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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운전자까지 포함한 원전 디지털화

원자력 계측제어 및 정보공학 연구실

원자력발전소(원전)는 사고가 날 경우 방사성 물질의 환경으로의 방출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안전과 직접 관련도 없는 조그만 고장이라도 신문방송에 빠지지 않고 보도된다. 따라서 인체의 뇌에 비유되는 원전의 계측제어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다.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은 원전을 안전하게 운전하고 위험이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정지시키며 운전하는 사람에게 원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임무를 띤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다.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신호의 양만도 1만개 이상이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2만개 가량의 회로기판이 주제어실 뒤편에 있는 수십개 캐비닛 속에 가득 차있다.


성풍현 교수가 이끄는 원자력 계측제어 및 정보공학 연구실에서는 인체의 뇌에 비유되는 원전의 계측제어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1세기 원전의 화두는 디지털

또한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이 도맡는 경보 시스템의 개수는 1천5백개에 이른다. 자동차의 경우 주유등이나 안전벨트와 같은 경보시스템이 고작 몇개 있을뿐이다. 자동차보다 훨씬 복잡한 비행기의 경우에도 경보시스템은 몇십개에 불과하다. 원전의 계측제어 시스템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말이다. 중요도만큼이나 비용도 많이 들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원전을 짓는 돈의 약 1/10이 소요된다.

최근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 개발 분야의 화두는‘디지털’이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성풍현 교수가 이끄는 원자력 계측제어 및 정보공학 연구실은 기존의 아날로그식 계측제어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연구실은 원전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할 경우 원전을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원전 보호 시스템을 개발했다.

성 교수에게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을 디지털 방식으로 교체했을 때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먼저 아날로그 방식의 경우의 단점을 얘기했다. 우선 아날로그 방식은 고장났을 때 교체할 부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또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가 어렵고, 환경에 따라 측정치가 변해 신호를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디지털 방식은 이같은 아날로그 방식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대신 아날로그 방식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디지털 방식은 아날로그 방식에서는 없던 소프트웨어를 쓰며 이런 소프트웨어의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작은 소프트웨어의 결함이라도 허용되지 않는 극한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기법까지 동원된다.

신뢰성 문제 때문에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의 디지털화는 다른 분야와 비교해 늦은 편이다. 1980년대부터 얘기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실용화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선구적으로 연구해온 일본과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에 최초의 디지털 시스템을 완전히 갖춘 원전이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까지 현재의 17개 원전을 포함해서 총 28개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중 마지막으로 건설되는 4개의 차세대 원전은 완전 디지털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디지털 방식의 범위를 차츰 늘려갈 계획이다.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고리1호기의 계측제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디지털 방식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연구실은 디지털 방식의 계측제어 시스템 개발뿐 아니라 이 시스템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연구도 동시에 수행중이다. 또 개발된 장비가 실제로 원전에 사용되도록 원자력 발전소와 공동으로 연구를 벌이고 있다.

대형사고 막기 위해 인지공학 동원

한편 연구실의 목표는 계측제어 시스템을 디지털 방식으로 교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운전자를 고려한 디지털 계측제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목표다. 최적으로 원전이 운전되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을 직접 다루는 사람도 고려한 계측제어 시스템이 개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자가 어떻게 신호를 파악해서 대처하는지를 알기 위해 인지공학이 동원된다. 연구실은‘운전원을 포함한 원전계측제어시스템의 정량적 안전성 평가기술’이라는 연구 주제로 2002년도 국가 지정 연구실로 지정됐다.

성 교수는 1979년 미국 TMI 원전사고를 예를 들어 운전원까지 고려된 최적의 계측제어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사건은 수백개의 경보가 한꺼번에 울리면서 시작됐다. 많은 경보 때문에 운전자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제시간 내에 대처하지 못해 큰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적당한 양의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고 나머지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처리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원자력공학은 물리학, 화학뿐 아니라 전산, 기계공학, 재료공학, 화학공학, 전자공학이 동원되는 종합학문이다. 그런 까닭에“원자력공학은 타분야에서 개발한 기술을 단순히 가져다 사용한다는 편견이 있다”고 성 교수는 얘기한다. 하지만 원전은 극한의 환경에서 운전되며 많은 양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고 매우 안전하게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원자력공학자들은 적당한 수준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일반적인 응용에 쓰이는 타분야의 기술을 그대로 극한 시스템 개발에 적용할 수 없는 하이테크 분야라는 말이다. 오히려 원자력쪽에서의 연구가 일반적인 경우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연구실은 이 분야에서 국내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고 세계 수준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일본의 연구팀과 해마다 돌아가며 논문 발표를 하고 있으며, 2002년 11월에는 미국에서 이 분야 관련자 모임에서 발표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현재 연구실에는 13명의 박사과정 학생과 4명의 석사과정 학생이 있다.


연구실엣어는 원전을 흉내내는 시뮬레이터 장비가 배치돼 있다. 이 장비를 통해 운전자까지 고려한 최적의 원전 계측제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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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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