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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자연과학박물관 짓는 금속공예가 이종옥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연사 박물관. 여기에 일생을 건 금속공예가 있다.


금속공예가 이종옥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고 제주도에 자연과학박물관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개인이 건립한 국내 최초의 자연사 박물관인 은암자연박물관을 운영하는 금속공예가 은암 이종옥(74)씨가 최근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월정리 만장굴 입구의 4천여평 부지에 ‘자연과학박물관’을 짓기 위해 공사에 들어갔다. 금속공예가와 자연사박물관,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종옥씨가 이 길로 들어서게 된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조개로 만든 카메오라는 조각품에 매료돼 다양한 조개를 수집하게 됐다. 물론 작품을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모으던 조개가 어느덧 집안 창고를 가득 채울 무렵 그의 주위에는 조개뿐 아니라 공룡알, 뼈, 곤충, 조류 등 다양한 자연사 자료도 함께 있었다.

“외국의 자연사 박물관을 보고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가가 하지 못한다면 나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가 않다. 깊이 빠져들수록 이런 일은 개인이 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닫기 때문이란다.

개인이 할 일 아니다

40여년 전부터 자신의 작업으로 벌어들인 거의 모든 수입을 자료 수집과 은암자연박물관 운영에 써온 그. 동국대학교 교정의 코끼리상, 경주 천마총의 각종 부장품, 덕수궁 대향로, 세종문화회관 대통령 로얄박스 공사, 조계사의 범종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마친 기쁨에 취하기도 전에 세계의 오지를 돌며 자연사 자료를 모았다.

처음에 현재의 은암자연박물관을 짓겠다고 할 때 지역의 행정 관료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실 제주도에 자연과학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던 것은 13년 전의 일이다. 제주도의 땅을 매입하고 주민등록까지 옮겨 자연사박물관을 지으려고 했지만 수많은 행정적인 제약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대안으로 작업실이 있던 서울 마포에 은암자연박물관을 지었지만 위치가 주택가일 뿐 아니라 장소도 좁아 이종옥씨가 모은 50여만 점에 이르는 자료들 중 1천5백여 점만이 전시되고 있다. 현재는 2개의 건물 창고에 자료들이 가득차 있어 선금을 주고 계약한 물건들이 국내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제주도에 자연과학박물관 사업 승인이 난지 7개월이나 됐지만 군유지 매입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건물 공사는 시작도 못했다는 것이다.

런던의 디플로도쿠스, 서울의 프로토케라톱스

은암은 왜 제주도에 자연과학박물관을 지으려고 하는 것일까. 자연과학박물관에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자연사 자료들을 전시할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과 더불어 살아있는 생물들의 낙원인 조류원과 곤충원도 포함돼 있다. 생태학자들이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자연생태연구원을 만들어 책상 위에서 자연을 연구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양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런 목표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만큼 훌륭한 여건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에 들어서면 26m 길이의 공룡인 디플로도쿠스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안내하듯 사람들을 반긴다. 서울의 은암자연박물관 입구에도 작지만 프로토케라톱스가 전시돼 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좁은 공간에 따른 디스플레이와 공간 연출의 미흡, 통풍과 방습이 안 좋아 여기저기 생긴 곰팡이. 이런 상황에서 전시물에 대한 충분한 자료 설명과 교육적 이벤트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이 우리나라 자연사박물관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주저앉는다면 우리의 미래도 밝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은 1백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한 공간에 담아낼 수 있을까. 큰 건물을 지어놓고 비싼 전시물들을 수입해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연사박물관의 설계, 기획, 전시, 관리, 연구, 교육 프로그램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설립자와 경영자의 마인드, 그리고 연구자의 실력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종옥씨는 은암자연박물관을 운영한 덕택에 경험으로 터득했다.

아들과 딸이 조개와 새

학창시절에 기계체조로 단련된 몸이라 비교적 건강하지만 노인 건강이야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을 때 일을 해야 하는데…”라며 웃는다. 요즘 그는 서울에 있는 날보다 제주도에 있는 날이 더많다. 서울에 있을 때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료 분류에 보낸다. 하지만 이 많은 자료를 분류하는 그의 마음은 무겁다. 은암자연박물관 운영난과 제주도 자연과학박물관 사업 때문에 현재의 서울 박물관 건물뿐 아니라 작업 건물 모두를 곧 내놔야 할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자료들의 안위뿐이다.

“국가 기관이나 기업체가 50여만 점에 이르는 이 자료들을 제대로 전시하고, 보관해줄 수 있다면 건물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모두를 기증하고 싶어요. 조금씩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을 걸었던 것이 너무 허망하게 조각나는 것 같아 거절합니다.”

학계에서는 그의 소장품을 약 2백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1백50kg에 이르는 식인 조개, 전설에 등장하는 극락조, 1억원이 넘는다는 스플릿 조개, 길이 3m의 암수 철갑상어 한쌍 등 평생 모은 패류, 곤충, 어류, 광물 표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느 소장품에 가장 애착이 가느냐는 질문에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있겠냐고 반문한다. 이종옥씨가 모은 자료는 이제 그의 아들이요, 딸이란 얘기다. 오지의 섬에 들어가 다리를 해파리에 쏘여 걸을 수 없었고, 말라리아에 물려 죽을 뻔했고, 식인종이 살던 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자료를 모았으니 왜 안그렇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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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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