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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과감히 생명공학의 시대를 연 주인공 왓슨.그가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통해 DNA의 구조 발견의 과정에서 목격했던 연구자들의 열정,그들간의 협력과 견제,그리고 성공과 실패 등 과학자 사회의 속내를 털어놨다.


인간게놈연구의 개척자,제임스 왓슨


​지난 6월 26일 전세계의 언론은 인간 유전자 지도의 초안을 발표하는 워싱턴 백악관에 집중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신이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면서 사용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1990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18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총 30억 달러가 투입된 인간게놈프로젝트(HGP). 이것은 분명 인류의 삶과 생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될 21세기 인류 최고의 과학적 성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크릭과의 심상치 않은 만남

생명 창조에 대한 신비를 벗긴 이 역사적 사건의 서곡은 이미 1953년 4월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약 9백 단어 분량의 아주 짧은 논문으로부터 시작됐다. 논문의 저자는 약관 25세의 미국 동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30대 중반의 영국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이었다. 그들은 DNA가 두 가닥의 핵산이 서로 꼬여있는 나선형 사다리 구조를 갖고 있다는 획기적인 모형을 제안했다.

1968년 출판된 왓슨의 ‘이중나선’(The Double Helix: A Personal Account of the Discovery of the Structure of DNA)은 저자가 1955년 여름 알프스로 여행을 떠났을 때 영국 런던대학의 한 과학자를 우연히 만나면서 DNA 구조를 가지고 벌어졌던 일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왓슨은 20세기 최대의 과학적 사건을 크게 다섯명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린다. 한마디로 ‘이중나선’은 영국의 낯선 문화와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연구비와 생활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던 저자, 뛰어난 두뇌를 소유했지만 잘난 체하고 떠벌리기 좋아했던 물리학자 크릭, 캐번디시연구소와 경쟁관계에 있던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의 모리스 윌킨스, 실력파이지만 고집과 독선이 심했던 물리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 그리고 당대 세계 최고의 화학자였던 미국 칼텍의 라이너스 폴링이 벌였던 최초의 발견을 향한 과학연구 경쟁의 드라마라고 보면 좋다.

‘이중나선’은 총 29편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각 에피소드들은 1951년 저자가 캐번디시 연구소에 처음 도착한 시점부터 DNA 구조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해 ‘네이처’지에 투고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된다.

왓슨은 1951년 봄 박사후 연구원 자격으로 캐번디시연구소로 간다. 그곳에는 이미 크릭이 X-선 결정학으로 헤모글로빈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와 있었다. 크릭과의 만남으로 DNA의 3차원 구조에 대한 연구는 가속도를 얻는다.

왓슨과 크릭은 당시까지 얻을 수 있었던 다양한 사실들을 종합해 DNA의 입체 구조를 탐색했다. 이 과정에서 DNA 구조에 대한 연구를 경쟁적으로 수행하고 있던 윌킨스와 프랭클린의 X-선 사진, 폴링이 제안한 단백질의 폴리펩티드 사슬, 그리고 α-나선 구조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많은 힌트가 됐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가장 먼저 발표하는 영예를 거머쥐게 됐지만 말이다.

공동연구와 팀워크의 중요성

'이중나선'은 소설이 아니지만,그렇다고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다큐멘터리도 아니다.한 과학자의 개인적인 눈을 통해서 본 과학자 자신에 대한 진솔한 독백이다.스스로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이,다른 사람이 동일한 이야기를 썼다면 그 내용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잘 정리된 논문을 통해서는 간파할 수 없는,평범한 인간 군상으로서의 과학자 집단의 일상적 삶과 연구과정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다.이로부터 과학자는 더이상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보통의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 된다.

‘이중나선’은 또 과학 연구에서 공동연구와 연구집단의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대의 과학연구는 대부분 공동연구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전공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것도 이젠 흔한 일이다. DNA 구조의 발견도 동물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수학자 등 다양한 학문 분야 전문가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다. 물론 연구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연구자들간의 팀워크다. 여러가지 면에서 캐번디시연구소보다 앞서 있던 킹스 칼리지가 경쟁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공동연구자였던 윌킨스와 프랭클린 사이의 불협화음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과학적 발견 과정에서 모형(model)의 역할과 기능이다. 왓슨과 크릭이 올바른 DNA의 모형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 2중나선 형태의 DNA 구조 모형은 기존의 모든 관찰사실들과 의문점을 한꺼번에 해결해줬다.

왓슨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발견의 공로로 1962년 공동연구자 크릭 그리고 킹스 칼리지의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결국 과학 발견의 우선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두 연구집단 모두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프랭클린이었다. 1958년 38살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로 인해 노벨상 후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중나선’에서 왓슨은 프랭클린을 고집불통이고 비사교적인 성격불량자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후 왓슨은 책 ‘후기’에서 프랭클린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이 적절치 못했다고 말하면서 여성과학자로서의 과학에 대한 그의 열정과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는 글을 첨가한다.

200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송진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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