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수송하고 신호를 전달하는 세포막, 눈을 보호하면서 고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막들, 그리고 온몸을 둘러싼 피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에 자리잡은 막의 본모습을 살펴본다.
수십 조개의 세포로 이뤄졌다는 인간의 몸 속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의 생명활동을 영위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부터 세포막이라는 것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막들이 그 무언가와의 경계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포막, 핵막, 미토콘드리아막, 공막, 각막, 망막, 피부까지 말이다. 생명체 속에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구분 지으려고 하는 막의 정체는 무엇이며, 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세포(그림1)는 아주 작은 방과 같은 단위체로 그 안에는 농축된 수용액과 화학물질이 채워져 있다. 생물의 기능과 활동은 세포의 일상 활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아메바나 짚신벌레와 같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단세포생물뿐 아니라 사람과 같은 고등생물의 세포들도 광학현미경을 이용하면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광학현미경으로 보면 세포들은 반투명한 세포질로 차 있고 그 안에 둥글고 큰 핵이 있으며 세포질은 어떤 형태의 울타리와 같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막이 바로 원형질막이라고도 불리는 세포막이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질 안에는 핵 외에도 세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소기관들이 있는데 이들도 대부분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포막과 세포 내에 있는 모든 막을 통틀어 생체막이라 한다.
출입국관리소 세포막
세포막에 의해 구분되는 세포의 내용물과 세포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유지된다. 세포막은 수동적인 울타리의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골라 통과시키는 고도의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세포 안팎의 이온 농도를 다르게 유지한다. 또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물질은 세포 속으로 받아들이고 노폐물은 세포 밖으로 내보낸다. 이것은 마치 국경선이나 항만, 공항에 설치돼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하는 일과 유사하다.
세포막(그림2)은 두께가 5-10 nm (1nm=${10}^{-9}$m) 가량 되는 아주 얇은 막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선처럼 외부와 경계를 지어준다. 전자현미경으로 세포막을 보면 가운데는 밝게 보이는 층이 있고 양옆으로 어둡게 보이는 두 층이 있다. 이러한 이중막 구조는 세포막뿐만 아니라 세포 안에 있는 세포소기관의 막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모든 생체막은 지질분자와 단백질분자로 이뤄진다. 지질분자는 연속적인 이중층을 이루고 있다. 지질 이중층은 생체막의 가장 기본적 구조로 수용성 물질의 투과를 억제하는 방벽 역할을 한다. 단백질분자는 지질의 이중층 속에 박혀 있으면서 여러 가지 기능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어떤 단백질은 특정 분자를 세포 안팎으로 수송하고, 다른 단백질은 외부로부터 오는 화학신호를 받아들여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다른 단백질은 막이 관여하는 반응의 촉매인 효소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막은 결코 정적이 아닌 매우 유동적인 구조물이다.
지질과 단백질분자는 마치 남극의 바다에 떠 있는 빙산처럼 막의 면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 있다. 지질과 단백질의 조성은 세포막의 양면이 서로 다른데, 이는 막의 양면이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막의 기능 좌우하는 단백질 함량
세포막에 들어있는 세가지 중요한 지질은 인지질, 당지질, 콜레스테롤이다. 이들은 모두가 분자 내에 친수성인 극성 부위와 소수성인 비극성 부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인지질 분자(그림3)는 극성 머리부분 하나와 비극성인 탄화수소 꼬리부분 두 개를 가지고 있다.
당지질은 올리고당이 붙어 있는 지질분자다. 이 분자는 동물세포의 세포막 이중층의 바깥쪽에만 존재하며 당부분은 세포 표면에 노출돼 있다. 올리고당은 복잡한 구조이며 세포의 표면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세포막의 기본 구조는 지질 이중층에 의해 결정되지만 막의 특이한 기능은 주로 단백질에 의해 수행된다. 따라서 막에 존재하는 단백질의 종류와 양은 그 막의 기능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 변환에 관여하는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은 단백질의 함량이 75% 이상이지만 신경섬유의 절연을 담당하는 미엘린막은 막 질량의 20% 정도만이 단백질이다. 보통의 세포막은 약 50% 가량이 단백질로 돼 있다.
생체막대회 1등은 신경세포막
세포막들이 자신의 기능을 뽐내는 대회가 있다면 1등은 단연 신경세포막이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경세포막은 신경계의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전기신호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전기신호를 만들어내는 것은 신경세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신경세포는 훌륭한 전도체가 아니지만 신경세포막 안팎의 이온의 흐름을 조절해 전기신호를 발생시키는 정교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그림4).
신경세포의 안팎은 세포막을 경계로 해서 생기는 나트륨(${Na}^{+}$), 칼륨(${K}^{+}$) 등의 이온 농도의 차이와 신경세포막이 지니는 특정 이온에 대한 선택적 투과성으로 인해 약간의 전위차가 생긴다. 이 전위차를 휴지전위라 하는데 대개 60-90mV로 세포막의 안쪽이 바깥쪽에 비해 음전기를 띤다(그림5). 이런 휴지전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세포막에는 이온 펌프와 이온 채널이라는 두 종류의 단백질이 작용하고 있다.
신경세포막의 안쪽은 바깥쪽에 비해 ${K}^{+}$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Na}^{+}$의 농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러한 이온 농도의 차이는 ${K}^{+}$을 세포 안으로, ${Na}^{+}$을 세포 밖으로 퍼 올려주는 이온 펌프에 의해 유지된다. 이온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이온을 이동시키는 이온 펌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ATP라는 생체의 화학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양수기를 이용하여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양수기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를 써야 한다.
한편 이온 채널이라는 통로를 통해 이온 농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특정 이온이 막을 통과해서 한쪽 방향으로만 이동하는데, 이를 선택적 투과성이라고 한다. 즉 채널과 펌프는 기본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신경세포의 안팎에 서로 다른 이온 농도를 만들어 전기흥분도를 유지할 수 있다.
눈은 막 백화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고, 위험을 피하며, 아름다운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등 대부분의 활동을 시각에 의존한다. 그런데 인체의 기관 중에서 막이라 불려지는 부위가 제일 많은 곳이 바로 눈이다. 눈에는 공막, 각막, 맥락막 그리고 망막이 있다. 사람의 안구는 지름 2.4cm, 무게 약 7g 정도로 탁구공보다 조금 작다. 발생학적으로 눈은 뇌의 일부분에서 시작해 안포, 안구, 수정체, 각막의 순서로 만들어지는데, 해부학적으로 봐도 눈은 뇌의 일부분이다.
안구는 질기고 흰 섬유성 단백질인 콜라겐으로 된 불투명한 공막으로 싸여있고 튀어나온 앞쪽 부분은 투명한 각막으로 싸여있다. 공막은 동공의 모양을 유지하고 눈을 움직이는 수의근을 부착시키는 역할을 하며, 각막은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각막에는 혈관이 분포하지 않기 때문에 혈액을 통한 산소 공급이 이뤄지지 못한다. 따라서 공기 중의 산소가 각막과 접촉하면서 확산을 통해 공급된다. 렌즈에 반드시 공기가 통할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각막에 혈액 공급이 없다는 것은 면역세포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막 이식은 면역체계에 의한 거부반응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이식 수술에 비해 성공률이 높다. 공막 바로 안쪽에는 혈관이 많이 분포돼 있는 맥락막이 있다. 맥락막은 안구의 앞쪽에서 홍채를 지지한다. 색소가 들어있는 얇은 막인 홍채는 근육이 있어 이것이 수축하거나 이완함으로써 눈동자가 커지거나 작아져서 빛의 양을 조절한다.
홍채로 덮이지 않은 중앙 부분을 동공이라고 한다. 눈 색깔은 홍채의 색깔이다. 동양인은 진한 갈색이고 서양인은 푸른색이다. 홍채의 둘레에는 흰자위가 있는데 안구를 둘러싸는 공막이 밖으로 나와서 보이는 것이다. 홍채 뒤에는 투명한 수정체가 근육에 의해 고정돼 있고 수정체 뒤에는 투명한 겔로 채워진 후안방이라는 큰 공간이 있다. 맥락막 안쪽에는 망막이 있어 빛을 감지한다. 여기에는 신경세포가 분포한다. 신경섬유가 시신경을 이루어 뇌에 연결되면서 사물을 감지한다.
가장 넓은 보호막, 피부
피부는 우리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넓은 보호막이다. 피부의 세포들은 서로 튼튼하게 달라붙어 있어서 신체의 여러 조직이나 기관 중에서 가장 단단하고 질긴 부위다. 따라서 심한 충격이 아니면 찢어진다거나 손상을 입지 않는다. 피부는 발바닥이나 발등에서처럼 같은 사람의 몸에서도 부위에 따라 두께와 색깔이 다르다. 또 개인이나 민족에 따라 두께에 차이가 있다.
피부는 표피, 진피, 피하지층으로 구성돼 있다. 제일 바깥 층인 표피에는 각질층으로 불리는 케라틴층이 있다(그림6). 이 층은 핵이 없는 육각형의 죽은 세포가 10-20여 겹 정도 쌓여있는 층으로 이것이 비늘처럼 떨어져 나간 것을 우리는 때라고 부른다. 표피의 안쪽 기저층에 있는 세포가 서서히 밖으로 밀려나서 때로 떨어져 나가는데는 보통 2-4주 정도가 걸린다. 각질층은 표피에 있는 케라틴세포가 죽어서 밀려난 것으로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의 피부 침입을 막아주고 수분을 보호해준다. 따라서 목욕탕에서 때를 불려 꺼칠한 수건으로 문지르고 비누로 닦아내면 때뿐만 아니라 보호막인 각질층과 피부 표면의 지방까지도 녹아내린다. 피부가 꺼칠해지고 건조해지며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고 피부건조로 인한 가려움증이 생기는 원인이다.
손톱, 발톱, 털
표피에는 모세혈관이 분포하지 않고 멜라닌색소 세포가 있다. 이 세포의 활동에 따라 피부색이 달라져서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 등으로 구분된다. 피부색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결정된 색소 세포의 활동성 때문이다.
표피 아래에는 진피가 있다. 진피에는 혈관, 땀샘, 털과 털을 세우는 입모근 등이 분포하며 그 아래에 신경이 뻗어있다. 진피 아래에는 지방세포로 된 피하지방층이 있어서 양분을 저장하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단열 기능을 수행한다.
또 피부에서는 호흡이 일어난다. 더울 때에는 피부의 혈관이 확장돼 열이 밖으로 나가고, 땀샘에서 땀을 흘려 기화열로 체온을 낮춘다. 땀샘은 온몸에 다 분포하나 손바닥, 발바닥, 이마, 겨드랑이 등에 특히 발달돼 있다.
피부는 외부에서 오는 기계적 자극을 몸에서 제일 먼저 느끼고 그것을 뇌에 전달해 반응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부에는 감각점인 촉점, 아픔을 느끼는 통점, 온도를 느끼는 온점, 냉점 그리고 압점 등이 분포해 있다. 또 피부에서는 자외선을 받아 비타민D가 만들어진다. 비타민D는 뼈나 치아의 형성에 관여하며 결핍되면 골격 형성에 결함이 나타난다. 피부는 변하면서 손톱과 발톱 그리고 머리카락과 같은 털이 된다. 이들은 피부가 각질화된 것으로 우리 몸을 보호해주며 계속해서 활발히 자란다.
내장기관의 건강상태를 비춰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 또한 피부다. 소화가 되지 않거나 내장에 이상이 있으면 얼굴에 부스럼이나 종기가 생긴다. 또 피부는 영양 상태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며, 작은 피로나 스트레스에도 예민한 반응을 일으킨다. 이처럼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막의 역할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