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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열 얻어 냉난방하는 열펌프

21세기 연료는 공기·물·땅

서울의 한강처럼 수도를 흐르는 일본 동경의 스미다강(隅田川). 동경전력은 1989년부터 이 강물에서 열을 얻어 하코자키(箱崎) 지역의 IBM 빌딩을 비롯해 업무용 건물 4곳의 냉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그 결과 기존 냉난방 시스템보다 20%의 에너지가 절감되고,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33%, 일산화탄소는 약 35%가 줄어들었다.

에너지 절약기기로 주목


21세기에는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대신 하천을 흐르는 물에서 열을 얻어내는 열펌프가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요크카운티에 위치한 헬스 센터 건물. 이 건물은 땅의 열을 이용해 냉난방을 하고 있다. 약 2천5백m2 넓이의 2층 건물인 이곳은 냉난방에 필요한 열을 지하 50m 깊이까지 설치돼 있는 파이프 95개를 통해 얻는다. 이에 필요한 연간 에너지 비용은 2천5백만원. 기존 냉난방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그 비용은 약 2천7백만원으로 추정된다. 지열을 이용한 덕분에 약 8%의 에너지를 절감했다.

공기를 이용해 냉난방하는 곳도 있다. 광주광역시의 매일유업 공장이다. 1999년 3월부터 이 공장의 특수포장실에는 공기를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 에너지 절감 효과는 대략 5%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왠지 사이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 우리가 마시는 물, 딛고 다니는 땅, 그리고 숨쉬는 공기가 냉난방에 쓰이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바로 ‘열펌프’.

최근 전세계적으로 열펌프가 에너지를 절감하고 온실효과를 줄이는 냉난방시스템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열펌프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에너지 절약기기로 지목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국내에서는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의 일환으로 ‘하천수열원이용 고효율 열펌프시스템 개발’에 관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열을 펌프하는 장치

그렇다면 열펌프는 어떤 기술이기에 물, 땅, 공기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마찬가지로 열도 흐르는 방향이 있다. 즉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열펌프는 이 자연스런 흐름을 거꾸로 해주는 장치다. 냉난방을 하는데 필요한 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반하는 기능을 갖는다. 즉 공기, 물, 땅과 같은 저온의 열원에서 실내공기와 같은 고온의 열원으로 마치 펌프처럼 열을 끌어올리는 장치다. 열펌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열펌프는 겨울철 외부온도가 영하인 상황에서도 실내를 20℃로 유지하게 해줄 수 있다.

그래서 열펌프는 단지 이 시스템을 구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공기, 물, 땅으로부터 얻는다. 이런 까닭에 열펌프는 작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형 열공급장치인 까닭이 바로 이 때문.

일반적으로 석유 100을 태워 생산한 전기에너지는 가정에서 35 정도밖에 안된다. 따라서 전열기로 난방을 한다면 전열기의 효율이 100%라고 하더라도 투입한 에너지 100에 대해 35의 열을 얻을 뿐이다. 직접 석유나 가스를 태워 난방을 하는 보일러의 경우에는 70의 열을 생산할 수 있다.

반면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열펌프의 경우에는 우선 공급되는 전기에너지가 35다. 이때 일반적인 열펌프 효율을 고려해보면 외부공기나 폐수와 같은 저온열원에서 70 이상의 열을 덤으로 얻는다. 물론 공기, 물, 땅과 같은 열원의 온도, 그리고 열펌프 시스템의 규모 등에 따라 열펌프의 효율이 다르다. 특히 열펌프는 물에서 100 정도의 열을 흡수할 수 있다.

결국 이 경우는 전기에너지 35를 생산하는데 드는 석유에너지 100를 투입하면 전기에너지를 통해 얻는 열 35와 자연열원에서 얻는 열에너지를 더해 105-135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열펌프는 다른 난방기구에 비해 공급할 수 있는 열에너지가 훨씬 많다.

에어컨의 버리는 열을 난방으로


미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서 개발한 겨울철 서리가 생기지 않 는 공기열원 열펌프.


그렇다면 열펌프는 어떤 방법으로 공기, 물, 땅으로부터 열을 운반하는 것일까. 그 원리는 에어컨이나 냉장고와 같은 냉동기와 비슷하다. 뜨거운 여름날 에어컨은 실내의 저온에서 실외의 고온으로 열을 배출한다. 그 결과 실내는 차갑게 유지되고 바깥은 더워지는 것이다. 이때 냉장고, 에어컨에서 열을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냉매다. 열펌프도 마찬가지로 냉매를 쓴다.

열펌프와 냉동기는 증발기, 압축기, 응축기, 팽창밸브로 구성된 사이클로 이뤄져 있다. 냉매는 이들 각 부분을 순환하면서 열을 운반한다.

먼저 냉매는 낮은온도와 낮은압력의 상태에서 증발기로 흘러간다. 이 증발기에서는 공기, 물, 땅으로부터 열을 흡수하는데, 그 결과 액체상태의 냉매가 증발하게 된다. 저온 기체상태의 냉매는 압축기에서 고온, 고압상태로 바뀐다. 고온고압의 냉매는 응축기에서 열을 방출하면서 액체상태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냉매는 팽창밸브를 거쳐 압력이 낮아진다. 그런 다음 냉매는 저온저압상태로 다시 증발기를 거치면서 순환과정은 반복된다. 이같은 냉매의 순환과정을 통해 열펌프와 냉동기는 저온의 열원에서 고온의 열원으로 에너지를 운반한다.

그렇다면 냉동기와 열펌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냉동기는 열펌프의 냉방능력만 이용하는 것이다. 증발기에서 열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증발기 주변은 온도가 떨어진다. 이 저온상태를 활용하는 것이 냉동기다. 예를 들어 에어컨의 경우 증발기를 통과해서 차가워진 공기가 실내로 들어와 냉방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응축기에서 내놓는 열은 바깥으로 버려진다. 이 때는 증발기가 실내에, 응축기가 실외에 장착된다.

오일파동 후 시장 형성

하지만 열펌프는 응축기의 열을 버리지 않고 난방에 활용한다. 덕분에 열펌프는 여름철과 겨울철 모두 이용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또한 열펌프는 냉난방을 동시에 이뤄지도록 할 수도 있다. 목욕탕의 경우 여름철에는 온수도 필요하고 사람들의 휴식공간은 시원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온수는 가스보일러가 데우고, 휴식공간은 에어컨으로 냉방시키는데, 열펌프는 하나로 이 두가지를 해낼 수 있다.

열펌프는 시스템 사이클에 냉매의 흐름방향을 조작하는 장치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이 장치는 4방밸브라는 것인데, 냉매의 흐름을 역전시켜 실내와 실외에 각각 설치되는 증발기와 압축기의 역할을 바꿔준다. 그 결과 여름철에는 차가운 공기가 겨울철에는 따뜻한 공기가 실내로 들어온다.

두마리의 토끼를 잡아내는 열펌프는 1824년 카르노가 처음으로 기본원리를 제안했다. 이 때문에 열펌프의 이론사이클을 ‘카르노 사이클’이라고 한다. 카르노 사이클은 이후 열역학 제2법칙으로 발전한다. 1852년에는 절대온도의 단위로 명명된 켈빈이 열펌프 장치를 고안했다. 그리고 1927년 영국인 할덴이 열펌프 장치를 처음으로 제작했다.

열펌프가 시장에 나온 때는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주택용 열펌프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분한 연구개발을 거치기 전에 시장에 나온 열펌프는 신뢰도가 낮아서 보급에 실패했다.

열펌프 사이클의 온도가 냉동기 사이클의 온도보다 높아서 냉동기에서 사용해 왔던 압축기가 견디지 못했다. 또한 계절의 변화에 따른 주위 온도 변화와 같은 조건으로 인해 베어링, 크랭크샤브트 및 밸브 등에서 고장이 잦았다. 1960년대 들어 이들 문제를 인식하고 압축기의 재설계, 고저압스위치, 다양한 보호장치에서 보완이 이뤄졌다.

하지만 열펌프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70년대 오일파동이 일어난 후다. 당시 에너지 요금이 크게 상승하면서 열펌프의 보급이 크게 신장됐다.

북미가 최대 시장

현재 열펌프의 보급은 꾸준한 성장세에 있다. 열펌프 시장은 북미가 최대다. 미국의 경우 공기열원 열펌프는 2000년 기준 연간 냉방전용이 6백만대, 냉난방겸용이 1백50만대에 이른다.

1990년대 이후 유럽도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열펌프의 주요 시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열펌프 시장은 1990년대 이후 상당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유럽은 1980년대 열펌프 보급에 있어 미국처럼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으나, 1990년 이후 꾸준한 보급으로 2010년까지 1천5백만대 열펌프의 가동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1백TWh(테라와트시, 1TWh=${10}^{12}$Wh)의 전력이 절감되고 이산화탄소의 방출량이 4천만t 감소할 전망이다.

초기 설치비가 부담


열펌프 보급의 걸림돌 중 하나가 초기 설치비가 크다는 점이 다. 건물 신축시 건물주는 열펌프보다 가격이 적게 드는 기존 냉난방 시스템을 선호한다.


아시아는 최근에 떠오르는 열펌프 시장이다. 아시아지역 국가의 경제여건이 급속히 향상되고 특히 중국이 급격히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앞으로는 아시아지역이 그 선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시아의 열펌프 시장은 일본과 중국이 선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미 197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중국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장이 급격히 팽창했다.

우리나라의 열펌프 시장은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기식 열펌프는 기후 때문에, 그리고 수냉식 열펌프의 경우 시장 여건의 미성숙과 사용자 인식 부족으로 널리 이용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기술 수준도 낙후돼 있다.

전세계적으로 열펌프 보급이 좀더 활성화되려면 몇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최대난점은 초기 투자비가 크다는 점이다. 일반 냉온수시스템과 비교할 경우 공기열원 열펌프는 설치시 가격이 30% 정도 더 비싸다. 또다른 문제점은 설치업자들의 기술수준이 낮아 소비자의 만족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세계각국은 열펌프 사용에 대한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직접적인 보급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고유가 시대가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열펌프의 인기가 높아지리라 전망된다.

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수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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