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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의 노랫말처럼 오월은 푸르고 생기로 가득 찬 계절이다.황사가 그친 맑게 개인 밤하늘의 별빛에도 봄기운이 가득하다.초저녁 북두칠성의 국자 손잡이에서,아크투루스,스피카로 이어지는 '봄의 대곡선' 근처엔 아득히 먼 시공을 날아온 은하의 빛 조각들이 꽃가루처럼 밤하늘을 채우고 있다.

처녀자리 은하단

봄의 밤하늘은 다소 황량하게 보인다. 여름에서 겨울까지 하늘을 가로지르던 은하수가 남쪽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아 밝은 별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5월 초순 밤 10시경, 머리털자리와 처녀자리가 정남 하늘 중천에 걸린다. 이곳은 우리은하의 은하면(은하수)과 90도 떨어진 위치여서 우리은하의 ‘북극’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이 별자리에는 밝은 별이 드물고 성단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별빛을 가리는 성간물질이 적고, 우리은하의 바깥을 바로 볼 수 있는 위치여서 먼 우주에 흩어져있는 다양한 외부은하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을 먼 은하들을 들여다보는 ‘우주의 창’이라고 부른다.

맑고 달이 없는 밤 불빛이 없는 산등성이나 계곡에서 망원경으로 우주의 창을 들여다보자. 목표는 머리털자리와 처녀자리의 경계에 약 2천5백개의 은하가 모인 ‘처녀자리 은하단’이다. 이 속에는 작은 망원경으로도 볼만한 메시에 천체 은하가 18개나 있다. 은하단 중심에는 타원형 은하가 많이 보이고 가장자리에는 나선은하와 불규칙 은하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처녀자리 은하단은 약 4-6천만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단이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들은 지구상에서 공룡들이 사라지던 시대에 출발한 빛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은하들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방향의 기준이 되는 별을 정해야 한다. 이 별은 목동자리 아크투루스와 사자자리의 베타별 데네볼라 사이에 있는 처녀자리 엡실론별인 3등성 빈데미아트릭스이다. 이 별과 데네볼라 사이 지역이 바로 은하 마을이다.

1 M60과 M58 주변 지역

엡실론별에서 망원경을 약 4.5도 서쪽으로 움직이면 제일 먼저 한 쌍의 타원은하가 나타난다. 밝고 큰 것이 M60, 더 작고 어둡게 보이는 것이 M59이다. 밝기는 각각 9등급과 10등급. 6천만 광년이나 멀리 있어 사진 속에는 아주 작고 희미한 빛의 반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M60은 초대형 타원은하로 우리은하의 5배가 넘는 약 1조개의 별들이 지름 12만 광년 속에 모여있다. NGC4647로 이름 붙은 작은 동반은하가 붙어있어 눈사람 모양으로 보인다.

여기서 망원경을 약 1도 서쪽으로 돌리면 작은 타원형 반점 같은 M58이 있다. 이것은 근처의 M60과 비슷하게 보이는데, 막대나선은하여서 은하 핵이 약간 더 길고 밝게 느껴진다. M58에서 북쪽으로 1도 위에는 작지만 별처럼 밝은 은하 핵이 뚜렷한 타원은하 M89도 있다. 사진 속에서 M58의 아래를 잘 살펴보면 조그만 두은하가 서로 ‘ㅅ’ 자 형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NGC567과 4568인데 하늘이 맑은 날이면 구경 10인치 망원경으로 찾아볼 만한 대상이다.

2 나선은하들 M90, M91, M88

M89의 북쪽으로 0.7도 위에는 우리은하와 비슷한 Sb형 나선은하인 M90이 있다. 처녀자리 은하단 속에서 가장 밝은 나선은하 중 하나여서 어두운 산정에서는 80mm 쌍안경으로도 길쭉한 모습의 빛 조각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은하보다 조금 작은 지름 8만 광년으로 태양 같은 별들이 8백억개나 모여있는 은하다. 거리는 4천2백만 광년, 구경 10인치 망원경으로는 밝은 별과 같은 핵과 길쭉한 헤일로가 성운처럼 보이는데, 안드로메다은하를 축소한 모습과 닮았다.

또 M90에서 북서쪽 머리털자리에도 관찰해볼 만한 나선은하들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겉보기 등급이 9.7등급인 M88인데, 작은 망원경으로 관찰하기 적당한 밝은 은하다. 구경 6인치 망원경으로는 타원형 반점으로 보이고, 구경 8인치 망원경이면 남쪽으로 5분 되는 위치에서 한 쌍의 2중성도 볼 수 있다. 거리는 약 4천1백만 광년, 지름 6만 광년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M88의 바로 왼쪽에는 NGC4548로 알려진 작은 나선은하가 있는데, 지금은 M91이라고 부른다. 원래 메시에가 M91로 표기한 위치에서는 아무런 천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막대나선은하가 10.2등급으로 그 근처에서는 메시에가 찾을 수 있을 만큼 밝기 때문에 이를 M91로 부른다.

3 큰 타원은하들 M84, M86, M87

M86과 M84 주변은 처녀자리 은하단에서 가장 볼만한 지역이다. 밝은 두 타원은하 주위로 더 어두운 작은 은하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M86과 M84는 17분 떨어져 있어 망원경의 한 시야에 들어온다. 밝기도 같아 10.5등급이다. 두은하는 크기와 밝기가 비슷해서 쌍둥이 은하 같지만, M86이 M84보다 중심이 조금 더 밝고 약간 타원형으로 보인다. M84는 지름 2만5천 광년으로 우리 은하의 1/4정도지만, 질량은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를 합한 것과 비슷하다고 알려진다. 두 은하를 구경 4인치 망원경으로 보면 중심이 밝고 둥근 회색 반점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구경이 10인치 넘는 망원경으로 보면 남쪽에 보이는 가늘고 긴 모양의 NGC4388를 비롯해 11-13등급 정도인 작은 은하들을 10여개나 더 볼 수 있다.

M86의 남동쪽 1.3도에는 과학 교과서에 종종 등장하는 큰 타원은하 M87이 보인다. 이 은하에는 우리은하보다 1백배 이상 많은 최소 1만5천개 이상의 구상성단들이 있고 질량도 50배나 더 큰 초대형은하로 추정되고있다. 게다가 3C274로 불리는 M87은 하늘에서 5번째 강한 전파를 내는 ‘처녀 A’ 전파원이기도 하다. 전파는 사진에서 보이는 핵의 북서면에서 분출되는 특이한 성운 제트와 관련돼 있다. 제트는 길이 약 5천 광년의 거대한 크기로, 은하 핵 속에서의 거대한 폭발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4 나선은하 M98, M99, M100 주위

이번에는 M84에서 북서쪽으로 약 3도 옮겨 5등성인 머리털자리 6번별을 찾아보자. 이 별의 바로 오른쪽에 담배처럼 긴 모양으로 M98이 떠 있다. 표면이 고르게 밝아 크기가 작지만 작은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는 대상이다. 처녀은하단 속에서 우리은하 쪽으로 가까운 편인 대략 3천5백만 광년 거리에 있고, 지름이 8만 광년으로 우리은하와 비슷하다. 이 은하에서 보는 우리은하도 이만큼 작고 어둡게 보일 것이다.

6번별에서 1도 남동쪽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팔을 가진 M99가 있다. M99는 역사적으로 로스 경이 M51에 이어 ‘성운’에서 두번째로 나선팔 구조를 인식한 은하로 알려져 있다. 9.9등급으로 비교적 밝고 Sc형 정면 나선은하여서 구경 10인치 망원경으로도 나선팔이 꽤 잘 보인다. 날이 좋다면 나선팔의 일부가 뿔처럼 돌출돼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다시 6번별로 돌아와 이번에는 북동쪽으로 약 2도 위치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처녀자리 은하단 속에서 가장 큰 나선은하 M100이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은하는 Sc형의 정면나선은하이다. 나선팔의 두께는 3천 광년으로 우리은하의 2배에 달하며, 지름 11만 광년으로 우리은하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이다. 하지만 실제 망원경으로 보이는 모습은 표면 밝기가 낮아 은하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잘 보이지 않는다.

5 M49와 퀘이사 3C273

마지막으로 은하단의 남쪽지역에 있는 M49와 퀘이사 3C273을 찾아보자. M49는 M87과 함께 처녀자리은하단 속에서 가장 밝고 큰 타원은하이다. 겉보기 밝기는 8.5등급. 6천만 광년 떨어져 있고, 지름 16만 광년으로 우리은하의 5배가 넘는 질량을 가진다고 한다. 구경 6인치 망원경으로도 꽤 밝은 타원형으로 보이며 10인치 망원경에서는 은하 핵이 별처럼 밝아 보이고 은하의 동쪽 부분에 초신성 같은 13등급의 별도 볼 수 있다.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 감마별과 이타별의 삼각 꼭지점 근처에는 3C273로 알려진 가장 밝은 퀘이사를 볼 수 있다. 3C273은 1963년 처음으로 발견된 퀘이사로 태양계 정도의 크기에서 은하의 수백-수천배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13등급의 희미한 청백색 별처럼 보이는 천체는 놀랍게도 21억 광년 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퀘이사의 모습이 21억년 이상 우주공간을 날아와서 필름에 부딪혀 멈추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퀘이사의 빛이 눈으로 들어와 전해주는 장대한 여정을 직접 느껴보기 바란다.

여기서 찾아본 은하들은 은하단 속에 있는 수천개의 은하들 가운데 가장 밝은 것들임에도 실제 눈으로 보면 실망스러울 만큼 작고 어둡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눈은 애초부터 카메라의 필름처럼 빛을 모아둘 수 없기 때문에 거대 망원경으로 보아도 사진처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작고 흐릿한 은하의 빛이 수천만년 동안 우주를 가로질러 날아와 지금 당신의 망막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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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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