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적외선 투시카메라보다 월등한 뱀의 시력

동물마다 달리 보이는 세상

동물은 매우 다양한 눈을 가지고 있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간다. 동물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자기 나름의 눈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다양한 세상을 만나보자.

우리는 눈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만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세상이 아름다운 사물로 가득 차있다는 사실을 잊고 눈에 무관심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조금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정말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주위에 펼쳐져 있다.

인간의 눈은 1만7천가지의 혼합색을 구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정밀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깨를 으쓱거릴 이유는 없다. 인간이 보는 세상은 단지 0.4-0.75㎛(1㎛=${10}^{-6}$m)의 파장을 가진 빛이 인간의 눈에 맺혀 생긴 불완전한 세상일 뿐이다. 사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빛의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동물이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에 자만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 말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어떤 동물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 다른 모양으로 존재하는 세상. 동물마다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접해보자.

뇌에서 최종영상 만들어져

동물의 눈에 비친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상 동물의 눈에 관한 생리·해부 또는 행동학적 자료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 유추를 통해 동물이 보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각이라는 개념 자체도 전적으로 개개인의 감각에 의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본 노란 개나리를 다른 사람이 똑같은 색깔로 바라보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다만 눈의 구조가 같기 때문에 색깔이 같다고 가정할 뿐이다.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은 눈에 들어온 다양한 빛을 뇌가 해석한 내용이다. 일단 빛이 눈에 들어오면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초점을 맞춰 망막에 상을 맺히게 한다. 망막에 있는 신경세포는 빛을 신경자극으로 바꿔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뇌는 그 정보들을 조합해 영상을 만들어낸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의 저서 ‘물리학강의’에서 “눈은 세상을 보기 위해 뇌가 발달한 것”이라고 표현했듯, 인간이 보는 세상은 뇌가 해석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눈에 있는 수정체가 볼록렌즈이기 때문에 실제 인간이 보는 세상은 뒤집어진 세상이다. 뇌는 정보를 수정해 위·아래 상을 바꿔 바르게 잡아준다.

망막에서 빛을 감지해 신경자극으로 바꾸는 역할은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한다. 원추세포는 밝은 빛 아래서 다양한 색을 감지하고, 간상세포는 형태와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인간의 경우 대략 7백만개의 원추세포와 1억2천5백만개의 간상세포를 가지고 있다. 원추세포에 비해 간상세포는 아주 희미한 빛도 감지하는데, 어두운 곳에서 무채색의 세상이 보이는 것은 간상세포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4-8배 날카로운 매

가장 민감한 눈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높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관찰하는 새다. 예를 들어 매와 독수리는 인간에 비해 4-8배나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해부학적으로 새의 머리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크다. 눈이 크면 시각 정보를 축적할 영역이 넓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

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시각을 자랑하는 종류는 바로 매다. 매는 높은 하늘을 날며 상당히 넓은 지역을 명확히 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눈과는 구조가 약간 다르다. 눈에 있는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는 망막 중앙에 약간 들어간 황반이라는 부분에 집중해 분포한다. 황반은 특정 사물에 눈을 집중시키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인간의 눈은 각기 하나의 황반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인간의 눈에 황반이 없다면 눈에 맺히는 정보가 너무 많아 책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매는 앞쪽을 향한 황반과 옆쪽을 향한 황반을 각각 두개씩 양쪽눈에 가지고 있다. 또한 매의 황반에는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가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는데 이 밀도는 인간의 약 다섯배 정도다. 따라서 매는 훨씬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이들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매의 눈이 아무리 날카롭다고 해도 최고는 아니다. 매는 밝은 빛 아래서는 놀라운 시력을 뽐내지만, 해가 떨어지면 거의 장님이 되고 만다. 희미한 빛 아래에서 형태와 움직임을 포착하는 간상세포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양이 눈이 밤에 빛나는 까닭
 

동물들의 다양한 세상 엿보기


여러 동물의 세상보기는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생활방식의 차이, 그리고 그에 따른 적응과 진화를 나타낸다. 땅 속에서 생활하는 두더쥐는 명암을 제외하곤 거의 사물을 감지할 수 없는 빈약한 눈을 가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는 어차피 시각이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땅 위의 바깥세상에서는 빛의 양이 중요한데, 빛에 대한 감도는 동물마다 현저히 다르다. 빛의 양이 밤과 낮, 그리고 날씨와 지형 등의 조건에 따라 크게 변하기 때문이다. 낮에 활동하는 동물과 낮에는 자고 밤에만 먹이를 찾는 야행성 동물은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주로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동물의 경우, 두더쥐처럼 아예 눈이 퇴화할 수도 있지만 아주 민감한 눈을 갖게 된 사례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한낮에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밤이 되면 깨어나서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동물, 바로 고양이다.

고양이는 어두울수록 눈이 빛을 발하며 자유롭게 활동한다. 눈의 구조를 살펴보면 인간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아닌 위·아래로 길쭉한 독특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길쭉한 눈동자는 인간의 눈동자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만큼 가늘게 수축할 수 있다. 수축된 눈동자는 아주 미세한 빛을 모을 수 있고 영상의 농담도 명확히 해준다. 고양이가 어둠 속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다.

또 고양이는 희미한 빛을 최대한 감지하기 위해 망막 뒤에 거울과 같은 반사막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막은 망막이 흡수하지 못한 빛을 다시 흡수한다. 이 두번째 막에서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는 빛 때문에 고양이의 눈이 어둠속에서 빛난다.

야행성 동물인 올빼미의 눈 역시 고양이처럼 반사막을 가지고 있고, 커다란 눈동자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한다. 올빼미는 인간과 비교해서 1백분의 1정도의 빛만 있어도 같은 정도로 뚜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신호등 색을 구별 못하는 맹도견

1999년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식스 센스’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아이를 등장시켜 흥행에 성공했다. 가상의 영화와 비슷하게 동물은 영혼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대표적인 동물은 바로 인간의 오랜 친구인 개다. 한때 유럽에서는 개가 유령과 악령, 그리고 죽음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도 개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보고 짖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놀라운 후각과 청각을 가지고 있는 개는 시각이 매우 약하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우에는 바로 앞에 있는 주인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하지만 야성을 간직하고 있는 개의 시각세포는 움직이는 물체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개는 완전한 색맹이어서 색깔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개가 보는 세상은 뿌연 흑백텔레비전의 화면과 같다. 맹도견의 경우 교차로에 설치된 녹색과 붉은색 신호등을 구별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안전하게 인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맹도견이 색을 구별하기 때문이 아니고, 신호등의 점등 위치를 혹독하게 훈련받은 결과일 뿐이다.

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류는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포유류 중에서 색을 구분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과 원숭이 종류뿐이다. 스페인에서 많이 행해지는 투우에서 붉은 깃발이 소보다 사람을 흥분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소는 붉은색은 물론 검은색조차 잘 구별하지 못한다. 소는 단지 투우사가 깃발을 흔드는 움직임을 보고 달려드는 것이다.

개나 소가 색맹인 이유는 무엇일까. 색을 구별하는 원추세포는 붉은색(Red), 녹색(Green), 파란색(Blue)을 구별하는 세종류가 있다. 이들 세포가 감지하는 빛이 조합돼 바로 다양한 색을 가진 영상을 만들어낸다. 포유류는 진화적으로 칼라영상을 보여주는 원추세포가 흑백영상을 다루는 간상세포보다 발달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포유류는 망막에 간상세포만을 가지고 있거나, 원추세포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수가 부족하다. 포유류가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것은 포유류의 공동조상이 색깔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야행성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알몸을 감상하는 뱀


알몸을 감상하는 뱀


에덴 동산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만든 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있다. 뱀은 인간이 볼 수 없는 빛, 즉 가시광선의 붉은색 바깥에 있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눈에 있는 신경세포는 가시광선에만 반응한다. 그런데 뱀은 눈 아래 구멍에 독특한 신경세포인 골레이세포(golay cell)를 가지고 있어 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

적외선은 기본적으로 열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체는 적외선을 방출한다. 만약 뒤에 있는 물체가 앞에 있는 물체보다 많은 열을 발산한다면, 뱀은 뒤에 있는 물체를 우선적으로 보게 된다.

최근 사람의 옷을 투시해서 볼 수 있는 카메라가 등장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카메라는 옷보다 더 많은 열을 가지고 있는 피부에서 내보낸 적외선을 잡아 영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이 결국 알몸이 되는 것이다. 현재 수준에서 촬영된 영상은 칼라가 아닌 흑백이고 명암만 구별이 된다.

뱀이 보는 적외선 세상이 투시카메라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그 영상과 똑같지는 않다. 투시카메라는 단지 적외선을 탐지해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으로 변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는 다양한 색은 가시광선이 파장에 따라 무지개의 빨간색에서부터 보라색까지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 나타난다. 가시광선과 마찬가지로 적외선 역시 연속적인 파장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각각의 파장은 서로 다른 색을 나타낼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가시광선만 볼 수 있는 인간이 뱀이 보는 적외선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가운 섬뜩함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뱀이 바라보는 세상을 나타낸 사진.뱀은 인간이 볼 수 있는 빛 이외에 적외선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입은 옷을 투시해 볼 수 있다.인간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세상이다.


개구리의 회색빛 시야

개구리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세상을 두눈에 간직하고 있다. 개구리의 눈은 고정돼 있다. 고정된 눈은 움직이지 않는 어떤 사물도 볼 수 없다. 이 사실은 눈에 빛을 비출 때 나타나는 신경신호를 조사해 밝혀졌다. 즉 고정된 개구리의 눈에 처음 들어간 빛은 신경세포를 자극해 신경신호를 만들지만, 같은 신경세포에 계속 비춰지는 빛은 연속적으로 신경신호를 만들지 못한다. 물고기의 눈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눈 역시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아주 잠깐밖에 보지 못하는데, 우리가 이 사실을 직접 알아차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눈은 쉬지 않고 미세하게 떨리고 움직여서 같은 빛이라도 계속 신경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여름날 물가에서 정지된 듯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앉아 있는 개구리를 쉽게 볼 수 있다. 고정된 눈을 가진 개구리가 그때 바라보는 광경은 아무 사물도 없이 회색의 옅은 안개로 뒤덮힌 광경이 전부다.

미동도 하지 않은 개구리가 보는 세상이 지루하고 단조롭다고 해도 개구리의 눈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개구리가 보는 세상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단 하나도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쓸데없이 이것저것 보는 대신 필요한 것만 확실히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가만히 앉아 있는 개구리 옆에 작은 파리 한마리가 날아간다. 개구리가 보는 세상은 회색세상을 배경으로 기어다니는 파리가 전부다. 그 파리가 개구리의 시야에서 도망치는 일이 가능할까.


한가롭게 개울가에 모습을 드러내는 개구리가 바라보는 세상을 나타낸 사진.개구리의 색다른 눈은 물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따라서 사진처럼 바라보는 대상이 움직여야만 볼 수 있다.


곤충이 바라보는 모자이크 세상

곤충의 눈은 그 모양에서부터 상당히 다르다. 홑눈이 아닌 겹눈이다. 겹눈은 홑눈이 수천개가 모여서 이루어진 눈이다. 개개의 홑눈은 각막과 수정체에서 망막세포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시력은 지독히 근시다. 결국 곤충이 겹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모자이크 같이 엉성한 세상이다.

곤충의 눈이 물체의 모양을 감지하는데 서투르다고 해도, 그들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모자이크 세상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그 움직임이 더욱 과장돼 보이기 때문에 어떤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파리는 시력이 나쁘기 때문에 인간이 다가서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파리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즉 손이 10cm 이내로 접근하는 순간 파리는 이것을 감지하고 재빨리 도망가 버린다.

곤충은 색을 볼 때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을 뽐낸다. 나비와 꿀벌 등을 비롯한 여러 곤충들은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 자외선은 무지개의 보라색에서 뻗어나가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빛의 영역이다.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은 자외선이 만드는 세상 역시 뱀의 적외선 세상처럼 다른 빛만 볼 수 있는 인간이 상상하기는 어렵다.

​자외선 감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통해 나비와 꿀벌이 보는 세상을 유추할 수 있다. 자외선 감지 카메라로 꽃을 찍어보면, 같은 색으로 보이던 꽃이 꿀이 있는 중앙으로 갈수록 더욱 진하게 보인다. 인간의 눈에는 한가지 색으로 보이는 물체가 자외선 세상에서는 다양한 색을 가지는 것이다. 나비와 꿀벌은 그들 눈에 비친 세상에서 더 많은 꿀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인간은 꽃의 아름다움의 일부만 감상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물리학
  • 심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