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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여름 피부 지켜주는 나노 화장품

반도체 하드디스크에도 적용중

혈관 속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초소형 기기를 만들려면 어떤 소재가 필요할까. 답은 나노소재다. 현재 나노소재는 하드디스크 헤드와 자외선 차단제에 응용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초기 휴대폰은 오늘날 사람들의 눈에 마치 골동품처럼 비친다. 한때 유행했던 시트콤에는 들기에도 버거워보이는 초기의 휴대폰이 웃음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손안에서 놀아날 정도로 소형화된 지금의 휴대폰이 미래에는 귀 속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지지 않을까.

휴대폰처럼 현대의 많은 기기들은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기능이 다양해지고 성능도 좋아진다. 이런 소형화 경향의 배경에는 부품의 크기를 극소형화할 수 있는 기술이 숨어있다. 최근 극소형화 기술은 눈에 보이지조차 않을 정도로 작은 초소형 로봇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는 기술로 발전하는 꿈을 꾸고 있다.
 

여름 피부 지켜주는 나노 화장품 반도체 하드디스크에도 적용중



군대 사열식과 광화문 붉은 악마의 차이

그런데 나노미터 단위의 기기를 만들 때 현재 제품에 쓰이는 재료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혈관 속을 움직이는 초소형 기기를 생각해보자. 붉은색 원판 모양의 적혈구는 크기가 40μm(1미크론=${10}^{-6}$m)다. 따라서 혈액 속을 이동할 수 있는 초소형 기기는 커봐야 적혈구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기기가 혈액을 떠다니는 세포나 물질을 잡을 수 있으려면 구부리거나 잡는 것과 같은 동작 기능을 갖춰야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 기기는 수μm 크기의 수많은 관절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초소형 기기를 지금의 의료기처럼 스테인리스 합금 소재로 만든다면 어떨까. 이 물음에 대한 나노소재 전문가의 답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왜 그럴까.

잠시 소재에 대한 공부를 해보자. 소재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크게 두종류로 나눌 수 있다. 구성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예를 들어 소금의 경우 나트륨 원자와 염소 원자가 교대로 배치돼 있다. 그러나 유리의 경우는 구성원자들이 이런 규칙성을 이루지 않는다. 소금의 경우를 ‘결정질 소재’, 그리고 유리의 경우를 ‘비결정질 소재’라고 한다.

결정질 소재들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다시 두종류로 나뉜다. 구성 원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전체적으로 한방향인지 아닌지에 따라서다. 군대 사열식에서 모든 사람들은 한쪽 단상을 향해 서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는 광화문의 붉은 악마들은 어떨까. 광화문 사거리에는 여러대의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수십만명의 붉은 악마들은 위치에 따라 보기 좋은 전광판을 향한다. 어느 곳의 붉은 악마들은 북쪽 전광판을, 다른 곳의 붉은 악마들은 동쪽 전광판을 향해 있는 식이다. 이와 같이 군대 사열식처럼 구성 원자가 모두 한방향을 향한 경우를 ‘단결정 소재’라고 하고, 광화문 붉은 악마의 배열처럼 구성 원자들이 그룹별로 방향을 달리하는 경우를 ‘다결정 소재’라고 한다. 다결정 소재는 그 안에 여러개의 단결정을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힘과 관계될 경우, 즉 구조용 소재로는 다결정 소재를 쓴다. 금속이나 세라믹이 다결정 소재에 속한다. 그 까닭은 단결정 소재에서는 구성원자가 모두 한방향을 향해있으므로 방향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결정 소재는 결정 방향이 다양해서 어느 방향으로 힘을 받아도 강도가 비슷하다.


1997년 최초의 나노소재 상품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스테인리스 합금 소재는 다결정 소재에 속한다. 그런데 왜 혈관 속 초소형 기기를 스테인리스 합금 소재로는 만들 수 없을까.

문제는 다결정 소재의 크기다. 다결정 금속 소재의 경우 그 안에 있는 단결정의 크기가 대략 수μm다. 그런데 다결정 소재가 힘을 받았을 때 부러지지 않고 사용되기 위해서는 한쪽 폭으로 적어도 방향이 다른 단결정 10개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면 벌써 기기의 어느 한부품만이라도 부러지지 않고 작동하려면 두께가 수십μm 이상이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적혈구가 40μm인데, 여러개의 관절과 팔 등을 갖게 될 혈액 속 초소형 기기의 제작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적혈구 만한 초소형 기기는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 결정의 크기를 수μm에서 수nm로 줄일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바로 나노소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노기술이 그리는 꿈이 현실화돼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나노소재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

내부결정을 미크론 단위에서 나노 단위로 줄인 나노소재는 이미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7년 11월 IBM은 ‘거대자기저항’(Giant Magnetoresistence, GMR) 나노소재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헤드를 세계 최초로 제작해 선보였다.

이 소재는 철, 코발트, 니켈과 같은 자성이 강한 소재(강자성체 소재)와 구리나 은처럼 자성을 띠지 않거나 약한 소재(상자성체 소재)를 번갈아 수nm 두께의 층을 이루도록 한 다층 복합구조 소재다. 이런 구조의 소재는 외부 자기장의 강도가 조금만 변해도 소재의 전기저항 값이 크게 달라지는 특성(GMR 현상)을 갖는다. GMR 소재는 기존의 하드디스크 헤드에 쓰였던 자기저항 재료에 비해 자기장 변화에 따른 전기저항의 변화가 대단히 크다. 이런 GMR 현상은 1988년 IBM의 연구자들이 최초로 발견했다.
 

여름철에 애용되는 자외 선 차단제 중에 나노 분말이 포함된 제품이 있다.



하드디스크 집적도 높이는 나노박막

그렇다면 GMR 소재를 쓴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자기적 성질로 기록된 정보는 헤드가 그 위를 지나가면서 읽는다. 이때 헤드는 하드디스크의 미세한 자기변화를 전기저항의 변화로 감지하고 하드디스크의 자기기록 정보를 전기신호로 바꾼다. 따라서 헤드가 얼마나 미세한 자기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지는 하드디스크의 집적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IBM은 GMR 소재를 이용해 하드디스크의 집적도 기록을 여러 차례 갱신하고 있다.

GMR 소재를 이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헤드는 상품화된 후 1년 동안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기존의 읽기 헤드 시장을 대체해나가면서, 3백40억달러(약 44조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GMR 소재는 나노미터 두께의 층 내부에서도 강자성체 소재의 형태를 변화시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GMR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향후 다양한 센서와 기억소자로 활용돼 대단히 큰 시장을 창출해낼 전망이다.


반도체 공정에 동원되는 미세먼지

GMR 소재처럼 수nm의 얇은 층을 형성하는 나노박막 소재가 상업화의 첫머리를 장식했다면 그 뒤는 나노분말이 잇고 있다.

나노분말은 현재 반도체 산업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계속 반도체 제조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저장용량을 늘리고 신호처리 속도를 높이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위면적에 가급적 많은 수의 반도체를 배열해야 한다. 그러나 각각의 반도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크기 때문에 2차원 상에서 많은 수의 반도체를 배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한층에 반도체를 최대의 밀도(집적도)로 배열한 다음 그 위에 새로운 층을 형성시키고 다시 반도체를 배열하는 것이다. 단층집에서 아파트를 짓게 된 셈이다.

이때의 문제는 층이 높아질수록 각층의 표면에 굴곡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은 사진기술과 유사하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특정 빛에 반응하는 물질을 씌우고 여기에 빛을 비춰 형상(패턴)을 만들고 그곳에 성분을 주입(도핑)하고 다시 다른 물질을 덮는 작업(증착)을 한다. 패턴을 만들 때 패턴이 인쇄된 필름과 빛을 사용하므로 빛의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초기의 평탄한 실리콘 웨이퍼를 사용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여러 층에서 단계적으로 패턴을 만들어갈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이전 증착 과정의 영향으로 표면이 평탄하지 못하고 굴곡이 생기는 것이다. 층수가 늘어날수록 표면은 더욱 굴곡이 심해져 한번에 빛의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증착 후 거칠어진 면을 갈아내 표면을 다시 평탄하게 하는 방법이다. 다시 평탄하게 된 표면 위에서 다음 공정을 수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층수에 제한을 받지 않는 반도체 제조가 가능해진다. 이런 연마공정은 이미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 연마과정에서 나노분말이 필요하다. 소재를 갈아낼 때 필요한 것이 숫돌(연마제 입자)이다. 첨단 반도체는 이미 집적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기 때문에 선폭과 배선간 폭이 대단히 좁다. 이 상태에서는 입자가 큰 연마제로는 연마공정 이전에 제조된 패턴을 손상시키지 않고 평탄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나노 크기의 분말을 연마제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노분말은 반도체 공정의 미세먼지에 속한다. 어제의 천덕꾸러기가 오늘은 금의환향한 셈이다.
 

나노소재는 이미 실제 상품에 응 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화장 품과 하드디스크다.



화장품 성분 감싸 피부 침투력 높인다

나노분말이 일반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에 쓰인 예도 있다. 여름철 애용되는 자외선 차단제가 바로 그것이다. 자외선 차단제를 구입할 때 제품 설명을 꼼꼼히 살펴보자. 일부 제품에서 나노입자가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노입자로 된 자외선 차단제는 입자가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아, 기존 제품을 발랐을 때처럼 얼굴이 번질거리면서 희뿌옇게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외선 차단능력도 더 높다. 수십nm의 산화아연 나노입자가 주로 쓰이는데, 이 입자는 자외선을 잘 흡수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나노페이즈 테크놀러지사가 나노분말을 처음으로 자외선 차단제에 도입했다.

올해는 나노입자가 쓰인 미백 화장품이나 비타민을 포함하는 기능성 화장품도 등장했다. 예를 들어 미백 화장품에 쓰이는 레티놀을 나노입자로 둘러싸게 해서, 이 성분을 나노 캡슐화한다. 그러면 레티놀이 피부 깊숙이 침투할 수 있어 미백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 나노소재가 실용화된 경우를 살펴보면 대략 10년 이상의 개발기간이 소요됐다. 그러므로 2000년을 전후해 전세계적으로 나노소재 개발이 본격화된 것을 생각하면 대략 2010년경에 나노소재가 본격적인 상품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나노소재 기술의 개발은 2015-2025년으로 예상되는 나노기술의 성숙을 뒷받침할 것이다.

실제로 나노소재의 개발은 2000년 이전부터 진행돼 왔다. 나노소재의 세계 시장 규모는 이미 1998년 2백60억달러, 2000년 7백55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로 성장한다면 2005년 1천18억달러, 2010년 2천7백55억달러(약 3백50조)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로 나노소재와 관련된 벤처가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다. 미국에서는 GMR 소재 외에도 모빌사가 개발한 지올라이트계 다공질 소재(화학공업 및 석유화학공업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음), 다우케미컬사의 고분자 나노복합재(자동차의 엔진 덮개 및 외장판으로 사용될 예정) 등 다양한 나노소재들이 상업화되고 있다. 나노페이지 테크놀러지사, 나노매트사 등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창업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 유럽 등에서도 창업 붐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제조공정에 나노분말을 이용하는 화학기계적 연마공정이 채택되고 있으며, 표시장치의 투명전극용 소재, 화장품 소재 등에도 나노소재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나노테크, 나노미래, 나노넥스, 일진나노테크 등 나노소재 제조를 목적으로 하는 30여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설립돼 있으며 신규 창업이 계속 늘고 있다. 창업형태로는 기술을 보유한 대학과 연구소의 과학기술자들에 의한 직접창업이 지배적이며 아직까지 손익분기점을 넘긴 회사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세계 및 국내 나노소재 시장의 빠른 성장과 함께 조만간 순익을 내는 회사가 탄생할 전망이다.

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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