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밝혀지기 시작한 때는 20세기 초반이다.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가 있고 이들이 서로 멀어진다는 사실을 관측한 사람이 바로 에드윈 허블이다.천문학계에서는 아인슈타인을 능가한다고 평가받는 그의 발자취를 뒤따라가보자.
지난 20세기 초만 해도 우주공간에 우리은하 말고 또다른 은하가 있을까 하는 문제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논쟁거리였다. 현재 가장 뛰어난 성능의 망원경으로는 북두칠성의 국자 안에서만도 수백만개의 은하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채 1백년이 안된 시간 동안 우리가 느끼는 우주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넓어진 것이다.
우주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끌어올린 데는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 1889-1953)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노력 덕분에 수많은 은하로 구성된 우주가, 팽창하는 드넓은 우주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으며 인류는 우주의 전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법률가에서 천문학자로
운동에 재능이 있었던 허블은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농구와 육상선수로 활약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했지만 천문학에 더 흥미를 느끼고 저명한 물리학자인 로버트 밀리컨의 강의를 들었다. 1910년에는 로즈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가서 법학공부를 계속하기는 했지만 미국으로 귀국한 후 시카고 대학에서 천문학과정을 마쳤다. 1917년 ‘희미한 성운의 사진 조사’ 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여키스천문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19년 서른살의 나이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망원경이 있던 윌슨산천문대의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훌륭한 망원경과 허블 자신의 정교한 관측기술, 그리고 천문학에 대한 열정은 현대우주론의 새로운 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라틴어로 구름을 뜻하는 성운(nebulae)은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구름’ 속에 가려진 천체였다. 별과 달리 작고 희미한 모양만으로 보이는 성운의 정체를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이들이 우리은하의 일부인지 아니면 우리은하 밖의 또 다른 별무리인지….
이미 18세기에 독일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는 ‘섬우주’라는 표현을 써서 몇몇의 성운들은 우리은하를 넘어선 곳에 또다르게 모여있는 별무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후 1908년까지 거의 1만5천개에 이르는 성운의 목록이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는 오리온대성운처럼 분명히 가스체로 확인되는 천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작고 뿌옇게 보인다는 특징 말고 특별히 설명하기 어려운 천체들이었다.
성운은 다름아닌 외부은하
이들 성운이 눈에 보이는 별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우리은하에 속해 있는 가스구름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만약 우리은하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천체라면 그들은 수십억개의 별이 모인 또다른 은하일 것이다.
당시 천문학계를 뒤흔들고 있던 성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성운들을 좀더 정확히 관측할 수 있는 더욱 큰 망원경이 필요했다. 때마침 윌슨산천문대에 1백인치(2.54m) 망원경이 가동됐고 허블은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1923년 허블은 안드로메다성운의 가장자리에서 몇개의 변광성을 발견했는데 밝기변화를 조사해본 결과 그 별은 다름아닌 세페이드형 변광성이었다. 당시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이용해 천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허블은 안드로메다성운이 약 90만광년 거리(이것은 현재 측정된 거리의 절반 가량이지만 허블이 사용한 거리결정변수가 달라 생긴 오차이며 그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에 있는 새로운 은하임을 밝혀냈다. 단순히 나선모양을 하고 있는 성운으로 알고 있었던 천체가 사실은 우리은하를 넘어선 곳에 있는 나선은하임이 밝혀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그렇게 큰 거리를 측정해본 사람은 없었다. 허블은 새로운 우주공간의 문을 열었다.
천문대 수위 출신의 파트너
허블과 함께 은하를 연구한 밀턴 휴메이슨은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원래 윌슨산천문대에 물품을 실어나르는 노새 달구지를 몰던 휴메이슨은 천문대의 수위 일을 맡았다. 간간이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돕다 관측보조원이 된 다음,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을 작동하고 자료를 얻는 일을 돕게 됐다. 결국 관측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천문학자가 될 수 있었다. 당시 한장의 은하사진을 찍거나 분광관측을 하는 일은 며칠 밤을 새워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고 한다.
허블과 휴메이슨은 1929년 1백인치 망원경으로 어두운 은하들의 스펙트럼 사진을 찍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거리가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우리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었다. 은하들의 후퇴속도가 거리에 비례해 빨라진다는 ‘허블의 법칙’이 밝혀진 것이다. 이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가장 중요한 천문학적 발견 가운데 하나로 우리가 팽창하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이론의 증거가 됐다.
허블의 법칙으로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먼저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퇴속도가 빛의 속도에 이르는 천체가 바로 팽창하는 우주의 가장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우주의 나이를 예측할 수 있게 됐는데 허블 자신은 20억년 정도로 계산했지만 현재는 1백30억년 정도로 모아지고 있다.
거대망원경과 함께 생애 마감
허블의 발견 전에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초기우주에 적용해보면 은하들이 팽창해간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정지우주를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은하들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하면 우주는 곧 붕괴되고 지금같은 우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방정식에 만유인력에 반대되는 우주상수(반발력으로 작용하는 진공에너지)를 넣었다. 그후 곧 허블이 우주팽창을 발견하자 아인슈타인은 우리우주가 정지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우주상수를 도입한 일이 “내 생애에서 가장 커다란 실수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른 은하들이 모두 우리로부터 멀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우주의 어떤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는 전체적으로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 어느 곳에서든 다른 모든 은하가 멀어져가며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움직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허블은 우주론의 새로운 마당을 열었다. 불과 1백년 전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별의 목록을 만들고, 태양계에 대해 연구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대체로 우리은하를 넘어서지 못했다. 허블은 다른 은하들의 존재를 밝혔으며 은하들을 형태에 따라 분류했고 정밀한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팽창우주의 개념을 자리잡게 했다. 허블의 법칙은 은하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이론의 중요한 길잡이가 된 것이다.
1953년 허블은 며칠 밤을 새워 관측할 준비를 하고는 생애 마지막 날을 팔로마산천문대의 거대망원경과 함께 했다. 실로 대천문학자다운 최후였다.
허블상수 구하기 어려운 이유
허블의 법칙은 멀리 떨어져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는 사실을 뜻한다. 법칙에서 허블상수는 은하가 멀어져가는 빠르기의 비율을 나타내는 비례상수로 우주가 얼마나 빨리 팽창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값이다. 따라서 허블상수를 정확히 알아내면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계산해낼 수 있다.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이 열쇠를 얻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론적으로 허블상수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충분히 멀리 있는 은하의 큰 후퇴속도와 은하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면 되는 것이다. 후퇴속도를 거리로 나눈 값이 바로 허블상수다. 그러나 은하의 후퇴속도는 적색편이(천체가 우리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스펙트럼상에 나타나는 흡수선이나 방출선이 적색쪽으로 이동하는 현상)를 관측해서 어느 정도 정확히 알 수 있지만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아내기는 정말 어렵다.
시차를 통한 거리측정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이웃별들로 한정되며 우리은하를 벗어난 거리에 있는 천체에 대해서는 무의미하다. 물론 다른 은하에서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찾아내면 되지만 이것 역시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변광성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안드로메다은하에서조차 허블이 18년 동안 관측해 확인한 세페이드형 변광성의 개수는 40개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지상망원경으로도 수십개 정도의 가까운 은하에서만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좀더 먼 은하들의 거리에 대해서는 초신성이 거리를 재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초신성 역시 필요할 때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거리를 결정하기 어려워지고 그만큼 허블상수를 결정하기도 까다로워진다.
고무줄같은 우주나이
허블 스스로는 허블상수를 5백30km/초/Mpc(1Mpc, 즉 3백26만광년 떨어진 은하가 초속 5백30km의 속도로 멀어진다는 의미)로 계산했고 이로부터 우주의 나이는 20억년 가량으로 추정됐다. 그후 여러 천문학자에 의해 얻어진 허블상수의 값은 계속 바뀌었다. 1956년 미국의 앨런 샌디지는 허블상수를 1백80km/초/Mpc로 계산했으며 그에 따라 우주의 나이는 허블의 계산보다 갑자기 세배나 커지게 됐다. 그후 허블상수의 값은 45km/초/Mpc로 떨어지기도, 다시 올라가기도 했다. 상수의 값에 따라 우주의 크기와 나이는 고무줄처럼 늘기도, 줄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허블상수가 확실히 정해진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주의 나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질량이라는 변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질량이 얼마냐에 따라 우주진화의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역사는 허블상수와 우주가 간직하고 있는 물질의 질량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주 곳곳에 퍼져있을지 모르는 진공에너지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우주의 역사를 밝히는 일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