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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 따른 인종 구분은 넌센스

현생인류는 원래 흑인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서구인들의 피부암 발병율도 급증하고 있다. 흰 피부는 햇빛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75년 어느 날 “지구상의 다양한 인종은 위도에 따른 적응 반응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햇빛이 강한 저위도에서는 짙은 피부색이, 약한 고위도에서는 옅은 피부색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설명이다.

우월한 백인과 열등한 유색인이라는 이분법이 상식으로 통하던 당시 유럽지성계의 분위기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칸트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으로 대표되는 인종에 대한 편견은 오늘날까지 백인뿐 아니라 소위 유색인의 뇌리에도 깊이 각인돼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인류가 이처럼 다양한 피부색을 갖게 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칸트의 추측이 정확했다는 증거를 속속 찾아내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피부색을 통한 인종구분은 생물학적 근거가 희박한, 문화적인 관점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설명이 가능한지 살펴보자.

진화사적으로 최근이라고 볼 수 있는 10만-15만년 전,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 사바나를 떠나 정처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무렵까지 이들은 모두 흑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양한 피부색은 불과 수만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인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과학원 인류학과장인 니나 재블론스키 박사는 피부색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인류의 진화과정에 있다고 설명한다.

7백만년 전 인류의 초기 조상은 오늘날 침팬지처럼 온몸이 털로 덮였고 피부색은 옅었다. 4백50만년-2백만년 전 이들은 열대우림을 떠나 사바나 초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사바나에서 이들은 먹거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했다. 이 과정에서 땀을 잘 흘려 과열된 몸을 효율적으로 식힐 수 있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다.

이와 함께 땀의 증발을 방해하는 두터운 털이 없어지면서 피부는 벌거벗게 됐다. 그러나 털없는 피부는 햇빛, 특히 자외선에 취약하다. 따라서 자외선을 흡수해 피부조직을 보호하는 수단이 함께 진화해야했다. 멜라닌 색소라는 흑갈색 햇볕 차단제가 그것이다. 결국 우리조상은 털 대신 짙은 피부색으로 햇빛에 견디며 사바나의 주인이 됐다.

그렇다면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의 어떤 위협으로부터 인체를 지키는 것일까. 우선 지나친 일사량으로 인한 피부화상을 막아준다. 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은 햇빛으로 인해 염증이나 주름이 쉽게 생긴다.

피부암 예방도 멜라닌의 중요한 역할이다. 자외선은 DNA를 손상시켜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만든다. 실제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 자외선에 취약한 백인들은 피부암에 잘 걸린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백인의 경우 지난 50년간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발생률이 8배나 증가했다.

멜라닌은 자외선에 쉽게 파괴되는 엽산(folate), 리보플라빈, 비타민 E 같은 영양분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비타민 B 복합체의 구성성분인 엽산은 생식과 태아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엽산이 부족할 경우 태아의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심할 경우 뇌나 척수가 없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백인의 경우 강한 햇빛을 한시간만 쬐도 피부의 엽산 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임신초기 인공선탠을 한 산모가 신경계에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는 보고도 있다. 한편 엽산은 정자 생성에도 필요한 성분이다. 엽산의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이 남성 피임약으로 개발돼 있을 정도다. 재블론스키 박사는 “짙은 피부색이 자연선택된 가장 큰 이유는 건강한 자손을 낳는데 중요한 영양소인 엽산이 자외선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햇빛이 강하지 않은 곳으로 이동한 인류는 왜 다시 옅은 피부색으로 돌아갔을까. 비타민 D 때문이다. 자외선은 두얼굴을 하고 있다. 엽산에게는 파괴자이지만 비타민 D에게는 창조자다. 비타민 D는 콜레스테롤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을 자외선이 촉진하기 때문이다.

비타민 D는 몸이 칼슘을 흡수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타민 D가 결핍되면 칼슘을 흡수하지 못해 뼈가 약해지고 굽는 구루병에 걸린다. 따라서 고위도 지역으로 이동한 인류는 초기에 이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발견된 1만5천-1만년 전 유골을 분석한 결과 뼈와 치아에 칼슘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런 지역에서는 멜라닌 색소가 적어 자외선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래스카처럼 고위도 지방에 정착한 에스키모들은 왜 흰 피부 대신 우리와 비슷한 피부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이들의 전통적인 식단에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에스키모는 날생선이나 날고기 등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왔다. 따라서 햇빛을 통해 좀더 많은 비타민을 만들 수 있는 흰 피부가 생존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셈이다.

한편 몸이 지나치게 많은 비타민 D를 만들어도 문제가 된다. 과잉의 비타민 D는 요로결석이나 담석증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멜라닌은 저위도 지역에서 비타민 D의 과잉생성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재블론스키 박사는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측정한 자외선 지도, 즉 지구상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을 표시한 도표를 바탕으로 적정 수준의 엽산과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는 피부색을 예측한 지도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 지도를 실제 세계 각 지역의 원주민들의 피부색 분포와 비교하자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중동이나 인도, 중남미 지역은 예상보다 원주민의 실제 피부색이 옅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비교적 최근에 정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재블론스키 박사는 “이런 지역의 경우 문화적 영향도 크다”며 “유럽 기원의 아랍인은 2천여년 전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했지만 두꺼운 옷을 두르고 텐트에서 생활해 햇빛의 영향력이 약화됐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랍인들은 유럽인보다는 피부색이 짙지만 비슷한 기후인 아프리카 수단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훨씬 밝다.

그렇다면 인류는 불과 10만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피부색을 가질 수 있었을까. 만일 피부색 결정에 많은 유전자가 개입한다면 변이가 생기는데 훨씬 긴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의문에 대해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유전학과 그레고리 바시 교수는 “우리는 아직까지 피부색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구성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최근의 연구 결과 피부색의 발현에는 생각보다 적은 유전자가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피부나 눈, 머리카락의 색은 멜라닌이라는 색소가 있기 때문이다. 멜라닌은 세포내소기관인 멜라노솜에 들어있는데, 멜라닌생성세포가 멜라 노솜을 만들어낸다. 뜻밖에도 피부색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숫자의 멜라닌생성세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피부색은 이처럼 가지각색일까.

피부의 표피에는 마치 해파리처럼 생긴 멜라닌생성세포가 각질세포들 사이에 박혀있다. 멜라닌생성세포 1개는 대략 40여개의 각질세포에 멜라노솜을 공급할 수 있다. 각질세포가 멜라노솜을 더 많이 받을수록 피부색이 짙어진다. 실제로 짙은 피부색일수록 각질세포내 멜라노솜 숫자가 많고 골고루 퍼져있다. 또 멜라노솜의 크기도 더 크고 멜라닌 색소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반면 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의 각질세포에는 멜라노솜 숫자가 적고 함유하는 색소의 양도 적다. 따라서 이 경우 자외선의 상당량이 그대로 피부속으로 뚫고 들어온다.

머리카락 색깔도 멜라닌 색소 때문이다. 머리카락은 모낭에서 자라는데, 모낭의 모(毛)세포가 분열하면서 주위의 멜라닌생성세포에서 멜라노솜을 끌어들인다. 이 때 갖고 온 양에 따라 금발이 되기도 하고 칠흑 같이 되기도 한다. 눈의 빛깔도 마찬가지다. 홍채에 분포하는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회색, 옅은 갈색, 밤색 등으로 보인다.

우리는 때로 영화배우 폴 뉴먼의 파란 눈이 멋있다며 부러워한다. 멜라닌 색소는 적황색과 흑갈색 두가지인데 어떻게 파란 눈이 나올 수 있을까. 파란 눈은 파란 색소 때문이 아니다. 파란 눈에는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대신 하얀 반점이 흩뿌려져 있다. 여기에 햇빛 가운데 파장이 짧은 파란빛이 부딪혀 산란된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홍채에는 멜라닌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우리가 파란 눈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연구 결과 멜라닌생성세포는 각질세포의 명령에 따라 멜라노솜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흑인의 각질세포와 백인의 멜라닌생성세포를 붙인 피부는 여전히 흑인의 피부로 증식한다. 바시 교수는 “적어도 피부색 변이의 한 원인은 색소를 만드는 세포가 근본적으로 다른데 있는 게 아니라 그 활동력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한다.
 

햇볕이 부족한 고위도지방에 정착한 에스키모인들이 북유럽인들처럼 흰 피부를 갖지 않는 이유는 날생선 등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피부색과 인종 연관 미미
 

피부색과 얼굴형태는 인종을 구분하는 주요지표다. 그러나 인간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겉보기의 다양함은 유전학적으로는 미미한 변이의 결과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는 다양한 피부색이 몇몇 유전자의 미세한 차이에서 비롯됨을 암시한다. 이 정도의 변이라면 수만년 동안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사람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피부색은 인종을 나누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않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피부색에 따른 인종구분은 생물학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하고 있는 유전학자인 미국 유타의대 마이클 밤샤드 교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과 호주 원주민은 비슷하게 짙은 피부색을 띄지만 지구상의 어떤 인종보다도 서로 공유하는 유전자가 적다. 반면에 유럽의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촌간이다.

유전학자인 미국 스탠포드대 노아 로젠버그 박사는 전세계 52개 지역, 1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간 게놈에서 진화의 지표가 되는 3백75곳의 변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인류는 유전적 유사성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뉜다. 즉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 유럽인과 히말라야산맥 서쪽 아시아인, 동아시아인, 뉴기니인과 멜라네시아인,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것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피부색은 부차적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크레파스의 ‘살색’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달라는 국내 거주 외국 근로자들의 탄원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들도 알게 모르게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나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들과 만날 때 피부색은 인체가 햇빛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어떨까.
 

지구촌은 하나. 피부색은 인체가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를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얼굴이 흰 이유
 

여자가 남자보다 얼굴이 흰 이유^비타민 D 합성과 관계가 있다.


“나도 뽀얀 우윳빛피부를 갖고 싶다.” 눈처럼 아름다운 미백(美白) 화장품 광고 모델을 볼 때마다 여성들은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남자보다 여성의 피부색이 더 옅음을 볼 수 있다. 여성들이 부지런히 미백 화장품을 발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지역일 경우 여자 피부색이 더 밝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역시 비타민 D 합성과 관계가 있다. 여성이 임신을 하면 태아가 자라면서 많은 양의 칼슘이 필요하다. 따라서 산모는 남성보다 많은 비타민 D가 필요하다. 동일한 태양광에서는 색이 옅은 피부가 더 많은 비타민 D를 만든다. 결국 여성들은 임신이라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과잉의 비타민 D를 만들 수 있게 피부색이 최적화된 것이다.

남성들이 뽀얀 피부색의 미인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여성이 좀더 튼튼한 자손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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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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