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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16일 채 새벽이 되지 않은 시간, 최초의 원자폭탄에서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불길이 일면서 미국 뉴멕시코 사막은 환하게 빛났다. 앞을 못 보는 사람조차도 빛을 느낄 정도였다. 이 실험은 트리니티 테스트(Trinity Test)라 불렸는데, 과학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4배가 넘는 에너지가 발생했다. 원자폭탄의 폭발력은 TNT 2만t과 맞먹었다.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연간 10억달러가 투입됐다. 과학자들은 두종류의 원자폭탄을 개발했는데, 트리니티 테스트는 플루토늄 239의 핵분열을 실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풀루토늄 폭탄은 8월 6일 예정된 히로시마 공습에 사용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신 과학자들은 농축 우라늄을 히로시마 공습용 원자폭탄 꼬마(Little Boy)에 이용했다. 리틀 보이는 에놀라 게이(Enola Gay)라 이름 붙여진 B29 폭격기에 실려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당시 승무원들은 이 폭탄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고 한다.

6일 오전 8시 15분 리틀 보이는 히로시마의 2.6km2를 폐허로 만들었다. 3일 뒤 벅의 차(Bock’s Car)라고 불린 또다른 B29 폭격기가 코쿠라에 플루토늄 폭탄 뚱뚱이(Fat Man)를 투하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코쿠라 상공에 드리워진 짙은 구름이 천혜의 방공망 역할을 해서 폭격기는 제2 목표였던 나가사키에 폭탄을 투하했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오펜하이머(오른쪽)


비키니섬의 섬광

1946년 태평양의 산호섬인 비키니에서 미 해군의 원자폭탄 실험이 이뤄졌다. 이때 미 해군은 서로 다른 핵분열 물질들을 조합해 실험했다. 이는 옛소련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1940년대에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태양이 수소와 헬륨의 핵반응에 의해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밝혀냈다.

1942년에 텔러는 이러한 핵융합반응을 지구에서도 모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차대전 중에 텔러의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다. 마침내 1952년 11월 비키니섬이 속한 마셜군도의 또다른 환초인 에니위톡섬에서 TNT 1천만t의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 실험이 실시됐다. 이때는 무인선박에서 마이크(Mike)라는 이름의 수소폭탄이 폭발했으며, 항공기에서 투하한 최초의 수소폭탄은 1954년 3월 26일 비키니섬에 떨어진 브라보(Bravo)였다. 비키니 수영복의 이름은 1946년과 1954년 비키니섬에서 실시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실험의 충격만큼이나 이 옷이 파격적인데서 유래했다.

옛소련은 1949년 7월 14일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으며, 1953년에는 수소폭탄도 개발해냈다. 이어 1952년 영국이 플루토늄 폭탄을 소유하게 됐으며 5년 뒤에는 크리스마스섬에서 수소폭탄 실험도 성공했다. 그러자 미국과 옛소련은 1958년부터 더이상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협상 과정에서 핵실험 유예가 발표됐으나 1960년 미국의 U2 정찰기가 옛소련에서 격추되면서 실행이 보류됐다. 곧이어 1960년 프랑스, 1964년 중국의 핵폭탄 실험이 이어졌다.
 

1954년 비키니섬의 수소폭탄 실험.


핵실험 금지 협상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일자 미국과 영국, 옛소련은 돌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핵전쟁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대기 중 핵폭탄 실험을 금지하는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을 맺게 됐다.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 조약은 평화와 이성을 향한 첫 발걸음이며 전쟁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중국은 이 조약을 거부했으며, 1974년 인도, 197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핵무기 보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3년 핵무기를 폐기했다.

핵실험 금지와 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은 1968년 미국과 옛소련이 맺은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이어 1972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으로 진전됐다. 양 강대국은 1982년부터 사문화된 SALT를 대신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시작, 1991년 7월 전략 핵무기의 3분의 1을 7년간 줄여 6천기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STARTⅠ을 체결했다.

양국 핵탄두는 10년만인 지난해 12월 이 수준에 도달했다. 탈냉전의 바람을 타고 1993년 1월엔 STARTⅡ를 통해 9년간 핵탄두를 3천-3천5백기로 감축키로 했지만 러시아 하원이 비준을 끌어오다 2000년 4월에야 비준했다. 그때부터 STARTⅢ 협상이 시작돼 올해 5월 부시 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양국의 전략핵무기를 2천기 수준으로 줄이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한편 전 지구적인 비핵화 노력은 1996년 9월 유엔총회에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CTBT는 대기권, 수중, 우주공간에 이어 지하공간까지 핵실험 금지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미 의회가 CTBT 비준을 거부하면서 실효성이 크게 약화됐다. 이 와중에 1995년 프랑스, 1998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경쟁적으로 핵실험을 감행했으며, 미국과 러시아, 영국도 핵폭발이나 연쇄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임계량 미만 핵실험을 계속 실시하고 있다.

현재 핵무기 보유국은 공식적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이다. 그러나 이들 5개국 외에 인도,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이란, 북한이 5-10년 이내에 핵폭탄을 개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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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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