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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21세기 첫 노벨상 수상자들 : 생리·의학 - 세포분열 조절 메커니즘 규명

2001 생리·의학상 하트웰, 헌트, 너스

지난 10월 8일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미국 워싱톤주립대 부설 프레드 허치슨 암연구센터의 릴랜드 하트웰(Leland H. Hartwell) 박사, 영국 왕립암연구재단의 티모시 헌트(Timothy Hunt) 박사와 폴 너스(Paul M. Nurse) 박사 등 3명을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세포가 성장해 분열하는 과정을 통제하는 핵심 ‘조절인자’를 발견한 공로로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은 하나의 세포가 끝없이 세포분열을 해 수조-수백조개의 세포를 가진 성체로 성장한 결과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큰 특징은 그 구성성분이 두배가 되는 성장과 이를 둘로 나누는 분열을 통해 자기복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세포주기’(cell cycle)라 하며 이는 모든 생명체가 증식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세포가 성장과 분열을 통해 자기복제를 수행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그 조절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는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세 연구자에 의해 시작됐다.

유전정보가 세포질과 분리된 핵 속에 보관돼 있는 진핵세포의 세포주기는 그 기능에 따라 G1-S-G2-M의 4단계로 나뉜다. 하나의 세포는 세포분열의 시작여부를 결정하는 시기(G1기)를 거쳐 유전정보를 포함하는 염색체를 복제하고(S기) 성장한 후(G2기) 복제된 염색체와 세포질을 둘로 분리해(M기) 두개의 세포로 나눠진다. 정상적인 세포의 성장과 분열은 이 단계가 순차적으로 조화롭게 이뤄져야만 가능하다.


세포주기^세포는 성장과 분열을 통해 자기복제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을 세포주기 라 한다. 세포는 세포분열 시작을 결정하는 G1기에서, 염색체를 복제하는 S기, 충분한 크기로 성장하는 G2를 거쳐, M기에서 염색체와 세포질이 분 리돼 두개의 세포로 나눠진다. 이번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CDK와 이를 통제하는 사이클린의 메커니즘을 밝혔다.


세포분열의 ‘엔진’과 ‘기어’

지난 30년 간의 세포분열 메커니즘 연구는 주로 효모를 모델로 세포분열 과정에 이상이 생긴 돌연변이를 찾고 그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분리해 규명하는 분자유전학적 접근 방법이 주를 이뤘다. 1964년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8년 워싱턴주립대에 부임한 하트웰 박사는 빵이나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출아형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를 이용해 세포주기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효모는 효모에서 새로 자라나오는 싹의 크기가 세포주기에 따라 달라져 세포주기의 변화를 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어 연구에 적합했다. 그는 세포주기에 이상이 생긴 1백여개의 효모 돌연변이를 찾아 이들 유전자를 ‘CDC 유전자’라 명명하고 1970년대 초에 발표했다. 특히 CDC 유전자 중 세포가 성장하는 과정을 조절하는 ‘출발유전자’인 CDC28의 역할을 규명했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세포는 세포주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세포주기 G1기의 ‘출발’ 단계에 머문다.

한편 세포가 자기복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된 너스 박사는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1970년대 중반부터 출아형 효모가 아닌 분열형 효모(Schizosaccharomyces pombe)를 연구에 이용했다. 이 효모는 그 길이에 따라 세포주기를 예측할 수 있고 세포주기 중 G2기가 길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는 주로 G2기에서 M기로의 전이에 이상이 생긴 조건변이체와 그 유전자를 분리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그는 효모의 세포주기를 조절하는 핵심 조절인자인 ‘CDK’라는 효소를 발견했다. CDK는 세포주기에서 일종의 ‘엔진’역할을 한다. 자동차의 엔진이 기름을 이용해 동력을 얻듯 CDK는 세포 내의 다른 단백질을 동력원으로 쓰면서 세포주기가 돌아가도록 만든다. CDK는 세포 내 cdc2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산화효소(cdc2 kinase)이며 하트웰 박사가 찾아낸 출발유전자 CDC28과 동일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헌트 박사는 1980년대 초에 세포주기 동안 주기적으로 합성됐다가 완전히 분해되는 단백질을 성게에서 찾아내 ‘사이클린’(cyclin)이라 명명했다. 사이클린은 세포 분열과정에서 CDK를 조절해 각각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만드는 일종의 ‘기어’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사이클린이 효모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진화상 그 기능이 보존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와 같은 세 연구자의 연구를 통해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핵심 조절인자가 cdc2·CDC28 인산화효소이며 이 인산화효소가 세포분열 주기의 각 단계마다 다른 사이클린과 결합해 조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dc2·CDC28 세포분열 조절인자는 그 기능이 사이클린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이클린 의존 인산화효소’(CDK)로 명명됐고 고등 진핵생물에는 CDK 이외에도 세포주기의 각 단계를 조절하는 여러 인자가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티모시 헌트는 세포 분열 과정에서 마치 기어처럼 CDK를 조절하는 사이클린의 역할을 밝혔다


암 정복을 위한 기초 마련

최근 세포주기 연구의 초점은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세명의 연구업적을 바탕으로 세포의 성장과 분열 과정에서 G1-S-G2-M이 순차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어떻게 조절되는지 분자 수준에서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 하고 있다.

세포분열 과정의 조화는 각 단계들이 연속적인 과정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조절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런 순차적 상호조절 메커니즘이 깨지면 세포는 정확한 유전정보의 전달이 불가능한 비정상적 세포분열을 수행해 무분별한 증식으로 암세포로 변형되거나 사멸한다. 실제로 많은 암세포에서 CDK나 사이클린의 기능이 향상되거나 이상이 있음이 발견됐다. 이들의 기능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암세포의 무분별한 증식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많은 CDK 억제제들이 항암제로서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필자의 연구실을 비롯한 몇몇 연구실에서 효모를 이용해 세포주기의 순차적 조절기전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특히 유향숙 박사가 이끄는 인간유전체 사업단은 너스 박사 연구실과 긴밀하게 협조해 분열형 효모 전체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노벨상의 연구업적은 생명현상에 대한 분자 수준의 이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생명과학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예를 들어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암세포에 대한 연구에만 치우친다면 결코 항암제는 개발될 수 없으며 정상세포가 생명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선행돼야만 한다는 것이다.한국에서도 생명현상에 대한 기초연구가 더욱 활성화돼 미래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생명과학자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폴 너스는 세포주기에서 일종의 엔진역할을 하는 CDK를 고등생물에서 발견하고 그 역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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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송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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