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미인이 중국의 양귀비라면 서양의 미인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기원전 69-30)이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와 기지를 십분 발휘해 당대의 영웅들을 수없이 유혹에 빠뜨렸다. 로마의 실력자 안토니우스와 벌인 한판승부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적을 그녀가 도와준 사실에 격분, 항의하러 이집트를 방문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직접 안토니우스를 만나 해명하겠다고 결심하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 한번의 연회에 막대한 거금(1만 세스테르티아)을 쓴다는 계획이었다.
연회의 처음 얼마 동안은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안토니우스는 코웃음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때 클레오파트라는 시종에게 술잔에 식초를 담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귀에 달린 거대한 진주 하나를 술잔에 떨구고는 식초를 한입에 죽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귀에서 진주를 떼어냈다. 심판은 당황해서 승부는 여왕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취했을까.
진주의 주 성분은 석회석이다. 따라서 식초를 포함한 모든 산에 잘 녹는다. 이때의 화학 변화는 다음과 같은 반응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석회석(CaCO₃) + 아세트산(2CH₂COOH) = 아세트산칼슘((CH₃COO)2Ca) + 물(H₂O) + 이산화탄소(CO₂)
식초는 아세트산을 포함하고 있고, 아세트산은 석회석으로 된 바위를 녹여 아세트산칼슘이라는 염을 만드는 성질이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역시 석회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산을 이용해 진주를 녹인 사실 자체는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과연 클레오파트라가 진주를 곧바로 녹여 마실 수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녀가 마신 식초는 당연히 몸에 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약한 산성을 띠었을 것이다. 따라서 진주 알갱이가 녹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회 당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가지 해석은 당시의 화학 지식을 많이 갖춘 클레오파트라가 진주를 녹일 수 있는 어떤 물질을 연회가 시작하기 전 미리 식초에 타놓았다는 것이다. 한편 클레오파트라가 흰색의 석회로 된 가짜 진주를 귀에 걸고 있다가 교묘하게 속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당대 최대의 부자이자 위대한 이집트의 여왕이 상대방을 속이는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