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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꿈틀거리는 우주의 집게발

1초에 30번씩 회전하며 광속의 물질 뿜어내

게의 집게발을 닮은 게성운을 들여다보면 중심부에 등대처럼 깜박이는 중성자별이 있다. 놀랍게도 이 중성자별은 1초에 30번씩 회전하며 거의 광속으로 물질을 뿜어낸다고 하는데….

단단한 껍질에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게가 한철인 가을이 저물어간다. 하늘에도 게를 연상시키는 대상이 있다. 늦겨울과 초봄에 동쪽하늘을 장식하는 ‘게자리’가 있고, 겨울철 남쪽하늘을 수놓는 황소자리에는 ‘게성운’이 숨어있다. 게성운은 황소의 남쪽 뿔 근처에 위치한다.

지난 9월 19일 미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과 찬드라 X선망원경이 함께 관측한 게성운의 모습이 공개됐다. 게성운은 잘 보면 게의 집게발처럼 생겼다. 그래서 1844년 영국의 로스 경이 붙였듯이 이름도 게성운이다. 그런데 왜 집게발만 남았을까.

그 이유는 게자리에 내려오는 전설을 살펴보면 이해가 될 듯 싶다. 게자리의 주인공 게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노역이라는 유명한 이야기에 등장한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래서 제우스의 본처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워했고 그가 죽는 순간까지 괴롭혔다. 대표적인 일이 바로 12가지 노역이었다.

12가지 노역 가운데 레느네에 사는 히드라를 퇴치하는 일이 있었다.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개 달린 괴물인데, 머리 하나를 자르면 새로 두개의 머리가 자라며 무서운 독을 내뿜었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헤라는 그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려고 게 한마리를 보냈다. 게는 헤라클레스의 발을 무는데 성공했지만, 헤라클레스의 발에 밟혀 다리 하나가 부러진채 죽고 말았다.

게자리를 잘 살펴보면 한쪽 집게발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란다. 또 헤라클레스에게 밟힐 때 게에게서 떨어져 나간 집게발은 황소자리의 게성운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빨간 게의 집게발처럼 생긴 게성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NASA의 허블우주망원경과 찬드라 X선망원경이 합작 관측한 게성운의 모습. 중심부에는 회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서가 보이고, 회전축의 수직 방향(왼쪽 아래 방향)으로는 물질과 반물질이 거의 광속으로 뿜어져 나온다.


손님별이 남긴 초록외계인의 신호?

게성운은 무거운 별이 생의 마지막에 폭발하는 과정인 초신성 폭발 후에 남겨진 잔해의 모습이다. 재미있게도 이 초신성은 중국 송나라 문헌에 등장하는 ‘손님별’(객성)로 밝혀졌다. 이 문헌에는 1054년 거의 보름달 밝기의 새로운 별(손님별)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또 미국 북부 애리조나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동굴 벽화에 밝은 별을 초승달과 함께 그려 넣었는데, 연구 결과 이 별도 1054년의 손님별로 확인됐다.

초신성이 폭발하면 별의 가스껍질은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주변으로 점차 전달된다. 이 충격파는 주변의 성간가스에 에너지를 전달하고, 퍼져 나가는 별의 가스껍질과 주변 성간가스가 빛을 발한다. 그래서 1054년에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가 지금의 게성운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또 초신성 폭발시 별의 핵은 안으로 수축된다. 그래서 핵은 밀도가 높아져 모든 물질이 중성자로 이뤄진 중성자별이 된다. 이때 밀도는 작은 찻숟가락 하나의 부피에 10억t의 질량이 담길 정도다.

게성운의 중심부에도 중성자별이 보인다. 중성자별은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손을 모으면 더 빠르게 회전하듯이 수축하면서 자전이 매우 빨라진다. 게성운의 중성자별은 1초에 30번씩이나 회전한다. 회전하면서 전파, 가시광선, X선 등의 다양한 빛을 내놓는다. 이때 지구에서 볼 때는 마치 등대처럼 깜박이는 현상인 주기적인 펄스 형태로 관측된다. 그래서 중성자별은 펄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게성운의 펄서가 1초에 30번씩 깜박인다고?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휴이시 교수와 그의 대학원생 벨이 이 천체를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작은 초록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로 오해하기도 했다. 펄스의 주기가 1천분의 1이라는 놀라운 정확도를 지녔기 때문에 외계지성체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 이후에 정체가 중성자별로 밝혀지면서 휴이시 교수에게는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게성운의 펄서에 대해 NASA의 허블우주망원경과 찬드라 X선망원경으로 여러달 동안 관측한 결과를 연구하자,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에서 물질과 반물질이 거의 빛의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역동적인 광경이 드러났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집게발이 사실은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하게 생각됐던 우주에 액션영화와 같은 장면도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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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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