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 않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미국의 한 기업이 미항공우주국의 지원을 받아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개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주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정거장은 물론 달이나 화성까지도 갈 수 있다는데….
“신사숙녀 여러분, 우주엘리베이터 ‘밀레니엄 특급’에 승차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 우주엘리베이터는 고도 3만6천km의 우주정거장 ‘스페이스 월드’를 경유해 신설된 달 기지 ‘뉴프론티어 단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전체 여행시간은 5시간입니다. 처음 타신 분들을 위해 여행 팁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주엘리베이터가 떠오르면 반드시 창밖을 내다보며, 지구가 점차 둥글게 보이고 하늘이 푸른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멋진 광경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제 앉으셔서 색다른 우주여행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자, 밀레니엄 특급 출발합니다.”
SF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관련 연구자들은 우주엘리베이터가 21세기 새로운 우주교통수단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주엘리베이터는 최근 미국의 한 민간기업이 미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연구비 57만달러를 지원받으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하이리프트 시스템’이라는 이 회사는 지난 8월 12일과 13일 양일 간 ‘제1회 국제우주엘리베이터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회의에는 재료과학·교량건설·항공기술 분야에서부터 법률·사업·투자 분야에 이르는 각계 전문가가 참여해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주엘리베이터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왜 필요한가. 과학자들이 꿈꾸는 우주엘리베이터에 한번 올라타보자.
적도 상공으로 솟은 바벨탑
고층건물에서 유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여행을 한다고? 63빌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며 바깥풍경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멋진 여행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언뜻 생각해봐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고 무척이나 황당해보이는 우주엘리베이터. 과연 과학자들이 그리는 우주엘리베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우주엘리베이터의 개념은 간단하다. 우주엘리베이터는 수직으로 뻗은 선로다. 한쪽 끝은 지구의 표면에, 다른 한쪽 끝은 우주공간에 걸어두는 아주 기다란 케이블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지구 표면에서는 적도 근처 대양 한복판에 케이블의 한쪽이 연결된 승강장을 두는 방법이 좋고, 우주공간에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도 3만6천km가 넘는 곳에 인공위성이나 소행성을 갖다놓고 여기에 케이블의 다른 한쪽을 묶어둔다.
왜 우주엘리베이터를 이렇게 만들까. 만일 우주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이 아무 것에도 고정되지 않은 채 우주공간에 놓인다면 지구 중력 때문에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다행히 지구를 도는 물체는 지구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용한다. 우주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을 인공위성이나 소행성에 매다는 이유도 이런 원심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우주엘리베이터가 지구를 돌면서 생기는 원심력이 구심력인 중력과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안정된 케이블은 우주공간에 수직으로 꼿꼿이 매달려 있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주엘리베이터의 정거장은 적도 바로 위 고도 3만5천7백86km의 정지궤도에 위치한다(정지궤도는 궤도에 있는 위성이 지상에서 봤을 때 항상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궤도다). 정지궤도에 있는 정거장은 지구의 자전과 같은 주기로 지구를 돌기 때문에 지구의 승강장과 항상 일직선에 놓인다. 사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우주엘리베이터 계획에 따르면 케이블이 연결될 지구의 승강장에는 약 50km 높이의 거대한 탑이 필요하다.
이 정도로 거대한 탑을 적도 근처에 세우는 일은 한편으로 다행이다. 적도에는 고층건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같이 강력한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엘리베이터에는 당연히 케이블을 오르내리는 차량이 연결된다. 엘리베이터 차량은 지구와 우주공간 사이에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른다. 차량의 구체적인 후보로는 시속 수천km에 달하는 속도로 여행할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가 연구되고 있다. 또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선로는 탑과 케이블의 구조를 고려해 4-6개 정도가 가능하다.
강철보다 1백배 강한 소재
우주엘리베이터는 정말 가능할까. 우주엘리베이터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3만5천km 이상 뻗은 케이블과 거대한 탑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찾고 있다. 강철로 케이블을 만들면 어떨까. 채 5km의 높이에도 이르지 못하고 자체 무게 때문에 붕괴되고 만다. 알루미늄의 경우에는 15km, 탄소와 에폭시 복합재료는 1백15km 높이에도 못미친다. 어떤 종류의 고강도 복합재료가 고안되더라도 정지궤도 높이에는 이를 수 없다.
또한 우주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은 지구 표면에서부터 정지궤도에 이르기까지 점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굵기가 달라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지궤도에서 가장 굵고 지구 표면에 다가갈수록 점점 가늘어져야 하는 것이다.
케이블의 굵기는 지구 표면과 정지궤도에서의 비율로 나타낼 수 있다. 강철의 경우 이 비율이 무려 1만을 넘는다. 강철로 케이블을 제작한다면 굵기는 지상에서 1cm로 출발해 정지궤도에서 1백m가 되는 것이다. 1백m 굵기의 강철, 생각만 해도 불가능해 보인다.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는 다이아몬드로는 어떨까. 케이블의 굵기 비율이 21.9로 양호하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쪼개지기 쉽다는 약점을 지닌다. 잡아당기는 힘에 강한 재료가 필요한 것이다.
우주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은 SF소설에나 등장하는 신비한 ‘초물질’로만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1991년 일본전기회사 부설연구소의 수미오 이지마 박사가 전자현미경을 통해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의 탄소구조가 형성된 것을 우연히 발견해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보고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렇게 발견된 탄소나노튜브는 신비한 성질을 가진다. 특히 잡아당기는 힘에 대한 강도에서는 강철의 1/5 질량으로 강철보다 1백배나 강하다. 또 다이아몬드와 달리 10억분의 1m 크기의 튜브다발은 깨지지 않는다. 탄소나노튜브는 다른 모든 재료를 능가하고 우주엘리베이터가 요구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이론적인 강도를 지닌다. 물론 탄소나노튜브가 실험실에서 벗어나 생산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우주엘리베이터의 거대한 탑은 어떻게 만들까. 현재도 건물이나 탑을 기존 재료와 방법으로 수km 높이로 만들 수 있다. 단지 비용 때문에 건설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더 좋은 재료를 동원하면 가격도 싸고 더 큰 구조물을 경제적으로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탄소나노튜브처럼 가벼운 복합 구조재료로 거대한 탑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주엘리베이터처럼 기다란 구조물을 배치하고 제어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우주엘리베이터의 차량은 어떨까. 초전도자석을 적용한 자기부상열차로 계획되고 있는 차량에는 고속 전자기 추진시스템, 발사 보조시스템, 고속 선로 등이 필요하다. 차량은 선로 위에 붕 떠서 자석으로 추진된다. 움직이는 부분이 따로 없고 선로와 맞닿지 않기 때문에 우주엘리베이터의 차량은 고속을 유지할 수 있고 기계적으로 소모되지도 않는다.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체의 성질 덕분에 에너지 손실은 거의 없다.
1kg에 2천원짜리 우주여행
물론 우주엘리베이터 계획에는 늘 떠나지 않으며 괴롭히는 문제들이 있다. 번개, 바람, 케이블을 약하게 만드는 산소원자, 강한 복사(빛), 케이블을 마모시키는 상층대기의 황산물방울, 우주에서 날아오는 유성체, 우주쓰레기나 인공위성과의 충돌, 심지어 테러리스트의 공격 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또 탄소나노튜브를 사용하는 경우 사람의 건강에 위험은 없는지, 미세 물질을 들이마셨을 때 폐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도 고려돼야 한다. 아울러 우주엘리베이터를 연구·개발하고 건설하는데 드는 재정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굳이 우주엘리베이터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에도 우주왕복선이나 로켓으로 사람과 화물을 우주로 실어나르고 있는데 말이다. 문제는 바로 비용이다. 우주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지상에서 고도 3만6천km의 정지궤도까지 화물을 옮기는데 드는 에너지가 현재의 우주왕복선이나 로켓보다 더 적게 든다.
연구자들은 우주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2t의 화물을 정지궤도로 나르는데 겨우 1만7천7백달러가 든다고 계산했다. 1kg 당 1.5달러 정도가 소요되는 셈이다. 현재 우주왕복선으로 1kg 당 2만2천달러가 드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값이다. 만일 20kg의 화물을 가진 70kg의 승객이 우주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면 1백33달러(16만원)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제주도 왕복비행기요금(20kg의 화물 운송은 무료)으로 우주관광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가는 일은 대형포장마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일처럼 실용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외계행성이나 별로 가는 기나긴 우주여행에는 로켓이 계속 유용하겠지만, 지구궤도에 있는 우주정거장에서의 실험이나 달로 떠나는 휴가여행 같은 짧은 비행에는 우주엘리베이터가 적합할지 모른다.
실제로 우주엘리베이터가 각광받으려면 수요가 많아야 한다. 즉 관광객, 우주거주자, 우주비행사 등 다양한 승객과 인공위성, 우주정거장 부품, 단순한 여행화물 등 각종 화물을 실어나르는데 우주엘리베이터가 많이 이용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하는데 드는 비용도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만 많이 들여 신주단지처럼 모셔 놓기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소용없다.
우주엘리베이터가 현실로 나타날 때는 언제일까. 우주엘리베이터를 연구중인 하이리프트 시스템 사의 관계자는 앞으로 15년 내에 우주엘리베이터 10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야심차게 말한다.
하지만 또다른 NASA의 전문가들은 적어도 50년은 지나야 첫 우주엘리베이터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여기서 우주엘리베이터를 소설 속에 등장시킨 SF거장 아서 클라크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비웃기를 멈추고 나서 50년이 지났을 때쯤이라고 한 말에.
천상의 성에서 낙원의 샘까지
우주엘리베이터는 SF거장 아서 클라크가 1978년 자신의 소설 ‘낙원의 샘’에 소개하며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SF소설 ‘낙원의 샘’에서는 기술자들이 전설의 섬 ‘타프로반’에 있는 산꼭대기 위에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한다. 타프로반은 인도 남쪽 끝에 위치한 진짜 섬 스리랑카에 인접해 있다. 클라크는 우주엘리베이터가 적도에 걸치도록 스리랑카와 타프로반을 8백km 정도 남쪽으로 옮겨놓았다. 적도 상공에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한다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또 소설 속의 건축가들은 현재 실험실에서 연구되고 있는 탄소나노튜브와 같은 신소재를 사용해 우주엘리베이터를 건설한다.
하지만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클라크가 최초로 떠올린 것은 아니다. 성서 속의 바벨탑이나 아동소설 ‘잭과 콩나무’의 콩줄기를 제외하더라도 우주엘리베이터와 관련된 이야기는 18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라는 옛소련 과학자가 우주로 뻗은 기상천외한 성을 제안했던 것이다. ‘천상의 성’이라 불린 이 성은 파리의 에펠탑과 같이 지상에 있는 탑에 기초를 두고 항상 지구자전과 같은 속도로 도는 궤도에 위치한다고 그는 상상했다.
1960년 또다른 옛소련인 유리 아르추타노프는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최초로 발표했다. 공학자였던 그는 옛소련 관영신문 ‘프라우다’에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기사를 기고했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서방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66년에는 미국의 해양학자 존 아이작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짧은 논문을 기고했다. 이 논문에는 고도 3만6천km의 정지궤도 위성까지 이어진 얇은 케이블 한쌍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마침내 우주엘리베이터는 1975년에야 우주비행 공학자들 사이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공군연구소의 제롬 피어슨 박사가 우주엘리베이터에 대한 기술적인 논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이 논문은 클라크의 SF소설‘낙원의 샘’에 영감을 주었다. 이후 우주엘리베이터는 NASA에서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연구되고 있다. 상상의 산물이 놀라운 현실로 드러날 때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