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때면 텔레비전에 단골로 방영되는 영화들이 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역시 대표적인 명절용 영화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성배를 찾는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담이 방영됐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흘린 피를 받았다는 이 작은 잔이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발견된다면 얼마나 큰 사건일까.
요셉의 아들, 예수의 동생
지난해 말 세계는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유물 하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예수의 동생 야고보의 유골함이 발견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공개된 가로 50cm, 세로 25cm에 높이는 30cm인 구두상자 모양의 이 유골함에는 ‘야고보, 요셉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Yaakov bar Yoseph, Achui de Yeshua)이라는 고대 아람어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야고보의 유골함에 대해 타임지는 “신약 고고학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했으며, 디스커버리 채널은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이 유골함은 오데드 골란이라는 이스라엘의 한 엔지니어가 우연히 손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골란은 유골함의 사진을 세계적인 고문서학자인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의 앙드레 르메어 교수에게 보여줬으며, 유골함의 가치를 알아본 르메어 교수가 이를 세상에 공개했다. 르메어 교수는 이 유골함이 서기 63년의 것으로 진품이 확실하다고 미국에서 발간되는 ‘성서고고학리뷰’ 11/12월호에 발표했다. 유골함은 그해 11월 캐나다 토론토의 왕립온타리오박물관에 전시됐다.
유골함이 공개되자 당황한 것은 이스라엘 문화재청이었다. 문화재청은 이스라엘에서 발굴되는 모든 유물을 관장하는데, 야고보의 유골함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유골함의 소유자인 골란은 이스라엘에서 골동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으로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골란이 르메어 교수에게 유골함을 공개하기 수주 전에도 방문해서 일상적인 조사를 한 바 있다. 당시 골란은 유골함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골함을 11월 캐나다에서 전시하기 위해 반출할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을 때도 유골함에 새겨진 글자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고학에 능통한 거짓말쟁이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의하면 야고보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난 예수의 친동생이다. 야고보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뒤 서기 62년 순교할 때까지 예루살렘 기독교회의 초대지도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야고보가 숨질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일단 시신을 동굴에 안치한 다음, 뼈만 남게 되면 이를 유골함에 수습해 보관하는 매장풍습이 있었다. 유골함의 연대를 서기 63년으로 추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서고고학리뷰는 1990년 카이아파스(caiaphas)란 고위 성직자의 이름이 새겨진 유골함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유골함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유명인사에 해당된다는 의미다. 교회사에 따르면 카이아파스는 예수를 로마인들에게 넘겨 처형되게 한 유대교 성직자다.
르메어 교수는 야고보나 요셉, 예수란 이름은 당시 흔한 이름이지만 이 세 이름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이 조사한 수백개의 당시 유골함에서 형제의 이름을 밝힌 비문은 야고보 유골함 외에 하나밖에 없었다면서, 이는 형제가 아주 중요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이 유명한 형인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바로 그 예수란 것이다. 골란은 르메어 교수에게 유골함을 보여주는 한편 이스라엘 지질조사연구소에도 감정을 의뢰했는데, 여기서도 유골함이 당시 예루살렘에서 생산된 석회암으로 만든 것이며 부식의 흔적 역시 자연적인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유골함의 조작 가능성에 대한 단서는 우습게도 골란 자신에게서 나왔다. 골란은 기자회견에서 야고보의 유골함을 1976년 예루살렘의 골동품상에게서 샀다면서 자신은 유골함에 새겨진 글자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르메어 교수 역시 “골란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동생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유골함이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골란의 어머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8살 때 이미 텔아비브 지역에서 이뤄진 고고학 발굴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형인 야론도 골란이 어릴 때부터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을 맞춰 붙이곤 했으며 고고학자인 이가엘 야딘과 친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골란은 11살 때 야딘의 마사다 지역 발굴에 참가했으며, 고대 아람어와 고고학에도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고 한다. 유골함을 1976년에 샀다고 주장한 것도 1978년 이후 발굴된 유물은 국가소유라는 이스라엘 법률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샀다.
제임스 본드의 정체
이스라엘 문화재청은 지난 5월부터 슈카 도프만을 위원장으로 하는 야고보 유골함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마침내 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 16일 야고보의 유골함 자체는 서기 1세기경의 것이 맞지만, 글자는 최근에 새겨진 위조품이라고 발표했다. 즉, 누군가 야고보 사망 당시의 유골함을 구해서 예수의 동생임을 밝히는 글자를 새겨넣은 것이다.
문화재청의 조사위원회는 유골함에 새겨진 글자의 문법, 글자체를 감정하는 금석학자와 고문서학자 8명이 참여한 ‘글자 및 내용 조사 분과’와, 유골함의 재질과 부식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는 ‘재질 분석 분과’로 구성됐다. 재질 분석 분과엔 고고학자와 유물 보존학자 및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 전문가 등 6명이 참여했다. 이스라엘 지질조사연구소에서는 야고보 유골함이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역에서 나는 석회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연대를 2천년 전의 것으로 판정했다. 문화재청의 조사 결과도 이 점에서는 일치했다. 문제는 글자에 있었다.
유골함은 얇은 갈색의 니스(varnish)층으로 덮여 있는데 이는 암석이 오랜 시간 동안 박테리아와 조류에 의해 부식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또 ‘꽃양배추’란 별명을 갖고 있듯 마치 꽃잎처럼 암석 위에 퍼지는 동록(銅綠, patina)은 암석이 주변으로부터 다양한 입자와 광물질을 흡수하고 잃은 결과 생성된 것이다.
조사위원회 재질 분석 분과의 텔아비브대학 유발 고렌 교수는 유골함에 새겨진 글자에 붙어있는 동록에 주목했다. 고렌 교수는 이를 야고보의 영어명인 제임스(James)에 붙어있다는 본드(bond)를 합해 ‘제임스 본드’라 이름 붙였는데, 야고보 유골함의 다른 곳이나 같은 시기의 다른 유골함에선 발견되지 않는 성분을 갖고 있었다.
자연적인 동록의 원인은 탄산이 많은 예루살렘 등지에서 만들어지는 탄산칼슘이다. 동록은 바로 이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았다가 유골함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물이 증발하면서 다시 재결정화한 방해석(方解石, calcite, 화학성분은 CaCO3) 결정이다. 찻주전자를 오래 사용하면 바닥에 돌처럼 지꺼기가 달라붙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제임스 본드에는 순수한 칼슘 결정 외에 여러가지 불술문들이 들어있었다. 고렌 박사는 이를 위조범들이 백악(白堊, chalk)으로 가짜 동록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백악은 석회질 껍질을 가진 부유성 단세포 생물의 유체와 아주 미세한 방해석의 결정으로 된 암석이다. 단세포 생물의 유체는 코코리드라는 물에 잘 녹지 않는 마이크로화석으로 남아있다. 물에 녹은 탄산칼슘 때문에 자연적으로 동록이 생겼다면 물에 잘 녹지 않는 마이크로화석이 방해석 결정 안에 들어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제임스 본드의 실체는 위조범이 마이크로화석이 들어있는 백악가루를 물에 녹인 다음 글자에 입힌 것이다.
지질조사연구소 추천으로 문화재청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아브너 아얄론 박사는 산소동위원소인 18O/16O 비율의 분석을 통해 제임스 본드가 위조된 것임을 증명했다. 탄산칼슘이 물에 녹았다가 다시 유골함에 재결정화되면 물 속의 산소와 같은 동위원소비를 가져야 한다. 또한 동위원소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동록의 근원이 되는 물의 온도를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야고보 유골함 표면과 글자가 새겨진 다른 진품 유골함 동록의 탄산칼슘을 분석한 결과 예루살렘 지역의 지표온도와 동일한 동위원소비를 보였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의 동위원소비는 뜨거운 물과 같은 것이었다. 백악가루를 쉽게 녹이기 위해 위조범들은 뜨거운 물을 이용한 것이다.
솔로몬 신전은 실재했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의 유물함을 위조했을까. 성서를 입증할 증거물을 내놓으려는 신앙심의 결과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골란은 불과 2백달러를 주고 유골함을 샀다고 했는데, 캐나다 전시여행 때는 1백만달러 보험에 들었다. 캐나다 왕립온타리오박물관은 유골함의 가치를 2백만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문화재청 조사위원회의 위조 발표가 있고나서 골란은 7월 21일 이스라엘 경찰에 의해 골동품 위조와 거래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골란의 집에서 위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스텐실과 돌, 부분적으로 완성된 위조품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골란은 현재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로 자신이 위조범이 아니며 아직도 야고보 유골함이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골란의 집에서 또다른 중요한 유물을 압수했다. 가로 23cm, 세로 28cm, 두께 8cm인 이 석판에는 기원전 9세기 경 유대의 왕인 요아스가 솔로몬왕의 신전을 보수한다는 내용의 고대 문자들이 10-15줄(윗부분이 파손돼 정확한 수를 모름) 적혀있다.
문화재청 조사위원회는 야고보 유골함과 함께 ‘요아스 비문’으로 불리는 이 석판의 진위 여부에 대한 조사도 함께 했다. 조사 결과는 유골함과 마찬가지로 위조품이었다.
요아스 비문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1년 여름이다.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고문서학자인 히브리대학의 요셉 나베 교수에게 익명의 제보자가 비문의 사진을 보내왔다. 나베 교수는 실물을 보자고 했으며, 얼마 후 한 이스라엘인과 만나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이스라엘인은 예루살렘의 성전산(The Temple Mount) 동쪽 벽 외곽에서 아랍인이 발굴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된 요아스 비문은 구약성서의 열왕기에 나오는 신전보수에 대한 내용과 일치했다. 그렇지만 당시 나베 교수는 기원전 9세기 경 히브리어 글자체와 7세기 경 페니키아어와 아람어 글자체가 섞여있다는 점에서 위조품으로 판정했다.
그해 가을 이 비문은 다시 이스라엘지질조사연구소로 보내져 재판정을 받았다. 지질조사연구소는 이 비문을 진품으로 판정했다. 비문에는 현미경에서 보이는 미세한 금입자가 있었는데 이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네브카드네자르왕이 솔로몬왕의 신전을 불태울 때 황금벽의 금이 녹아 들어온 것으로 설명됐다.
요아스 비문은 고고학적 중요성과 함께 정치적 의미도 크다. 솔로몬왕의 신전이 있었다는 성전산에는 서기 692년 세워진 팔각형의 기단과 황금빛 돔으로 이루어진 이슬람사원인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 있다. 이 사원은 성전산의 큰 바위 위에서 이슬람교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바위를 종교적으로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현재 바위의 돔은 근처의 알 악싸 모스크와 함께 하람 에쉬 사리프(Haram ash-Sharif, 아랍어로 고상한 성소)라는 이슬람 제3의 성지로 신성시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 지역에 솔로몬왕의 신전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요아스 비문이 진품으로 판정되면 유대인들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스라엘 문화부장관인 리모르 리브낫은 요아스 비문에 대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발견일 것”으로 평가하면서 직접 조사를 명했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의 조사위원회는 요아스 비문에 대해서도 재질과 문법, 글자체 두 방향으로 조사했다.
현대인 생각대로 쓴 고대 비문
재질 분석 결과 애당초 이스라엘 지질조사연구소가 암석의 형태를 잘못 확인했음이 드러났다. 비문의 재료는 남부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에서 발견되는 아르코식 사암이 아니라 변성 회색왜캬(점토기질 사암)로 사이프러스 서부 지역이나 그보다 더 서쪽지방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또 비석의 뒷면에는 두꺼운 동록층이 있는데 성분이 대부분 규소였다. 예루살렘과 같이 칼슘이 많은 환경에서 묻혔을 때 생성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글자 사이나 글자안의 동록은 순수한 진흙과 백악가루로 이뤄진 부드러운 것이었으며, 수 마이크론 단위의 금속입자와 탄화입자도 들어있었다. 문화재청 조사위원회의 고렌 박사는 “야고보 비문의 제임스 본드와 요아스 비문의 동록은 같은 것”으로 설명했다. 요아스 비문의 동록에도 백악 가루를 인위적으로 녹여 발랐을 때 발견되는 마이크로화석이 들어있었으며, 산소동위원소비도 지표수가 아니라 뜨거운 물에서 재결정이 일어났음을 보여줬다.
야고보 유골함이 위조품이라는 결론은 주로 재질 분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아스 비문은 문법과 글자체 조사에서도 만장일치로 현대에 조작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올해 초부터 여러 고고학자들이 줄곧 주장해온 것과 일치한다.
우선 비문의 글자 중에는 당시에 사용되지 않은 말들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한 예로 비문에는 ‘vehaya hayom hazeh le'edut’(그리고 오늘이 증거가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edut가 ‘증거’란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aron ha'edut’(the Ark of the Covenant, 모세의 십계명을 새긴 돌을 넣은 법궤)와 같이 현대 히브리어 brit(서약)의 의미로만 사용됐다. 그린스타인 교수는 당시 ‘증거’란 의미로 사용된 말은 ‘ed’(오늘날엔 목격을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또 비문에는 ‘titzlah hamelakha’(이 일이 지속될 것)란 말이 나오는데, 고대어에서는 사람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지 일이 지속된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표현은 기원전 6세기 경의 문서에서나 나온다고 한다.
비문에는 “채석장의 돌과 목재, 구리, 그리고 신심으로 노역을 할 사람들을 사는데 필요한 신성한 돈”이란 말이 나오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으로 보호하실 것”으로 맺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통상 고대 왕가의 비문은 비문을 훼손하는 자에 대한 저주나 비문을 쓴 사람에 대한 축복으로 끝을 맺는다고 반박했다. 또 요아스 비문에는 성전 보수에 동원된 유대인들의 봉사와 노고를 담고 있지만 실제 고대 왕가의 비문은 왕 혼자의 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진품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문화재청 조사위원회에 참가한 벤구리온대학 성서 언어학 교수인 아비그도르 호로비츠 교수는 한마디로 “비문을 쓴 사람은 현대 히브리어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성서의 히브리어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비문을 보고 우스워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끝나지 않은 논쟁
문화재청 조사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는 요아스 비문과 유골함의 글자체나 문법상 오류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고렌 교수는 미국 고고학회지인 ‘고고학’ 9/10월호에 재질 조사와 문법, 글자체에 대한 분석결과를 함께 발표했다. 여기서 고렌 박사는 요아스 비문의 문법과 글자체가 오류 투성이란 점과 함께, 야고보 유골함의 글자 역시 이곳저곳의 진품 유골함에 있는 글자들을 컴퓨터 스캐닝한 다음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으로 크기를 조절해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서고고학리뷰자의 편집자이자 ‘야고보, 예수의 동생’의 공동저자인 로저 프리트는 문화재청의 기자회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고문서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야고보 유골함의 글자를 조사한 결과 모두 1세기 경이라고 확인했다. 게다가 문화재청이 발표하지 않은 진품을 확인해줄 증거가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재청의 책임자인 슈카 도프만은 골동품 수집가나 거래상, 거래를 모두 혐오하고 거래상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라며 골란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성서고고학리뷰 9/10월호도 문화재청 조사위원회 인적구성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이라는 토리노 성의엔 예수의 얼굴이 나타나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결과 이 아마천은 13세기의 것으로 판정됐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토리노 성의의 연대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야고보 유골함과 요아스 비문이 또다른 토리노 성의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