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온돌과 마루가 함께 있다는 점에서 중국집이나 일본 전통가옥과는 구별된다. 한옥의 이런 전통은 초가집과 기와집이 양옥과 아파트로 바뀌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온돌과 마루에서 유래된 좌식생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온돌은 기본적으로 추위를 이기기 위한 장치다. 바닥에 불을 때 온기를 취하는 방식은 우리만의 고유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방 전체에 구들을 설치하는 온돌방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징이다.
만주를 비롯한 중국 북부지역에는 방의 일부에 침상을 설치하고 그 바닥에 구들을 설치하는 ‘캉’이라는 시설이 널리 사용된다. 우리의 온돌에 비하면 방의 일부분에만 온돌을 설치하는 것이니 부분온돌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면온돌은 마루와 함께 사용될 때 주거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한다. 온돌바닥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사용하는 좌식공간이다. 만일 마루가 부속돼 있지 않다면 온돌방에 들어가기 위해 외부에서 신발을 벗고 힘겹게 올라서야 한다. 구들은 지면보다 높이 쌓은 기단 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또한 방 안팎을 자주 오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신발을 갈아신을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실상 모든 온돌방에는 문 앞에 쪽마루나 툇마루가 놓여있다.
쪽마루나 툇마루는 집이 작은 경우에 주로 사용됐고, 집이 커지면 마루가 이용됐다. 마루는 방과 방 사이를 다니기 위해 또는 방에서와 같이 신발을 벗은 채로 활동하기 위한 공간이다. 만일 전체적으로 세칸 규모의 초가삼간이라면 방, 방, 부엌의 기본구성을 갖지만, 네칸 이상되는 보통 규모의 집이면 방과 방 사이에 마루가 놓인다. 어느 경우이든 방 앞에는 툇마루 또는 쪽마루가 놓인다.
마루의 기원에 대한 두가지 해석
그렇다면 마루의 기원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마루의 발생기원은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아열대나 열대 지역에서 찾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전통주거지가 바닥을 높이 들어올린 다락집으로 돼 있는 점이나, 우리가 여름철 피서를 위해 원두막이나 정자에 올라가 쉬는 경우가 좋은 예다. 바닥을 지면에서 띄움으로써 습기를 피하고 각종 해충과 짐승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다.
온돌이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라면 마루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시설이고, 온돌이 대륙성문화의 영향이라면 마루는 대양성문화의 영향이다. 마루가 더운 기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증거는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고대시대를 기록한 중국 사서에는 ‘겨울에는 혈처(穴處)했고 여름이면 소거(巢居)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즉 겨울철에는 동굴에 살았고 여름철에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지역인 제주도에는 온돌집이 없었다. 오늘날처럼 제주도에 온돌이 널리 퍼진 이유는 한국전쟁으로 육지에서 피난간 사람들의 영향에 의해서다.
하지만 마루의 기원에 대해서는 마루의 어원과 상징에 근거한 또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마루는 집 안의 가장 높고 중요한 장소라는 뜻을 가지며 실제 사용에서도 제사를 지내고 신주를 보관하는 장소였다. 일반적으로 건축에서 바닥을 다른 곳보다 들어올린 곳, 즉 ‘고소’(高所)는 성스러운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에서의 산상기도, 교실의 교단 등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 예다. 왕궁에서 왕이 자리하는 곳 역시 다른 바닥보다 높이 들어올려져 있다.
마루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문화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대륙성이니 대양성이니 하는 지역적 편향을 갖지 않는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도서지방과 해안지방 주거에 널리 사용된 ‘마래’라는 공간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마래는 마루바닥으로 된 골방을 말하는 것으로 육지의 일반적 집에서와 같이 방과 방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의 제일 끝부분, 부엌의 반대편에 자리하는 공간이다. 전면에 문짝을 달아 어둡고 침침한 마래는 곡물을 저장하거나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역할을 한다. 마래를 다른 말로 ‘머리방’이라고도 하니 마루의 머리기원설을 증거하는 좋은 예다.
아랫목 할아버지와 다락 속 곶감
마루는 해양문화 또는 보편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온돌은 대륙문화의 영향이다. 즉 마루와 온돌이 짝을 이뤄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는 한반도의 전체 문화가 그렇듯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반도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마루는 사방의 기둥에 바닥판을 거는 구조이므로 바닥 높이를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고, 이 점을 이용해 온돌 바닥과 나란하게 마루 바닥을 맞춰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내부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집처럼 침상만 높아 의자식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온돌을 사용하면서도 일본집과 같이 좌식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의 주거문화로 정착할 수 있었다.
다만 부엌만이 부뚜막을 만들기 위해 온돌이나 마루보다 낮은 바닥을 갖는다. 그 결과 자연히 부뚜막위에 공간이 남았고, 이 공간을 이용해 부엌 상부에 다락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부뚜막과 아랫목, 아랫목과 다락이 공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랫목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와 다락 속의 곶감은 생활과 가옥구조, 장소의 상징과 의미가 일체화된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