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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 해방과 아기산업의 두 얼굴 시험관아기


난자 주위로 몰려드는 정자들.


유교를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삼던 조선시대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면(無子)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든다고 했다. 여인이 남편에게 소박을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통계에 따르면 10쌍의 부부 가운데 1쌍 정도는 불임(정상적인 부부관계를 1년 이상 갖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이니, 자식없는 이유로 설움을 겪어야 했던 여인들이 많았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이가 생기려면 남자의 정자(sperm, 그리스어로 ‘씨앗’이란 뜻)와, 여자의 난자(ovum, 라틴어로 ‘알’이란 뜻)가 만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다음 여자의 자궁에서 잘 자라야 한다. 하지만 정자가 부실하거나, 정자의 이동통로인 정관이 막히는 경우가 생긴다. 또 여성의 경우에는 난소에서 난자가 잘 자라지 않거나, 난자의 이동통로인 나팔관이 막히거나, 수정란이 자라야 할 자궁이 약해 불임이 된다. 이러한 지식을 알 리 없던 시절, 또 이러한 지식쯤은 상식이었던 1970년대 중반까지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신의 뜻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도전에 의해 신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었다.

1966년 영국 올덤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인 패트릭 스텝토(1914-1988)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와 더불어 불임연구를 시작했다. 스텝토는 여성 불임의 원인 중 하나인 나팔관이 막히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고, 에드워즈는 실험실에서 인간의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어느날 스텝토박사는 광섬유로 만든 아주 작은 복강경(뱃속에 넣고 보는 거울)이 개발된 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이것을 이용하면 불임여성의 난소에서 난자를 적절한 시기에 직접 꺼낼 수 있고, 이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다음 자궁에 넣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나팔관이 막혀 난자가 배란되지 않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생각처럼 쉽게 풀려나가지 않았다. 결국 10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그동안 스텝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법적으로 허용된 낙태를 통해 돈을 벌어 불임연구에 쏟아부었다.

1977년 스텝토는 가난한 브라운 부부를 만났다. 어딜 보나 신체건강한 두사람은 결혼한지 오래됐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부인의 나팔관이 막혀 있었던 것. 물론 정자와 난자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브라운 부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스텝토가 10여년 동안 실패해온 방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스텝토는 브라운 부인의 배란일 등을 조사해 조심스럽게 난자를 꺼내고, 에드워즈는 이를 받아 미리 받아둔 남편의 정자와 시험관에서 수정시켰다. 수정란은 50시간 뒤 8세포 단계에서 부인의 자궁 속에 넣어졌다. 그리고 9개월 뒤인 1978년 7월 25일, 브라운 부인은 제왕절개를 통해 2.6kg의 예쁜 딸을 낳았다.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test-tube baby) 루이스 조이 브라운이 탄생한 것이다. 루이스는 4년 뒤 동생 나탈리를 같은 방법으로 얻었다.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날 시골도시인 올덤에는 수백명의 기자들이 모여들어 금세기 최고의 의학혁명을 축하해 주었다. 어떤 이는 브라운의 탄생을 2천년 전 예루살렘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와 비교하기도 했다. 당초 수술비가 없어 쩔쩔매던 브라운 부부는 졸지에 큰 돈을 벌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들은 루이스의 탄생스토리를 영국의 한 신문사에 독점 게재하는 조건으로 32만5천파운드(약 6억원)를 받았고, 세계 각국을 돌면서 TV에 출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10월 12일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장윤석박사에 의해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났다. 천근엽씨(당시 31세)와 서정숙씨(28세) 사이에서 태어난 희(여)와 의(남) 쌍둥이 남매였다.

시험관아기는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또 유전적 질환이 있는 경우에 시험관아기는 큰 힘을 발휘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시험관에서 수정돼 태어난 아이는 20만-3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험관아기의 고향이라고 하는 영국에서는 신생아 1천명 중 한명은 시험관아기라고 할 만큼 보편화되고 있는 생식기술이다.

그런데 시험관아기를 비판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집단이 “시험관아기는 신을 놀리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종교계였다. 심지어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1928-)은 “신성해야 할 출산의 과정을 조잡한 기술로 농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간과했던 것은 불임부부의 희망이어야 할 시험관아기가 아기제조산업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정자와 난자가 비공개적으로 거래되고, 임신을 대신해주는 대리모가 등장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정자의 경우 50-2백달러, 난자의 경우 5백-2천달러에 거래됐다. 물론 이는 교통비나 수고비 형식으로 지급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기를 기를 능력이 없는 60세 할머니가 시험관아기를 낳는가 하면, 딸의 난자와 사위의 정자를 수정시킨 수정란을 친정어머니의 자궁을 빌려 낳음으로써 아기의 어머니가 누구인가 하는 윤리적인 문제도 낳았다. 시험관아기는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아기를 갖게 했던 것이다.


1994년 63세의 나이로 아이를 출산한 할머니. 아이를 갖는 기쁨도 좋지만 고령출산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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