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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Ⅲ. ③컴퓨터게임 속 주인공과의 대화

당신도 라라 크로포드가 될 수 있다.

헐리우드 영화 ‘에일리언’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극장 입구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온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그 영화가 허구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를 보며 두려움을 떨고 행복을 느끼고 슬픔에 흐느낀다.

시각적으로 그리고 청각적으로 영화는 사람의 감정을 독점한 체 마치 자신이 영화 속에 살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가상의 자아가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서면 다시 그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 한 더이상 영화 속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사람에게 전달되던 영화 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탄생해 전세계적인 대스타가 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라라 크로포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툼 레이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프린세스 메이커 3


어여쁜 소녀와의 데이트

이 게임에서 게이머(gamer)는 자신이 라라 크로포드가 돼 3차원으로 펼쳐지는 가상세계에서 악당들과 싸운다. 여러가지 목적을 갖고,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도구를 이용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도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적의 총탄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대활약을 즐긴다. 게임 속에 가상의 자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 게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화에 몰입한 관객은 영화에서 나타나는 캐릭터, 즉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 입장에서 상황을 즐긴다. 하지만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를 가질 수 없다. 그저 다가오는 공포와 슬픔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러나 라라 크로포드가 된 게이머는 그렇지 않다. 그는 나에게 다가오는 적을 기습하기도 하고 위험할 때 주위를 살펴 물 속으로 뛰어든다. 심지어 적을 속이기까지 한다. 즉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만들어간다. 이 큰 차이는 게임의 캐릭터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준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PC게임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게임의 캐릭터도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초기 게임은 대부분 우주를 무대로 한 외계 생명체와 비행물체의 대결 구도가 주종이었다. 흑백으로 표현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배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게임기와 PC의 성능 향상에 따라 고해상도 표현, 3차원 공간 창조가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변화를 맞게 된다.

우선 게임 캐릭터가 단순히 게임기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의 문화 공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이도 일본 닌텐도사의 ‘마리오’나 격투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정도는 귀에 익을 것이다. 이 두 게임의 공통점은 게임 내용이 영화화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그런 탓인지 주인공 캐릭터의 생명력은 10년 이상 유지되고 있으며, 새로운 표현 기술을 입고 점점 세련되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편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한데 힘입어 키우기시뮬레이션, 연애시뮬레이션 등 전혀 새로운 영역의 게임 캐릭터가 개발되고 있다. 일본에서 히트한 후 전세계적으로 파장을 미쳤던 다마곳치는 극히 단순한 키우기시뮬레이션을 실현시킨 휴대용 전자제품이다.

사실 인공지능의 성과는 후지츠에서 개발한 ‘핀핀’이라는 돌고래를 닮은 신비한 새를 키우는 게임에서 그 정수를 엿볼 수 있다. 게이머가 노래를 불러주면 귀엽게 춤을 추기도 하고, 먹이를 주고 같이 놀이를 해야만 친해질 수 있는 이 수줍은 새의 모습은 기술 발전에 의해 언제든지 어여쁜 소녀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게임 캐릭터의 성격을 변화시킨 커다란 계기로 네트워크 환경의 발달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의 대표적인 그래픽 머드게임(다자간역할수행게임) 제작회사인 N사는 1998년 상반기 미국에서 자사의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하면서 그 게임의 선전 문구와 자신들의 슬로건을 “We define reality”라는 아주 선명한 문구를 사용했다. “우리가 현실을 정의한다”는 대담하고도 어찌 보면 위험스럽기도 한 표현을 과연 게임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이다. 그래픽 머드게임은 동시에 1백명 이상의 게이머가 통신상에서 접속해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상호 경쟁·협동하며 수준을 올리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핀핀


지체장애인이 받은 감동

예를 들어 고조선 시대에 한 부족이 형성되는 과정을 그린 상황을 생각해보자. 게이머들은 제각기 사냥을 하거나 옷을 만들어 입고 결혼을 한다. 부족을 만든 후 침입자와 맞서 싸우기도 하고 족장이 되서 부족을 이끌기도 한다. 게임이 네트워크 환경과 만나 수많은 게이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가 실현된 것이다.

네트워크 환경, 특히 인터넷 환경이 게임과 결합된 결과는 놀라울 정도의 파급 효과를 낳았다. 게임 회사의 게시판을 조회해보면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캐릭터를 사기 위해 1백만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또한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어떤 지체장애인이 이 회사에 찾아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마음대로 걷기 힘든 자신이 이곳에서는 정상인과 아무런 차이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커다란 만족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인격을 게임 캐릭터에 불어넣음으로써 캐릭터는 자기의 분신과 마찬가지가 돼버렸다. 이를 이해하려면 어릴 때의 상상을 다시 기억해보면 된다. 학교에 가기 싫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잠자리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서 대리 역할을 수행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제 네트워크 게임은 이 상상 속의 일을 어느 정도 현실화시킨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걸을 수 없을지라도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은 다른 게이머와 똑같은 환경에서 경쟁하는 정상인이다.

최근 게임업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앞서 말한 3차원 표현기술, 인공지능 기술, 그리고 네트워크 기술에 거대 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이 세가지는 최근 세계 게임들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E3쇼에서 가장 화제가 된 기술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세가지 모두 게임의 캐릭터를 보다 실제와 가깝게 나타내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란 점이다.

3차원 표현기술은 평면이라는 모니터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중요한 기술이다. 캐릭터들은 평면적이고 만화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점점 더 사람에 가깝게 또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패턴만을 가지던 주변인물들을 보다 복잡하고 현실감있게 바꿔준다. 즉 조금의 패턴만을 파악하고 나면 쉽게 제압당하던 컴퓨터가 보다 유연성 있는 사고를 하게 되면서 오히려 게이머의 헛점을 파고 들게 된다.

한편 네트워크 게임에서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다 빠르게, 그리고 상황에 맞게 현실화시키는 것은 네트워크 기술 수준에 의존한다. 나의 행동이 내 컴퓨터 속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서도 똑같이 구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와 다른 게이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정확해진다.

이 중요한 기술들의 발전은 인간을 무색케 하는 진짜 사람같은 캐릭터들을 창조해내고 있다. 실제로 얄밉고 악하고 무섭도록 영리한 캐릭터들이 게임 속에서 게이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캐릭터에게 자신의 ‘가상의 자아’를 넣어 생명을 주는 정도를 넘어 실제 인간들의 세계 안으로 캐릭터가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간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캐릭터는 그렇지 않다. 런던에서 콘서트중인 라라 크로포드는 같은 시간에 서울에서 팬 사인회를 가질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 한때 게임의 초창기에 사람에게 조종되고, 부서져 죽으면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졌던 게임 속의 캐릭터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슈퍼 마리오


세계를 창조한다

게임 캐릭터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현재 국내 T사에서 개발 중인 게임이 있다. 3차원 엔진을 써서 게이머가 보는 각도에 따라 화면이 자유롭게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를 잘 쓰지 못하면 곳곳에 숨어있는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게임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소녀 도우미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도우미에게 적절하게 말을 걸지 못하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도우미의 대화 수준은 실제 10대 소녀들의 얘기를 반영한 것이다. 즉 약 2년에 걸쳐 영어를 쓰는 네티즌 소녀들의 대화를 정리하고 여기에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성격을 부여했다. 따라서 게이머는 10대 소녀의 수준에 맞춰 도우미와 대화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조언들을 얻어야 한다. 잘못 얘기해서 도우미가 토라지기라도 하면 적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소녀 도우미는 지루하고 단순한 그래픽 덩어리가 아니고 게이머와 상호작용하면서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대화가 가능하다. 이 캐릭터는 게이머에게 놀라운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미래적인 형태의 게임이 계속적으로 생산되면서 사람들에게 그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현실감과 역동성을 극대화한 게임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은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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