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Ⅱ. 본격적인 유전자 시대 개막 알린 영광의 주역들 : 2 수도원에 뿌려진 작은 씨앗에서 피어난 신기원

멘델에서 게놈프로젝트 완성까지

달착륙에 비교되는 인간게놈프로젝트 완성. 신기원에 도달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까. 인간게놈해독을 완성하는데 밀알이 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본다.

2001년 2월 전세계의 언론을 달구고 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 신기원을 이룩하기까지 지나온 길은 그리 짧지 않다. 현재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하기까지 지난 역사는 크게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하고 유전학에 대한 기초가 확립되는 시기다. 두번째는 유전물질로 생각되는 DNA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로 1953년 왓슨과 크릭에 의해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진다. 세번째는 DNA가 세포 내에서 실제 어떻게 작동해 유전물질을 전달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시기다. 마지막은 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돼 게놈분석이 완료된 현재까지다.

1856년 오스트리아의 그레고어 멘델이 수도원의 작은 정원에 완두콩을 사용한 유전학 실험을 시작했다. 멘델은 1865년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지만, 아무도 이 대발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1868년 독일의 생화학자 프리드리히 미셔는 백혈구 세포의 핵에서 인과 질소가 들어있는 물질을 발견했다. 바로 DNA(Deoxyribonucleic acid)다. 그러나 DNA가 단지 네종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복잡한 유전을 결정하는 물질로 믿기는 어려웠다.

1900년 네덜란드의 드 브리스 그리고 독일의 카를 코렌스와 에리히 체르마크에 의해 멘델 유전법칙의 재발견이 이뤄졌다.

1909년 덴마크의 식물학자 빌헬름 요한센은 유전을 담당하는 인자를 뜻하는 용어로 유전자(gene)를 최초로 사용했다.

1920년 유전을 담당하는 물질로 염색체들이 제안됐다. 이것은 미국의 생화학자 토머스 모건의 초파리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1943년 미국 록펠러인스티튜트의 오스왈드 에이버리는 스트렙토코코스라는 박테리아의 DNA가 병을 일으키며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1950년 미국의 생화학자 어윈 샤가프는 DNA를 이루는 아데닌(A)과 티민(T), 구아닌(G)과 시토신(C)이 항상 같은 양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DNA의 염기가 쌍을 이룬다는 단서였다.

1951년 영국의 생화학자 로잘린 프랭클린은 X선회절현상을 이용해 DNA를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1952년 알프레드 허시와 마샤 체이스가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DNA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기본 물질이라는 주장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1953년 미국의 제임스 왓슨과 영국의 프란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를 완벽히 설명했다. 바로 DNA가 이중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발견으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국의 제임스 왓슨과 영국의 프란시스 크릭


1956년 영국의 생화학자 아서 콘버그(왼쪽)는 DNA를 합성하는 효소를 분리해 인위적으로 DNA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의 생화학자 리베로 오초아(오른쪽)는 리보핵산(RNA)의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1958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크릭은 유전정보가 DNA에서 RNA 그리고 단백질로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센트를 도그마(central dogma)라 불리는 이 이론은 이후 현대 생물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 이론으로 자리잡게 된다.

1960년 스위스의 생물학자 베르너 아르버는 대장균에서 특이한 효소를 발견했다. 바로 DNA라는 거대 분자를 연구할 수 있을 만큼 작게 자를 수 있는 제한효소였다.

1961년 프랑스의 생화학자 앙드레 르포프와 프랑수와 자코브, 자크 모노는 DNA의 유전정보를 mRNA가 단백질의 합성장소인 리보솜에 전달하며, 여기서 mRNA의 염기서열이 단백질로 번역된다고 주장했다.

1966년 미국의 생물학자 코빈드 코라나와 마샬 니런버그에 의해 DNA의 유전부호가 각각 뜻하는 아미노산이 밝혀졌다. 한편 같은해 DNA가 염색체뿐만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1968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세포화학자 토비언 캐스퍼슨과 로어 첵은 염색체를 구별하는 핵형분석법(karyo typing)을 발명했다. 유전자 지도 작성이 가능해졌다.

196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다니엘 네이선스는 제한효소를 바이러스에 최초로 도입됐다.

1970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헤밀턴 스미스는 자르는 부위를 알 수 있는 제한효소를 발견했다. 최초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1973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생물학자 스탠리 코헨과 캘리보니아대의 생물학자 허버트 보이어는 자연적으로 짝이 될 수 없는 두 DNA를 합치는데 성공했다. 즉 유전공학이 바탕이라는 재조합 기술이 선보인 것이다.

1976년 최초로 박테리아에 삽입된 인공적인 유전자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1977년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알란 맥삼과 웰터 길버트,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거(왼쪽)는 DNA 염기 배열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게놈 연구가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한편 바이러스의 DNA가 최초로 해독됐다.

1984년 미국 시터사에 있던 캐리 멀리스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이라 불리는 기계를 개발됐다. PCR은 시험관 내에서 DNA를 증폭시키는 방법이다. 이제 아주 작은 양의 DNA만 있어도 PCR을 통해 대량생산해 연구가 가능해졌다.

1987년 미국 특허청은 모든 생명체는 특허 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결정했다. 유전자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1988년 국립보건원(NIH)과 에너지성(DOE)은 인간게놈프로젝트 진행에 합의했다.

1990년 다국적팀에 의해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990년 다국적 인간게놈 프로젝트


1994년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는 다국적팀에 대항해 게놈연구를 시작했다.

1996년 효모의 전체 게놈이 해독됐다.

1998년 선충의 전체 게놈 해독이 완성됐다. 벤터가 바이오벤처 셀레라를 설립했다. 인간 게놈 해독을 위해 다국적팀과 셀레라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2000년 다국적팀과 셀레라가 공동으로 인간게놈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식물게놈프로젝트의 첫 대상, 바로 양배추과에 속하는 애기장대의 전체 게놈이 해독됐다.

인간의 전체 게놈지도가 다국적팀과 셀레라에 의해 완성됐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