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서쩍 하늘 아래로 밀어내며 어둡고 황량해 보이는 초가을의 밤이 시작된다. 남쪽하늘에는 물병자리, 남쪽물고기자리가 펼쳐져 있지만 많은 별이 적어 비어있는 듯하다. 눈을 돌려 남쪽 산등성이 위를 보면 밝은 1등성 하나가 붉게 홀로 빛나고 있다. 가을 밤하늘에서 유일한 1등성인 포말하우트이다.
1. 물고기자리와 두루미자리
남쪽물고기자리 Piscis Austrinus
● 대략위치: 적경= 22시 14분 적위= -31도
자정남중: 9월 4일
크기: 245.37도, 60위(0.595%)
보이는 별 수(5.5등급 이상): 15개
두루미자리 Equuleus
● 대략위치: 적경= 22시 25분 적위= -47도
자정남중: 9월 7일
크기: 365.51도, 45위(0.886%)
보이는 별 수: 24개
남쪽물고기자리는 고대 시리아에서 두 마리의 물고기로 그려지던 다곤(Dagon)신을 상징하는 별자리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괴물 티폰에게 쫓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강으로 도망치기 위해 변한 물고기가 별자리가 된 것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등성 포말하우트를 제외하고는 밝은 별이 없고, 지평선 부근에 낮게 깔려 있어 별자리 모양을 모두 그려보기 어렵다. 남반구 하늘에서는 두루미 자리와 함께 9월에 천정을 장식하는 가장 뚜렷한 별자리이다. 오래된 성도에는 위쪽에 있는 물병자리의 물병에서 흘러나온 물이 물고기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물고기가 세상의 홍수를 방지한다고 한다.
알파(α)별 포말하우트는 가을 밤하늘의 유일한 1등성으로 아라비아어로 ‘물고기의 입’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1.16등급의 청백색 별로 전 하늘에서 18번째로 밝다. 22광년 떨어져 비교적 가까운 별에 속하지만, 주위에 밝은 별이 없어서 ‘고독한 별’로도 불린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성의 북문을 가리키는 북락사문(北落師門)으로 불렀다. 1993년에 이 별에서 4백천문단위(AU) 떨어진 거리에서 젊은 별을 둘러싼 차가운 먼지고리가 발견됐다. 이것은 우주의 많은 젊은 별들이 새로운 행성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스나 먼지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증거로 생각됐다.
포말하우트가 남중할 때 남쪽 지평선을 스치듯이 떠 있는 2개의 2등성과 몇개의 별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두루미자리이다. 별자리 모양이 커다란 날개를 펴고 솟아오르는 목이 긴 두루미를 연상시킨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물고기자리보다 더 남쪽 지평선 근처에서 떴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뚜렷이 보기가 어렵고, 대구 이남의 남쪽이 탁 트인 시골에서만 별자리 전체를 볼 수 있다.
원래 두루미자리는 네덜란드의 항해가 피터 케이저와 프레드릭 호트만이 1595-97년 사이에 남반구 하늘에 만든 11개의 별자리 중 하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두루미가 천문학자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메스의 전령 역할을 하는 새였다고 한다. 알파별은 아랍어로 알나이르라고 부르는데, 겉보기 등급이 1.74등급으로 온 하늘에서 30번째 밝은 별이다. 서울에서의 남중고도는 5.5도. 밝기는 태양의 70배, 지구에서 65광년 떨어져 있다. 베타(β)별은 2.2등성의 적색거성으로 태양의 약 8백배 광도를 내지만 알파별보다 더 먼 1백40광년 떨어져 어둡게 보인다.
2. 물병자리 Aquarius
● 황도 12궁의 하나, 1월 21-2월 20일생의 별자리
●대략위치: 적경= 22시 20분 적위=-13도
자정 남중: 9월 5일
크기: 979.85도, 10위(2.375%)
육안 성수: 56개
9월 초 자정 무렵 페가수스자리의 남쪽 아래로 어두운 별들만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하늘에서 10번째 큰 별자리인 물병자리가 위치하는 곳이다. 물병자리는 태양이 매년 2월 17일부터 3월 12일 사이에 통과하는 황도 12궁 중 11번째 별자리이다. 은하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을철 남쪽의 다른 별자리와 마찬가지로 밝은 별이 적다.
물병자리를 찾을 때는 페가수스 머리 아래에 Y자 모양의 작은 별무리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리고 Y자의 서쪽과 남쪽으로는 3등성의 별들이 띄엄띄엄 포말하우트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찾는다. 이 넓게 퍼진 별무리는 소년이 물병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소년은 제우스에게 납치당한 양치기 미소년 가니메데이다. 그가 어깨에 메고있는 항아리에서 흘러 넘치는 물이 남쪽물고기자리의 크게 벌린 물고기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알파별 사다르 메리크는 아라비아어로 ‘왕의 행운의 별’을 뜻하고, 베타별 사달수드도 ‘행운 중의 행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태양이 이 별들 근처로 오게 되는 1-2월의 겨울에 지중해에 면한 중동지방에 우기가 시작돼 농사일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점성가들은 춘분점이 물병자리에 오면 예술과 과학이 함께 번성하고 인간성과 과학이 조화를 이루어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까? 지금 물고기자리에 있는 춘분점은 1백년에 약 1.5도씩 물병자리로 옮겨가고 있다. 아직도 6백년을 더 지내야 춘분점이 물병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3. 도마뱀자리 Lacerta
● 대략위치: 적경= 22시 25분 적위= +46도
자정남중: 9월 8일
크기: 200.69도, 68위(0.847%)
보이는 별 수: 23개
도마뱀자리는 세페우스자리의 남쪽, 백조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 사이에 있다. 5개의 4등성이 작은 w자 모양으로 모여있고 별자리 위쪽 반은 은하수 속에 있다. 이 별자리는 1690년 헤벨리우스가 백조자리와 안드로메다자리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만들었다. 사실 헤벨리우스가 이름 붙이기 전 프랑스의 천문학자 오귀스탱 로이어가 먼저 안드로메다자리 일부와 도마뱀자리 지역을 합쳐 루이 16세를 기리는 별자리로 그렸다. 또 약 1세기 뒤 독일의 천문학자 보데는 ‘프레데릭 대왕의 영광’이라고 별자리 이름을 붙였으나 얼마 사용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 별자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20개이고, 4등성 이하의 별로 구성돼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주위에 백조자리 북아메리카 성운과 세페우스자리의 성운들이 흩어져 있어 사진관측에는 좋은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