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는 듯 단순해 보이기만 하는 동물들이 실제로는 수많은 속임수를 펼치며 살아가고 있다.낚시꾼처럼 그럴듯한 미끼를 던져 먹이를 낚아채기도 하고,자식을 속여 따돌린 후 혼자 배를 채우는 비정한 일도 있다.약육강식의 혹독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물들이 개발해온 다양한 속임수를 살펴보자.
동물은 절대 속이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려면 인간과 같이 뛰어난 두뇌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동물이 그런 두뇌를 소유할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최근 동물의 행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
어느 동물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오라기 한마리가 동물원 연못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이 동물원을 자주 찾았다. 어느날 해오라기는 연못가에 비스듬하게 솟아나온 나무막대기 위에 앉아서 물고기가 수면 가까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미끼 던지기
그러나 이날따라 해오라기 근처에는 물고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해오라기는 연못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봉지에서 무엇인가 꺼내 물에 던져주는 것을 목격했다. 물고기들이 이것을 먹기 위해 수면 위로 몰려들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해오라기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한참만에 새의 깃털처럼 보이는 물건을 물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 올라서서 입에 문 깃털을 떨어뜨렸다.
이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물고기들이 깃털을 먹이로 착각하고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해오라기가 목을 용수철처럼 뻗어 물고기를 낚아챈 것은 물론이다. 동물들이 단순한 행동만 할 것이라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뒤집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사냥감을 효율적으로 얻기 위한 속임수는 동물계에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또 속임수가 척추동물처럼 비교적 고등한 동물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맥마한은 다우림 지역에 발견되는 침노린재의 일종이 개미집 속에 사는 흰개미를 잡기 위해 두가지 교묘한 속임수를 사용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선 개미집 외벽을 이루는 부스러기들을 자기 머리나 등, 그리고 몸통 곳곳에 칠한다. 그리고는 개미집 출입구 근처에 다가가 조용히 멈춰 있는다. 침노린재 몸에 칠해진 개미집 부스러기들은 흰개미들에게 친숙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아무도 ‘대피하라’는 메시지를 알리는 물질(페로몬)을 분비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경보 페로몬을 분비하면 병정개미가 나서 적에게 맹공격을 퍼붓는다.
때때로 침노린재의 움직임이 병정개미의 주의를 끌기도 한다. 하지만 몸에 위장을 해둔 덕분에 병정개미들은 이 침노린재를 침입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집안으로 철수하고 만다. 결국 이 화학적 위장 덕분에 침노린재는 개미집에 접근해 흰개미 가족의 일개미들을 잡아먹는다. 외골격은 남겨둔 채 그 체액만을 빨아먹는 독특한 식성이다.
하지만 침노린재의 영리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체액을 다 빨아먹고 남은 일개미의 껍데기를 개미집 입구 속으로 밀어넣고는 이것을 천천히 움직인다. 이때 개미집 속에 있던 다른 일개미는 이 사체를 붙잡는다. 동료의 사체를 먹어버리든가 또는 다른 곳으로 운반한 후 버리기 위해서다. 침노린재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체를 끌어당긴다. 그리고는 사체에 딸려나온 일개미의 체액을 빨아먹고, 그 껍데기를 다시 다른 일개미를 잡는 ‘미끼’로 사용한다. 침노린재는 이 방법으로 무려 3백여마리나 되는 흰개미를 깨끗이 먹어치운 다음, 탱탱하게 부른 배를 안고 개미집을 떠난다.
자식 속이는 어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를 속이는 동물도 있다. 예를 들어 지빠귀는 맛있는 먹이를 발견하면 경계음을 내서 경쟁자들이 이 소리를 듣고 급히 피신하게 만든다. 이 틈을 타 혼자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경계음을 내서 속이는 동물은 또 있다. 꾀가 많기로 유명한 여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독일의 브라운슈바익 대학의 뤼펠박사는 북극의 야생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산 정상에 텐트를 설치했다. 영리한 북극여우들은 새로 이사온 이 이웃과 금방 친해져 텐트 가까이 찾아왔다. 뤼펠박사가 손을 내밀어 치즈조각을 주면 얼른 받아먹었다.
그런데 뤼펠박사가 수없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금 맛있는 치즈조각을 받은 어미 여우에게 철부지 새끼들이 자기도 먹겠다고 치근대며 졸라댔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어미는 먹이를 못먹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어미가 취한 행동이었다. 갑자기 몇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자신들만의 ‘경계신호음’을 냈다. 새끼들은 ‘적의 출현’을 알리는 이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해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났다. 그러자 어미 여우는 혼자 치즈를 조용히 먹는 것이 아닌가. 뤼펠박사는 북극여우가 자주 자신의 새끼들을 이런 식으로 속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의 속임수는 먹잇감이나 자신의 동료를 속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험악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크게 속여야 할 대상은 어쩌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천적일 것이다.
꼬마물떼새는 침입자(여우, 개, 사람)가 나타나 자신의 둥지가 노출될 위험에 처하면 둥지에서 상당히 떨어진 장소로 미리 나가 침입자를 맞는다. 이때 침입자로부터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서 멈칫거린다. 마치 몸에 상처를 입은 것처럼 가끔은 꽁지를 땅에 질질 끌거나, 한쪽 날개만 겨우 퍼덕여 보인다. 몇m 달려나가다가 멈추고, 한쪽 또는 양쪽 날개를 퍼덕이기도 한다. 이 행동을 보통 ‘가짜 부상’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포식자들은 정상적이 아닌, 약하게 보이거나 상처입은 동물을 습격하는 경향이 있다. 물떼새는 속임수를 쓰면서 이 포식자를 감시하는 것이다. 때때로 멈춰섰다가 포식자가 쫓아오면 물떼새는 다시 앞으로 이동한다. 때에 따라서는 침입자가 불과 2-3m 이내까지 접근하는 것도 허용하지만, 붙잡히지 않을 정도로 간격을 두고 잽싸게 달아난다. 둥지나 새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점까지 침입자를 유인해낼 때까지 ‘상처입은 척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 충분히 유인했다고 판단되면 잽싸게 날아올라 자신의 둥지나 새끼에게로 되돌아온다.
흥미롭게도 물떼새의 속임수는 침입자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매나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가 나타나면 꼬마물떼새는 공격보다는 아예 달아나버리는 편을 택한다. 이들에게는 속임수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달아나버림으로써 스스로 희생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냥 놔두어도 보호색을 지닌 새끼들은 주변의 자갈색과 비슷해서 여간해서는 발견되지 않는 점을 십분 이용하는 것이다.
또 쌍띠물떼새의 경우 소나 말처럼 순한 동물이 둥지 가까이 다가오면 어미는 날개를 펼치고 크게 저으며 가능한 한 눈에 확 띄게 행동하든지 아니면 이들을 향해 돌진한다. 이때 이 동물들은 대개 진로를 변경하든지 둥지를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확실히 물떼새는 침입자가 누군가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속임수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기막힌 돌멩이 전법
천적을 속이는 또다른 예로 밤나방이 있다. 밤나방의 천적은 박쥐다. 박쥐는 캄캄한 밤에 초음파를 발사하며 먹잇감을 정확하게 찾는 비상한 사냥꾼이다. 먹잇감에 부딪혀 반사돼 돌아오는 파장을 감지하는 방식이다. 밤나방의 날갯짓이 박쥐의 초음파 레이더에 걸려들면 밤나방의 목숨은 백발백중 끝장이 난다.
하지만 밤나방의 생존전략이 만만치 않다. 밤나방의 감각은 무척 뛰어나서, 20여m 전방에 박쥐가 출현하면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박쥐의 접근을 눈치챈 밤나방은 날개를 몸에 바싹 붙이고 갑자기 아래로 낙하해버린다. 마치 돌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동작이다.
멀리서부터 초음파를 발사하며 밤나방의 날갯짓을 추적해온 박쥐로서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밤나방은 땅바닥에 닿기 전에 잽싸게 날개를 펄럭거리며 유유히 날아간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앞으로도 계속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 실험에서 날고 있는 박쥐 주변에 돌멩이
를 던져보았다. 그러자 적지 않은 박쥐들이 돌멩이를 따라 낙하 비행을 했다. 돌멩이를 먹이로 여긴 동작이다. 이 동작은 밤나방에게 속은 경험이 오랫동안 누적된 이후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즉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해도 끝까지 따라가서 진짜 돌멩이인지 아니면 밤나방이 속이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습성이 생긴 것이다.
천적으로부터 피하기 위한 또다른 방법은 거짓으로 자신이 강한척 허세를 떠는 일이다. 동물 가운데 최고의 허세가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에 사는 목도리도마뱀일 것이다. 사람들도 이 괴상하게 생긴 허세가와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게 된다. 바로 목에 있는 목도리 때문이다.
보통 때는 목도리의 깃이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접혀 있지만, 위험을 느낄 때면 재빨리 울긋불긋한 목의 깃을 활짝 세운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 적을 위협한다. 체구는 작지만 목도리 깃 덕택에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셈이다.
어쩌면 동물들의 허세는 일상적인 일인지 모른다. 힘센 적과 싸우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서 아주 크고 강하게 보이려는 이 속임수 전략은 대단히 효과가 크다.
코끼리 가운데 공격적인 놈들은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본래 모습보다 더 크게 보이기 위해 귀를 옆으로 크게 펼친다. 하지만 이 귀는 단지 ‘위장공격’일 뿐 실전에서 아무 도움이 안된다.
두꺼비는 위험에 처하면 고무풍선처럼 몸을 부풀리며 네발을 펴 곧게 세운다. 이렇게 하면 천적인 뱀마저도 두꺼비의 허세에 기가 꺾여 달아난다.
복어 역시 위험이 닥치면 몸을 크게 부풀린다. 바닷물을 목구멍까지 찰 때까지 계속 마심으로써 몸을 부풀리는 방식이다. “그대로 놔두는게 좋을거야. 날 삼키기에는 너무 크지 않니?” 라고 말하는 듯하다.
울음소리 옥타브 조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허세를 피우는 동물이 발견됐다. 바로 옴개구리다. 옴개구리는 6월 무렵 어둠이 시작되면 저수지 주변 진흙 위에서 울기 시작한다. 청개구리나 참개구리처럼 울음주머니가 따로 발달돼 있지 않아 소리는 가까이 다가가야 들릴 정도로 작다. ‘따르르 따르르’ 하는 것이 마치 빨래판 위를 젓가락으로 긁을 때의 소리같다.
옴개구리의 울음소리는 몸집의 크기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진다. 즉 덩치가 클수록 저음으로, 작을수록 고음으로 울어댄다. 만일 자기보다 낮은 소리로 우는 동료가 나타나면 피하는게 상책일 것이다. 덩치가 큰 놈과 영역다툼을 벌여봐야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옴개구리는 바로 이 울음소리를 조절함으로써 허세를 피운다. 캄캄한 밤에는 울음소리만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상대의 덩치를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울음소리만 낮추면 자신의 몸집이 무척 큰 것처럼 속일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옴개구리 옆에서 자신이 우는 소리보다 낮은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자 그 옴개구리는 이보다 더욱 낮은 음으로 울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놈이 옆에 왔다고 느낄 때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너보다 더 크다’며 허풍을 떠는 것이다. 어쩌면 동물의 세계에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허세가들이 판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