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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산학에 등장하는 수열과 급수

점점 줄어드는 비율로 나누는 쇠분

무려 3천8백년 전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흔적이 남아있는 수열.동양의 구장산술이나 산법통종에도 이런 수열과 함께 수열의 합인 급수의 개념이 등장한다.동양산학서들을 통해 수열의 진면목을 음미해보자.

고등학교 수학 I이나 수학 II의 교과과정에는 행렬, 수열, 미·적분, 확률, 통계 등의 단원들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이 핵심 내용을 이루는 수열(number sequences)은, 고교수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적분으로 들어가는 징검다리 내지 관문의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인류가 수열을 발견하고 이용한 역사를 따져보면, 결코 짧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천8백년 전 이집트에서 기록된, 대영박물관 소장의 ‘린드 파피루스’(Rhind papyrus)라고 불리는 문서에도 등비수열을 다룬 문제의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구장산술’에서는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에 관련된 내용이 주로 셋째장인 쇠분(衰分)에 등장한다. 쇠분이라는 말 자체는 점점 줄어드는 비율로 나눈다는 뜻이다. 한편 지난 80년대 초에 발견된 ‘산수서’(算數書)를 보면, 쇠분의 반대인 증분(增分)이라는 개념도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산수서는 중국 형주(荊州)지방에서 발굴된 전한시대의 목간(木簡) 가운데 들어있었는데, 최근 판독작업이 일단락되면서 윤곽이 드러났다. 쓰여진 연대가 ‘구장산술’보다도 수백년 앞선다는 점에서 앞으로 당연히 번역과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등차수열과 등비수열

어떤 특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되는 수의 나열인 수열 중 고등학교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것이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이다. 등차수열은 각항이 바로 앞의 항에 ‘일정한 수’(공차)를 더하거나 빼는 규칙으로 이뤄진 수열이다. 예를 들어 1, 3, 5, 7,…은 앞의 항에 2를 더해 다음 항이 되는 수열이다. 규칙대로 다시 쓰면 1, 1+2, 1+2×2, 1+2×3,…이다. 특히 n번째항(일반항)은 1+(n-1)×2이다. 이로부터 유추하면 등차수열의 일반항은

${a}_{n}$ =a₁+(n-1)×d

가 된다. 이때 a₁은 초항이고 d는 공차다.

또한 등비수열은 각항이 바로 앞의 항에 ‘일정한 수’(공비)를 곱하는 규칙으로 구성된 수열이다. 예를 들면 1, 2, 4, 8,…는 앞의 항에 2를 곱해 다음 항이 되는 수열이다. 다시 말해 1, 1×2, 1×2², 1×2³,…인 수열이다. 특히 일반항 ${a}^{n}$은 1×${2}^{n-1}$이다. 따라서 등비수열의 일반항은

${a}^{n}$ =a₁×${r}^{n-1}$이 된다. 이때 r은 공비다.

한편 어떤 수열에서 각항의 합을 구할 수 있는데 이를 급수라고 한다. 등차수열의 합은 등차급수, 등비수열의 합은 등비급수라고 한다. 급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각 수열의 n번째항인 일반항을 이용하면 된다.
n항까지의 급수는

${S}_{n}$ = a₁+ a₂ + a₃ + … + ${a}_{n}$ = $\sum ^{n}_{i=1} {a}_{i}$ 라고 나타낸다.

특히 등차급수

${S}_{n}$ = $\frac{n[{2a}_{1}+(n-1)d]}{2}$

으로,등비급수

${S}_{n}$ = $\frac{{a}_{1}(1-{r}^{n})}{1-r}$(단 r≠1) 으로 알려져 있다.

차등있게 몫을 분배하는데 사용

그러면 쇠분장의 첫번째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 문제에는 간단한 등차수열이 나오고 이로부터 등차급수를 구하고 있다.

문제: 지금 대부(大夫), 불경(不更), 잠뇨(簪 ), 상조(上造), 공사(公士) 모두 5인이 함께 사냥을 해, 사슴 5마리를 잡았는데, 관직 등급에 따라 분배하려고 한다. 각각의 몫은 얼마인가?

답: 대부 1$\frac{2}{3}$마리, 불경 1$\frac{1}{3}$마리, 잠뇨 1마리, 상조 $\frac{2}{3}$마리, 공사 $\frac{1}{3}$. 풀이법에 따라서, 관직 등급을 각각의 비율로 삼아서 더해 나눗수로 삼고, 사슴 5마리를 더하기 이전의 비율(未幷者)과 곱해 각자의 나뉨수로 삼아서, 나뉨수를 나눗수로 나누면 마리 수를 얻는다.

문제 속에 오늘날에는 매우 생소하게 들리는 진·한 시대의 관직명들이 등장하지만, 우리로서는 가장 낮은 관직 공사에서 가장 높은 대부까지를 1에서 5의 값으로 나타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예컨대 둘째로 높은 불경의 몫은

5×$\frac{4}{1+2+3+4+5}$ = 5×$\frac{4}{\sum ^{5}_{i=1}i}$

= 5×$\frac{4}{\frac{5(2×1+4×1)}{2}}$ = 1$\frac{1}{3}$ (마리)

로 계산할 수 있다.
이 계산에서 분모는 등차급수의 일반식

${S}_{n}$ = $\frac{n[{2a}_{1}+(n-1)d]}{2}$

을 이용했다. 다른 관직의 몫도 비슷하게 계산할 수 있다.
아마도 각자의 몫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결정해야 할 차등분배가, 급수 계산이 절실히 요구됐던 상황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던가 싶다.


동양산학에 등장하는 수열과 급수


매일 2배씩 늘어나는 작업량

다음으로는 등비수열이 게재된 문제를 살펴볼 차례다.

문제: 지금 베를 잘 짜는 여자가 있는데, 작업량이 매일 2배씩 늘어나 닷새 동안에 5자가 됐다. 매일 얼마씩이나 짰는가?

답: 첫째날 1$\frac{19}{31}$치, 둘째날 3$\frac{7}{31}$치,
셋째날 6$\frac{14}{31}$치, 넷째날 1자 2$\frac{28}{31}$치,
다섯째날 2자 5$\frac{25}{31}$치(단 1자=10치).

이 문제에서는 첫째날부터 닷새 동안의 작업량을 1, 2, 4, 8, 16이라는 등비수열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작업량인 5자는 이들의 급수 값에 대응될 것이다. 예를 들어 셋째날 작업량은

5×$\frac{4}{1+2+4+8+16}$ = 5× $\frac{4}{\sum ^{5}_{i=1} {2}^{i-1}}$

= $\frac{20}{30}$ (자) = 6$\frac{14}{31}$ (치)

로 계산된다.

위에서 분모는 등비급수의 일반식

${S}_{n}$ = $\frac{{a}_{1}(1-{r}^{n})}{1-r}$ (단 r≠1)을 이용했다.

즉 $\sum ^{5}_{i=1}$ ${2}^{i-1}$ = $\frac{1×(1-{2}^{5})}{1-2}$ = 31

이다. 나머지 작업량도 비슷한 방법으로 계산하면 된다.

장졸 수 계산 문제에 파놓은 함정

이번에는 후대의 산학서에 수열관련 문제가 어떻게 나타났던지 잠시 엿보기로 하자. ‘산법통종’에 나오는 제갈량의 군대를 읊은 노래도 등비급수와 관련된 문제로서 하나의 예시가 되리라고 본다.

제갈무후는 8명의 장수들을 통솔하고
각각의 장수는 또 8개의 군영으로 갈라지고
각각의 영에는 8개의 진이 펼쳐져 있으며
각각의 진 앞에는 8명의 선봉장이 서있고
각각의 선봉장은 8명의 기수를 거느리고
각각의 기수에게는 8명의 대대장이 딸려 있고
각각의 대대장은 또다시 8명의 갑사를 거느리고
각각의 갑사는 병졸 8명씩을 거느렸다네.


답: 19,173,385명.

이 노래의 원문은 7자씩 8행으로 이뤄져 있고, 끝에 마땅히 덧붙여졌어야 했을 ‘장졸들의 수는 모두 얼마나 되는가?’라는 물음은 생략된 형태로 돼있다. 아무튼 제갈량 군대의 총 인원수를 묻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초항이 1이고 등비가 8인 수열의 9항까지의 급수를 묻는 문제로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작사자는 그 안에 함정까지 파놓고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함정은 노래 속에 등장하는 군영과 진, 즉 진영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단순한 9항까지의 등비급수로부터 진영의 수(즉 2항과 3항의 합)만큼을 빼줘야 한다.

즉 $\sum ^{9}_{i=1}$ ${8}^{i-1}$-(8²+8³)

= $\frac{(1×(1-{8}^{9})}{(1-8)}$ - (64+512)
= 19173385(명)

으로 나타난다. 결과가 답과 일치함은 물론이다.역시 이 과정에서 등비급수의 일반식

${S}_{n}$ = $\frac{a₁(1-{r}^{n})}{1-r}$ (단 r≠1)을 이용했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동양의 산학 전통에서 수열과 급수, 그리고 발산 등에 대한 충분한 관념들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생생히 증언해준다.

한편 이 문제를 수학적 차원이 아닌 역사적 차원에서 바라볼 때, 거의 2천만명을 육박하는 군대 규모를 과연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가들은 삼국지의 시대보다 훨씬 나중인 7세기 초 수나라 양제 때의 중국 전체인구를 가장 높게 잡아서 4천 6백만으로 본다. 그런데 제갈량의 군대가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세나라의 군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고, 그나마 충원된 인원도 장정 중심이라고 가정하면, 2천만이라는 숫자는 아무래도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듯 피해를 주지 않는 과장법은, 마치‘시적 방종’(poetic license)과도 같이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적지 않은 쾌감마저 선사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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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차종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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