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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천국'과 드라마 '카이스트'위기설

TV과학프로그램 뿌리내릴 것인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수업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하고,더 과학적이라고 평가받는 호기심천국.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준 드라마 카이스트.과학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열어준 두 개의 프로그램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인포테인먼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호기심천국은 사람들이 과학의 재미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는 평을 받았다.


과학적인 정보와 오락이 연계된 인포테인먼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호기심천국’. 과학도들의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정열과 환희를 표출해 과학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어준 ‘카이스트’. 그런데 과학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두개의 프로그램이 흔들리고 있다. 호기심천국은 아이템 고갈이라는 측면에서 드라마 카이스트는 청춘드라마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보다 더 과학적?

98년 3월 8일에 첫방송을 시작한 호기심천국은 과학과 오락을 연결시킨 신선함, 시청자 제보로 이끌어가는 구성상의 특징으로 학생층의 관심을 끈 것, 그리고 자문 선생님들과의 유기적인 관계가 3박자가 돼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래서인지 파급효과도 그만큼 크다.

지난 8월 5일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유준희 박사(한국교육과정평가연구원)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호기심천국의 내용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믿는 학생의 비율이 초·중·고등학생 전체 7백73명 중에 54%에 이른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는 그 비율이 64%에 이른다. 어린 학생일수록 호기심천국에서 다루는 내용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말이다. 또 호기심천국이 학교과학수업보다 더 재미있다고 응답한 학생도 78%에 해당한다. 이 연구결과에 대해 유준희 박사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호기심천국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정규 학교 과학교육과의 연계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천개의 풍선에 초등학생을 매달아 날리고, 액체 질소를 이용해 냉동시킨 붕어를 다시 살려내고, 방귀에 불을 붙이면서 호기심천국은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과학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덕환교수(서강대 화학과)는 “호기심천국 문제해결방법의 많은 부분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큰 종이비행기를 만들거나 종이열기구를 만드는 보습을 보면 예측과 가설에 바탕을 둔 실험이라기보다는 시행착오적인 모습만 드러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을 담고 있는 중간 과정을 누락시키는 것은 호기심천국 자문단의 전석천교사(숭문고)도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다.

지나친 단순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당황하면 물건을 두고간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사회자 1명을 대상으로 실험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 예다. 실제로 그같은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과학적인 실험을 하면서 단 1명의 실험자의 사례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볼 수 없다. 이것은 유준희 박사의 연구결과에도 나타난다. 학생들은 호기심천국이 결론을 이끌어낼 때 지나치게 단순화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재미없다고 지적했다.

과학프로그램인가? 오락프로그램인가?

또 한때 유행하던 ‘분신사마’ 열풍의 진위를 보인다며 학생들에게 주술적인 행위를 하도록 하고 이것을 방송한 것은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눈을 감고 서있는 사람들이 장풍에 쓰러지는 것은 심리적인 이유와 평형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장풍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남형석PD는 “호기심천국은 오락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며 순수과학프로그램만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학 프로그램을 도와줄 전문가 집단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품이 2-3배 드는 과학프로그램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할 방송 인력이 부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형석PD는 제작팀이 과학에 문외한이었던 것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는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궁금증을 해소해나갔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프로그램속으로 끌어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프로그램 기획면에서 한계로 작용할 수 있는 측면이기도 하다.

요즘 호기심천국은 말못할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프로그램이 2년 이상 방송되면서 신선함도 떨어지고 흥미롭게 전개시켜 나갈 소재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소재가 고갈됐다는 말에 대해 이덕환교수는 “오락프로그램으로서 생명력은 다했을지 몰라도 과학프로그램에서 소재가 떨어졌다고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덧붙여 이제 호기심천국이 과학프로
그램으로서 한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현재 일반인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사 자체 제작 과학프로그램은 전무하다. 교육방송에서 10월부터 방송할 예정인 ‘사이언스 쇼 유레카’(가제)가 기획단계일 뿐 타방송사에서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의 책임있는 기획, 과학자 집단의 애정어린 협조, 과학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방송 인력의 전문화가 큰 축을 이뤄 제2, 제3의 업그레이드된 호기심천국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들은 드라마 속의 대사나 촬영의 과학적 오류를 없애기 위해 협조했다.


보는 재미 쏠쏠했던 카이스트

과학을 선택한 젊은이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고뇌를 그리면서 딱딱한 전문지식을 드라마에 적절히 녹여내 호평을 받은 드라마 카이스트. 유준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초중고 전체 학생 1천1백92명 중에 거의 매주 카이스트를 시청하는 비율은 23%, 한달에 한두번 보는 비율은 34%에 이른다. 또 카이스트를 자주 시청하는 이유는 48%가 드라마에 나오는 장치에 관심이 있어서, 37%가 드라마의 사건들이 실감나서, 31%가 카이스트 대학에 관심이 있어서, 29%가 대학생의 자유로운 생활이 부러워서인 것으로 나타났다(3배수 중복응답). 유준희 박사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연구실과 기자재, 그리고 이야기 소재 자체가 학생들의 큰 관심거리임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한다.

1999년 1월 24일 첫방송을 시작한 카이스트는 6개월도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방송가 주변의 예측을 깨며 한때 시청률 30%대를 넘나들면서 승승장구했다. 25회 방영분인 ‘마지막 승부’에서 벌어진 로봇축구 아시아태평양대회 결승전 마지막 5초 장면은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구대 절반 만한 경기장에서 로봇 3대가 골프공을 상대방 골문에 차넣기 위해 벌이는 숨막히는 경기. 공중 패스, 헤딩슛, 골인으로 이어지는 이 5초간의 경기를 연출하기 위해 제작진은 5시간을 넘게 촬영했다. 실제로 로봇축구에서 헤딩슛은 불가능하지만 드라마의 극적 전개를 위해 로봇축구를 만든 김종환교수(전기 및 전자공학과)와 로봇축구 동아리의 도움을 받아 상상불허의 전술을 만들어냈다.

7월까지 감독을 맡았던 주병대 감독은 “드라마란 사람이 사는 모습속에서 갈등과 환희를 뽑아내야 하는데 과학자들의 일이란 것이 가시적인 효과가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또 생활도 단조로와 드라마로 그리는데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힘든 일을 해내면 기쁨도 그만큼 크다. 송지나 작가는 실제 카이스트 학생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기숙사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고 촬영팀은 1편 촬영을 위해 7일씩을 투자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들은 드라마 속의 대사나 촬영의 오류를 없애기 위해 협조했다. ‘해커와 크래커’편에서 등장한 컴퓨터 프로그램 용어나 해킹에 관련된 전문용어, 그리고 해킹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실제 카이스트 학생들은 소재공모게시판을 수시로 채워줬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카이스트란 드라마에 아낌없는 애정을 쏟을 수 있었다.


모형항공기를 만드는 동아리인 '이카루스'와 발명동아리인 '장이'를 주축으로 그려지는 최근의 카이스트는 청춘드라마로 흐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꿈을 그리는 드라마로 남길

카이스트는 지난 6월 18일부터 출연진과 작가, 그리고 제작진이 모두 바뀌었다. 1기에 출연했던 카이스트의 주인공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내용도 어려워지고 소재도 제한돼 전공분야와 동아리팀을 달리해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근래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8월 6일 방송된 ‘반사의 법칙’에서 카이스트 여학생 몇명이 서울에서 체육과를 다니는 남학생들과 미팅을 하고, 샘이 난 남학생들은 미팅 장소로 가서 분위기를 흐려놓고 급기야 남자들끼리 다툰다는 줄거리로 전개된 내용은 그동안 호평을 받아온 카이스트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모형항공기를 만드는 동아리인 ‘이카루스’와 발명동아리인 ‘장이’를 주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치고는 기대 이하라는 것이 게시판에 올려진 평이다.

이에 대해 주병대 감독은 “드라마를 오래 하다보면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때 시청률을 의식하다보면 스토리가 원래 추구했던 드라마의 가치에 접근하기보다는 청춘드라마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여기에 “카이스트는 모든 시청자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신있게 제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카이스트는 사람들에게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힘들지만 중요하고 명예로운 일이란 사실을 일깨워줬다. 또 시청자들이 과학자들을 먼 곳의 이상한 인물로 보지 않도록 만들어 주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이 드라마의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꿈을 시청자들에게 안겨줬다. 학생들에게 과학자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어려움이 있지만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것은 카이스트를 보고 써놓은 수많은 시청소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이스트가 끝나고 광고가 나올 때쯤 정체모를 두근거림이 내 가슴을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비전, 그리고 의욕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한꺼번에 밀어닥쳐 나를 전율케 했다”인터넷 상의 드라마 카이스트 보드에 ‘개천에서 용난 놈’이란 시청자가 올린 글이다. 2기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곱씹어볼 내용이다.

대표적인 과학프로그램으로 인식된 호기심천국과 드라마 카이스트가 지금 위기이자 기회를 맞고 있다.대나무가 마디를 맺으며 자라듯이 두 프로그램 모두 인기를 누렸던 1단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시기다.호기심천국이 새로운 호기심들을 발굴해나가면서 재미뿐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도 보여주고,드라마 카이스트가 사람들과 과학,그리고 과학자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면서 시청자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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