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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체조' 병을 키운다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시키는 과학적 원리

'스트레스 해소에는 운동이 최고.'흔히 듣는 얘기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들물다.또 무리한 운동 탓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역효과가 빈번히 발생한다.운동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과학적 원리를 살펴보자.

1997년 미국 조지아대학의 한 연구팀은 14명의 여대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했다. 여대생들은 학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늘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외에도 식당이나 잠자리에서조차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순간이 없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책을 볼 때 불안감은 줄어들까.

연구팀은 4가지 단계로 이뤄진 실험환경을 만들고 여대생의 반응을 살폈다. 우선 실내에서 20분간 약한 강도로 자전거를 타게 했다. 둘째 단계에서는 자전거에 앉은 채 40분 동안 공부를 하게 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20분간 자전거 운동을 시키고, 나머지 20분간 자전거에 앉은 채 공부를 시켰다. 마지막으로 40분 동안 자전거에 조용히 앉아있도록 지시했다. 이 4가지 단계 가운데 여대생들의 불안수준이 가장 크게 감소한 경우는 어느 단계일까. 책을 놓지 않고 있을 때였을까. 아니면 조용히 쉬고 있을 때였을까. 답은 첫번째 단계, 즉 운동을 하고 난 후였다.

8초만에 벌어지는 방어작용

운동이 불안감을 줄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스트레스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평소에 익숙하지 못한 자극을 외부로부터 받았을 때 느껴지는 긴장이나 압력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학교에서 한달에 한번 치르는 시험, 새로 취직한 직장의 분위기, 정든 친구와의 이별, 미팅을 하는 첫날 등 우리가 좋든 싫든 환경이 변화하는 것 모두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삶에 자극을 주거나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빨리 헤쳐나가도록 도움을 주는 요소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과도해지면 만병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신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즉각적인 생리작용을 나타낸다. 스트레스에 맞서 싸우거나(공격) 아예 회피하려는(도주) 반응이다. 그런데 공격과 도주에는 공통점이 있다. 즉시 급박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몸에 ‘비상경보’가 울린다는 점이다. 이 상황은 몸의 신경계가 긴장을 유발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아드레날린, 코티솔 등)의 분비가 증대함으로써 벌어진다.

인체가 위험에 처하면 정신적인 판단 능력은 빨라지고, 시력과 청력은 예민해진다. 적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면 근육은 긴장되고, 열기를 식히기 위해 땀이 흐른다. 보다 많은 산소를 흡입하기 위해 호흡도 빨라진다. 인체가 상처를 입었을 경우 지혈이 쉽게 이뤄지기 위해 혈액이 잘 응고될 수 있는 화학 물질이 분비된다.

또 심장 박동과 혈압이 증가하고 근육이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팔이나 다리에 붙어있는 큰 근육은 이전보다 더욱 많은 혈액(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한편 비상시 생명 유지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위, 장, 피부와 같은 기관의 혈액 순환은 감소된다.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소화 불량에 걸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반응은 불과 8초 이내에 이뤄진다. 위험과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려고 할 때 순간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평소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긴장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어떨까. 당연히 신체의 각 기관은 비정상적으로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으로 불리는 것이다. 만일 심한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고혈압, 심장병, 소화기관 궤양, 과민성 대장 증후군, 요통, 당뇨병, 관절염,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생리 불순 등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신체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또 불안, 두려움, 우울, 무력감과 같은 정신적인 이상 증세도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신체적 이상뿐 아니라 불안감,두려움,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이상도 일으킨다.


운동하면 백혈구수 증가

그렇다면 운동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훌륭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스트레스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부작용을 막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운동의 효과는 심리적인 차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운동이 갇혀있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주기 때문이다.

밖으로 표현되지 못한 강한 마음은 신체를 망가뜨린다. 반면 격렬한 신체적인 운동은 이런 감정적인 폭풍을 잠재우는 자연적인 해소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인체의 큰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을 하는 경우 좌절감, 분노, 적개심, 울분 등의 감정을 떨쳐버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또 운동은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더 행복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된 적이 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의 경우 약물 치료 외에도 규칙적인 운동이 권장되고 있다.

한편 운동은 ‘자연적인 신경안정제’라고 불린다. 운동은 근육을 이완시키고 적절한 피로감을 느끼게 해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이 사실은 “일하는 사람의 잠은 달콤하다”는 ‘구약성서’의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겪을 때 건강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운동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 계속 확인돼 왔다. 하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인체가 위험에 빠지면 위와 장에서 혈액순환이 감소된다.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소화불량에 걸리는 이유다.


1999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한 연구팀은 쳇바퀴 위에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킨 쥐와 운동을 시키지 않은 쥐의 생리기능을 비교했다. 우선 연구팀은 양쪽 쥐 모두에게 대장균을 주입하고 감염 부위에서 백혈구수를 조사했다. 그러자 운동을 시킨 쥐의 백혈구가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백혈구는 감염을 일으킨 세균에 맞서 싸우는 역할을 하므로 당연히 운동을 시킨 쥐가 운동을 하지 않은 쥐보다 3-4일 정도 빨리 감염에서 회복됐다.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감퇴할 경우 운동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간접적인 증거였다.

좀더 직접적인 증거는 뇌의 단백질과 호르몬 양에서 드러났다. 먼저 운동을 시킨 쥐에서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뇌 단백질(사이토카인)의 양이 감소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질병에 맞서 싸우는데 필요한 단백질(인터류킨-2, 인터페론-g 등)이 현저히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시킨 쥐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가했을 때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아드레날린)이 상대적으로 적게 분비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과거부터 알려져 왔던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적인 주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의학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이 운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같은 연구가 쥐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됐다고 해도 동일한 결과를 얻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운동이 사람 뇌에서 특정 단백질의 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규칙적인 운동을 할 때 뇌에서 우울증을 없애는 효과를 나타내는 물질(세로토닌)의 양이 늘어나거나, 통증을 줄여주고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물질(베타-엔돌핀)의 분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뇌에서 우울증을 없애는 세로토닌,그리고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베타-엔돌핀의 양이 중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즐겁지 않으면 하지 마라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제아무리 운동이 좋다 해도 강박적으로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나친 의무감으로 운동을 하는 경우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강박적인 운동 자체가 새로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K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시중 은행의 외환 딜러로 일하고 있는 K씨는 높은 연봉을 받고 있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엘리트 직장인이다.

하지만 K씨의 하루하루는 극심한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새벽 출근, 지속되는 전략 회의, 하루 종일 계속되는 외환 시세 파악과 매매, 밤늦은 퇴근이 반복적으로 이뤄진다. 그 결과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두통, 소화 불량, 요통, 과민성 대장 증상 등 여러가지 잔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 환경을 새롭게 바꿀 수는 없었다. K씨는 고민 끝에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K씨가 낼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밤 10시부터 1시간씩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기 운동을 했다.

문제는 이렇게 밤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K씨의 스트레스 증상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평소에도 잠이 모자란 편이었는데 오히려 운동 후 불면증이 생기면서 피로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또 운동을 시작한 후 무릎관절통이 나타나고 온몸에 근육통이 발생해 운동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욕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K씨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운동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때 운동 때문에 몸이 피곤해지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정 무렵의 늦은 시간까지 심한 운동을 하는 경우 각성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오히려 불면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충분한 수면을 통한 휴식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하루 일과를 끝낸 후 운동을 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운동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능하면 저녁식사 전에 운동을 하는 것이 제일 좋고, 불가피한 경우 잠자리에 들기 2-3 시간 이전에 운동을 끝내야 한다. 또 저녁 운동은 가벼운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진행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K씨의 경우 너무 늦은 시간에 운동을 했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오히려 피로가 가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평소 운동량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동안 무리하게 달리기를 했기 때문에 무릎관절에 무리가 생기는 ‘운동 손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적당한 운동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이 즐거워하고 몸이 견딜 수 있는 운동이 가장 적합하다.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 운동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경보, 수영, 자전거 타기, 라켓볼, 스키, 에어로빅 체조, 댄스 등 주변에서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종류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된다.

운동의 강도는 숨이 차고, 땀을 흘릴 정도가 돼야 한다. 대개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끼는 수준이다. 물론 어지럽거나 토할 것 같이 느낄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

여기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점 한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운동은 서서히 시작해야 한다.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이 아니다. 만일 운동을 하면서 힘에 겨워 옆사람과 얘기하기가 곤란한 정도라면 몸에 무리가 가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운동을 천천히 한다고 해서 전혀 손해볼 것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스트레스 해소에 운동이 최고라지만 살을 빼거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지나친 의무감으로 운동을 하는 경우 오히려 새로운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바쁜 일상을 기회로 활용

물론 운동은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한번에 최소한 20-30분씩 일주일에 3회 이상 운동을 해야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볼 수 있다

흔히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지 못하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바쁜 것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기회다.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낼 수 없다면 평소 출근 시간을 조금 앞당겨 버스에서 미리 내려 직장까지 걸어가보자. 또 직장에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해보자. 점심 시간이면 잠깐 시간을 내서 회사 옥상에 올라가 줄넘기를 하는 것도 좋은 운동이다. 반드시 수영을 하거나 테니스를 쳐야 할 이유는 없다. 다른 모든 세상사와 마찬가지로 운동도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뿐이다.

200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신호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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