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80년대 말 홀로그램이 처음 소개될 때만해도 사람들은 홀로그램에 대단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필자가 가끔씩 받는 단골 질문중의 하나는 홀로그램을 특정 공간에 완전한 3차원 입체로 주사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스타워즈’ 에는 악당에게 쫓기는 로봇이 공주의 메시지를 홀로그램으로 3차원 영상을 완전하게 재생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그런 장면을 연상하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 홀로그램 기술이 완전한 입체감을 공간에 재생할 수 있는데까지 발전하겠지만, 현실적으로 현재의 기술수준은 영화의 장면과 비교하면 매우 뒤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홀로그램에 대해 이해해야할 것은 홀로그램은 공간에 덩그러니 생기는 영상이 아니라 일반 사진처럼 필름과 같은 매질을 통해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진과의 차이
홀로그래피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3차원적인 기록 기술의 하나다. 홀로그램은 홀로그래피에 의해 기록된 매체를 말한다. 홀로그래피는 헝가리에서 망명한 영국 물리학자인 가버(Dennis Gabor)에 의해 1948년에 고안된 일종의 사진술이다. 사진처럼 물체를 보는 한 방향에서 물체의 단면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두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물체의 3차원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일반 사진술은 태양이나 기타 조명에 의해 피사체로부터 반사되는 빛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맺는 피사체의 상, 즉 빛의 강약 분포를 2차원적으로 기록한다. 반면 홀로그래피는 물체파(objective wave)와 기준파(reference wave)를 이용해 간섭무늬를 2차원적으로 기록한다. 물체파는 피사체에서 반사되거나 투사돼 나오는 빛을 말하고, 기준파는 물체파와 동일한 광원에서 분기(갈라져 나옴)된 빛이다.
빛의 세기를 기록한다는 면에서 일반 사진과 홀로그램은 같은 원리다. 그러나 일반 사진 필름은 물체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홀로그램 필름에는 물결 모양을 하고 있는 간섭 무늬가 기록돼 있다.
간섭 무늬의 기록을 위해서는 물체파와 기준파가 동일 광원에서 분기돼야 하고, 그 파면이 시간과 공간에 있어 일정하게 유지되는 빛(coherent light)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것이 바로 레이저다. 홀로그래피에 사용되고 있는 레이저는 간섭성이 좋은 것을 사용한다. 교육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레이저는 헬륨-네온 레이저인데 비교적 저가로 10cm 정도의 홀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10mW 레이저가 1백만원대다.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연속적으로 물결파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서로 다른 크기의 물결이 부딪치게 되면 물결은 가간섭을 일으켜 중첩된 물결모양을 만든다. 그런데 이런 물결파의 원리가 레이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간섭성이 좋은 레이저라도 두 개의 레이저에서 나온 빛은 간섭을 일으키지 않는다. 즉 물체파와 기준파를 만들기 위해 서로 다른 레이저를 사용하면 홀로그램을 기록할 수 없다.
홀로그램을 레이저로 홀로그램 필름에 기록하고 나면 현상을 한다. 이 과정은 감광물질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은염(silverhalide)계의 경우 현상, 정착, 표백, 건조의 네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홀로그램은 제작하는 사람마다 비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용카드에서 정보매체까지
홀로그래피에는 다양한 촬영 기법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투과형과 반사형으로 나눌 수 있다. 투과형 홀로그램은 홀로그램의 뒷면에서 재생광을 비춰 홀로그램 판을 투과한 빛에 의해 재생된다. 이렇게 홀로그램을 재생하려면 물체파와 기준파가 같은 방향으로 필름에 입사돼 필름에 수직한 간섭무늬가 기록돼야 한다.
이에 비해 반사형 홀로그램은 홀로그램의 앞면에서 재생광을 조사해 홀로그램 판에 반사된 빛에 의해 재생된다. 따라서 물체파와 기준파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필름에 입사돼 필름에 수평한 간섭 무늬가 기록된다.
신용카드나 포장지 등에 붙어있는 홀로그램은 엠보스(emboss) 홀로그램이라고 한다. 엠보스 홀로그램에는 주로 투과형으로 간섭 무늬를 기록한 포토폴리머(photo-polymer)를 사용하는데, 회절효율이 높고 현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무지개 홀로그램은 투과형 원판 홀로그램을 이용한 복제 홀로그램의 하나다. 무지개 홀로그램을 기록할 때는 원판 홀로그램을 폭이 3-4mm 정도의 슬릿(slit)을 가진 마스크로 가리고 이 슬릿을 통해 상이 재생되도록 한다.
무지개 홀로그램은 원판을 사용하지 않고 물체의 렌즈에 의한 상을 이용해 직접 만들 수 있다. 보통 신용카드에 붙어있는 무지개 엠보싱 홀로그램은 무지개 홀로그램을 원판으로 사용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홀로그램이나 일반 사진 모두 필름으로 입사하는 빛을 기록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반 사진의 필름은 일부가 손상되면 그만큼의 정보는 손실된다. 그런데 홀로그램은 파손돼 일부분만 남아 있어도 전체상을 재생시킬 수 있다. 이것은 큰 창문을 통해 외부를 보다가 그 창문을 작은 구멍만 남기고 다 가려도 그 구멍 가까이에서는 구멍을 통해 외부를 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물론 볼 수 있는 시야각이 좁아진다. 일부분으로 전체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이러한 홀로그램의 장점은 정보 기록의 방법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1980년도 초반 국내에도 홀로그래피가 소개돼 학계와 연구소에서는 주로 측정용으로 홀로그래피 소자의 개발과 응용을 연구했다. 90년대에 들어 전시회를 통해 홀로그램은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됐으며, 사진과 같이 예술적인 가치도 인정돼 예술인의 작품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적으로 국내의 시장에는 보안용 카드에 엠보스 홀로그램이 가장 먼저 도입돼 생산되고 있다. 또 CD 같은 전자 제품의 광학 부품으로 홀로그래픽 소자를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광고용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으나, 사용하게 되면 효과가 크리라 기대된다.
홀로그래피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은 홀로그래픽 소자의 개발과 더불어 완전한 자연색 재생이다. 홀로그래픽 소자는 1cm³당 10억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대량 정보 저장도 용이하다.
컬러 홀로그램은 필름의 개발과 삼원색 레이저의 개발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제작 능력이 부족하다. 서구에서는 취급과 대량 생산이 용이한 엠보스 홀로그램의 컬러화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의 관련 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머지 않아 홀로그램으로 제작된 상품 선전 카탈로그를 보게 될 것이다.
용어설명
회절
빛은 직진만 하지 않고 방해물이 있으면 진행방향이 바뀌는 현상이다. 빛이 아주 작은 틈새를 진행할 때 그 틈새 옆에서도 퍼진 빛을 볼 수 있다.
간섭
2개 이상의 빛이 합쳐질 때 두 물결이 합치는 것처럼 위상이 같은 경우에는 보강간섭이 일어나 파의 진폭(빛의 세기)이 더 커지고, 위상이 반대인 경우는 소멸간섭이 일어나 진폭이 줄어든다. 비누방울막이나 물위의 기름막에 줄무늬나 무지개 색깔이 보이는 것은 바로 얇은 막의 앞과 뒤에서 반사된 빛이 만나 간섭이 일어나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