역 등을 피해서 항로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데도 훨씬 수월하다. 또한 활주로가 여러개인 공항에서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여러 방향의 착륙을 유도할 수 있다. 여러개의 계기착륙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보다 유지보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면서 승객이 좀더 저렴하게 항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위성항법시스템연구실에서 이 같은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을 개발해 대한항공 김해항공사업본부의 협조를 얻어 시험비행에 성공한 바 있다. 그 후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 의뢰로 서울대 위성항법시스템연구실, 항공우주연구원, 세종대 지리정보시스템연구실, 항공대 항공전자연구실이 참여해 국가적 차원의 개발 사업이 추진됐다. 건설교통부는 2002년 말 개발 완료된 시스템으로 시험비행 한 결과 위치 오차가 2m 이내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이 시스템에서는 공항 주변의 실측 지도를 바탕으로 3차원 가상현실을 구현했다. 이를 이용하면 조종사는 실제와 비슷한 공항 전경과 함께 항공기가 이동하는 경로를 3차원으로 보면서 조종할 수 있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악천후로 시계가 좋지 않은 경우 계기판의 신호만 보고 조종할 때보다 훨씬 안전하게 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개발에 참여한 서울대 위성항법시스템연구실의 박사과정 박성민씨는 “지금까지는 각종 항행 시스템을 외국에서 수입한 경우가 많았다” 며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함으로써 관련 핵심기술이 축적될 뿐만 아니라 외화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고 말했다.

미국과 프랑스에 이은 개가

1950-60년대에 개발된 계기착륙시스템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2000년대 항공교통량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를 직시한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는 1983년 미래 항행 시스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위성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91년 9월 제10차 국제민간항공기구 항공항법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85개국 대표와 13개 국제기구 대표로 구성된 총 4백5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위성 기반 항행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즉 기존 계기착륙시설을 점진적으로 철거하고 2010년부터는 오로지 새로운 시스템으로만 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 비행제어연구실장인 김종철 박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권고사항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항공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불리한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GPS와 GLONASS라는 위성 항행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GLONASS는 자국의 경제사정 때문에 유명무실해졌고, 현재는 미국의 GPS만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과거 미국은 GPS를 운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오차를 발생시켰다. 정확한 위치 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5월 이후 고의적 오차를 제거했다. 유럽에서 GPS에 상응하는 GALILEO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관련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GPS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까지 위성항법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은 GPS를 이용해 1996년부터 이미 위성 기반의 항행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6년 경에는 미국 내 1백60개 공항에 이 시스템을 설치해 실제 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프랑스도 위성 기반 항법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지난해 시험비행을 마친 우리나라의 위성 기반 착륙시스템은 미국과 프랑스에 이은 세계적인 성과다. 서울대 위성항법시스템연구실과 항공우주연구원 등이 참여해 개발한 이 시스템은 2007년 경 제주나 울산 등 국내 지방 공항을 시작으로 설치될 예정이며, 현재 상용화를 위한 준비가 진행중이다.

200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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