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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노벨상 수상자 발굴하는 연구대회

정답 맞추기식 경시대회 탈피해야

각종 수학∙과학경시대회가 붐을 이루고 있는 요즘. 그러나 대개의 경시대회는 그저 몇시간 동안 학생의 문제풀이 능력을 평가할 뿐이다. 과연 미래 과학자의 자질이 그런 것일까.

최근 학생들이 참여하는 각종 과학관련 경시대회가 붐을 이루고 있다. 대회 입상이 곧 대학입학의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시작된 대학의 수시모집은 더욱 이 열기에 부채질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경시대회가 정답이 있고 난이도 높은 문제를 4-5시간이라는 단시간 동안에 얼마나 해결하느냐를 평가한다. 여기서 ‘난이도가 높다’는 말은 참가하는 학생의 해당학년 내용보다는 높은 학년에서 학습하는 과학지식에 대한 질문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전국 수학·과학경시대회, 각종 올림피아드 대회, 그리고 대학별로 치러지는 각종 경시대회가 그렇다.

한 현직교사는 “이같은 경시대회에서 정상적인 학교교육만 충실한 학생은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요즘 웬만한 학원에서 경시대회반이 운영되고 있는 이유다.

이 시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정답이 있는 고난이도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영특한 학생만이 과학자의 자질을 가진 것일까.


대다수의 경시대회는 4-5시간 동안 난이 도 높은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느냐를 평가 하고 있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 4명이 지방대 출신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노벨과학상을 이미 6차례 획득했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자의 이력에서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이들 중 4명이 일본의 지방대학인 교토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일본 최고의 명문대인 도쿄대 출신은 한명뿐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학입시가 매우 치열한 나라다. 지옥같은 입시를 거쳐 도쿄대에 무사히 입학한 학생은 지방대인 교토대 학생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과학문제를 많이 맞춰 높은 점수를 얻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대는 단지 한명의 노벨상을 배출했을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학자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찾아 개척해나간다. 이미 해결된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자는 호기심을 갖고 문제를 스스로 발견해서 창의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서 한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단지 몇시간 동안 해결할 문제를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짧은 시간 동안에 과학지식을 습득하기 보다 장기간에 걸친 집중적인 탐구활동이 과학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직접 과학자의 길을 가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 학교교육과정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는 학생의 연구활동을 장려하고 그 결과를 겨루는 대회를 열고 있다. 학생의 연구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연구경진대회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각 주별로 학생들이 과학적 상상력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대회가 매년 3백개 이상 열린다.

이 중에서 올해로 60회를 맞을 정도로 역사가 깊고 미국 전역에 잘 알려진 대회는 인텔 과학재능발굴대회(인텔 STS, Science Talent Search). 각 지역별 예선전, 준결승전을 거쳐 최종 40명의 고등학생이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스스로 발견한 문제를 연구한 결과를 놓고 결승전(매년 3월에 개최)을 치른다. 학생들이 선택한 주제는 현재 과학자들이 연구중인 것이 많다.

과학영재의 교류마당

인텔 STS는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학생연구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통해 발굴한 유명 과학자가 1백여명에 이르고, 이 중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5명이다. 또한 역대 수상자 중 95%가 과학기술 관련 분야로 진출했고, 70% 이상이 이 분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야말로 미래 과학자의 발굴터인 셈이다. 역대 참가자들은 ‘우수한 동료를 만나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인텔 STS의 가치를 평가한다.

한편 영국의 과학기술창의성대회, 독일의 청소년연구대회, 일본의 전국학예과학경진대회 등이 대표적인 국가별 학생연구경진대회다. 세계적인 규모로는 과학기술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학생의 연구프로젝트를 경쟁하는 인텔 과학기술경진대회가 대표적이다. 이같은 대회들은 공통적으로 ‘미래를 이끌 젊은 과학자를 찾는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학생연구경진대회가 있다. 바로 전국과학전람회가 그것인데, 1949년부터 개최된 전국체육대회, 그리고 대한민국국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다.

초·중·고 학생이 참여하는 학생부, 그리고 교사와 일반인이 참가하는 일반부로 나뉘며, 참가자는 시·도 예선을 거쳐 9월 본선에 진출한다. 분야는 물리, 화학, 동물, 식물, 지구과학, 농림수산, 공업, 환경 등 총 8개다.

해외의 유명대회 못지 않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과학전람회는 지금까지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1999년 공주대 육근철 교수는 이 대회의 최고 영예상인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의 역대 수상자를 추적 연구했다.

육교수는 수상자 2백6명 중 주소가 파악된 1백78명에게 설문지를 배포했다. 그 결과, 1백2명으로부터 응답을 얻었다. 이 중 10명이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확인됐다. 총 응답자 중 학생부 수상자가 47명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수가 과학기술과 무관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전국과학전람회 계기로 기생충 연구

그러나 성공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육교수는 제1회 대통령상의 영예를 얻은 임한종 박사(69)를 소개했다. 전국과학전람회에 참가할 당시 경기중학생 5학년(현재 고2에 해당)이었던 임박사는 ‘개구리의 기생충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어려서부터 일찍 의학자의 꿈을 꾸었던 그는 당시 학교과외활동으로 ‘생물반’에 참여했다. 이때 생물반을 담당했던 홍원식 선생님이 그에게 전국과학전람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다. 그는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마땅치 않아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기생충 연구를 소개했다고 한다. 당시 기생충 연구는 국내에서 전문가가 거의 전무한 상태일 정도로 미개척 분야였다.

그는 이후 그의 꿈대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1997년까지 고려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평생을 기생충 연구에 몸바쳤다. 임교수의 퇴임사에는 전국과학전람회가 그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나타나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기생충학자가 되고자 한 것은 이미 중학교 5학년 때인 1949년 10월 제1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개구리의 기생충’으로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부터 였습니다.”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임박사와 같은 성공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대회는 일선학교 학생의 연구활동을 장려하는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대회가 계속돼야 하느냐는 지속성 문제도 제기됐다.

지도교사가 학생 참가를 통해 교감, 교장으로의 빠른 승진을 위한 점수를 확보하는데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학생이 스스로 대회를 준비하기보다 수동적으로 교사의 지시를 따라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육근철 교수의 설문조사 중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누구로부터 얻었느냐’는 질문에 학생 참가자 대다수가 ‘교사로부터’라고 대답했다.

이같은 부정적 인식 외에도 전국과학전람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데에는 현재의 교육환경과 입시제도도 한몫을 한다. 학생이나 학부모는 대회 참여가 성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풍토도 장애물이다. 학생연구경진대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뿐 아니라 대학, 연구소, 그리고 기업에 종사하는 과학자나 사업가들이 미래 과학자를 발굴하는데 저마다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해외의 대다수 대회가 국가보다는 기업이나 과학관련 단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 형성의 한예라 할 수 있다. 또한 학생은 자신이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 또는 일선 과학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

3개팀 참여하는 물리학 토너먼트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해 창의 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일찍부터 길 러줘야 한다.


한편 학생 스스로가 문제를 발견한 것이 아닌 주최측에서 문제를 제시하는 대회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답이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내건다.

이같은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대회로는 국제 청소년물리토너먼트(IYPT, International Young Physicist Tournament)가 있다. 1979년 옛소련에서 시작해 주로 유럽권 국가가 참여하는 대회다. 작년에는 최종결승전에 16개 국가가 참여했다.

대회 예선이 개최되기 2-3개월 전에 참가 학교에는 17개의 물리 문제가 우편으로 배달된다. 그러면 학교는 10-20명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을 구성하고, 2-3개월 동안 과제를 해결한다. 만일 한 학교에서 팀을 구성할 만큼 학생들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이웃 학교들과 연합팀을 구성할 수도 있다.

실제 대회에서는 예선과 결승전에서는 세팀이 한 집단을 이룬다. A, B, C팀으로 나뉜다고 가정했을 때, 우선 세팀 중 B팀은 A팀에게 B팀이 고른 17개의 문제 중 하나의 해답을 요청한다. 만일 A팀이 거절하면 A팀은 B팀이 제기한 두번째 문제를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한다. A팀은 B팀이 요청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과 결과를 간단히 발표한다. 그러면 B팀의 학생이 A팀 발표의 약점과 불분명함, 오류 등을 지적한다. 이 과정을 C팀은 내내 지켜본다. 이후 A팀과 B팀이 논쟁을 마치면 C팀은 두팀의 설명에 대해 논평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팀의 역할을 바꿔가며 3회전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청중이 직접 질문하고 논평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최종적으로 5-7명의 물리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세팀을 평가한 결과를 제시한다.

IYPT는 문제를 단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어떤 반박이나 질문에 잘 대응하는지도 평가한다. 때문에 ‘물리학자의 논쟁’이라고도 부른다. 과학자의 자질 중에서 공동연구와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한 것이다.

이같은 IYPT를 모체로 한 대회가 1993년에 중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적이 있다. 대회명이 공동탐구토론대회로 IYPT처럼 미리 문제를 제시하고 3명이 한팀을 이뤄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 진행상의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현재는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그 명맥을 서울대 물리교육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어가고 있는 정도다.

진정한 미래 과학자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문제풀이형 경시대회보다는 다양한 과학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대회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인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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