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이런 까닭에 그동안 일상에 쫓겨, 잊고 지냈던 가족을 되새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을 유전자로 해석해본다면 어떨까. 지난 4월 15일 발생한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에서 산산 조각난 유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 태어났다.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에는 우리가 인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정보, DNA를 담고 있다. 바로 난자와 정자의 핵에 있는 염색체 속에 말이다.
인간의 세포는 46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그리고 염색체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두개의 염색체가 한쌍을 이루는 것을 ‘상동 염색체’라고 하며, 이들 총 22쌍에 대해 1번부터 22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또다른 종류의 염색체는 ‘성 염색체’로 성을 결정하는 X와 Y 두가지다.
한 부모로부터 자녀의 가짓수 70조
난자와 정자의 경우 이들의 꼭 절반인 23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그래야 그 자손의 염색체 수가 부모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생물은 종에 따라 염색체 수가 다르다.
여기서 잠시 다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퀴즈 한 부모로부터 태어날 수 있는 자녀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가장 쉽게는 딸 또는 아들, 2가지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성에 의해 구분된 자녀의 종류일 뿐이다.
자녀가 많은 가정을 살펴보자. 한 부모에서 태어났음에도, 얼굴의 생김새, 신체조건, 그리고 성품까지 자녀마다 제각각이다. 물론 서로 어느 정도 닮기도 하지만, 어떤 가족의 경우 생김새가 서로 판이하게 다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태어날 수 있는 자녀의 종류에 대한 답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갖고 있는 46가지 염색체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당연히 반은 할머니, 반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두개씩 한쌍을 이루는 상동 염색체는 사실 똑같지 않다. 예를 들어 1번 염색체 둘 중 하나는 할아버지, 하나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염색체의 가짓수를 따져보자. 상동 염색체의 경우, 1번 염색체 2종류, 2번 염색체 2종류 … 22번 염색체 2종류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나올 수 있는 가짓수는 ${2}^{22}$개. 여기에 성 염색체가 X냐 Y냐를 덧붙이면 총 ${2}^{23}$가지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짓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들의 조합 결과 태어날 수 있는 자녀의 종류는 무려 ${2}^{46}$, 즉 70조가지다. 전세계 인구는 현재 60억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한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해도, 자신과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고 태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물론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때문에 한 부모로부터 생김새가 서로 다른 형제자매가 태어날 수 있다. 아주 적은 확률이긴 하지만, 같은 형제자매 간에도 부모로부터 완전히 서로 다른 염색체를 물려받을 수 있다. 자녀들 간의 유전정보는 부모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염기서열에 주목
우리나라는 6.25 분단과 이후 복잡한 사회를 지나오면서 가족끼리 떨어지는 아픔이 많았다. 이렇게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한때 TV에서 대대적으로 가족찾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이산가족이 가족을 찾는 단서는 자신의 이름과 가족관계였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정보다.
생물학적 방법으로 가족을 구분하는 방법이 없을까. 예전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한 여인이 남편 아닌 다른 사람의 아기를 임신하고, 이를 숨긴 채 결혼하는 내용이 심심찮았다. 이때 남편은 자신의 아이인줄만 알고 그 자녀를 무척 사랑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과 혈액형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문에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난다는 뻔한 스토리가 전개됐다. 이처럼 한때 생물학적으로 가족을 구분하는 방법은 혈액형 정도였다.
하지만 이 방법은 무척 구닥다리다. A형, B형, O형, AB형 단지 4가지뿐. 그나마 좀더 자세히 분류해도 10여가지뿐이다. 혈액형이 동일한 사람은 주변에 널려있다.
그러나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을 본 지금, 친자확인을 위해 인간의 유전정보가 동원된다. 이 방법은 오랫동안 떨어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을 확인할 때뿐 아니라, 친자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쓰이고 있다. 1999년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백지연 아나운서의 친자확인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수집해 와서 친자감별을 의뢰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DNA로 어떻게 친자를 확인할 수 있을까. 생명체의 DNA는 A, G, C, T 네가지 염기로 구성돼 있고, A와 T 그리고 G와 C는 서로 쌍을 이룬다. 인간의 경우 총 46개의 염색체 속의 DNA는 30억개 염기쌍을 갖는다. DNA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백만가지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30억쌍 중 단지 5%만이 단백질 정보를 갖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 친자감별에는 단백질 정보를 갖지 않는 나머지 95% DNA의 일부를 이용한다. 이 DNA에는 A, G, C, T 염기가 몇개를 단위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갖는 염기서열이 30%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DNA 염기서열이 …CGTAGCTAGCTAGCTAGCTAGCTAGCTCAT…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AGCT를 한묶음으로 하는 염기서열이 6번 나타난 경우다.
그런데 이같은 반복패턴의 수가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부위가 있다. 그러면 이 부분의 유전자 질량이 반복패턴의 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친자확인에 동원된다.
이 일은 지난 30여년 동안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비롯해서 DNA 염기서열에 대한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된 결과를 토대로 한다. 이를 통해 친자확인에 쓰일 수 있는 염기서열의 반복 부위가 수십군데 알려져 있다.
실제로 친자감별을 하려면 엄마와 그녀의 자녀, 그리고 친자의 여부를 궁금히 여기는 아빠의 DNA가 필요하다. 프랑스 배우 이브 몽땅은 사망 후 과거 연인의 딸이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때문에 그는 죽어서 다시 한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의 시신으로부터 유전정보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로부터 DNA를 얻으면, 그 다음에는 친자확인에 필요한 유전자 부위를 잘라낸다. 그리고 이를 전기영동기라는 기계 안에 넣는다. 이 안에서 유전자 부위는 한쪽 전극에서 다른 전극으로 이동해간다. 그런데 이동하는 속도가 질량에 따라 다르다. 이를 통해 자녀가 갖는 DNA 반복패턴이 엄마와 아빠와 같은지를 비교하면 친자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최지우 관계
이같은 유전자 감별법으로 확인가능한 가족관계는 부모자식의 경우뿐일까.
지난 4월 15일 김해공항을 착륙하려던 중국 민항기가 추락했다. 처참한 사고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지만,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조그만 뼈뿐이다. 이들 뼈가 누구의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족들은 기꺼이 자신의 피를 뽑았다. 피 속에 포함돼 있는 가족의 유전정보를 얻어 사망한 가족의 유골이라도 제대로 찾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잃어버린 가족이 부모자식인 경우도 있지만, 형제자매, 조부모, 또는 먼 친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친자 외에 형제자매나 다른 가족관계를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럴 경우,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유전자 감별법이 어떻게 이용될까. 어떤 가족의 유전정보가 필요할까.
최근에 방영돼 인기를 얻은 드라마 ‘겨울연가’에서는 연인 사이인 배용준과 최지우가 배용준의 어머니의 속임수 때문에 서로가 친남매인 줄 알고 헤어지는 내용이 있었다. 만약 이들의 경우 유전자 감별법으로 친남매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만약 이들이 서로 친남매였다면 아버지는 같고, 엄마가 다른 배다른 남매인 셈이다. 따라서 극중에서 배용준과 최지우는 각자 자신의 생모와 아버지로부터 유전자를 반반 물려받았다. 따라서 이들은 각자 아버지의 유전자와 50% 일치한다. 만약 이들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유전자 감별은 무척 간단해진다. 각자의 유전정보에서 어머니의 유전정보를 제외하고, 아버지의 것과 비교하면 된다. 그러나 극중에서 아버지는 이미 10년 전에 사망한 인물로 설정돼 있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브 몽땅의 경우처럼 무덤에 묻혀있는 아버지의 유골을 파내야 할까. 물론 그렇다면 쉽게 남매여부를 판단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골까지 파헤치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방법은 있다. 우선 전기영동 결과로 나타난 자료를 통해 각자 어머니의 유전정보를 제외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나머지를 서로 비교해본다. 이때 반복패턴이 일치하는 부분이 어느 염색체인지를 확인한다. 일치하는 염색체가 동일 아버지로부터 왔다고 우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후 반복패턴이 일치하는 염색체에서 친자확인을 위해 쓰이는 또다른 반복패턴을 조사한다. 만약 같은 염색체에서 반복패턴이 여러개가 동일할 경우 한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판단내릴 수 있다.
그러나 겨울연가에서의 문제는 이처럼 복잡하지 않다. 실제로 유전자 감별시, 아닌 경우는 명확하지만 맞다고 판단내리기는 어렵다고 한다. 극중에서 최지우와 배용준이 서로 친남매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판단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찌 어머니의 말씀을 의심할 수 있으리오.
드라마 ‘유리구두’의 딱한 사연
한편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유리구두’에서는 어린 시절 헤어진 자매가 등장한다. 동생(김현주 분)은 교통사고로 기억을 상실하고 언니(김지호 분)와 헤어진다. 그런 후 언니는 부자 할아버지를 만나 편안하게 성장하지만 동생은 못된 사람을 만나 고생하며 자란다. 언니가 성인이 돼서 동생을 찾아 나서는데, 이때 김현주와 함께 살았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김민선 분)가 돈에 눈이 멀어 김지호의 동생으로 가장한다. 여기에서 김지호는 김민선이 자신의 여동생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김민선이 김현주 어머니의 반지를 갖고서 김지호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참으로 딱하다. 김지호가 잃어버리기 쉬운 반지에 의존하는 모습이 그렇다. 유전자 감별법으로 자매인지를 확인하면 될텐데 말이다.
김지호의 가족관계를 살펴보자. 현재 그녀의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아버지, 고모가 살아있다. 이들의 유전정보를 통해 김민선이 진짜 동생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나 고모의 유전자 없이도 김지호는 자매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배용준과 최지우의 배다른 남매지간보다 좀더 확실하다. 왜냐하면 김지호와 김현주는 어머니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같으면, 염색체 속 DNA가 아닌 또다른 유전정보가 쓰일 수 있다.
사실 자녀는 어머니로부터만 받는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어머니의 난자는 염색체가 들어있는 핵과 이를 둘러싼 세포질로 구성돼 있다. 이 세포질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는데, 이 속에 DNA가 포함돼 있다. 이를 가리켜 ‘미토콘드리아 DNA’라고 한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로부터 자녀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는 핵의 DNA 정보만 물려받는다.
따라서 생모가 동일한 자녀의 경우,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하면 이들이 서로 형제자매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돈 많은 김지호가 이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반지에 연연하는 모습은 참으로 딱하다. 유리구두는 유전적인 측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드라마인 셈이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부터 유전된다는 특성 때문에 인류의 어머니, 이브를 추적하는데 실제로 쓰였다. 반대로 인류의 아버지를 찾으려면 부계로만 전달되는 유전정보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Y 염색체다.
미토콘드리아 DNA와 Y 염색체를 통한 이브와 아담에 대한 추적 결과, 아담과 이브는 둘다 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미있게도 이브는 15만년 전의 인물이고 아담은 5만9천년 전에 인물이었다. 성경과 달리 아담과 이브는 서로 만나지 않았었다.
2백년 끌어온 미국 대통령 후손 문제
아담을 찾는데 쓰였던 Y 염색체는 여자 흑인 노예, 샐리 헤밍스의 아이 아버지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인지에 대한 2백여년 동안 진행된 논란을 종식시켰다.
토머스 제퍼슨이 재임중인 1802년에 이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퍼슨의 반대파, 노예 폐지론자, 그리고 미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영국인이 이를 계속 문제삼아 왔다.
1998년 이 문제를 종결하기 위해 Y 염색체를 이용한 유전자 감별법이 8명의 분자생물학 박사에 의해 수행됐다. 그 결과는 같은 해 11월에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발표됐다. 이 방법이 쓰이기 위해서는 제퍼슨에서 오늘날까지 부계로만 이어지는 후손이 필요하다. 즉 제퍼슨의 아들, 다시 그의 아들, 그리고 또 그의 아들 등으로 이어져는 후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계로만 이어지는 제퍼슨의 후손이 없었다. 대신 제퍼슨의 형제에게서 부계 후손이 있었다. 제퍼슨과 그의 형제의 Y 염색체는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동일하다. 따라서 제퍼슨의 부계 후손의 Y 염색체와 제퍼슨 형제의 부계 후손의 Y 염색체는 여기에서는 같은 자료다.
실제로 동원된 대상은 토머스 제퍼슨의 형제였던 필드의 후손 5명, 그리고 샐리 헤밍스의 막내아들이었던 이스턴 헤밍스의 부계 후손 1명이었다. 이들로부터 얻은 Y 염색체의 유전정보를 비교해본 결과, 이스턴 헤밍스는 제퍼슨의 아들로 판명됐다. 조사대상이었던 필드의 후손들의 관계는 촌수로 따지면 13촌이다. Y 염색체나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할 수 있다면, 즉 부계로 또는 모계로 이어지는 친족관계의 경우에 대해서는 세대가 상당히 흘렀어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중간에 부계가 끊어지거나 모계가 끊어지는 경우에는 밝히기가 상당히 어렵다. 한 조상으로부터 점점 세대가 내려갈수록, 후손과 조상 간에 공유하는 유전정보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첫 후손은 조상의 유전자와 공통점이 100%다. 그러나 첫 후손이 외부 사람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손이 조상과 같은 유전자의 비율은 50%로 줄어든다. 그 다음은 25%, 그 다음은 또 그 절반으로 점점 줄어든다. 따라서 점점 세대가 내려갈수록 친족관계를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인간 DNA 정보가 좀더 밝혀지면, 상당히 먼 친족관계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99.9%가 동일하다. 즉 30억개 중 약 3백만개가 사람마다 다른 염기를 갖고 있다. 현재 친자감별에 쓰이는 유전자 부위는 염기배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곳이다. 이 부위에서 염기가 달라도 사람에게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단백질의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 부위도 활용될 전망이다. 단백질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에서 한개의 염기가 달라져도 상황이 무척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염기 하나로 RH+형과 RH-형 혈액형이 뒤바뀐다. 이처럼 사람마다 염기가 달라지는 부위를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라고 한다. 앞으로 의미 있는 SNP 부위를 찾아내면 지금보다 정밀하게 친족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류의 조상과 그 역사도 더욱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한국인 DNA 통계 필요하다
지난 20-30년 동안 얻어낸 인간의 DNA 정보로부터 인간마다 다양하게 달라지는 유전자 부위가 확인돼, 친자확인에 쓰이고 있다. 이때 사용되는 부위는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같은 반복 부위가 알려져 있다고 해서 곧바로 친자감별에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복 부위는 민족에 따라 다른 분포를 갖는다.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의 황적준 교수는 “아무 반복 부위나 쓸 수 없고, 한국인에게 유의미한 곳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황교수는 지난 몇년 간 한국인의 DNA 통계분포를 파악했다. 그는 혈연관계가 없는 한국인 4백92명을 대상으로 우리에게 의미있는 DNA 부위를 조사해, 친자확인에 필요한 한국인 유전자 분포를 얻었다.
하지만 이 자료로 친자감별을 위한 자료가 다 마련된 것은 아니다. 황교수는 법적, 생물학적으로 혈연관계로 확인된 한국인 2백41가족(2천4백3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동원된 가족 구성원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자녀 1명이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친자를 판단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냈다.
하지만 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는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경우다. 최악의 경우, 즉 아버지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은 아버지의 친족관계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 부모와 자녀의 자료가 틀릴 수 있다.
때문에 아버지와 친족관계를 포함한 가족관계의 통계자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황교수는 부모, 자녀 2명,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 1명을 기본가족 구성으로 하는 한국인 75가족을 조사했다. 여기에 조부모, 삼촌, 사촌 등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친자를 판단할 확률을 또한 계산했다.
이처럼 유전자로 친족을 감별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유전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함께, 통계자료를 위한 여러 사람에 대한 유전자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로써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비행기 사고 현장, 유골 찾아 유전자 감식
TV에서 중국 민항기 폭발사고 현장에서 사망자들의 유골을 찾는 모습이 방영됐다. 처참한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그만 뼈조각 정도뿐이었다. 유골이라도 제대로 묻어주려는 유가족은 이를 확인하고 오열하고 만다.
비행기 사고처럼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 사람의 몸은 산산조각이 난다. 때문에 사고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시신은 뼈와 같은 단단한 부분뿐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까. 뼈만 남아있는 시신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유전자 감식이 이뤄진다. 그러려면 뼈에 숨어있는 DNA를 추출해야 한다.
뼈는 가운데 부분에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연한 조직인 골수와 단단한 뼈대를 구성하는 뼈기질로 돼 있다. 만약 신선한 뼈의 경우, 가운데의 골수로부터 DNA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골수는 사람이 사망하고 2-3일만 지나도 부패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단단한 뼈 속에 박혀있는 골세포가 필요하다.
뼈는 콜라겐 단백질과 칼슘인산염이 결합해있어 단단한데, 이 사이사이에 골세포가 묻혀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단단한 부분을 녹이는 화학적 약품이 쓰인다. 이를 통해 얻은 골세포로부터 DNA를 추출한다. 이후 유전자 감식이 이뤄지는 과정은 다른 경우와 동일하다.
죽은 시신의 뼈가 실제로 누구의 것인지를 알려면 가족의 유전자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망자가 누구냐에 따라 동원되는 가족의 범위가 다르다.
따라서 사망자의 가족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이에 따라 유전자 감식에 필요한 DNA 정보도 달라진다. 모계조사를 한다면 미토콘드리아 DNA가, 부계조사의 경우 Y 염색체가 조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일가족이 한번에 사고를 당하거나, 가족 관계가 복잡한 경우는 매우 난감해진다.
더군다나 비행기 사고처럼 시신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 파편처럼 조각난 유골 하나하나를 DNA 검사로 찾아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여러 가족과 다양한 유골을 조사하기 위해 방대한 DNA 자료가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가족은 하루라도 빨리 밝혀지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때문에 조사결과를 빠른 시일 내에 얻기 위해서 다른 방법이 함께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치아가 발견되는 경우, 여기에서 DNA를 추출하지 않고, 직접 그 신원을 밝힐 수도 있다. 만약 발견된 치아의 당사자가 치과에서 시술받은 적이 있다면, 치과기록만으로도 신원을 밝힐 수 있다. 또는 가족이 제시한 사진자료로 밝혀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