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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뇌를 갈아 질병 원인 규명

보통 식인종이라고 하면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산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 머리 속에 심어져 있는 그런 식인종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자신의 부도덕함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사람들이다. 즉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산 사람을 잡아먹는 종족은 역사 속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원시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식인 풍습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뜻이 강하게 표현된, 아주 인간적인 사고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파푸아뉴기니아 동부의 산간오지에 살면서 식인 습관을 지닌 포어(Fore)족에게서는 이런 문화와 함께 놀랄만한 의학적 발견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다.

포어족의 여자와 어린이들에게는 ‘쿠루’라는 질병이 유행했는데, 이 병을 앓게 되면 언어장애와 보행장애,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상, 치매 등의 증상이 나타난 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1950년대 지가스(Vincent Zigas)에 의해 쿠루병이 처음 보고되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포어족이 섬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지한 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 오스트레일리아에 와 있던 미국 의사 가이듀섹은 쿠루병에 관심을 갖고 1957년부터 포어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원인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식인 습관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풍습’

포어족에게는 근친이 사망할 경우 시신의 살코기나 뇌를 뜯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즉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문화가 시신을 먹는 풍습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가이듀섹은 포어족이 시신을 섭취한 후 점차 시간이 흐르면 소뇌, 뇌간, 대뇌기저핵 등에서 신경세포가 탈락하거나 변성됨을 관찰했으며, 결국 신경계 질환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쿠루병도 일종의 감염성 질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1964년 환자의 뇌를 갈아서 조각난 덩어리들을 제거한 후 얻은 용액을 실험용 침팬지의 뇌에 접종시켰다. 지금처럼 인권이 중요하게 강조되지 않은 그 당시에는 환자의 뇌를 갈아서 실험용으로 이용하는 ‘끔찍한’ 일도 용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험 결과 18-30개월이 지나자 인체에서 나타나는 것과 거의 동일한 질병 증상이 침팬지에서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쿠루병이 아주 긴 잠복기를 거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연구는 쿠루병 외에 다른 중추신경계 질환도 지발성 바이러스(인체에 감염된 후 아주 느리게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신경계 질환 연구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또한 가이듀섹은 시신을 먹지 않는 성인 남자들에게서 쿠루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식인 습관과 쿠루병과의 상관성을 알아낼 수 있었다. 실제로 1959년부터 식인을 금지한 결과 쿠루병을 앓는 환자가 거의 사라졌다(드물게 환자 발생이 보고됐지만 1959년 이전에 감염된 사람이 뒤늦게 발병한 것으로 생각된다).

200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예병일 연세원주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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