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구. 우주가 탄생한 시점이 1백50억년 전이고, 지구에서 박테리아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때는 35억년 전이다. 불과 하나의 박테리아가 탄생하는데 우주라는 어머니는 1백억년이 넘는 산고를 거쳐야 했다.
바야흐로 ‘생명공학의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가 눈앞에 닥쳤다. 생명공학은 인류에게 난치병치료와 식량난 극복뿐 아니라 환경오염을 퇴치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생명공학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의 이면에 자칫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다루는 행위가 만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행해진 ‘인간복제’ 실험을 비롯해 세계 생명공학계가 시도하고 있는 많은 연구 테마는 생명체를 함부로 조작하는 일이 흔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낳게 한다. 어쩌면 생명경시사상은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주변에 늘상 존재하기 때문에 그 존엄성을 망각한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한 지고지난한 과정을 돌이켜보면 길거리에 돋아난 잡초 하나라도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한 예로 현재의 생명체, 그리고 그 모태인 지구를 구성하는 원소를 살펴보자. 수소와 헬륨은 자그만치 1백50억년 전 발생한 대폭발 때 만들어졌다. 또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탄소, 칼슘, 철과 같은 원소는 뜨거운 별들의 내부에서 생성됐다. 그리고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타나는 충격파 속에서 합성됐다. 생명의 성분을 창조하는 과정들은 매우 견뎌내기 힘든 환경 속에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진행돼 온 것이다.
최초의 놀라운 우연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은 망원경으로 은하의 움직임을 관측하던 중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모든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은하들이 어느 한곳으로 모여들지 않겠는가.
이 가설을 바탕으로 최초의 우주는 모든 물질이 어느 한 지점에 모여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 지점은 자연히 밀도가 엄청나게 높고 뜨거웠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 과학은 우주의 탄생이 무한대의 밀도로 이루어진 한 점으로부터 시간 공간 물질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이 지점의 크기는 원자에 훨씬 못미친다고 주장한다.
이 원시 우주는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대폭발(big bang)을 거쳐 확장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1백50억년 전의 사건이었다. 태양, 지구, 생명체, 그리고 인간의 탄생 모두 이 순간적인 대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놀라운 점은 대폭발이 결코 단 한차례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주 탄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우주에서는 무한히 많은 대폭발이 되풀이되고 있고, 이로부터 자식우주, 손자우주가 무한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 우주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각 우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진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우주에서는 폭발할 때 반(反)물질보다 물질의 양이 많았다. 이들은 서로 만나 빛을 발하면서 소멸하는데(쌍소멸), 우리 우주에서는 쌍소멸 후에 남은 물질 때문에 별이나 은하와 같은 물질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만일 반물질이 많은 우주였다면 현재와 같은 생명체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주의 탄생 후 10만년부터 10억년까지 수소와 헬륨을 기초로 은하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후 1백억년까지 무거운 원자들이 출현해 은하계 내의 행성들이 태어난 것으로 추측한다.
한 은하계를 구성하는 별은 무려 1천억개 정도다. 더욱 놀랍게도 우주에는 1천억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한다. 지구를 거느린 태양은 이렇듯 상상할 수 없는 개수의 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탄생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을까? 이 문제는 현대 천문학이 당면한 과제 중 가장 중요시되는 것의 하나다. 인간의 기원, 그리고 우주 속에 인간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태양계의 생성에 대해 여러 모델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어느 것도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성운설(星雲設)이다(그림1).
성운설에 따르면 지금부터 약 45-50억년 전 원시 태양계 성운의 중심부에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거대한 구름이 수축을 계속하고, 이때 회전이 빨라지면서 구름은 원반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수축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원반의 중심부가 높은 밀도와 큰 질량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온도가 높아져 핵융합반응이 일어나 태양이 탄생한다. 이때 태양 주변에 떠돌던 먼지 입자가 모여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그리고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을 형성한다. 지구는 이들 중 하나다.
이때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한 ‘놀라운 우연’이 발생한다. 태양으로부터 생명 탄생에 가장 적절한 거리에 지구가 위치했다는 점이다. ‘지구형 행성’이라 불리는 수성으로부터 화성까지의 행성은 철, 규소, 산소와 같은 다양한 화학 조성을 갖춘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재료가 되는 원소들이 지구형 행성들에 풍부하기 때문에 지구 외에도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목성으로부터 해왕성까지의 ‘목성형 행성’은 수소와 헬륨이 주성분이다.
신속한 냉각이 주효
갓 태어난 원시 지구의 크기는 현재의 절반 정도였다. 지구 탄생 직후 철이나 니켈과 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소행성이나 운석들이 지구에 충돌한 결과 지구는 부피가 커지면서 중력이 증가한 것으로 추측된다. 달 표면에서 관찰되는 분화구들 역시 운석이 충돌한 좋은 증거이다.
지구의 경우 지표면의 왕성한 지각 변동에 의해 분화구의 대부분은 침식 또는 퇴적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현재는 운석공이라 불리는 일부 흔적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소행성과 운석에 의해 피폭될 때 이들에 포함된 휘발성 가스, 그리고 지구 안쪽의 핵으로부터 분리돼 지표면 가까이 존재하던 가스가 만나 원시 대기가 형성됐다. 이 대대적인 피폭이 끝나면서 지구는 냉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생명 탄생에 필수적이었으며, 다행히 대단히 신속하게 일어났다. 만일 냉각 속도가 늦어졌다면 강력한 태양광선에 의해 원시대기 중의 수증기가 수소와 산소로 분해돼 지구 바깥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다. 그런데 화성의 경우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 지표면의 열이 외부로 발산되기 어렵다(온실효과). 그래서 기온이 생물이 살기에 너무 높다고 한다. 지구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표면이 급속하게 냉각하자 수증기가 응축되면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겨울에 차가운 유리창에 숨을 내쉬면 입김이 서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는 장기간 폭포처럼 퍼부어지면서 지표면을 갈갈이 찢고 원시 대양을 만들었다.
바로 이 원시 대양에서 생명체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대기의 가스 성분과 지표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성분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다양한 고분자 물질들이 대양에 가득찬 것이다. 특히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대양으로 용해되면서 3백℃ 이상으로 펄펄 끓던 원시 대양과 대기의 온도가 더욱 낮아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38억년 전의 일이다. 이때 용해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는 대륙의 석회암을 구성하는데 사용됐다.
이제 생명의 탄생을 위한 모든 재료가 준비됐다. 하지만 이 재료가 단순히 갖춰졌다고 해서 생명체가 금방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를 이루는 두가지 기본 요소인 단백질과 유전자(DNA와 RNA)는 수십개의 원자가 고유의 순서대로 배열을 맞춰 형성한 물질이다. 원자들은 수억년에 걸쳐 무수한 결합을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배열을 갖춰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인 ‘위대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지구에서 생명체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출현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약 35억년 전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제기될 뿐이다. 이는 그야말로 전지구적인 스케일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화석을 대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드물긴 하지만 외계의 생명체가 운석(심지어는 UFO!)에 의해 지구로 운반된 것이 근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운석이 대기권을 진입할 때 발생하는 심한 마찰열 때문에 여기에 생명체가 묻어 왔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생명체의 구성 요건
생명이 원시 대양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됐다는 설명은 1936년 러시아 생화학자 오파린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그는 유기물질로 가득한 원시 대양에서 유기 분자들이 서로 결합해 ‘고분자 복합체’가 형성됐다고 생각했다. 이후 (1) 막이 형성돼 자신과 외부와의 분리가 일어나고 (2) 막을 경계로 선택적인 물질의 출입이 가능해지고 (3) 흡수한 분자를 복합체의 성분으로 동화시키는 능력이 생기고 (4) 복합체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파악했다.
원시 대기의 주성분은 메탄(CH₄), 암모니아(NH₃), 황화수소(H₂S)와 수증기(H₂O)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강력한 자외선, 화산에서 발생한 막대한 열과 번개가 고분자 합성에 필요한 에너지원이었다. 특히 대기 중에 산소가 희박했기 때문에 합성된 유기물이 산화될 염려가 없었다.
오파린의 설명은 1953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밀러와 우레이가 수행한 실험에 의해 타당성이 증명됐다(그림2). 이들은 물, 메탄가스, 암모니아, 수소를 채운 플라스크를 가열해 혼합물을 순환시키면서 두개의 전극을 사용해 방전을 일으켰다. 이때 냉각장치를 거쳐 나온 산물을 분석하자 몇 종류의 아미노산(단백질의 기본 성분)과 그 유도체들이 검출됐다. 이들과 다른 연구자들은 후에 유전자도 합성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DNA와 RNA 중 어느 것이 더 먼저 발생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DNA의 유전 정보가 RNA에 전달되고, 그 결과 단백질이 합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DNA가 RNA보다 먼저 생긴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현재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RNA의 분자구조는 DNA보다 간단하다. 똑같은 조건에서 RNA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DNA와 단백질 껍질로만 이뤄진 가장 간단한 바이러스의 경우 DNA는 10만개에 가까운 뉴클레오티드(유전자의 기본 단위)를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해 현존하는 RNA 중 운반 RNA는 불과 50-80개의 뉴클레오티드로 구성돼 있다.
DNA가 RNA로부터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RNA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서 RNA로부터 DNA가 만들어진 것이다. DNA와 RNA의 구조가 유사하다는 점도 RNA로부터 DNA가 만들어지는 일이 어렵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제 생명체를 구성하는 각종 유기물질, 특히 자기 복제가 가능한 유전자가 갖춰졌다. 그러나 한가지 남은 문제가 있다. 이 유기물질로부터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과 자신을 구분짓은 막(membrane)이 있어야 한다.
오파린은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라 이름 붙인 방울 모양의 가상적인 원시세포(protocell)가 원시대양에 가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아미노산들의 우연한 조합에 의해 성장이 촉진되고 보다 많은 물질과 에너지 흡수가 가능해진 개체가 출현했다고 가정했다. 이들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마침내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복제 현상이 일어났으리라. 이 과정은 박테리아나 효모처럼 단순히 둘로 나눠지는 이분법과 비슷하다.
종속이냐 독립이냐
화석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는 35억년경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박테리아의 흔적이다. 여기서 이 생명체의 정체에 대해 두가지 의견이 엇갈린다.
오파린의 코아세르베이트는 원시대양 내 유기물질을 먹어치우는 종속영양생명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기물질이 제아무리 풍부해도 결국은 고갈된다. 그렇다면 코아세르베이트가 오랜 시절을 거쳐 살아남았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위에 존재하는 무기물질을 재료로 삼아 스스로 유기물질을 합성하는 능력이 있는 개체가 최초의 생명체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지구에 서식하는 한 종류의 박테리아처럼 원시 대기에 존재하는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대사 과정에 필요한 영양분인 메탄가스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즉 종속적이 아니라 독립적인 박테리아를 최초의 생명 탄생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생명체의 탄생에 이르기까지는 형언하기 힘들만큼 위대하고 신비한 우연이 점철된 장구한 노정이었다. 이후 35억년의 세월이 흐르고 현재의 인류가 생존하기까지의 시간 역시 이에 못지 않은 지고지난한 과정이었다.
지구탄생에서 인류출현까지
화석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는 35억년경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박테리아다. 이 박테리아가 원시대양의 유기물질을 먹고 사는 종속영양생명체였는지, 아니면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대사작용에 필요한 물질인 메탄가스를 생성하는 화학독립영양생명체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약 30억년 전 태양에너지를 사용해 광합성을 수행할 수 있는 박테리아(cyanobacteria)가 출현했다. 현재의 조류(blue-green algae)와 유사하게 엽록소를 가졌다. 세포핵을 갖는 진핵생물의 출현은 15억년 전으로 추정된다. 단세포 생명체인 최초의 진핵생물들로부터 더욱 진화한 형태의 다세포 생물들이 출현한 것은 6억년 전이다. 5억년 전 대양에 가장 흔한 동물은 삼엽충이었으며, 이어 어류가 출현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편 약 4억년 전 ‘식물의 육상침공’ 즉 최초의 육상 식물이 나타났고, 이어 ‘동물의 육상침공’으로 곤충과 같은 절지동물이 육상에 상륙했다. 육상에서는 소철,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이 풍부했고 거대한 잠자리가 날아다녔으며, 지질학적 연대로 석탄기에 척추동물인 양서류가 등장했다. 석탄기 이후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면서 변온동물인 양서류의 수가 급감하여 현재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양서류로부터 파충류가 진화했고, 이중 공룡은 쥐라기에 지구의 육 해 공을 지배했다가 백악기에 전멸했다.
약 2억년전 깃털을 갖고 체온이 일정한 조류가 출현했다. 시조새의 화석은 조류가 공룡류로부터 익룡과는 다른 경로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포유류는 중생대 초기인 약 1억8천5백만년 전 파충류인 수궁류로부터 진화했는데, 원시적인 포유류인 오리너구리나 가시두더지는 파충류와 유사한 알을 낳는다.
영장류는 6천만년 전, 이로부터 인류와 성성이, 그리고 침팬지류의 분리는 5백만년전, 인류의 먼 조상이며 아프리카 지역에서 직립 보행을 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약 3백만년 전에 출현했다.
약 1백50만년 전 뇌용량이 7백50mL 정도로 확대되고 도구를 사용했던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다. 약 50만년 동안의 경쟁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승리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로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약 50만년 전 마침내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