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지 50년이 안된 레이저는 생활 곳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그런데 요즘 레이저의 2세대격인 청자색 반도체 레이저가 등장해 자신의 존재를 더욱 과시하고 있다.적색으로만 알려진 레이저가 청자색을 띤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레이저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SF 영화에 등장하는 레이저 총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오히려 실생활 속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레이저다. 집집마다 있는 CD 플레이어와 CD롬 드라이브, 초고속 통신망으로 이용되는 광통신, 그리고 근시교정이나 피부의 반점을 제거하는 외과적인 수술에 레이저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거나, 책이나 물건 등에 붙어있는 바코드를 인식하며, 미세 가공에 이용되는 것도 레이저다.
이처럼 레이저가 다방면에서 이용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레이저가 단일한 파장과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나오며 직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에너지를 좁은 면적에 집중시킬 수도 있다. 보통의 광원은 진행하는 동안 퍼져버린다. 이에 비해 레이저 광선은 곧장 진행한다. 이것은 산업현장에서 측량을 할 때 직선을 긋거나 거리를 잴 때 유용하게 쓰인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을 때 레이저 반사장치를 설치하고 왔는데 이를 이용해 달까지의 거리(약 38만 4천km)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또 에너지가 좁은 면적에 집중돼 금속을 자르거나 구멍을 뚫을 수도 있다. 엑시머 레이저를 이용한 안과 수술이 이를 이용한 것이다.
같은 에너지로 유도 방출된 빛
그렇다면 레이저는 어떻게 이러한 독특한 특징을 갖추게 됐을까. 이것은 레이저(LASER)가 유도 방출돼 증폭된 빛(Light Amplified Stimulated Emission Radiation)을 의미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모든 물질은 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전자가 있을 수 있는 에너지 준위는 연속적이지 않다. 낮은 준위에 존재하는 전자가 외부의 에너지(전기, 빛, 열 등)에 의해 높은 준위로 이동하고, 이동된 전자가 낮은 에너지 준위로 내려오면서 두 에너지 준위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를 자발발광(spontaneous emission)이라고 하는데, 그 에너지 차이에 의해 파장이 결정된다. 파장은 에너지 차이(ΔE)에 반비례한다.
매우 많은 전자를 높은 에너지 준위에 있도록 하면, 전자들은 한 전자가 내려오면서 방출하는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로 유도돼 방출된다. 이를 유도방출(stimulated emission)이라 하며, 이렇게 방출된 빛을 레이저라고 한다. 이러한 레이저 빛은 모두 같은 에너지로 유도방출되므로
단일한 파장과 위상을 가진다.
전구로부터 나오는 빛은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텅스텐 필라멘트는 코일 형태로 감겨있으며 그 전체가 빛을 발한다. 볼록렌즈의 초점에 광원을 두면 렌즈를 통과한 빛은 평행광선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또 렌즈로 집속해도 광원으로부터 나오는 빛의 방향이 여러 가지이고 파장도 여러 가지이므로 작은 면적에 집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레이저는 단일한 파장으로 좁은 면적에서 방출하기 때문에 집속하기 쉬운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집속된 에너지는 순간적으로 텅스텐에 구멍을 뚫을 정도다.
청자색 레이저 가능케 한 질화물 반도체
현재 유도방출을 일으키는 발광재료로는 기체와 고체, 그리고 반도체가 있다. 이런 고체와 기체의 레이저로는 여러 파장의 빛이 만들어진다. 고체 레이저로 여러 색깔의 레이저 쇼를 볼 수 있는 이유다. 수술용으로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 영역의 기체 레이저가 쓰인다. 기체와 고체 레이저는 반도체 레이저에 비해 출력이 크지만 크기가 크고 전력소모가 많아 사용하는데 제한점이 있다.
레이저하면 많은 사람들은 붉은색 광선을 떠올린다. 이것은 정보저장이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각광을 받은 반도체 레이저 덕분이다. 반도체 레이저로는 현재까지 적색이나 적외선 영역의 파장만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광원은 다른 물질에 비해 소형화와 경량화가 가능하고 반도체를 이용한 전자소자와의 집적도 가능해 정보통신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는데, 유도방출되는 소자를 레이저 다이오드(Laser Diode)라고 한다.
반도체 광원에서 파장은 반도체 물질의 밴드갭(bandgap)에 의해 결정된다.현재까지 레이저 다이오드로 실용화된 물질로는 갈륨비소계(GaAs)와 인듐인계(InP)의 화합물 반도체이다.이들의 밴드갭은 노란색보다 긴 파장을 가진다.현재까지 반도체 발광소자로 적색만이 사용 가능했던 이유다.그래서 연구자들은 오랜 기간 녹색과 파란색 등 보다 짧은 파장을 낼 수 있는 반도체 물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그 결과 갈륨질소(GaN)계열의 질화물 반도체가 얻어졌다.
질화물 반도체는 알루미늄(Al), 갈륨(Ga), 인듐(In)의 조성비에 따라 2백nm의 자외선부터 6백nm정도의 노란색까지 발광할 수 있는 물질이다. 이미 1971년에 판코브가 청색 자발발광소자(LED)를 제조함으로써 청색 발광물질로서의 가능성은 보여주었으나, 우수한 물성을 가지는 단결정 물질 형성이 어려워 실용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질화물 반도체 물질 형성에 대한 어려운 문제점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질화물 반도체를 이용한 청색과 녹색 LED가 시판됐을 뿐 아니라 1999년말부터 일본의 니치아사에서 4백10nm의 DVD용 청자색레이저(violet laser) 다이오드를 시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전문가들은 2003년경에 청자색레이저 다이오드를 이용한 DVD 플레이어, DVD 라이터 등이 시판될 것으로 본다.
정보를 더 촘촘히 기록
과학자들은 왜 그렇게 짧은 파장을 내는 반도체 발광소자를 찾은 것일까. 파장이 짧아진다는 것이 광기록 매체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광디스크 장치는 대물렌즈로 초점을 맞춘 레이저 광을 이용해 정보를 디스크 상에 기록하거나 재생한다. 따라서 빛의 초점 크기를 작게 할수록 기록밀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빛의 초점 크기를 무한히 작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편 빛의 초점 크기를 결정하는 회절 한계와 같은 물리적인 값은 광원 파장에 반비례한다. 실제로 짧은 파장을 사용할수록 파장의 제곱에 반비례해 기록밀도를 높일 수 있다.
현재 CD에 정보를 기록하거나 읽는데는 알루미늄갈륨비소계(AlGaAs)의 파장 7백80nm의 근적외선 레이저를 사용하며, DVD에는 알루미늄갈륨인듐인계(AlGaInP)의 6백35nm의 적색 레이저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적색레이저로는 72분짜리 음악, 15분짜리 비디오를 담는 CD나 4.7GB를 저장하는 DVD밖에 만들 수 없다.
차세대 기록매체로 응용될 DVD는 CD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비디오 테이프도 대체하려고 한다. 따라서 DVD에 요구되는 저장밀도는 최소 15GB 이상이다. 이는 고화질로 전송된 2시간 정도의 영상을 저장할 수 있는 양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저장밀도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더 짧은 파장의 광원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질화물 반도체를 이용한 4백10nm 정도의 청자색레이저다. 이를 이용하면 보통 화질의 영화 4편, 고화질텔레비전용 영화2편을 DVD에 저장할 수 있다. 적색레이저를 이용할 때와 비교해 엄청난 양이다. 이외에도 청자색레이저는 고해상도 레이저 프린터와 복사기 등의 광원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질화물 반도체로는 이보다 짧은 파장을 내는 것이 가능하나 현재의 DVD의 표면에 코팅되는 고분자층이 자외선 영역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자외선 영역의 빛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청자색레이저를 이용한 DVD가 실용화되면, 정보의 양이 급속히 증가하는 현실에서 매우 강력한 저장장치로 이용될 것이다. 현재 전세계 전자산업계가 전력을 기울여 연구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레이저의 수명과 광출력이다.가장 앞선 일본 니치아사의 제품이 재생용 출력5mW로 1만 시간을 자랑하고 있지만 상용화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또한 기록용으로는 30mW정도의 출력이 요구되나,이 출력으로 수백 시간 정도의 수명밖에 되지 않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청자색레이저의 수명은 70시간으로 일본에 비해 뒤지고 있으나 청자색레이저를 만든 나라가 몇 안되는 점을 감안하면 청자색레이저를 이용한 DVD가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2003년까지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청자색레이저가 담아내고 그려내는 세상을 상상해보자.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