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사자자리는 동양에서는 누런 용, 즉 황룡으로 등장한다. 바로 헌원 별자리다. 옛 전설에는 용이 몸을 한번 틀면 비가 온다고 하는데, 헌원이 나타난 봄에 비가 오는 것도 이 때문일까.
3월의 밤하늘은 봄철 별자리들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별자리하면 사자자리가 떠오른다. 헤라클레스는 제 힘만 믿고 날뛰는 사자를 응징하고, 자신의 용감함을 자랑하고자 그 사자의 가죽을 벗겨서 둘러쓰고 다녔다. 서양의 위대한 문학작품 중 하나인 플루타크 영웅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3월의 별밤을 잠시 거닐어보자. 늦은 저녁 서녘으로 오리온이 걸려 있고, 쌍둥이자리가 뒤따르며, 게자리에 있는 산개성단 프레세페가 가물가물 보인다. 조금 더 눈길을 동녘으로 돌리면, 사자자리가 떠오른다. 북쪽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떠있고, 사자자리와 북두칠성 사이에 옛별자리 삼태성이 빛나고 있다. 북극성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고, 그 너머엔 카시오페이아가 북녘 하늘가에 가물거린다.
이들 별자리는 밤하늘에서 두드러진 별무리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 시베리아에 사는 작은 부족인 축치족도 봄 밤하늘에 자기 나름의 별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짐승을 치는 일을 주로 하는 그들이었기에 밤무대의 주인공 역시 사냥꾼이었다. 다름아닌 오리온자리의 별들을 사냥꾼이라고 보았다.
사냥꾼은 사냥감인 플레이아데스와 쌍둥이자리를 쫓고 있다. 쌍둥이자리는 엘크 사슴 두마리라고 보았다. 사냥꾼의 아내는 사냥꾼과 함께 이들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양쪽으로 몰고 있다. 바로 사자자리가 사냥꾼의 아내다.
사자자리 북쪽에는 여섯명의 돌팔매꾼이 여우 한마리를 뒤쫓고 있다. 이것은 축치족이 북두칠성 일곱별을 보며 상상한 모습이다. 북쪽 지평선에 나즉이 걸려 있는 카시오페이아는 사슴 다섯마리로 생각했다.
용이 사는 강 미리내
사냥꾼의 아내라던 사자자리는 우리 동양에서는 헌원 별자리로 보았다. 사자자리의 으뜸별은 레굴루스라 해서 하늘의 지배자란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별은 동양에서 헌원대성이라고 불렀으니, 헌원 별자리에서 두드러지게 밝은 별이란 뜻이다. 자 그런데 헌원이라니 그게 누굴까? 한마디로 헌원은 중국 사람들의 단군 할아버지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헌원의 어머니 부보가 들판에서 기도를 올리다가 큰 번개가 북두칠성의 첫째별인 천추성을 감싸도는 것을 보고 헌원을 잉태했다고 한다. 부보는 스물 넉달만에 수구라는 언덕에서 헌원을 낳았다. 헌원은 어릴 때부터 영특했고, 견문을 많이 쌓아 사리가 분명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 후 혼란한 시대를 평정하고 이민족을 정벌해, 오늘날 중국 민족의 시조가 됐다.
헌원을 황제라고도 했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하늘에 누런 용, 즉 황룡이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헌원을 황룡이라고 생각했고, 이름 붙이기를 누런빛 임금, 즉 황제(黃帝)라고 불렀던 것이다. 헌원 별자리는 사자자리의 앞몸과 머리 부분을 포함하는데, 머리 부분에서 치켜 올라간 부분이 황룡의 꼬리고, 좌우로 뻗은 사자의 다리 부분이 황룡의 다리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용은 강이나 깊은 산 연못 속에 살고 있다가, 승천하면서 많은 물기를 하늘로 품고 올라간다. 이런 이유로 하늘에도 물이 있고, 우리는 이것을 은하수라고 하는데, 그 안에도 용이 살고 있다. 그래서 은하수의 우리말 이름은 미리내다. 미르는 용을 일컫던 순수한 우리 옛말이고, 내는 강물을 뜻하는 우리말이니, 미리내의 말뜻이 이젠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리 옛 전설에 따르면 용이 몸을 한번 움직이면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린다. 그래서 이때쯤 봄비가 내리는 것일까.
다섯임금 모여 회의하는 곳
사자자리의 꼬리 부분에는 유명한 2등성이 보인다. 데네볼라라는 별인데, 꼬리를 뜻하는 데네브란 말에서 왔다. 여름철 별자리인 백조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도 백조의 꼬리이기 때문에 데네브란 이름이 붙었고, 고래자리의 꼬리에도 데네브 카이토스라는 이름의 별이 있다.
데네볼라는 동양에서 오제좌라고 불렀다. 오제는 중국 전설상의 삼황오제 가운데 다섯 임금 오제를 말한다. 오제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다스리는데, 중앙은 누런빛 임금 헌원, 동방은 푸른빛 임금 복희, 남방은 붉은빛 임금 신농, 서방은 하얀빛 임금 금천(소호의 다른 이름. 또는 치우라는 설이 있음), 그리고 북방은 검은빛 임금 전욱이 각각 다스린다고 고대인들은 믿었다. 이 임금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곳이 바로 오제좌 별자리다.
각 임금들의 이름은 방위와 색깔이 대응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가 다섯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는 고대인의 믿음인 오행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 동양 별자리는 바로 이 오행 개념으로 나눴다. 땅에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있고, 하늘에도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고분 속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사방에 벽화로 멋지게 그려놓았는데, 이를 사령 그림이라고 한다. 우리가 주목하진 않았지만, 고분의 천장에는 황룡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어떤 학자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사령들을 무덤 속에 그린 까닭이, 사령들이 죽은 이의 영혼을 지켜주리라는 염원에서라고 말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게 아니라 사령은 별자리를 그려놓은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별자리 관련 그림들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알아보면, 초기 무덤에는 별자리를 직접 그렸고, 나중에는 사령과 별자리를 함께 부위를 맞추어 그리다가, 마지막에는 사령만을 굉장히 세밀하게 그리는 단계로 변해감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령은 그저 방위를 지키는 신이라기보다는 별자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별자리와 함께 잠든 고구려왕
그러면 왜 고구려 사람들은 별자리나 별자리를 나타내는 상징을 무덤 속에다 그려두었을까. 고구려의 시조는 추모왕(주몽왕)인데, 하백의 딸인 유화와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의 아들로 알에서 태어났으나, 북부여 왕과 왕자들의 시기를 받아 남으로 도망해 고구려를 세웠다. 이 이야기를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적어둔 것이 있다. 바로 고구려 광개토왕의 왕릉에 세워둔 비석이 그것이다.
광개토대왕릉비의 앞부분을 보면, 고구려의 건국자 추모왕부터 광개토왕까지의 역사가 짤막하나마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이 비문의 앞머리는 고구려가 비롯된 사연을 적고 있으니, 해모수의 북부여에서 도망하던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이 부여의 큰 강, 엄리대수에 이르러 무엇이라 외쳤는가.
“나의 아버지는 하늘 임금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거북들은 떠올라 다리를 만들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추모왕의 죽음을 전하는 부분을 의역해보면 “하늘님이 누런 용을 보내자, 왕이 동쪽 언덕에서 용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돼있다. 그리고 광개토왕의 죽음을 “하늘도 돌보지 않으셨다”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고구려 왕실의 조상들이 하늘에서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증명하는 고고 유물이 있다. 광개토왕의 신하였던 북부여 수사 모두루의 무덤 속에 적혀 있는 붓글씨 묘지명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광개토왕을 일컬어 무엇이라 했는가. “해와 달의 아들이신 우리 광개토대왕…”이라고 적혀 있지 않는가.
고구려 사람들은 왕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원래 동양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으로 가고, 영혼은 하늘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임금의 혼이 하늘로 무사히 올라감을 기원하려고 무덤 속에 별자리 그리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아직도 정교하게 증명해야 할 사항임은 분명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사람들은 영험한 별(영성)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중국 역사서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영성은 물론 영험한 별이란 넓은 의미가 아니라, 여름밤 견우별 아래에 보이는 천전성(天田星)을 가리키며, 옛 사람들은 이 별이 농사에 영험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별에 대한 제사는 영성에게만 지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구려 사람들은 별들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별에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지 옛 문헌에서 찾아보면,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임금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그 방위를 나타내는 색과 맞는 송아지를 잡아서 지내고, 다섯 행성과 뭇별들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는 양 아홉마리와 돼지 아홉마리를 추가로 잡아서 지낸다.”고 돼있다.
살아서 별들에게 송아지, 양, 돼지를 잡아서 제사를 올리던 고구려 임금이 죽어서는 둥근 무덤 방에 별자리를 그려놓고 그 속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영원한 잠을 자면서 그의 조상을 만나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때때로 고대인이 남긴 삶의 발자취가 현대인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뭄에 우물 찾아낸 개
요즘 해진 후 서쪽하늘에서는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 사실은 별이 아니라 금성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벽에 보이는 금성을 샛별, 저녁에 보이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로 불렀다. 샛별의 ‘새’는 동쪽을 뜻하는 우리말이고, 개밥바라기는 개가 밥을 바란다는 말이니, 저녁에 이 별이 보일 때쯤 개가 배가 고플테니 밥 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자기자리를 옮기지 않는 별들과 달리 행성들은 하늘에서 매일 조금씩 자리를 옮겨 다닌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행성은 다섯개가 있는데, 바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이들은 해와 달과 합쳐서 ‘칠정’이라고 부른다. 달력에서 요일의 이름이 여기서 왔다.
아쉽게도 금성을 제외한 다른 행성들에는 우리말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문헌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정겨운 우리 이름이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주변에 알아봤으면 좋겠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개밥바라기가 착한 선비를 도와준 이야기를 들어보자.
옛날 어느 고을에 가난한 선비 부부가 자식들도 없이 홀로 살았다. 선비는 훈장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선비 부부는 아무런 욕심도 없는 사람들이라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글삯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마을의 인심이 각박해져서 선비 부부를 도와주러 나서는 마을 사람은 없어졌다. 굶주림을 견디던 선비는 야윈 아내를 바라보다가 새벽에 바람이나 쐬려고 논길을 거닐게 됐다. 들판엔 누렇게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하늘에선 샛별이 선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비는 문득 벼이삭을 몇개 훑어가서 허기를 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짓이었기 때문에 양심상 차마 그러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선비의 뒤를 좇아 개 한마리가 졸랑졸랑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개는 매일 사냥을 해서 꿩이나 토끼 등을 물어 왔다. 노부부는 이것을 먹기도 하고 내다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하게 됐다. 하지만 어느해 흉년이 들자 노부부는 짐승들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양식을 마련하기도 힘들었다. 더군다나 논이 바짝 말랐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걱정은 태산같았다. 착한 선비는 마을 사람들이 걱정돼서 잠을 못이뤘다.
그러던 어느날 개가 선비의 바지 가랑이를 물고 어디론가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개를 쓰다듬어주고는 개를 따라 길을 나섰다. 개는 어느 산자락으로 가더니 앞발로 땅을 파대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땅밑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선비는 이곳에 우물을 파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마을 사람들은 선비의 제안에 따라 그곳에 우물을 팠고, 가뭄을 간신히 넘겼다. 가을에는 풍족하게 추수했고 모두가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자신들이 선비 부부에게 마음을 써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후 사람들은 힘을 합쳐 노부부의 생계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우물을 찾아낸 개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어느날 저녁에 선비가 개를 쓰다듬어 주면서“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자 개는 컹컹 짓더니 담을 넘어 서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쪽에는 밝은 개밥바라기가 반짝였고, 하늘에서낭랑한음성이들려왔다.“ 나는원래개밥바라기였는데,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고쳐주려고 땅에 내려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