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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앙 경고한 카슨의 '침묵의 봄'


해양생물학자이자 문필가였던 레이철 카슨.


봄이 오면 들판에 흰꽃들이 안개처럼 피어나고 송어떼들이 몰려와 알을 낳는 어느 산골마을. 이곳에는 늘 수많은 철새들이 몰려와 각종 풀씨와 열매를 쪼며 노래한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여우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밤을 재촉하고, 사슴의 가냘픈 모습이 개울가에 비칠 때면 새벽이 다시 오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 우물을 파고 외양간을 세우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이 마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병아리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소와 염소들이 죽어갔다. 농부들은 의사의 손을 붙잡고 무슨 병인지 물어보지만 의사들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결국 이 마을에는 재잘거리던 새들이 사라지고 침묵만이 계속됐다. 비극은 이 마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침묵이 수많은 마을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스스로 불러일으킨 환경재앙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준 사람은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1907-1964)이었다. 그녀는 1962년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책을 통해 인간이 무심코 사용해온 살충제와 같은 화학약품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 뿐이 아니다. 사람과 동물의 몸에 쌓여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어미의 모유를 통해 2세에게까지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만든 살충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1873년 오스트리아의 한 대학원생에 의해 처음으로 합성됐으며, 60여년 뒤 스위스의 가이기 염료회사에 근무하던 파울 뮐러(1899-1965)에 의해 그 효용이 발견됐다. 뮐러는 1939년 DDT가 뛰어난 살충효과를 지녔으며 동물이나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1941년 스위스 농장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DDT는 감자 딱정벌레를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사실은 1948년 뮐러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게 최악의 노벨생리의학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DDT는 발명되자마자 2차대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하나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곤충과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이보다 좋은 무기가 없었던 것이다. 군대가 머무는 곳마다 말라리아, 티푸스, 페스트 등을 옮기는 해충과 박테리아를 없애기 위해 엄청난 DDT가 뿌려졌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나폴리의 경우 티푸스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전주민에게 DDT 가루를 뒤집어씌운 일도 있다. 물론 집단생활을 하는 군인들은 이를 없애기 위해 옷에 DDT를 뿌리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이처럼 DDT를 마구 사용했던 것은 기름에 젖지 않는 한 피부를 통해 흡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충제가 해충을 없애는데 효과가 없음을 희화한 그림


전쟁이 끝나자 DDT는 농가에 보급돼 엄청나게 사용됐다. 해충을 한순간에 없애주는 기적의 살충제를 마다할 농부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DDT를 술에 타먹으면 취기를 돋운다고 알려져 DDT를 소량 함유한 술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씩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해충들이 살충제에 대한 저항력을 기른 것이다. 또 DDT는 해충의 천적까지 없앴기 때문에 해충들이 오히려 더 많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곤충들의 역습이었던 것이다. DDT 이전 무기살충제에 대해 저항력을 가진 해충은 12종에 불과했는데, DDT와 같은 유기살충제를 쓰면서 1960년에 이르러서는 저항력을 가진 해충이 65종으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은 더욱 강력한 살충제의 개발을 부추겼다. 독일에서 개발된 디엘드린의 경우 독성이 DDT의 5-40배에 이르렀다.

게다가 지금까지 동물과 사람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던 DDT가 먹이사슬을 통해 체내에 쌓인다는 보고가 나왔다. 강물에 DDT가 0.001ppm 정도 녹아있으면, 플랑크톤에서는 0.01-0.1ppm, 물고기에서는 2-3ppm에 이르렀다. 결국 이러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들에게 먼저 변화가 왔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북아메리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송골매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DDT가 체내에 쌓인 새들이 낳은 알들은 껍질이 부드러워 쉽게 깨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부화율이 현저하게 떨어진 송골매는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의 몸에도 먹이사슬을 통해 건너온 DDT와 같은 화학물질이 쌓였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이를 먹어 죽을 때까지 화학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의 몸에 쌓인 화학물질은 각종 암과 생식이상을 일으켰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환경호르몬(외인성 내분비교란물질)을 지적했던 것이다. 환경호르몬은 체내에 흡수된 화학물질이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해 남성의 정자수를 감소시키고 성장억제와 생식이상 등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카슨이 ‘침묵의 봄’을 쓰게 된 동기는 1958년 1월 허킨스라는 여자가 보낸 한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은 세상에서 생명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슬픈 사연이었다. 카슨은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살충제와 같은 화학물질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물이 ‘침묵의 봄’이다.

‘침묵의 봄’은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DDT라이스(쌀), BHC(벤젠헥사클로리드)햄버거, 엔드린달걀 등 살충제의 이름을 먹거리에다 붙이는게 유행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그동안 화학회사의 로비로 잠자코 있던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J. F.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자문위원회를 소집해 농약의 피해를 조사케 했으며, 미국환경청은 DDT의 사용금지문제를 논의하는 청문회를 열었다. 마침내 1972년 미국에서 DDT 사용이 금지됐다.

한편 ‘침묵의 봄’을 읽은 게이로드 넬슨 상원의원은 케네디대통령에게 자연보호 전국순례를 갖자고 건의했다. 이를 계기로 지구의 날(4월 22일)이 만들어졌으며, 1970년 제1회 때에는 미국 전역에서 2천만명이 참가했다

199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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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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