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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햇빛 받으면 전기 발생시키는 염료

자동차 유리에 숨어있는 투명한 태양전지

에너지 소비가 가장 심한 미국. 이 나라의 한 가정이 1년 간 소비하는 전기에너지는 8천9백kWh(킬로와트시) 정도다. 그리고 전세계의 1년 간 전기에너지 소비량은 82.8×1012kWh이다. 그렇다면 지구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에너지가 1년 간 지구표면에 도달하는 양(킬로와트시로 환산할 경우)은 이와 비교할 때 얼마나 될까.

① 전세계 소비량의 10배
② 전세계 소비량의 1백배
③ 전세계 소비량의 1천배
④ 전세계 소비량의 1만배

지구표면에 도달하는 연간 태양에너지의 총량을 킬로와트시로 환산하면 79.5×1016kWh로 전세계가 연간 소비하는 총량의 약 1만배에 해당한다. 지구표면 중 대륙이 29%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 양은 연간 소비량의 약 2천9백배가 된다. 즉 태양에너지의 일부만이라도 인류 생활에 유용한 에너지로 변환시킨다면 인류에게 불어닥칠 에너지 위기는 너끈히 해결할 수 있다.

전체 에너지생산에서 0.1% 안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개발한 유기염료를 이용한 태 양전지창.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태양전지의 개발은 그 역사가 18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프랑스 물리학자 에드몬드 벡쿼럴이 처음으로 어떤 물질이 빛에 노출될 경우 전류가 발생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본격적인 연구는 1950년대 들어서였다. 당시 태양전지는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선인 스푸트니크호 등에 장착됐다. 이후 항공우주산업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돼왔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오일파동으로 태양전지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됐다. 현재 많은 석유회사들이 태양전지 자회사를 설립해 연구개발과 생산에 참여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에 연유한 것이다.

이처럼 태양전지 기술의 역사는 오늘날 보편화된 컴퓨터나 각종 전기전자제품과 비교할 때 결코 짧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에너지생산에서 0.1%도 채 안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태양전지가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효율이 낮기 때문일까.

이 기술적 문제보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태양전지 실용화를 가로막고 있다. 시장에 출시된 태양전지는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데 반도체인 실리콘이나 갈륨비소와 같은 무기물을 재료로 만들어졌다. 이들 물질은 에너지 변환 효율이 높은 반면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이 점이 현재 태양전지 보급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비싼 무기물 대신 화려한 색을 만들어내는 유기염료로 대체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어떻게 유기염료가 태양전지의 주재료로 이용될 수 있을까.

태양에너지는 자외선 6-8%, 가시광선 42%, 그리고 적외선 50%로 구성돼 있다. 태양전지는 이 중에서 주로 가시광선 영역을 이용한다. 그런데 유기염료가 다양한 색을 갖는 것은 가시광선과 관련이 있다. 즉 가시광선 중 특정한 파장의 빛을 잘 흡수함으로써 색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유기염료는 태양빛을 받아 전자를 발생시키는 태양전지의 주재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기염료는 태양전지의 주재료로 활용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원하는 만큼의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려면 많은 양의 유기염료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기물질은 수십-수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두께를 만들 수 있는 실리콘과 같은 고체형 무기물질과는 달리 분자형태(분자의 크기는 대개 수nm, 1nm=${10}^{-9}$m)를 갖기 때문에 분자를 차곡차곡 쌓아 두꺼운 필름을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 때문에 유기물질로 구성된 태양전지의 효율이 매우 낮아 실제로 쓸모가 없었다.
 

(그림) 염료감응 태양전지


제조단가 1/5 줄인다

그런데 1991년 스위스 가젤 그룹이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들은 유기염료를 이용하고도 기존의 실리콘 태양전지에 버금가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갖는 태양전지 기술을 세상에 내놓았다. 유기염료를 이용한 태양전지는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제조단가가 1/5 수준이기 때문에 전세계의 연구계와 산업계가 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기염료의 효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바로 그 비밀은 나노기술에 있었다.

유기염료의 양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름을 만드는 대신 다른 물질에 유기물질을 흡착시키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즉 두꺼운 필름이 가능한 무기물의 표면에 유기물을 흡착시킨다는 아이디어다. 이때 무기물의 표면적이 넓을수록 많은 양의 염료를 흡착시킬 수 있다. 나노기술은 바로 무기물의 표면적을 증가시키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기물의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 나노기술은 이를 구성하는 입자를 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로, 세로, 높이가 1cm인 정육면체를 생각해보자. 이 정육면체의 표면적은 1cm×1cm×6개=6cm2이다. 그런데 이 정육면체의 각면을 4등분하면 한 정육면체의 표면적은 0.5cm×0.5cm×6개=1.5cm2이고, 8조각의 표면적은 1.5cm2×8개=12cm2이다. 즉 잘게 쪼갤수록 표면적은 증가한다. 따라서 마이크로 크기를 갖는 1개의 입자보다 나노크기를 갖은 여러개의 입자가 표면적이 훨씬 커서 유기염료를 더 많이 표면에 흡착시킬 수 있다.

이처럼 나노와 유기의 조합으로 탄생한 태양전지를 ‘염료감응 태양전지’라고 한다. 이 태양전지는 10-20nm 크기의 산화물 나노입자 표면에 유기염료가 흡착돼서 만들어진다. 즉 산화물 나노입자들을 전도성 유리기판 위에 매우 조밀하게 쌓아 수십μm 필름을 만들고, 이 필름을 염료가 녹아있는 용액에 담그면 많은 양의 염료를 가진 전극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염료-나노산화물 전극은 (-)극이 된다. 이 (-)극을 전도성 유리기판에 금속물질을 코팅한 (+)극과 접합한 후 두 전극 사이에 산화-환원 성질을 갖는 전해질을 주입하면 염료감응 태양전지가 완성된다. 이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2000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해 산업계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이같은 염료감응 태양전지가 부각받는 이유는 단지 실리콘 태양전지에 버금가는 에너지변환 효율과 저렴한 제조단가만은 아니다. 유기염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에 무해할 뿐 아니라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응용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정부주도로 개발


유기물을 사용해 얻어지는 투명성은 자동차 유리와 같은 곳에 태양전지의 활용영역을 넓혀준다.


예를 들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개발한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투명하다. 이는 나노크기의 산화물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입자가 큰 것은 빛을 산란하거나 반사하지만 10-20nm 정도의 나노입자에서는 대부분의 가시광선이 투과한다.

따라서 투명한 태양전지는 건물의 유리창이나, 자동차 유리처럼 투명성을 요구하는 곳에 부착해 본래의 기능도 가지면서 부가적으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능까지 첨가할 수 있다. 폭넓게 응용될 수 있는 것이다. 유기물을 활용한 태양전지는 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을 대체할 차세대 태양전지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유기 태양전지의 연구 개발은 미국, 유럽, 일본 및 호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립재활용에너지 연구소(NREL, National Renewable Energy Laboratory)과 같은 국립연구소를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으로 기초에서부터 응용까지 다양하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립연구소와 대학뿐만 아니라 도요타사를 비롯한 50여개의 기업이 염료감응 태양전지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호주 STI, 스위스 솔라렉스(Solarex) 등의 기업에서는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실질적인 태양전지 보급화를 위해 미국에서는 정부주도하에 ‘밀리언 솔라 루프’(million solar roof)라는 대대적인 태양전지 장착 주택 단지 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0년까지 태양전지를 장착한 주택 1백만가구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국가 주도하에 태양전지 개발에 앞장서는 이유는 태양전지가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한 미래의 가장 확실한 에너지원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은 고효율의 태양전지 개발과 저가의 태양전지 개발이라는 두가지 큰 목표를 가지고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실리콘 또는 III-V족 화합물 반도체 태양전지는 고효율을 요구하는 특수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지만 저가의 보급형 태양전지의 개발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문제와 에너지 고갈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바로 유기물이 이 과제를 해결해줄 전망이다.

선진국과는 대조적으로 국내는 태양전지 분야에 거의 불모지다. 우리나라는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어떤 나라보다 대체에너지 개발에 앞장서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연일 유가가 고공 비행을 하고 있고, 원유 매장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유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얼마 전 TV 뉴스에서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고유가 시대가 될 경우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이같은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 태양전지 개발의 필요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태양전지 개발 연구를 국가주도하에 서둘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진정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늦었다 생각할 때 시작해도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 아니다.

200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남규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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