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버려지는 하수는 약 1천만t. 1년이면 36억t이 되는 엄청난 수자원이다. 냄새나고 더러워보이는 이 하수를 생명의 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적을 일으키는 첨단 기술인 물 재이용기술을 만나보자.
‘돈을 물 쓰듯이 한다’라는 말이 있다. 물이 소중한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함을 망각했기에 이런 말이 나왔으리라. 과거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라 불리는 빼어난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으며,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수자원은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생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이 양적·질적으로 심각하게 저하됐다. 건설교통부의 전국 용수 수급계획에 따르면 2006년에는 4억t, 2011년에는 20억t 이상의 물이 부족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제는 ‘물을 물 쓰듯이’ 해서는 물건을 만들거나 농사를 지을 때 사용되는 물뿐만 아니라, 씻고 마시는 물까지도 부족할 상황이 됐다. 이와 같은 급박한 상황은 UN이 우리나라를 물부족 국가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단순히 물 절약을 홍보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기술개발을 통한 국가적인 차원의 수자원 확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수자원을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인공강우, 지하수 이용, 빗물의 활용 등 여러 기술이 가능하다. 이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는 기술이 사용한 물을 깨끗이 만들어 다시 사용하는 ‘물 재이용기술’이다. 하수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이 사용할 물을 만드는 첨단 기술을 만나보자.
하루 1천만t에 이르는 수자원
우리나라 생활하수 발생량은 1999년 기준으로 하루평균 1천5백만t에 달한다(하수처리시설 용량은 하루 1천8백만t). 우리나라의 하수도 보급률 66%를 고려하면 실제 하수처리장으로 들어와 처리되는 물은 하루 약 1천만t으로, 1년에 약 36억t이나 된다. 더욱이 하수는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변하지 않고 거의 일정하다. 하수를 다시 이용할 수 있다면, 상당한 양의 매우 안정적인 수자원이 확보되는 셈이다.
물론 하수를 전부 다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목표치를 낮춰 하수의 20%만 다시 이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연간 7억2천만t의 물을 재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당장 부족한 수자원을 대체할 수 있는 양이다.
이와 같은 물 재이용기술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투자에 나섰다. 현재 다양한 재이용기술을 개발해 처리단계에 따라 여러 수질기준을 만족시키는 물을 생산하고 있다.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물에서부터, 상수원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물까지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물 재이용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하수를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뿐 아니라 재이용할 물이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평가하는 기술 또한 뒤쳐진 상황이다. 필자가 소속된 광주과학기술원 물재이용기술센터는 하수를 재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재이용기술을 개발해 실용화할 수 있는지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다.
물리·화학·생물학적 방법 총동원
물 재이용기술의 최전선에서 활약할 기술들을 살펴보기 전에, 하수를 처리하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본 기술부터 살펴보자. 하수를 처리하는 첫단계는 여과기를 사용해 오염물질을 거르는 것이다. 덩어리로 된 오염물질이 물리적 방법을 통해 제거된다. 그런데 오염물질이 물에 녹아있는 경우에는 물리적으로 걸러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오염물질을 화학약품과 결합시켜 분해하는 화학적 처리방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화학적 처리방법을 사용한 후에도 분해되지 않거나 화학반응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오염물질이 처리수 속에 녹아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을 처리수에 넣어 분해시키는 생물학적 처리방법이 마지막 단계에 사용된다.
물 재이용기술은 물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 물리적, 화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처리방법을 한차원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선보인 막결합형 생물학적 처리공정(Membrane Bio-Reactor)은 물리적 처리방법과 생물학적 처리방법을 함께 응용한 좋은 예다.
생물학적 처리방법은 효과가 뛰어나지만, 미생물이 섞여있는 처리수에서 미생물과 깨끗한 물을 분리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생물학적 처리방법에 미생물을 거를 수 있는 막을 결합시키면, 미생물을 분리하는 공정을 따로 넣을 필요가 없어진다. 바로 막결합형 생물학적 처리공정이다.
막결합형 생물학적 공정에서는 하수를 처리하기 위해 미생물을 계속 공급할 필요가 없으며, 고농도의 미생물이 저절로 유지된다. 그 결과 더 많은 오염물을 처리할 수 있고, 처리수의 수질 또한 향상된다. 더욱이 미생물을 분리하기 위한 침전조가 필요없기 때문에 공간이 적게 필요하다. 따라서 건물 안에도 설치할 수 있다. 고층 빌딩에서 발생한 하수를 처리해 화장실물이나 조경용수로 다시 사용하는 재이용시스템을 만들 때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인 셈이다. 기존 처리방법의 장점만을 모아 하수의 처리효율을 향상시킨 좋은 예다.
오염물질 감시하는 미생물
최근에는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을 먹는 물로 바로 사용할 만큼 깨끗이 만드는 획기적인 재이용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물리적 처리방법인 여과를 극한으로 발달시킨 나노여과다. 지금까지 여과에 주로 사용하는 막은 작은 오염물질을 거르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막의 구멍크기를 나노스케일(1nm=${10}^{-9}$m)로 줄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노크기의 여과막은 작은 오염물질은 물론 병원성 미생물까지 걸러낸다. 따라서 미생물을 없애기 위해 염소소독을 할 필요가 없다. 염소소독을 하면 몸에 해롭지 않을까라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노여과 만큼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화학적 처리방법도 등장했다. 바로 라디칼이란 화학물질을 이용한 고도산화공정기술(AOPs, Advanced Oxidation Processes)이다. 라디칼은 강력한 산화력을 갖고 있는 화학물질을 말하는데, 다른 처리방법으로는 분해할 수 없는 오염물질도 처리해버리는 능력을 발휘한다. 더욱이 하수의 대부분은 유기오염물질이고, 유기물을 산화시키면 이산화탄소와 물이 되기 때문에 처리과정 중에 다른 오염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하수처리장에서 배출되는 처리수를 꼭 바로 이용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땅 속에 저장했다가 다시 이용하는 일도 가능하다. 더욱이 땅 속에 스며들면서 자연정화를 통해 처리수는 더욱 깨끗해질 것이다. 이 기술이 바로 토양대수층 이용기술(SAT, Soil Aquifer Treatment)이다.
땅 속 암반층에 있는 공간(토양대수층)에 처리수를 저장한다. 이후 지하수를 이용하듯이 펌핑해 재이용한다. 물을 장기보존할 수 있어 가뭄과 계절적 물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지하수의 남용으로 인해 지반이 가라앉는 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물 재이용기술에는 독성 오염물질이 유입됐을 때 이를 탐지하는 기술도 포함된다. 독성 물질을 탐지해야 그 물질에 적당한 처리방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독성 물질이 유입되면 빛을 발생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미생물이 연구되고 있다. 앞으로 미생물의 빛을 감지해 독성을 효과적으로 탐지하는 시스템 구축도 가능할 것이다.
미래 ET산업의 핵심
다양한 물 재이용기술을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원하는 수질에 따라 경제성을 고려해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수질을 원한다면 막결합형 생물학적 처리공정을 거친 다음 나노공정이나 토양대수층 이용기술을 사용하면 된다. 기존 하수의 처리공정 뒤에 나노공정 또는 고도산화공정기술을 연결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물 재이용기술은 다양한 기술들의 연계가 가능한 부분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반대로 연구를 좀더 세분화시켜 역할을 분담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대학과 연구소, 기술을 실용화하고 산업화하는 기업, 연구결과의 적용을 위해 제도화와 정책 반영을 담당하는 정부 모두의 공동 작업이 중요하다.
사용했던 물은 소중한 수자원이며 이를 되살리는 기술은 여러 선진국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ET(환경공학기술, Environmental Technology)산업의 핵심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도 물부족의 위기를 직시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런 투자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을 사용하는 소비자 모두가 생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에 대한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 더이상 우리의 현실이 물을 물 쓰듯이 해서는 안되는 상황임을 깨닫고 물절약을 실천해야 한다.
국가마다 다양한 재이용기술
미국에서는 하수를 처리한 후에 지표수나 지하수의 원수로 공급해 간접적인 상수원수로 사용하는 기술을 IPR(Indirect Potable Reuse)이라 부른다. 미국의 IPR 계획은 1960년대에 시작됐는데, 1990년대부터는 막을 이용해 하수를 걸러서 오염물과 물을 분리하는 공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과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IPR에 의해 처리된 물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평가했는데, 어떤 위해성도 보고되지 않았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재이용기술이 발전했다. 물 사용량이 많은 대도시의 대형빌딩에서 발생한 오수를 처리해 중수(식수와 하수의 중간 정도 깨끗한 물)를 만든 후 화장실세척수나 조경용수 등으로 이용하는 중수도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1997년 현재 1백63개 공공폐수처리장에서 처리해 1백92개의 지역에서 재이용하고 있으며, 1천4백75개의 민간빌딩에 중수도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일본하수도협회에 따르면 1998년 현재 일본의 연간 재이용수는 2억t에 달할 정도다.
거대한 중국은 물부족 국가다. 중국정부는‘수질오염을 막고, 수자원을 절약하자’고선언하고 하수의 재이용을 천명했다. 1996년 중국환경부가 발표한‘수질오염과 관리에관한 기술정책’의 권고사항에는 중국정부의 물 재이용에 대한 기본방침이 나타나 있다. 이 방침에 따른다면 공업용수의 55%와 도시에서 사용하는 물의 14%를 재이용수로 공급할 수 있으며, 연간 86억t의 중국 전체 도시의 물사용량(2000년 기준) 중에서 33%에 해당하는 28억t의 물을 재이용수로 대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