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는 사람이 양팔을 벌리거나 긴 막대를 들고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회전에 저항하는 회전 관성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줄타기뿐 아니라 다이빙, 체조, 피겨 스케이팅 등 많은 스포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사당놀이와 서커스의 백미는 외줄타기다. 제일 마지막에 등장해 사람들을 공연 끝까지 잡아두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곡예사가 외줄 위를 걸을 때는 본인은 물론 보는 이들의 숨조차 멈춘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평균대 위를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가는 줄 위를 그렇게 쉽게 걷는 것일까. 물론 쉽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곡예사들의 한 걸음 한걸음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발걸음에는 과학도 숨어있다.
비밀은 막대의 회전 관성
이제라도 외줄을 타는 묘기를 볼 기회가 있다면 곡예사들의 동작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갖고 움직이는지도 유심히 관찰해봐야 한다. 전통 묘기의 외줄타기에서는 곡예사가 양손을 접었다 폈다 반복하면서 줄 위를 움직인다. 또 서커스에서도 대부분의 곡예사는 긴 장대를 들고 줄 위를 걷는다. 보는 이들은 그냥 걷기도 어려울텐데 어떻게 저렇게 긴 막대까지 들고 걸을까 하겠지만 사실 이것이 비밀이다. 그냥 걸을 때는 몸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 떨어질 것 같지만 긴 막대를 들고 걸으면 회전하는데 저항이 커지게 돼 균형을 잡기 쉬워진다. 또한 균형잡는데 필요한 시간도 벌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된다. 전통적인 외줄타기 묘기에서 막대를 대신해 양손을 쫙 펴는 것이 이것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물리학적인 용어로는 회전 관성이 커진 효과라고 말한다.
관성은 이미 알려져 있듯이 물체가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을 표현한 용어이다. 즉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등속도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흔히 관성이 크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기 힘든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 질량이 큰 차가 작은 차에 비해 관성이 크기 때문에 속도변화는 그만큼 어렵다. 이렇게 직선 운동일 경우와 같이 회전하는 물체도 회전상태가 변하는 것에 저항하려는 성질이 있다. 이것이 바로 회전 관성이다. 즉 회전하는 물체는 계속 회전하려는 성질이 있고, 회전하지 않는 물체는 계속 회전하지 않는 상태로 있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질량 분포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듯이 물체의 회전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 이때의 힘은 회전축에서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토크라고 부른다.
회전 관성도 직선 운동의 관성처럼 질량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회전관성은 질량 자체보다 질량의 분포와 더 관련이 깊다. 회전축과 질량이 분포돼 있는 거리 간격이 클수록 회전관성도 크다. 긴 야구 배트의 손잡이 근처를 잡고 스윙할 때가 중간을 잡고 스윙할 때보다 더 힘든 것도 회전 관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외줄을 탈 때 곡예사가 양손을 펴거나 긴 막대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은 가능한 한 질량을 회전축으로부터 먼 곳에 분포시켜 회전 관성을 크게 만든 것이다.
고난도의 회전 묘기
회전 관성을 이용하는 것이 외줄타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2단 평행봉, 마루운동과 같은 체조와 트램폴린에서도 회전 관성은 단골 손님이다. 체조 선수들이 보여주는 고난도의 회전 연기는 모두 회전 관성과 관련된다. 한마디로 고난도의 회전 연기일수록 회전관성이 크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말이다.
사람의 몸은 3개의 회전축에 대해 회전할 수 있다. 회전축은 서로 직각을 이루고 각각의 축은 우리 몸의 대칭 선이다. 물론 몸의 회전 관성은 회전 축에 따라 다르다. 머리와 발을 잇는 축으로의 회전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서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 몸의 질량이 이 축 주위에 집중돼 있어 회전관성이 작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배와 등을 잇는 축이나 왼쪽과 오른쪽을 잇는 축으로의 회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전 관성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2단 평행봉에서 양손을 평행봉에 잡고 온몸을 쫙 편상태에서 360도 회전을 하는 것이 허리를 평행봉에 감고 회전하는 경우보다 고난도로 평가된다. 즉 회전 관성이 클수록 점수가 높다는 얘기다. 마루 운동에서 공중제비를 할 때도 선수들은 가능한 팔과 다리를 완전히 감아 쥔 자세로 회전한다. 이 자세가 회전 관성을 최소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쉽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손을 모을 때
사각의 스프링 그물 같은 곳에서 뛰다가 몸을 회전시키는 트램폴린을 할 때도 기본 요령은 뛰어 오르면서 몸을 재빨리 둥글게 구부리는 것이다. 그래야 회전 관성이 작아져 몸을 쉽게 회전시킬 수 있다.
2단 평행봉 연기에서 선수들은 양손을 축으로 회전을 크게 한 다음 지상으로 몸을 던지면서 몸을 둥글게 모아 두세 번의 공중 회전을 보여준다. 이것은 회전축이 철봉에서 체조 선수의 무게 중심을 지나는 선으로 바뀌면서 체조 선수의 회전 속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좀더 과학적으로 풀어보자.
회전하는 물체의 운동을 나타내는 물리량을 물리학에서는 각운동량이라고 한다. 이것은 회전관성과 각속도의 곱으로 나타나는 양이다. 한 계에서 회전 상태를 변화시키려는 토크가 작용하지 않는 한 계의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이러한 사실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회전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양팔을 완전히 쭉 펴고 회전을 하다가 양팔을 가운데로 모으면 회전속도는 매우 빨라진다. 양팔을 가운데로 모았다는 것은 회전 관성을 줄인다는 말이다. 외부에서 회전을 변화시키려는 토크가 작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회전관성을 줄였으므로 각운동량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회전속도를 증가시켜야 한다. 반대로 다시 팔을 펴면 회전 관성이 증가하므로 회전 속도는 감소한다. 물론 이 때 팔을 폈을 때와 모았을 때의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각운동량이 보존되는 예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다이빙 선수가 스프링보드에서 뛰어 올라 몸을 굽혀 회전할 때 회전속도가 증가하는 것도 그 예다. 즉 각운동량은 보존되기 때문에 스프링보드를 뛰어 오를 때에 비해 몸을 굽히면 회전 관성이 작아져 회전 속도는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또 우주선에서 추진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방향을 바꾸는데도 각운동량 보존이 이용된다. 물론 이 경우는 아주 미세한 방향 전환에만 쓰인다. 외부의 어떤 힘도 작용하지 않는 우주선 내부에서 바퀴형태의 기계장치인 리액션 휠(reaction wheel)의 회전 속도를 변화시켜 우주선 전체의 각운동량에 변화를 준다. 우주선 입장에서는 각운동량이 보존돼야 하므로 우주선은 회전을 한다. 즉 원하는 곳으로의 방향전환이 가능해진다. 한편 태양계에서도 각운동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태양계내의 모든 행성이 일정한 회전 관성과 회전속도를 가지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세계는 돌고있는 팽이나 자전거와 같이 외부에서 작용하는 토크 때문에 각운동량이 보존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