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제는‘Surely You're Joking, Mr.Feynman!’(Bantam Books, 1985)으로, 파인만과함께 드럼을 치던 오랜 친구 랄프 레이튼이 구술형태로그의 삶의 단면들을 정리한 책이다. 여기엔 한 천재 물리학자의 명성 뒤에 숨겨진 진솔한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출간된 이래 미국과 전세계에서 10여년 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몇차례에 걸쳐 번역서가 출간돼 많은 독자에게 읽혀지고 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밤을 새지 않고 중간에 읽기를 멈추기 힘든 그런 책이다.
이 책에는 파인만이 펼쳤던 온갖 무용담과 사건들이 녹아 있다. 총 4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모험적인 삶과 자유분방한 사상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뉴욕 부근 작은 마을에서의 어린 시절, MIT와 프린스턴으로 이어지는 학창 시절, 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프로젝트가 진행됐던 로스알라모스 시절, 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심리적 갈등, 그리고 브라질과 일본을 방문했던 시기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공대와 코넬대에서의 교수 생활에 걸친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다.
자유분방한 물리학자의 모험과 인생
파인만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물리학자 가운데 가장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가죽으로 된 작은 북인 봉고를 프로 수준으로 연주했으며, 괴팍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또한 그의 독특한 행동과 말솜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아인슈타인이 사색적이고 신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럽풍의 물리학자라면, 파인만은 꾸밈없고 직선적인 미국인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학자였다.
파인만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프린스턴대 생활에서도 유감 없이 드러난다. 이 책의 제목이 된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요!’ 역시, 전통적인 영국 풍속인 오후의 차 마시는 시간(tea time)에 비상식적으로 “크림과 레몬을 함께 차에 넣어 달라”는 그의 엉뚱한 주문에서 비롯됐다.
이 책에는 그의 웃음과 재치, 그리고 장난기가 넘쳤던 사건들로 가득하다. 파인만은 동료를 놀려주기 위해 원자폭탄의 모든 비밀이 깊숙히 보관돼 있는 연구소의 금고를 털기도 하고, 뜻밖의 제안을 받아 발레 공연에서 드럼을 연주하기도 하며, 안마시술소에 걸어 둘 누드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또한 그는 라스베가스 쇼걸들을 따라 다니거나 술집 화장실에서 주정뱅이와 주먹싸움을 한 사실도 솔직하게 공개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는 자신의 명성 때문에 몰려드는 수많은 청중들을 속이기 위해서 연사로 다른 엉뚱한 사람의 이름을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파인만은 겉치레와 위선을 혐오하고 수수께끼와 도전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마술을 배워 실험하다 손을 데는가 하면, 독심술사 흉내를 내기도 하고, 병든 아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사냥개처럼 냄새로 물건을 알아맞히기도 했다.
실험 정신과 직관적 사고에 기초
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프린스턴대에서 아인슈타인, 파울리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 앞에서 세미나를 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는데, 그것은 다른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자유로운 발상을 했던 창의적인 사고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한두살 때부터 커다란 포장용 나무 상자 안에 곤로, 축전지, 램프대, 소켓, 스위치 등을 갖춘 자신만의 실험실을 꾸며놓고 그곳에서 온갖 실험을 했다. 스파크를 일으키다가 집에 불을 낼 뻔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보물섬에서 혼자만의 과학 탐구에 몰두했던 것이다.
그의 실험 정신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 수학 클럽에 참여해 직관을 통해서 대수계산을 빠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자기만의 기호를 고안해 삼각함수를 표기했고, 또 이를 이용해 삼각함수 공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MIT 재학 시절에는 무의식에 대한 리포트를 위해 매일 밤 자기 꿈을 치밀하게 관찰했으며, 식료품 통에 개미가 꼬이지 않게 하려고 매일 창틀에 모인 개미의 습성을 치밀하게 연구하기도 했다.
파인만의 창조적 과학 연구의 기초는 바로 이러한 실험정신과 경험에서 얻어지는 실제적인 예를 통해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그의 사고 습관이었다. 어떤 문제를 풀 때 가능하면 실제적인 예를 가정해 봄으로써, 구체적인 물리 현상을 통해서 좀더 분명하게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 접근해 수학적 기법과 전개과정이 아닌 물리학적 개념 그 자체에 접근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유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이었다. 그의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으며, 추상적인 계산을 구체화함으로써 놀랍도록 정확한 양자전기역학 계산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따뜻한 가슴이 아쉬운 물리학자
자유분방하고 인간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에 대한 파인만의 서술은 매우 아쉬운 대목으로 남아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한 뒤 그는 “우리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시작했고, 열심히 한 덕분에 성공했다. 이것은 즐거운 일이고,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고 쓰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사람이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살상무기에 대해서 한 평가라 하기에는 너무나 무감각하고 냉랭하다. 원자폭탄의 시험 폭발 직후 자신의 지프차 위에서 봉고를 두드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무런 인간적 고뇌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이젠베르크의‘부분과 전체’에서 그려졌던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한 오토 한(Otto Hahn)의 처절한 절규, 그리고 원자폭탄 개발 이후 평생을 반핵 운동에 헌신했던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의 반성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머리는 뛰어나지만 가슴이 뜨겁지 못한 우리의 천재를 보는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20세기 대표적인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은 뉴욕의 파로커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세기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이주한 유태인 가족 출신이다. 1939년 MIT를 졸업하고, 1942년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코넬대에서, 1951년부터 198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1965년 슈빙거(미국)와 도모나가(일본)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물리학자로서는 많은 양의 저술을 남긴 편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록’(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물리법칙의 특성’(The Character of Physical Law) ‘QED’(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 등이 유명한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물리학 강의록은 전세계의 수십여개국 언어로 번역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독특한 스타일과 물리학적 직관에 의한 접근 등 매우 뛰어난 저술로 평가받고 있는 이 책이 오히려 그의 가장 대표적인 과학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