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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밤 고흐의 보름달 떠오른다

마지막 미스터리작 ‘월출’비밀 풀려


월출(Moonrise), 1889년, 유화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미국 출신 남성가수 돈 맥클린의 ‘빈센트’ 첫 구절입니다. 2001년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3위에 오를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노래죠. 이 노래는 맥클린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기타 연주와 너무도 잘 어울리지만, 사실 노랫말은 불행한 천재의 상징이 된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기리는 진지한 내용입니다. 마침 올해가 고흐가 태어난지 1백50년이 되는 해라서 그런지 더욱 이 노래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첫 구절에 나오는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작품 제목이기도 합니다. 별이 빛나는 밤은 전경에 키 큰 나무와 작은 마을이 있고 밤하늘에 별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정경을 대담한 구성과 터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흐의 작품에는 유달리 별과 달, 해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은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천문학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천문학자 가운데 그림 속의 별과 달이 언제 떠오른 것인지 찾아나선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텍사스 주립대의 도널드 올슨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올슨 교수는 2000년 여름 ‘한밤의 하얀 집’의 배경이 된 프랑스 파리 서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찾았습니다.

올슨 교수는 인구 5천명의 이 마을을 샅샅이 뒤져 그림 속의 집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린 방향을 끈질기게 관찰한 결과 그림 속의 집 오른쪽 위에 빛나는 커다란 노란 별이 금성이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에 나오는 별의 위치와 방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그림 속의 금성이 1890년 6월 16일 오후 7시경 정확하게 그 자리에 떠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때는 고흐가 불행했던 37년의 삶을 자살로 마감하기 6주 전입니다.

여기에 힘을 얻은 올슨 교수는 고흐의 마지막 미스터리에도 도전했습니다. 고흐는 살아 생전 2천점이 넘는 유화와 드로잉,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의 편지를 통해 항상 언제 어디서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를 소상하게 밝혔지만, 유독 한 그림에 대해서는 작업 중이라는 말 외에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편지엔 날짜를 추정해볼 수 있는 소인마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붉은 둥근 천체를 보고 어떤 사람은 ‘월출’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일몰’이라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올슨 교수는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 7월호에 그림에 나오는 절벽과 달인지 해인지 모를 둥근 천체의 위치 등을 고려한 결과 이 천체가 1889년 7월 13일 밤 9시 8분에 떠오른 보름달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림 제목은 월출인 것이죠.

고흐는 1889년 5월 8일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인 생레미 수도원에 도착해 그 해 9월 말 별이 빛나는 밤 등 다른 9점의 작품과 함께 월출을 동생에게 부쳤습니다. 즉 그림을 그린 시기는 5개월 내로 좁혀진 셈이죠. 결정적인 증거는 그림 속에 있었습니다. 그림에서는 달인지 해인지 모를 둥근 천체가 가파른 절벽에 걸려 있습니다.

올슨 교수는 지난해 6월 생레미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림에 나오는 절벽을 찾은 다음 둥근 천체가 달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해는 정 반대편으로 진다는 것이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그림에 나오는 지형들의 거리와 높이 등과 보름달이 뜬 시점을 계산한 결과 그 해 5월 16일과 7월 13일에 절벽의 그 위치에서 달이 떠오른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과연 둘 중 어느 날이었을까요.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습니다. 그림 앞부분에 수확한 노란 밀들이 쌓여있습니다. 밀은 5월에 수확하지 않습니다. 고흐도 5월에 그린 두점의 그림에서 밀을 초록색으로 묘사했습니다. 올슨 교수는 월력과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이 그림이 정확하게 밤 9시 8분의 전경을 그린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의 보름달은 19년마다 같은 위치에같은 위치에서 떠오르는 메톤주기를 따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바로 그 주기에 해당합니다. 이 달13일 밤, 생레미 수도원 근처 절벽에는 고흐가 바라본 그 보름달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죠. 생을 마감하기 일년 전, 고흐는 보름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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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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