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은 2종 초전도의 존재를 예측한 사람들과 초유체 이론을 풀어낸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초전도체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저항이 갑자기 사라지는 물질이다. 또 초유동은 일반 액체와 달리 점성을 갖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유동 상태를 말한다. 스웨덴 왕립 학술원은 이러한 초전도와 초유체 이론을 확립하는데 혁혁한 기여를 한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알렉세이 아브리코소프와 일리노이대 안소니 레깃, 러시아 레베데프 물리연구소의 비탈리 긴즈부르크 등 세명의 학자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 발표했다.
꿈의 소재, 초전도체
1908년 초전도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네스였다. 그는 절대온도 4K(-2백69℃)의 액체헬륨을 이용해 냉각된 물질의 전기 저항 측정 실험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액체헬륨의 기화온도(4K)에서 수은 저항이 급격히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특정 저온에서 저항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 초전도체가 세상에 알려진 첫 순간이었다.
사실 초전도 현상은 모든 물질이 저항을 가진다는 당시 속설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도체의 결정격자 구조는 불순물, 구조 결함, 이온들의 진동으로 불완전한 형태를 띤다. 이 때문에 전기를 가하게 되면 자유 전자들의 충돌로 인한 열로 도체 내에 저항 성분이 생긴다는 것이 당시 일반론이었다. 그런데 충돌이 없어지면서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이 새로이 발견된 것이었다.
초전도 현상에 관한 또다른 역사적 발견은 1933년 독일의 프리츠 발트 마이스너와 로버트 오센펠트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시 두 물리학자는 초전도체가 특정 온도에서 저항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내부 자기장을 밖으로 내보내는 자기반발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른바 ‘마이스너 효과’로 불리는 반발 현상은 저항이 없어지는 특성과 함께 초전도의 근본적인 특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전도체는 1911년 첫 발견 이후 46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1957년 존 바딘, 리언 N. 쿠퍼, 그리고 존 R. 슈리퍼는 BCS이론을 발표해 초전도체 관련 연구에 이론적 체계를 세웠다. 이들의 이론은 자기장을 완전히 밀어내는 제1종 초전도체에 관한 것으로, 도체 원자 내의 전자 2개가 쌍을 이루면서 전기 저항이 없어지는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나 세사람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초전도가 되면서도 자기장이 없어지지 않는 물질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올해 수상자 아브리코소프 박사는 지난 1950년대 긴즈부르크 등 여러 학자들이 내놓은 이론을 발전시켜 2종 초전도체의 존재를 예측하고 그 실체까지 밝혀냈다. 그는 2종 초전도체의 경우 초전도와 자기장이 공존하면서 센 자기장에서도 초전도 현상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 발견에 힘입어 그 뒤 많은 과학자들은 높은 온도와 강한 자기장에서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초전도체를 찾아 나서게 된다.
초유체는 액체가 점성이 없어지면서 저항을 갖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컵속의 액체가 스스로 가장자리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He₄이 초유체가 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과학자는 표트르 카피자와 레프 란다우였다. 두사람은 He₄ 초유체 현상이 매우 낮은 온도(약 2K)의 He₄ 액체에서 나타나며, 이때 헬륨 원자의 전자들이 쌍(쿠퍼쌍)을 이루면서 점성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올해 공동 수상자 레깃 박사는 1970년대 He3 초유체에 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He₃ 초유체는 He₄에 비해 1/1천 정도 더 낮은 온도에서 발견되며, 이 역시 He₃ 원자 두개가 쿠퍼쌍을 이루며 형성된다. 많은 학자들은 초유체를 현대 과학의 난제인 ‘정돈된 상태에서 혼돈된 상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다.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
도대체 왜 사람들은 초전도체에 그토록 관심을 쏟을까. 바로 무궁무진한 응용성 때문이다. 전기저항이 없기 때문에 초전도체로 만든 전자석은 일반 자석보다 수천배 강한 자기력을 가진다.
초전도체의 응용 범위는 매우 넓다. 자기공명장치(MRI)를 비롯해 초전도 코일의 자기장을 이용한 에너지 저장소, 자기부상 열차는 바로 좋은 응용 사례다. 또 박막, 고속소자, 센서, 열이 발생하지 않는 컴퓨터나 반도체 배선에도 초전도체가 적용된다. 특히 초전도체는 고유 저항값이 매우 낮은 전선 제작에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어른 팔뚝만한 초전도 전선 한줄만으로도 웬만한 중소 도시에 공급되는 전기량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항 제로의 초전도 물질은 금속, 유기물질, 세라믹 등에서 지금가지 1천종 이상 발견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나이오비움-티타늄 합금과 나이오비움-주석 합금 등 5-6종만이 실용화된 상태다. 매우 낮은 온도에서만 나타나는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려면 값비싼 액체헬륨과 고가의 정밀기계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냉각용 액체헬륨 제조에 필요한 기체 헬륨을 대기 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도 초전도체 연구의 또다른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